소설리스트

257. 헤이룽장 성 독점개발권. (257/459)

257. 헤이룽장 성 독점개발권.2020.05.27.

16550739140247.png‘장쭤린이 다카하시에게 보낸 것인가…….’

선우진은 상념에 젖은 눈으로 잠시 그 봉투의 직인과 수신인 명을 바라보았다. 망자가 망자에게 보냈던 편지라니, 이 얼마나 허망한 기록이란 말인가.

16550739140247.png‘불과 두 달 전만 해도 두 사람 모두 지극한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이렇게나 화려한 꿈을 꾸고 있었는데…….’

선우진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서류봉투를 개봉했다. 내용물은 일본어와 중국어로 각각 1부씩 제작된 계약서로, 베이징 이북의 중국 전역에서 수입 잡화점의 독점권을 인정해주겠다는 서류였다. 다카하시 사장이 그 대가로 지급한 계약금의 수령증들을 꼼꼼하게 덧붙여 놓은 상태 그대로다. 사락-! 사락-! 수령증을 한 장씩 넘겨 모두 합산을 해보니, 장쭤린 쪽으로 건너간 돈이 무려 415만 원이나 된다. 물론 그 대신 수입 잡화점 운영 독점권과 각종 세제 혜택을 보장받았지만, 베이징이 장제스에게 넘어간 지금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약속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다카하시 사장은 오판으로 400만 원을 허공에 날린 셈이다.

16550739140247.png‘이러니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찾아갈 수밖에 없었겠군.’

선우진은 씁쓸한 마음을 삼키며 서류를 다시 봉투에 넣었다. 그 다음은 미츠코시 백화점과 맺은 사케 납품 계약서. 이 역시 선우진 자신과도 관계가 있는 부분이어서 마음 한구석에 작은 울림이 일었다.

16550739140247.png‘판매이익 10퍼센트는 이제 입금하지 말라고 해야겠어.’

살아있는 다카하시 사장이라면 모를까, 그 유족의 수입에까지 손을 대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렇게 선우진이 금고 안에서 나온 서류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 다카하시 부인이 다가와 걱정스런 목소리를 냈다.

16550739140262.jpg“손해가 큰가요, 사이온지 님? 설마…… 이 집에서 나가야만 하는 신세는 아닐 테지요? 제 오라버니께서는 그렇게 될 거라고 겁을 주었답니다. 머지않아 식솔들도 거두기 어려워질 거라고…….”

두 손을 꼭 맞잡고 있는 모습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16550739140247.png“아니오.”

선우진은 고민도 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16550739140247.png“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카하시 부인. 걱정하지 마십시오.”

미츠코시에서 선학 사케만 현재대로 판매되면, 이 대저택 정도는 얼마든지 지켜낼 수 있다. 아니 사실 그쯤의 사치는 경성 지점의 그 많은 패커드와 뷰익 자동차만 처분해도 평생 누릴 수 있는 수준이다.

16550739140262.jpg“하유……!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자꾸 겁이 난답니다. 저희는 아무것도 모르는지라……. 어머, 내 정신 좀 봐. 차 한 잔도 대접해드리지 않고 이런 무례를…….”

그제야 조금 여유를 되찾은 다카하시 부인은 앙상해진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16550739140262.jpg“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사이온지 님. 지금 제가 메구미와 함께 다과를 준비해 오겠습니다.”

16550739140247.png“다카하시 부인. 차는 괜찮습니다.”

선우진은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한 뒤, 정중하게 테이블 맞은편의 안락의자를 권했다.

16550739140247.png“제가 계산을 마칠 때까지 메구미 양과 함께 이곳에서 지켜봐 주십시오. 혹시나 제가 서류를 누락시키는 실수를 저지르거나, 두 분을 기만하지는 않는지 말입니다.”

16550739140262.jpg“하지만…… 사이온지 님은 저희를 속이실 분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는데요. 그리고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그런 서류나 재무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른답니다.”

뜻밖의 말을 들은 다카하시 부인의 얼굴에는 걱정스런 표정이 드리워졌다. 그녀에게 겁을 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선우진은 자신의 의견을 꺾지 않았다.

16550739140247.png“그렇다고 해도 자리를 지키시는 건 중요합니다. 이제부터는 두 분이 이 다카하시 가의 주인이니까요.”

사업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온 여인들이기에 그간은 이재에 무지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무관심하거나 외면하는 건 곤란하다. 앞으로는 모든 일을 그녀들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16550739140262.jpg“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럼…….”

다카하시 부인은 하인에게 다과를 가져오라는 지시를 내린 뒤, 메구미와 함께 선우진의 맞은편에 앉았다. 스슥-! 슥-! 선우진은 다시 서류더미 쪽으로 시선을 돌린 뒤, 백지에 글씨를 적어가며 다카하시 가의 재산 상황을 점검해 나갔다. 물론 이런 계산쯤 암산으로도 충분히 해낼 수 있었으나 굳이 숫자를 적는 것은, 메구미와 그녀의 모친이 나중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16550739168694.jpg“사이온지 님……. 손이…….”

그런 선우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메구미가 힘없이 입을 열었다.

16550739140247.png“아아……, 별것 아닙니다.”

선우진은 멋쩍은 미소로 메구미를 진정시켰다. 무타구치와 몸싸움을 벌이며 매질을 하느라 그의 손바닥에는 가시가 박히고 피멍이 들었다. 몇 군데 생채기가 난 곳도 있지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오늘 그 미련한 악당을 두들겨 패 줄 수 있어서, 선우진은 진심으로 다행이라 여겼다.

16550739168694.jpg“제가 바보 같아서 사이온지 님이 또 다치신 거네요…….”

메구미가 자책을 하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또’라는 단어가 댄스 클럽에서의 난투극으로 끝을 맺었던 첫 번째 데이트를 기억 속에 되살아나게 한다. 돌이켜보면 처음 패커드에서 얼굴을 마주한 이래, 그녀는 단 한 번도 선우진에게 진심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16550739140247.png“제가 미숙한 탓입니다. 메구미 양은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선우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은 뒤, 다시 계산을 시작했다.

16550739140247.png‘참담하군…….’

은행 잔고와 재무 기록표를 점검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선우진의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사고와 맞물려 미두 시장에서 제때 매도를 하지 못해 입은 손해가 너무도 컸다. 증거금 10퍼센트만 포기했으면 되었을 거래들이 고스란히 만기까지 채워지며, 총 6백만 원 이상의 손실을 안겼다. 이 모든 게 다…… 다카하시 사장이 비명횡사한 까닭에 벌어진 비극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데츠잔 일당에게 있다.

16550739140247.png‘게다가 이 무수한 횡령들…….’

지난 두 달간 일어난 크고 작은 횡령의 액수를 빠짐없이 기록하면서 선우진은 남몰래 이를 악물었다. 어느 친척이 어떤 짓을 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저들은 다카하시 부인과 메구미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도 처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자산을 팔아치웠다. 특별히 은행에 입금된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그렇게 현금화한 다카하시 가의 재산으로 다들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운 것이 분명했다. 주식, 미두 거래 증서, 곡물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미곡의 일부, 심지어는 사무실의 집기와 최고급 자동차의 예비용 부품까지도……, 그들은 주저 없이 헐값에 내팔았다. 다른 사람들이 손을 쓰기 전에 먼저 차지하고 싶었던 까닭이다. 물론 이 서류들에 아직 기록조차 되지 않은 횡령도 꽤나 많았으리라.

16550739140247.png“최근의 미두 거래는 입금된 실적이 없군. 친척 분들이 증서를 전부 다 가져가신 것인가?”

선우진이 묻자, 공손히 두 손을 모은 채 그의 곁에 서 있던 다카하시 가의 집사가 회한이 가득한 목소리로 답했다.

16550739140262.jpg“그게…… 친척 분들께서도 가져가시고 또…… 일하던 회계 담당 직원들도 현금으로 바꾼 뒤에 그걸 갖고 도망을 쳐 버렸습니다. 천벌을 받을 놈들이…….”

16550739140247.png“그런 건가…….”

16550739140262.jpg“하지만 이것만은 지켰습니다요. 절대로 도장을 찍어주시면 안 된다고 제가 마님께 애원을 드렸습죠.”

집사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양조장과 미곡 창고의 권리문서를 가리켰다.

16550739140247.png“잘했네. 자네가 정말 큰일을 한 걸세.”

선우진은 진심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이 두 권리문서의 소유권이 친척들에게 넘어갔다면, 메구미 모녀에게는 정말로 이 대저택 정도밖에 남겨지지 않았을 터다.

16550739140247.png‘마치 조선이 병탄당하기 직전의 모습을 한 집안으로 축소해놓은 것 같군.’

자신이 적어놓은 기록들을 훑어보며 선우진은 마음속으로 탄식했다. 사방에 넘치는 도둑들이 돈 될 만한 것은 닥치는 대로 훔쳐내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무기력하고 어리숙한 주인들을 도리어 협박까지 했다니……. 그야말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몇 년과 유사한 형국이 아닌가. 친족도 아닌 충직한 몇몇이 어떻게든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는 것까지도 닮았다. 사사삭-! 사삭-! 선우진이 서류를 넘기고 만년필촉을 움직이는 소리만이 밤의 서재를 가득 채운다. 메구미 모녀는 하녀가 가져온 찻잔을 손에 꼭 쥔 채, 숨죽이고 그 회계 과정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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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0739140262.jpg“역시…… 집안에는 남자가 있어야 하네요. 사이온지 님께서 그렇게 해주시는 모습을 보니 너무도 안심이 된답니다.”

서류작업을 하는 선우진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이던 다카하시 부인이 미련이 가득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아직도 선우진이 메구미와 결혼을 해서 이 집안을 책임져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눈치였다. 여자 혼자서 자립을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기엔, 그녀는 너무 오랫동안 구시대적 질서 안에서 살아온 것이다.

16550739140247.png‘이것이 마지막인가…….’

선우진은 두툼한 서류뭉치의 맨바닥에 놓여있던 봉투를 꺼내들었다. 이것 역시 중화민국으로부터 온 국제우편이지만 이번에는 발신인이 다르다.

16550739140247.png‘장쉐량이 보냈군.’

봉투 안에는 간단한 안부 인사 편지가 함께 동봉되어 있었다. 베이징 수입 잡화점 사업이 무산된 것을 사과하고, 그 대신 친구로서 훨씬 더 좋은 특혜를 선물하겠다는 내용이다.

16550739140247.png‘특혜라…….’

선우진은 기대를 품고 첨부된 서류를 펼쳤다. 긴 시간동안 불안해하며 초조하게 기다렸을 메구미 모녀에게, 뭔가 나은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다. 당신들의 친척들이 도둑질을 했고, 가뜩이나 크게 손실이 있었던 재산이 그 때문에 더 줄었다는 말만을 전하는 것은 너무도 잔인한 처사이니까. 그러나……,

16550739140247.png‘이거였군.’

내용을 확인한 선우진은 이마를 짚었다. 헤이룽장 성 일대의 농지 사용권과 금광독점개발권을 20년간 보장해주겠다는 문서. 그 광활한 토지를 전부 임의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면 일견 대단한 특혜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실상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일단 금광만 해도 엄청난 설비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선우진은 잘 안다. 금광 주변까지 도로와 선로를 깔아야 하고, 금광 노동자들의 숙소도 준비해야 하며, 또 금맥을 찾아낼 때까지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투자를 계속 이어갈 필요도 있다. 물론 선우진은 사이토 총독과 하세가와 비서과장 때문에 그 모든 번거로운 과정을 전부 건너뛰고 단번에 이익을 챙겼지만, 여긴 상황이 다르다. 장쉐량이 보내준 문서를 아무리 면밀하게 다시 살펴봐도 도로와 같은 기초설비를 제공해주겠다는 대목은 없었다. 그렇다면 향후 몇 년에 걸쳐 길을 닦는 것부터 시작해야만 한다는 의미다. 재무서류를 파악하는 것조차 어렵다고 여기는 메구미 모녀에게 그렇게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주문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이 일대가 로스차일드 가문조차 욕심을 낼 만큼 가능성이 큰 땅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지금 다카하시 가의 형편으로는, 몇백만 원씩이나 되는 현금 동원도 무리다. 출금할 수 있는 돈은 다 친척이 가지고 도망쳐 버렸으므로.

16550739140247.png“예상하셨던 대로 재산의 손실이 꽤 있었습니다.”

계산을 전부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 선우진은 두 사람 쪽으로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16550739140262.jpg“네, 그럴 거라고들 했습니다.”

다카하시 부인이 짧은 탄식을 흘린 뒤, 겁먹은 얼굴로 물었다.

16550739140262.jpg“얼마나 가난해진 건가요?”

가난…… 이라고 하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지만, 불과 두 달 사이에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선우진은 그녀와 메구미가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한 종이를 내밀었다.

16550739140247.png“6월이 시작되기 전까지 다카하시 사장이 보유했던 자산은 총 4천 2백만 원 가량이었는데, 지금 남은 것은 2천 8백만 원에 조금 못 미칩니다. 가장 큰 손해는 미두 시장에서 제때 거래를 마치지 못해 발생한 640만 원과, 장쭤린 대원수에게 투자했던 415만원이고, 그 외에도 친인척분들의 현명하지 않은 결정 때문에 크고 작은 여러 손실이 있었습니다.”

16550739140262.jpg“하아…….”

다카하시 부인은 뭐라 대답할지 모르겠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며 볼을 감쌌다. 하지만 선우진이 우려했던 것과 달리, 기절을 하거나 울음을 터뜨리지는 않았다. 불과 두 달 만에 무려 천 4백만 원 이상의 재산이 증발된 사람치고는 꽤나 침착한 태도였다. 어쩌면 너무 큰 액수여서 현실 감각이 마비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메구미 역시 그저 눈을 깜빡이기만 할 뿐이었다.

16550739140262.jpg“남편이 평생 일군 재산인데, 꼭 제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기분이네요.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꽤나 긴 시간동안 목석처럼 가만히 앉아있던 다카하시 부인이 물었다. 선우진은 집사가 지켜낸 두 개의 권리문서를 들어 보이며 설명을 계속했다.

16550739140247.png“여러 불행한 사건이 겹쳤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두 사업장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습니다. 사업장을 담보로 약간의 추가 대출을 요청한 뒤 그것으로 곡물 창고를 운영하시고, 또 양조장에서 고급 사케 제작을 계속하신다면 차차 예전의 부를 되찾아나가실 수 있을 겁니다. 미츠코시 백화점 측에서도 ‘선학’ 사케의 판매를 더 적극적으로 진행하겠다고 제게 약조를 한 바 있습니다.”

선우진은 개중 좋은 소식을 먼저 전한 뒤, 좀 더 어려운 임무를 일러줬다.

16550739140247.png“그다음엔 일본의 변호사를 통해서 이번에 방문하셨던 친척분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셔야 합니다.”

16550739140262.jpg“소송이라고 하셨나요? 그…… 재판을 하는 것 맞지요?”

다카하시 부인의 얼굴에는 한층 더 시름이 깊어졌다. 선우진은 자상한 표정으로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16550739140247.png“맞습니다. 그분들 때문에 입은 재산상의 피해를 반환해달라고 요구하는 소송입니다. 비록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은 낮지만, 그렇게 해두면 추후에 그분들이 유산 상속의 지분을 주장하지 못할 겁니다.”

16550739140262.jpg“부끄러운 말씀입니다만, 제가 그런 걸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은데요……. 사업이라는 것도 그렇고, 또 소송이라는 건 더욱 무섭기만 합니다.”

다카하시 부인은 얼굴을 붉히면서도 솔직하게 말했다. 선우진 역시 그녀가 그 임무들을 수행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현실적으로 보아도, 현재 일본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자가 사업이나 소송을 진두지휘한다는 것은 많은 반발을 일으킬 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16550739140247.png“만약 두 분께서 허락하신다면, 그런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전임 총독 각하를 오래 모셨던 유능한 비서과장이고,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선우진은 메구미 모녀를 안심시켰다. 총독부에서 물러나 라디오국을 운영하고 있는 하세가와라면 사업체 두 곳의 경영을 추가로 더 맡겨도 훌륭히 해낼 것이다. 기타 자잘한 업무와 소송 따위는 그가 함께 데리고 나온 전임 관료들을 동원해서 처리하면 된다. 추가 대출은 미우라 은행장을 소개해주면 원활히 일이 진행되리라.

16550739140262.jpg“저야 정말로 가뭄에 단비 같은 말씀입니다만, 그렇게 신세를 져도 되는 것일까요? 여러 업무로 바쁘실 텐데…….”

사업체를 헐값에 팔아넘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다카하시 부인은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선우진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16550739140247.png“도울 수 있어서 저 역시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선우진은 장쉐량이 보낸 서류를 꺼내 보이며 말을 이었다.

16550739140247.png“헤이룽장 성의 토지를 20년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권리 보장 문서입니다. 장쉐량 장군이 보낸 것으로, 현재까지도 유효합니다. 농지로 사용하실 수도 있지만, 이 뒤쪽에 특정되었듯 금광의 잠재가치가 더 큽니다. 문제는 아직 이 일대가 충분히 개발되지 않은 오지라서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도로를…….”

도로와 선로 같은 기본 설비를 위한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려 할 때, 다카하시 부인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16550739140262.jpg“지나는…… 싫습니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곳만 가지 않았더라도 남편은…….”

지난겨울의 중국 가족 여행이 떠오른 것일까, 다카하시 부인의 눈가에는 순식간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메구미 역시도 슬픔이 가득 어린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16550739140247.png“두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렇다면 판매를 해야 하는데, 이런 형태의 계약서는 그리 쉽게 큰 가치를 인정받지 못합니다.”

선우진은 솔직하게 현실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금광이 있을 것이다, 라는 가능성만으로는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할 수 없다. 금맥이 표기된 지도와, 그곳에서 캐낸 금광석 정도는 보여줘야만 비로소 돈이 되는 게 이런 채굴권이다. 더군다나 점점 세력이 줄어들고 있는 장쉐량의 보증이라면 가치는 또 크게 떨어질 것이 자명하다. 물론 로스차일드 가문은 이 문서에 기꺼이 천만 원 이상을 지불할 테지만, 그들에게 판매를 하면 찰스에게 그 지역에서 손을 떼라고 했던 조건을 선우진 스스로 파기한 꼴이 된다. 그것만은 선우진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16550739140247.png“대부분의 사람들은 5백만 원 이하로 후려쳐 구입하려 들 것입니다만, 조금 시일을 주시면 제 값을 줄 만한 사람을 수소문해 볼 수 있을…….”

16550739140262.jpg“그건 그냥…… 헐값에 넘기셔도 됩니다, 사이온지 님.”

다카하시 부인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16550739140262.jpg“저희를 위해 이렇게나 많은 일을 해주시고 앞으로도 도움을 주실 텐데, 그런 일까지 부탁드려 어깨를 더 무겁게 해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 역시 불길해서 더 안고 있을 마음이 없답니다.”

현명한 결정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그녀는 중국과 관련된 모든 기록을 깨끗이 지워버리고 싶어 한다.

16550739140247.png“정 그러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잠시 생각을 해보던 선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으로 이 권리증을 천 4백만 원에 사겠다고 결심했다. 그리하면 다카하시 가문의 자산은 작년 겨울의 수준으로 원상 복구되는 셈이니까.

16550739140247.png“다음은…….”

재산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마친 선우진이 무겁게 입을 뗐다.

16550739140247.png“다카하시 사장의 사망 당일에 관한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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