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태워 죽이자!
"그럼 제가 어떻게 할까요?"
정삼석의 말을 듣던 북진이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수치스러운 기록이요? 그런 기록을 세웠다고 뭐 제가 자랑을 하기라도 했나요?"
"너……."
북진의 대답을 들은 정삼석은 또다시 말문이 막혔다.
도대체 이게 멀쩡한 사람이 할 말이란 말인가?
"임북진, 잊지 마라. 너는 이미 성립 제1 학원과 제2 학원에서 퇴학을 당했었다. 만약 우리 제3 학원에서까지 퇴학을 당한다면 우리 제국법에 따라 너는 앞으로 그 어떤 학원에서도 교육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정삼석이 화가 나서 사나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뿌득! 뿌득!
인내심이 극에 달한 정삼석의 꽉 쥔 주먹에서 힘줄이 튀어나왔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삼석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달려 나가 한주먹에 북진을 혼쭐내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때, 북진이 드디어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 북진은 낮은 목소리로 정삼석에게 반박하기 시작했다.
"퇴학시키려면 시키십시오! 그게 저랑 무슨 상관입니까! 제가 누구인지 압니까? 저는 전천후의 유일한 아들입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지요? 나 임북진은 언젠가 전천후의 작위를 물려받을 남자입니다.
아무것도 할 줄 몰라도 산해진미와 미녀들이 저를 기다리며, 호위들이 저를 지켜줄 겁니다. 매일매일 늦잠을 자고 세다가 손에 쥐가 날 정도의 돈이 있을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뭐 하러 개고생을 하며 무도를 수련합니까?
수련? 절대로 안 합니다! 이번 생에 나에게 수련이란 없습니다. 나 임북진은 먹을 것이 없어 밖에서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다른 이들처럼 개고생하며 수련하긴 싫다 이 말입니다!"
격앙된 북진의 목소리가 교실 안에 울려 퍼졌다.
초여름날 아름다운 햇살이 내리쬐던 신성하고 엄숙한 2학년 교실 안에 있는 60여 명의 학생이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북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15년 경력의 숙련된 교사인 정삼석조차 운몽성에서 제일 잘나가는 집안의 아들인 북진의 너무나도 뻔뻔한 태도에 할 말을 잃었다.
짧은 시간 동안 북진이 쏟아낸 말은 교실 안에 있던 모두의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맴돌고 있었다.
정삼석은 큰 충격에 자신의 가슴팍을 부여잡고 강단에 기대었다.
바로 그때.
철컥!
교실의 문이 거세게 열렸다.
"도련님, 도련님! 큰일 났습니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교실 안의 정적이 깨졌다.
문을 연 사람은 50세 정도 되어 보이는 생쥐수염을 기른 깡마른 남성이었다.
그는 다급한 태도로 교실 안에 들어왔다.
"왕 집사?"
북진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북진은 방금 교실로 들어온 중년 남성이 전천후의 저택을 관리하는 집사라는 것을 알아챘다.
"도련님, 큰일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북진을 바라본 왕 집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북진을 향해 달려와 북진의 다리를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다.
"이런 뭐 같은! 비켜라! 네 콧물이 내 바지에 다 묻고 있잖아! 이런 쓸모없는 늙은이 같으니라고!"
북진은 정말 싫다는 얼굴로 왕 집사를 밀쳐냈다.
"큰일? 큰일은 무슨 큰일이란 말이냐! 똑바로 말해라! 그렇지 않으면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려 주겠다!"
북진이 매우 사나운 표정으로 왕 집사에게 쏘아붙였다.
사실 북진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현재 북진의 신분은 건방지고 몰상식한 귀족 가문의 도련님이었다.
만약 북진이 제대로 연기하지 않는다면 의심을 받을 여지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의심을 품은 사람들이 북진을 신전 광장으로 끌고 갈 것이었다.
죽을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기에 이렇게 나쁜 놈 연기를 한 것이었다.
"도련님, 어르신께 큰일이 생겼습니다. 방금 황실에서 파견한 관리가 군관들을 대동하고 와 어명을 낭독했습니다. 그 안에는 우리 어르신께서 전선에서 명령에 따르지 않고 독주하다가 적의 매복에 당해 5만 군사를 잃고 죄를 지어 도망갔다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현재 저희 저택은 폐쇄된 상태이며 노비와 하인들은 모두 흩어졌습니다. 어르신의 작위도 몰수되었습니다……."
왕 집사가 초상이라도 당한 듯 크게 울부짖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의 말을 들은 임북진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
"자, 잠깐 기다려봐. 뭐라고? 이 쓸모없는 녀석아! 일단 울지 말고 똑바로 말해라! 그렇다면 어명에서 나의 이름도 거론되었느냐!"
북진이 왕 집사에게 다급히 물었다.
북진이 보기에 지금 이 상황은 자신의 집안이 망하고 멸족을 당할 상황이었다.
현재 상황으로 보자면 북진은 나라에 죄를 지은 역적 집안의 적자였다.
어쩌면 황제 앞에 끌려가 사형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만약 정말 그런 상황이라면 북진은 한시라도 빨리 도망쳐야 할 상황이었다.
그때, 왕 집사가 흐느끼며 말했다.
"네, 도련님의 이름도 거론되었습니다. 어명에서 말하길 도련님은 망나니 중에 망나니로, 귀족의 신분을 거두고 평민으로 격하시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행실로 보건데 나라에서 딱히 도련님께 손을 쓰지 않아도 운몽성 안에서 스스로 자멸할 것이라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북진은 내심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북진은 망할 황제란 녀석이 그래도 인심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진은 설마 자신의 '망나니' 이미지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목숨을 구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죽을 위험만 없다면 두려운 것은 없었다.
"도련님,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도련님, 우리 임씨 가문은 이제 끝입니다."
조용한 교실 안에서는 북진의 다리를 부둥켜안고 주저앉아있는 왕 집사의 목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뭘 당황하느냐! 우리에게는 아직 누님이 있다."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북진은 아직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직 북진에게는 16살의 여장부 임청선이 있었다.
그녀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천재였다.
말 그대로 '제국 전체가 어른이 되기만을 기다리는 절세의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존재였다.
그녀는 엄청난 실력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성격이 사납기로 유명했다.
그녀의 성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바로 북진의 몸이었다.
북진의 영혼이 겪게 된 다른 육체로의 차원 이동의 절반은 임청선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3일 전.
북진에게 아직 현재의 영혼이 깃들기 전이었다.
패가망신을 시키고 있다는 남동생의 소식을 들은 임청선은 제국 수도에 위치한 황실 전쟁학원에서 급히 돌아왔다.
자신의 동생을 대들보에 묶어놓고 두드려 패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북진은 중상을 입게 되었고, 계속되는 커다란 충격과 고통에 비명을 지르다가 기절했다.
그 후, 신전의 사제가 와서 북진의 육체가 입은 상처는 회복시켜 주었다.
하지만 그의 정신, 즉 원래 몸의 주인이었던 북진의 영혼은 회복되지 않았다.
그렇게 지구에 있던 현재 임북진의 영혼이 몸을 차지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 몸에 북진의 영혼이 들어서게 된 것은 임청선의 난폭한 성격 때문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성격이 이렇게 모진 임청선이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현재 운몽성 안에서 함부로 북진을 괴롭힐 사람이 없었다.
그때, 왕집사가 무언가 떠오른 듯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었다.
"저……. 제가 미처 도련님께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아까 오후 신시(申時) 즈음에 소식을 하나 들었습니다.
그……. 아가씨께서 황실 전쟁학원에서 급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흉악한 야수 무리에 습격을 당해 현재 어떻게 되었는지 생사를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뭐라?"
순간 북진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 그리고 도련님. 이 모든 소식은 이미 운몽성 전체에 다 퍼져나간 상황입니다.
제가 방금 도련님께 소식을 알려드리기 위해 달려오면서 보니 도련님께 앙심을 품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칼을 뽑아 들고 이곳 제3 학원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학교 대문 앞을 막고 있을 것입니다……."
왕 집사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북진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교실의 있던 모든 학생의 말문이 막히는 일이 벌어졌다.
여전히 아까와 같은 찬란한 초여름의 햇살이 비추는 가운데 북진이 단숨에 자신의 다리를 붙들고 있던 왕 집사를 떨쳐내고 단정히 자신의 교복 매무새를 정돈했다.
그리고는 엉망진창이었던 머리카락을 곱게 정리하고 자신의 얼굴을 주무르며 미소를 쥐어짜더니 강단 위에 있던 정삼석의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아주 공손한 태도로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선생님, 저는 수련이 하고 싶습니다!"
말을 꺼낸 북진의 눈빛은 천진난만함, 그 자체였다.
수련이 정말 하고 싶다는 듯한 갈망 어린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인위적이기는 했지만.
심지어 북진은 마치 정말로 수련에 심취하고 싶어 안달이 난 우등생의 분위기까지 풍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마주한 정삼석이 어이없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염치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이 녀석이 방금까지만 해도 길바닥에서 굶어 죽어도 수련을 하지 않겠다던 그 사람이 맞는가? 도대체 얼굴이 얼마나 두꺼워야 이럴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이 정삼석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때, 갑자기 교실 밖에서 한차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히 들어보니 학생들의 목소리 같았다.
"전천후의 저택은 이미 폐쇄되었다던데? 그 망할 임북진도 이제 끝이다! 드디어 복수의 시간이 왔어!
자자, 복수를 원하는 사람은 어서 줄을 서라고! 늦으면 기회가 없다!"
그리고 파도와 같이 몰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2학년 9반 교실 앞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들은 북진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제기랄! 설마……. 이렇게 빨리 끝날 수는 없어!'
정삼석의 표정이 굳어졌다.
정삼석은 재빨리 교실 밖으로 나가 몰려오는 학생들을 막을 준비를 했다.
지금까지 북진은 수많은 학생들의 원한을 샀다.
만약 아무도 막지 않는다면 오늘 북진은 복수를 꿈꾸던 다른 학생들에게 분명 맞아 죽을 것이었다.
잠시 후.
밖에서 정삼석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의 그런 행동은 거의 쓸모가 없는 듯했다.
밖에 몰려온 분노에 찬 학생들의 거친 숨소리는 마치 불을 내뿜는 듯했다.
"임북진! 빨리 나와라!"
"밀고 들어가서 패 죽이자!"
"임북진! 악행의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네 아버지 임근남은 천인공노할 죄를 저지르고 도망쳤다! 이제 너의 임씨 가문은 우리 제국의 대역죄인이다!"
"선생님! 막지 마세요!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저 망나니 놈을 어서 끌어내라! 태워죽이자!"
흥분한 군중의 목소리가 물밀듯이 들려왔다.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져 금방이라도 사달이 날 듯했다.
교실 밖에 몰려든 학생들을 막아서던 정삼석도 그들의 분노를 잠재우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