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5. Amazing Grace. (335/459)

335. Amazing Grace.2021.02.24.

16550763040741.jpg“그야…… 허무맹랑한 거짓말이니까요, 하워드.”

팰리는 간단한 것 아니냐는 투로 쓰게 웃었다.

16550763040741.jpg“……게다가 그건 이 정부를 찬양하는 말이기도 하죠. 공화당 정부 말입니다.”

16550763040751.jpg“부자가 되라는 말이…… 공화당 정부를 찬양하는 거라고요?”

진지하게 듣고 있던 휴즈가 미간을 찌푸렸다.

16550763040751.jpg“그건 또 무슨 이야기입니까, 제임스? 좀 더 자세히 말해보시오.”

16550763040741.jpg“라스콥은 한 달에 15달러만 주식에 투자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 라고 운을 뗀 다음 꼭 그 말을 덧붙이죠.”

16550763040751.jpg“한 달에 15달러나?”

다소 놀란 얼굴의 휴즈가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16550763040751.jpg“그건 좀 액수가 큰데?”

대도시 노동자들의 평균 주급이 19달러 정도이니, 한 달 수입의 거의 1/4을 주식 매입에 사용하라는 이야기다. 팰리는 충분히 동의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16550763040741.jpg“맞습니다, 하워드. 작은 액수가 아니에요. 뭐…… 부자들에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푼돈일 테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그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주택 임대료와 지하철 요금, 식료품비, 가스요금, 아이들 양육비까지…… 이미 정해져 있는 고정 지출이 상당하니까요.”

손으로 헤아려가며 지출항목들을 읊던 팰리가 테이블에 펼쳐져 있던 뉴욕 주의 지도를 짚었다.

16550763040741.jpg“맨해튼이나 롱아일랜드는 좀 이야기가 다를지 몰라도, 이쪽…… 브롱크스나 브룩클린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가난한 노동자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그만큼 큰돈을 투자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아이들에게 우유조차 사줄 수 없는 사람들에게 한 달 15달러를 투자하라고 하는 건, 조롱으로밖에 안 느껴질 겁니다.”

16550763040778.jpg“뉴욕 주의 우유 가격을 인하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 바로 알 스미스 주지사였거든요.”

수치스러운 과거를 회상하는 사람처럼 한숨을 내쉰 로젠맨까지 한마디를 덧붙였다. 팰리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을 이었다.

16550763040741.jpg“사람들은 놀림받았다고 생각하면 화가 나는 법이지요. 그리고 그 화가 난 사람들은…….”

16550763062835.png“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이로군요.”

선우진이 말했다. 팰리는 선우진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16550763040741.jpg“그렇습니다, 유우야. 라스콥은 지금 그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있어요. 남들은 다 부자가 되어가는 것 같다는 착각 때문에 안 그래도 박탈감을 느끼는데…… 그런 사회 분위기를 부추기는 게 자신들이 지지해서 주지사로 만들어줬던 알 스미스의 선거 본부장이자, 미국 민주당 위원회의 회장인 라스콥이어서 더 화가 나는 것이죠. 그 사람들은 다시는…… 다시는 알 스미스에게 표를 주지 않을 겁니다.”

16550763040751.jpg“거기까지는 이해했소, 제임스. 하지만…….”

휴즈가 손을 들어보이며 다시 물었다.

16550763040751.jpg“좀 더 여유가 있는 계층에서는 어떻겠소? 그쪽에서는 알 스미스를 선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부자로 만들어준다고 하니 말입니다.”

16550763040741.jpg“왜 그러겠습니까, 하워드?”

팰리는 담배 연기를 내뿜은 뒤 질문으로 답을 대신했다.

16550763040741.jpg“지금의 호경기는 공화당 정부 아래에서 만들어진 것인데요. 지금 주식에 투자해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면, 그 사람들은 당연히 공화당 정부에 투표할 겁니다. 상황이 좋은데 왜 굳이 위험을 감수해가며 변화를 바라겠습니까?”

16550763040751.jpg“아하……! 그렇게…….”

이제 완전히 문제의 본질을 이해한 휴즈가 턱을 쓸며 눈을 빛냈다. 모든 일이 잘 풀릴 때, 사람들은 사소한 일상에서조차 그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 대통령을 바꾸는 것 같은 커다란 모험을 감행할 까닭은 더더욱 없다.

16550763040741.jpg“주식에 15달러만 투자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라스콥의 주장은, 공화당의 경제정책이 성공적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연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그간 주가가 계속 상승 중이었다는 걸 상기시켜주는 거죠.”

팰리는 여전히 침착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16550763040741.jpg“말하자면 라스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알 스미스가 아니라 공화당의 후버 후보 지지운동을 하고 있는 셈이랄까요.”

16550763040751.jpg“와우……! 알 스미스가 들으면 기절할 이야기로군. 가난한 사람들의 표도, 부자들의 표도 다 잃는 선거 전략이라니……. 이보다 멍청할 수는 없겠어. 하지만 바로 그래서 라스콥답기도 하군요.”

휴즈가 눈알을 굴리며 장난스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라스콥의 언행에 영향을 받는 중이므로, 그저 재미있다고 웃어넘길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16550763062835.png“알 스미스 후보는 왜 제임스 당신이 아니라 그런 자에게 선거운동을 총괄하도록 한 거요?”

선우진이 물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팰리는 정치적 상황을 분석하는 능력도 뛰어나고, 접근하는 방식도 남다르다. 더구나 연이어 3선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참모가 아닌가. 그런 인재가 떨려나고 라스콥이 알 스미스의 최측근에 올랐다는 게, 언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16550763040741.jpg“욕심이 과하다는 것도 한 원인이겠지만, 제일 큰 이유는 대통령이라는 꿈 때문일 겁니다, 아마도…….”

팰리는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덤덤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16550763040741.jpg“아시다시피 뉴욕은 미국 전체에서 가장 많은 선거인단을 가진 주입니다. 무려 45표나 되지요. 그건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를 합친 것보다도 많은 수예요. 그러니 뉴욕에서 인기를 끌면, 미국 전체를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알 스미스 후보도 그랬어요. 4년 전부터 그는 대선에 출마하고 싶어 했죠. 그러나…….”

천천히 도리질을 하고 나서 팰리가 말을 이었다.

16550763040741.jpg“나는 좀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아직 못 이겨요. 하지만 라스콥은 알 스미스 후보에게 이길 수 있다고 부추겼죠. 그게 나와 라스콥의 차이였고, 알 스미스는 라스콥을 택한 겁니다.”

16550763062835.png“뭐, 좋소……. 알 스미스의 오판 덕분에 프랭크에게 기회가 왔고 당신이라는 소중한 친구도 얻은 셈이니, 우리에게는 잘된 일 아니겠소. 자, 이제 프랭크에 관해 이야기해 봅시다, 제임스.”

선우진은 냉철하게 대화의 주제를 바꾸었다. 알 스미스가 망하든 말든, 지금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당면 과제는 루즈벨트의 선거다. 여기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단 한 발짝도 더 전진할 수 없다.

16550763062835.png“당신이 생각하기에는 현재 프랭크가 이기고 있단 겁니까?”

16550763040741.jpg“그렇습니다, 유우야. 이기고 있어요.”

선우진의 질문에 팰리는 뉴욕 주 지도의 동남쪽을 가리켰다.

16550763040741.jpg“이쪽에서는 7퍼센트 정도 앞서고, 브롱크스 라인 위에서는 아직 15퍼센트 정도 뒤집니다. 수치만 놓고 보면 절망적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인구 밀집 지역에서 앞서고 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는 1퍼센트나 2퍼센트 정도 우위인 거죠.”

16550763062835.png“흐음…….”

선우진은 팰리가 짚은 지도를 살폈다. 맨해튼, 브롱크스, 브룩클린, 퀸즈……. 뉴욕주의 4대 인구 밀집 지역에서 우위를 점했다는 건 나쁜 소식이 아니었지만, 1퍼센트 차이라는 건 그야말로 살얼음판처럼 아슬아슬하다. 라스콥이 민주당 전국지부의 우두머리로서 계속해서 부정적인 영향을 넓게 미치는 상황이니, 언제 그 수치가 뒤집힌대도 이상하지 않다.

16550763040741.jpg“그게…… 꽤 좋아진 겁니다.”

선우진의 의중을 알아챈 팰리는 두 팔을 벌려 보였다.

16550763040741.jpg“자동차 유세를 시작하기 전에는 더 형편없었어요, 유우야.”

16550763062835.png“하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는 않군요. 이보다 더 치고 올라가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뭡니까?”

16550763040741.jpg“역시 업스테이트 쪽이 문제입니다.”

팰리는 뉴욕주 지도의 윗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넓은 면적을 지목했다. 루즈벨트가 15퍼센트나 뒤지고 있는 영역이다.

16550763040741.jpg“말로는 똑같은 뉴욕주라고 해도 여긴…… 완전히 다른 곳이에요, 유우야. 대도시의 느낌은 전혀 없고, 오히려 한적한 농촌에 가깝지요. 이 지역에서는 민주당이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16550763040751.jpg“하지만 프랭크의 고향이 그쪽 아니오? 사라의 고향이기도 하니 지역 기반이 나름 탄탄할 텐데?”

휴즈가 끼어들어 이의를 제기했다. 자신의 고향에서 인기를 누리지 못하는 정치인이라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더구나 외가인 델라노 가문은 아직도 그곳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며 살고 있는데!

16550763040741.jpg“맞습니다, 하워드. 그 지역 사람들도 프랭크를 좋아해요. 하지만…….”

팰리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분명한 단서를 달았다.

16550763040741.jpg“누군가를 좋아하는 것과 그에게 투표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죠. 아무리 프랭크가 그 지역 출신의 잘생긴 정치가라고 해도, 업스테이트 주민들은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걸 망설이고 있습니다.”

16550763040751.jpg“왜? 왜 지지하지 못하겠다는 거요, 제임스? 민주당이 그 사람들의 집에 불이라도 질렀답니까?”

답답해진 열혈 사나이 휴즈가 몸을 일으키며 또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도 팰리는 여전히 평온하게 자신의 할 말만 이어갈 뿐이다.

16550763040741.jpg“금주령을 대놓고 어겼던 게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16550763040751.jpg“그 바보 같은 법을 지키는 사람도 있소?”

16550763040741.jpg“뉴욕 업스테이트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하워드. 그들은 아주 완고한 개신교도들이니까요. 그런데 알 스미스는 주지사 시절에 업스테이트 공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술을 대접했습니다. 무려 6년 동안이나요. 아무리 금주법에 반대한다지만, 그건 영 모양새가 좋지 않았죠.”

16550763040751.jpg“이런, 젠장……!”

맥이 탁 풀린 휴즈는 의자에 걸터앉으며 이마를 쓸었다. 음주를 죄악시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주지사라는 작자가 공개적으로 술 파티를 열어왔다니, 이건 변명의 여지도 없다. 당연히 여론이 좋지 않을 수밖에…….

16550763040751.jpg“그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겠소? 프랭크가 마을마다 돌면서 ‘저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저는 신실한 개신교도입니다!’라고 외치면 되는 거요?”

휴즈가 비아냥대듯 물었다. 그의 말에 허탈하게 웃던 팰리는 시선을 뉴욕 주 지도로 던졌다.

16550763040741.jpg“그럴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업스테이트는 너무 넓습니다, 하워드. 그에 비해 인구는 적죠. 업스테이트를 한 바퀴 돌 시간이면, 브롱크스 라인 아래를 두 번 누비며 유세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수지가 맞지 않아요. 제가 제안하는 건, 그냥 업스테이트를 버리는 겁니다.”

팰리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주장했다.

16550763040741.jpg“인구 밀집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유세를 벌여 격차를 벌여 나갑시다. 그편이 더 경제적이에요.”

16550763040751.jpg“그렇게 했을 때 승산은 얼마나 되는 거요, 제임스?”

휴즈가 관자놀이를 짚은 채 눈썹을 치켜올렸다. 지금까지 해왔던 그대로 남은 일주일을 보내는 건 아무래도 불안했다. 이만큼이나 돈과 기술을 쏟아부었음에도 겨우 1퍼센트 앞서고 있는데…… 자동차 유세의 열기가 한풀 꺾이면 흐름 자체가 뒤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16550763040741.jpg“글쎄요……. 대략 60퍼센트 정도 아닐까 싶군요. 엘레노어의 합류로 여성 표는 꽤 많이 흡수했지만, 알 스미스가 저렇게 바보 같은 급진적 공약을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프랭크가 얻는 표도 덩달아 적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말입니다.”

16550763040751.jpg“아니, 아니! 그건 곤란해. 그렇게 아슬아슬한 승부에 모든 걸 건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제임스.”

벌떡 일어난 휴즈는 팔짱을 끼고 신경질적으로 사무실 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정치인인 팰리에게는 60퍼센트의 승률 정도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것으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그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 이건 적어도 천만 달러,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큰 가치가 걸린 선거이니까.

16550763040751.jpg“알 스미스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공격하면 어떻겠소? 그러면 좀 인기가 올라갈까?”

한동안 고민한 끝에 휴즈가 나름 얕은꾀를 내보지만, 팰리도 로젠맨도 고개를 저었다.

16550763040741.jpg“그럼 민주당 지지자들이 싫어할 겁니다, 하워드. 이 세상에 어떤 주지사 후보가 자당의 대통령 후보를 비난한단 말입니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두 사람은 서로를 띄워주며 함께 가야만 해요.”

16550763040751.jpg“끄응……! 안 되는 것도 많군!”

휴즈는 못마땅하게 앓는 소리를 흘렸다. 알 스미스가 계속 점수를 잃고 있는데 이쪽에서는 그를 비난할 수도 없으니, 이건 그저 답답할 일이다.

16550763062835.png“더 많은 표를 획득하려면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 거로군요.”

그들의 논쟁을 잠자코 듣고 있던 선우진이 특유의 차분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16550763062835.png“독실한 개신교도들의 마음을 프랭크 쪽으로 돌려야 하고, 그러면서도 민주당의 가치를 훼손하지는 않아야 하는 거요. 맞소이까?”

16550763040741.jpg“그렇기는 합니다만…….”

팰리와 로젠맨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말꼬리를 늘였다.

16550763040741.jpg“그게 어려우니까 문제인 겁니다, 유우야. 두 가지 조건은 서로 상충해요. 조금 전 하워드에게도 설명했던 것처럼, 독실한 개신교 신자들의 마음을 사려고 하면 기존 민주당 지지자들을 잃게 될 것이어서요.”

16550763062835.png“막연한 이미지를 덧붙이는 건 어떻겠소?”

선우진은 상상 속의 공을 잡은 것처럼 허공에 두 손을 벌려보였다.

16550763062835.png“연설은 지금까지와 같은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유세를 본 사람들이 뭔가를 더 느끼게 만드는 겁니다. 말로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마치 그 말을 들은 듯한 착각이 드는 그런…….”

16550763040751.jpg“우리가 링컨 L타운카로 거물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줬던 것처럼?”

휴즈가 선우진를 가리키며 그의 의도를 확인했다. 선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16550763062835.png“그렇다네, 하워드. 독실한 개신교도들이 좋아할 만한 뭔가가 필요해.”

버스터의 멋진 식사 기도를 보고 좋아했던 사라의 모습을 떠올리면, 이곳의 사람들에게 종교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의 환심을 살 수 있는 뭔가를 해야만 한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이란 더 많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은 사람이 차지하는 것이니까.

16550763062835.png“그러면서도 그것이 프랭크를 연상시킬 수 있어야 하네. 색깔이라든가, 모양, 장식물, 그림, 복장…… 노래!”

머릿속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들을 무심히 읊던 선우진이 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휴즈가 양손의 검지로 선우진을 가리키며 콧김을 내뿜었다.

16550763040751.jpg“이런 젠장! 자네는 정말이지 미쳤군, 아이스 맨!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낼 수가 있는 거지? 너무 멋져!”

16550763040741.jpg“뭡니까, 뭡니까? 왜 두 사람 그렇게 흥분하는 거요? 우리도 좀 압시다!”

마음이 급해진 팰리와 로젠맨이 엉덩이를 들썩였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선우진과 휴즈를 번갈아 돌아봤지만, 휴즈는 지금 설명해줄 여유가 없었다. 선우진으로부터 받은 영감의 폭풍 속에서 가장 멋지고 그럴듯한 하나를 붙잡아내야 하는 까닭이다.

16550763040751.jpg“왜!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나도 참 바보로군……. 그래! 제대로 된 캠페인 노래가 있었어야 해! 조금 더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을 것을……. 아니야, 지금도 늦지 않았어! 뭐지? 어떤 노래여야 하는 거지?”

휴즈는 자신의 이마를 짚고서 미친 사람처럼 웅얼대며 조금 전보다 더 바쁘게 사무실 내부를 계속 빙글빙글 돌았다.

16550763040778.jpg“캠페인 노래는 이미 있소, 하워드! 민주당의 이번 캠페인 노래는 ‘뉴욕의 거리(Sidewalks of New York)’요! 알 스미스 후보도, 프랭크도 같은 노래를 사용합니다! 들어보셨을 텐데…….”

보다 못한 로젠맨이 사실을 일러준다. 휴즈는 감정이 한껏 고양되어 목청을 높였다.

16550763040751.jpg“그따위 노래는 됐소, 사무엘! 알 스미스나 많이 틀어대라고 하시오! 뉴욕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뉴욕의 거리를 알려서 뭘 어쩔 셈이오? 게다가 그건 뉴욕 주 전체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없지 않소? 그냥 맨해튼이라고! 우리가 설득해야 하는 건, 번화한 도시에 대해서 막연히 질시의 감정을 갖고 있는 업스테이트 사람들이고!”

알 스미스가 정한 캠페인 노래의 문제점을 말의 폭포처럼 쏟아내던 휴즈가 다시 이마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16550763040751.jpg“……아니, 아니야.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자. 지금은 문제에만 집중해……. 뭐가 좋지? 뭐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면서도 강렬하고, 또 그러면서도 장엄하게 프랭크만의 이미지를 줄 수 있는 걸까……?”

16550763062835.png“교회에서 부르는 노래면 더 좋을 걸세.”

선우진이 한 번 더 영감을 주는 조언을 덧붙이자 휴즈의 고개가 더욱 격렬하게 끄덕여졌다.

16550763040751.jpg“교회? 오, 하느님! 맞아, 그걸세! 교회에서 부르는 노래…… 교회에서 부르는 노래……. 아이스 맨, 내 머릿속에는 지금 수백 곡의 찬송가들이 동시에 연주되고 있다네. 그중에서 가장 마음을 울리는 한 곡을 찾아야 해……. 아!”

마침내 결론에 도달한 휴즈가 만세를 부르듯 두 팔을 쭉 뻗으면서 외쳤다.

16550763040751.jpg“어메이징 그레이스!”

휴즈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감으로 가득하고, 커다란 두 눈은 희열로 빛났다.

16550763040751.jpg“그거야! 바로 그 노래라고! 그거면 바로 업스테이트에서도 프랭크의 이미지를 확 띄울 수 있어! 독실해 보이잖아! 그리고 동시에 빈곤에 허덕이는 이민자들의 표도 잡을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은 고난에서 구원해 줄 사람을 필요로 하니까!”

16550763040741.jpg“하지만…… 그건 찬송가잖습니까?”

팰리는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불경스러운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신이 난 휴즈가 허공에 손가락질을 하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16550763040751.jpg“더 좋지! 누구도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으니까! 동의를 구하고 판권을 사는 따위로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고 곧바로 사용할 수도 있고!”

16550763040741.jpg“찬송가를 개인의 목적을 위해 이용할 수는 없습니다, 하워드!”

16550763040751.jpg“무슨 상관이오? 프랭크가 그 노래를 좋아한다는데?”

팰리에게 바짝 얼굴을 들이댄 휴즈는 광기로 눈을 번뜩였다.

16550763040751.jpg“프랭크는 요즘의 매일이 너무 행복한 거요!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고, 이렇게 뉴욕 사람들을 위해 나설 수 있어서! 그에게는 매 순간이 기적 같은 기쁨이어서 늘 감사하고 있단 말이오! 실제로는 나와 아이스 맨에게 감사하는 거지만, 어쨌든! 대외적으로는 신이라고 합시다! 언젠가 진짜로 걸을 수 있게 되면 프랭크도 신께 진심 어린 감사기도를 올릴 테니까……. 어쨌든 그 누구도 독실한 기독교인이 찬송가를 좋아하는 걸 막을 수는 없소! 적어도 미국에서는!”

1655076320906.png

16550763040778.jpg“노래에는 저작권이 없지만 가수에게는 있습니다, 하워드.”

로젠맨이 또 다른 반론을 꺼내들었다.

16550763040778.jpg“선거까지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지금부터 가수와 레코드사로부터 저작권을 사들이고 준비를 하려면 너무 늦어요. 무리란 말이오.”

16550763040751.jpg“바로 그래서 당신들이 나에게 감사해야 하는 거요, 사무엘. 나는 천상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엄청난 가수와 이미 계약을 맺었고, 그녀는 마침 바로 여기 뉴욕에 있다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전화를 걸어서 나타샤 양을 불러야 해!”

온갖 잘난 체를 다 해대던 휴즈가 갑자기 수화기를 들고 롱 아일랜드 저택의 전화번호를 돌리기 시작했다.

16550763040751.jpg“나 하워드 휴즈일세! 나타샤 양께 내가 통화를 원한다고 전해주겠나?”

전화를 받은 집사에게 용건을 전한 휴즈는 그 짧은 새를 못 참고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16550763040751.jpg“프랭크의 라디오 연설! 연설문을 완전히 새로 써야 하오, 사무엘!”

16550763040778.jpg“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하워드? 얼마나 공들여서 작성한 연설문인데요?”

16550763040751.jpg“아니, 아니……. 그런 건 유세에서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소. 신문에서 읽어도 그만이고……. 지금 중요한 건 이미지요. 라디오 연설이 시작되면 일단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틀 거요. 노래가 먼저야!”

휴즈는 적극적으로 손사래를 쳐댔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한 곡의 노래를 이용한 이미지 만들기 작업이 마치 영화를 감독하는 것처럼 계속 진행 중인 모양이다. 로젠맨은 한숨을 내쉬며 울상을 지었다.

16550763040778.jpg“연설을 들으려던 청취자들은 노래가 나오면 뭔가 잘못되었나 싶어 다른 채널로 돌려버릴 겁니다!”

16550763040751.jpg“그럴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내가 장담하겠소, 사무엘! 일단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나면…… 절대로 채널을 돌릴 수 없소. 어쩌면 그 자리에 얼어붙어서, 연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잠시 잊을지도 모른다오. 그런 뒤에 프랭크는 기도처럼 겸손한 짧은 연설문을 읽으면 그만이오.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이 없는 뉴욕을 만들고 싶다고, 틀에 박힌 연설보다 그편이 훨씬 더 가슴을 울릴 거요. ……오, 나타샤 양!”

자신감으로 가득차서 야심차게 떠들어대던 휴즈가 부드러운 어조로 바꿔 전화기 너머의 나타샤에게 말했다.

16550763040751.jpg“우리 계약의 첫 번째 녹음을 할 시간이 갑작스럽게 찾아왔습니다! 준비하고 빌리와 함께 맨해튼으로 와요. 미국인들의 귀를 녹여버립시다. ……좋아, 됐고!”

나타샤와의 통화를 마친 휴즈는 곧바로 다시 다이얼을 돌렸다. 이번에 전화를 건 곳은 펀천클럽이었다.

16550763040751.jpg“찰리, 나일세! 그래, 하워드 휴즈야! 지금 당장 그곳의 밴드들을 다 데리고 29웨스트 42번가로 오게! ……뭐? 음악이 없으면 매출을 어떻게 올리냐고? 내가 두 배로 메꿔줄 테니 그런 걱정은 하지도 말게! ……그래! 밴드도, 코러스 걸들도 몽땅 다 데리고 와!”

철컥-! 독재자처럼 일방적으로 요구사항들을 쏟아낸 뒤 수화기를 내려놓은 휴즈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통화를 듣고 있던 로젠맨이 찜찜한 표정으로 물었다.

16550763040778.jpg“설마 비밀주점의 코러스 걸들에게 찬송가의 코러스를 부르게 할 생각은 아니지요, 하워드?”

16550763040751.jpg“왜 안 됩니까, 사무엘?”

휴즈는 정색을 하고 되물었다.

16550763040751.jpg“짧은 치마를 입고 술집에서 일해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젊은 여성들에게는 찬송가를 부를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시오? 진짜 불경스러운 일이 뭔지 아시오?”

휴즈는 광신도와 같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16550763040751.jpg“당신들처럼 점잔을 빼다가, 형편없는 인물에게 뉴욕을 넘기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도록 하는 겁니다. 주님께서 그런 걸 더 좋아하실까요?”

16550763040778.jpg“그런 것은 아니지만…… 소문이 날 겁니다, 하워드!”

울상이 된 로젠맨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16550763040778.jpg“프랭크는 술집 아가씨들이 부른 찬송가를 캠페인 노래로 사용한다는 소문이 퍼지면, 결국 표만 더 잃게 될 거예요!”

16550763040751.jpg“그녀들은 어디까지나 코러스만 넣는 거고, 진짜 가수는 아시아의 공주요! 단순한 귀족이 아니라 왕족이라고! 정말로 고귀한 신분이지! 그리고…… 소문 같은 건 날 일이 없소.”

16550763040778.jpg“어째서요? 당장 어디에서 녹음을 할 겁니까? 사정을 아는 간부들이 떠벌일 텐데!”

로젠맨이 아무리 걱정을 늘어놓아도 휴즈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만 가득하다.

16550763040751.jpg“내가 그 말을 하지 않았던가? 내가 RKO의 대형 투자자 중 한 사람이라는 이야기 말이오.”

16550763040778.jpg“아니오……. 모릅니다.”

기가 눌린 로젠맨이 힘없이 눈썹을 늘어뜨렸다. 이미 완전히 안심한 휴즈는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을 빗어 넘겼다.

16550763040751.jpg“RKO는 뉴욕에서 세 개의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 중이고, 그중 WJY는 42번가에 위치해 있소. 조금 과장하자면 내 방송국이나 다름없지.”

옷매무시를 바로 한 휴즈가 한없이 잘난 척을 하며 말했다.

16550763040751.jpg“내 방송국에서 녹음을 하는데 누가 소문 같은 걸 낸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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