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똑똑한 녀석인데, 아쉽구나
북진이 검을 뽑았다.
휘익-!
청조검의 푸른 검광이 골목 안에서 번쩍였다.
마치 푸른 번개와 같은 검기가 줄기줄기 퍼져나갔다.
그 속도가 너무나도 빨라 육안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사월검법.
구름 사이를 유영하는 용이 되어 몸을 눈처럼 차갑게 만든다.
검을 활시위 삼아 달빛을 쏘아 보낸다.
푸슉-!
어두운 골목 안으로 피가 흩뿌려졌다.
"크억!"
"내, 내 손이……!"
비명과 함께 여러 개의 무기가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청조검의 검 끝은 정확히 적들의 손목을 찔렀다.
그들은 무기를 쥘 힘을 상실한 체 급히 뒤로 후퇴했다.
북진의 움직임은 극도로 빨랐다.
그는 순식간에 적들을 지나쳐 대머리 남성에게 검을 겨누었다.
청조검의 검 끝은 마치 달빛처럼 빛을 내며 대머리 남성의 미간을 겨누고 있었다.
순간 대머리 남성의 눈 위로 사나운 빛이 감돌았다.
"산병중격(山兵重擊)!"
무게가 백 근에 달하는 중검에서 방대한 양의 기운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대머리 남성은 북진을 질풍형제단의 두목으로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에, 북진의 공격해 올 것을 대비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때문에, 지금까지 조용히 일정 수준의 힘을 비축해 두고 있다가 지금 폭발시킨 것이었다.
노도와 같은 검풍(劍風)이 작은 소용돌이를 형성하며 북진에게 다가왔다.
대머리 남성은 북진의 검을 막거나 피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자신의 머리를 내주어야 한다면 동시에 상대의 머리도 취하겠다는 동귀어진의 수법이었다.
이것이 바로 군소 방파의 전투법이었다.
잔혹하며, 폭력적이고, 야만적이었다.
학원에서 배우는 전투 방식과는 그 결이 달랐다.
북진은 자신이 오산했다고 판단하고 검을 거두어 대머리 남성의 공격을 막기로 했다.
"하하하하! 죽어라!"
대머리 남성이 미친 듯이 광소를 터뜨렸다.
그의 중검은 기본적으로 무게가 백 근에 달했다.
거기에 그가 휘두르는 힘과 검법, 현기까지 더해지자 거의 칠백 그에 달하는 힘이 실리게 된다.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이러한 초식은 대머리 남성이 가장 즐겨 쓰는 초식이었다.
그는 이 초식을 이용해 무수한 적들을 압살했었다.
무거운 검이 북진을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북진의 몸이 금세 양단될 것만 같은 기세였다.
다음 순간.
챙-!
두 개의 검이 충돌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밝은 불꽃이 튀었다.
어두운 골목 안에서 검과 검이 마찰하며 튄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대머리 남성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자신의 중검을 통해 전해지는 반발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소년의 몸에서 나오는 힘은 그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게다가 북진의 청조검은 대머리 남성의 검과 정면으로 충돌하지도 않았다.
힘과 힘이 격돌한 순간 북진은 기이한 자세를 취하며 검을 45도 각도로 기울였다.
두 검이 마찰을 일으킨 순간 대머리 남성이 펼친 힘의 7할은 즉시 분산되며 사라졌다.
북진은 오히려 흘려보낸 중검의 압력을 이용해 대머리 남성에게 반격을 가했다.
두 사람의 신형이 맞붙으며 스쳐 지나간 순간 청조검이 빠르게 방향을 틀어 대머리 남성을 가격했다.
검광이 번쩍이고 차가운 기운이 흘렀다.
"크헉……."
대머리 남성이 휘청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허벅지 위에는 뼈가 드러나 정도로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그는 이제 완전히 전투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하지만 북진의 발걸음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북진은 계속해서 '운중비우' 보법과 '사월검법'을 펼치며 종횡무진했다.
골목 안에 있던 대머리 남성의 부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손목이 베인 채 쓰러졌다.
고통에 찬 비명과 무기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머리 남성과 그의 부하들은 모두 전투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챙-!
그렇게 일을 마친 북진은 자신의 청조검을 다시 검집으로 회수했다.
'아! 진짜 깔끔했다.'
북진은 참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감탄을 내뱉었다.
그는 달빛이 비치는 어두운 골목 안에서 홀로 검을 들고 용맹하게 적들을 쓰러뜨리는 자신의 모습이 마치 검선(劍仙)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북진이 [사월검법]과 [운중비우] 어플을 이용해 수련을 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플을 계속해서 실행시켜 놓았기 때문에 이미 '초규문경'의 경지까지는 올라 있는 상황이었다.
성급 무공의 위력은 생각보다 더 대단했다.
북진은 직접 자신의 몸으로 성급 무공을 펼쳐내자 마치 협객이 된 듯한 자아도취에 빠지게 되었다.
북진은 천천히 몸을 돌리고 방소백과 그의 동료들의 감사 인사를 받을 준비를 했다.
게다가 '사소한 일이니 신경 쓸 것 없다'라는 대답과 표정까지 준비해 놓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고개를 돌린 북진이 뒤를 바라보았을 때, 골목 안에서 세 사람의 신형은 이미 사라진 상황이었다.
'응? 도망갔어? 감히 내가 지들을 대신해 열심히 싸워주는 사이에 도망을 가?'
북진은 큰 실망감이 몰려왔다.
'이 양심도 없는 놈들!'
기분이 안 좋아진 북진이 대머리 남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희는 어느 방파 놈들이냐?"
대머리 남성이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으며 말했다.
"천리행상회(千里行商會) 출신이오. 질풍형제단과는 원한이 있어 오늘 그들을 잡으러 나온 것이오……. 형씨, 보아하니 질풍형제단의 사람은 아닌 듯하고, 작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으니 오늘은 이것으로 서로 물러나는 것이 어떻소?"
대머리 남성은 방소백 일행이 남아서 북진을 돕지 않고 그대로 도망치는 것을 보며 자신이 오해했음을 깨달았다.
그저 길을 지나는 사람을 질풍형제단의 두목으로 생각했던 것이었다.
한데, 북진의 실력은 길을 지나가는 사람치고는 두려울 정도로 강했다.
대머리 남성은 사람을 잘 못 건드렸다는 생각에 겁이 나는 상황이었다.
'천리행상회?'
운몽성에서 제일가는 상회의 이름이었다.
천리행상회는 운몽성 전체의 찻잎 중에 7할을 독점하고 있었다.
청광석과 면화 무역으로 엄청난 부를 쌓은 곳이었다.
"꺼져라."
북진이 말했다.
대머리 남성과 그의 부하들은 북진에게 인사를 한 뒤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황급히 골목을 빠져나가 도망쳤다.
"저놈들은 천리행상회에서도 말단일 것이다. 대머리 놈의 실력이 무부 급이 아니어서 나에게 격파를 당한 것이지. 저 정도 실력이라면 상회 안에서도 별 지위가 없는 놈일 거야.
음……. 질풍형제단의 방소백을 잡기 위해 천리행상회에서 고작 저 정도 실력의 인물을 파견했다는 것은 대머리 놈 실력으로 방소백을 상대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겠지? 보아하니, 두 방파 세력 간의 힘 차이가 매우 큰 것 같구나."
골목 안에서 걸어 나온 북진이 방금 상황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때, 갑자기 북진의 안색이 급변했다.
"제기랄!"
북진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방금 같은 상황이라면, 놈들이 도망치기 전에 그들에게서 금품을 갈취할 수도 있었다.
큰돈을 벌 기회를 놓친 것이었다.
'내 실책이다! 실책이야! 최근에 휘장을 팔면서 돈 좀 만졌다고 너무 안이해졌구나! 예전 같았으면 절대로 저놈들을 그냥 놓아주지는 않았을 텐데…….'
북진이 너무 나태해진 자신을 질책했다.
북진이 이런 생각을 하며 막 골목을 벗어나 조금 걸어갔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한 신형이 옆쪽에서 불쑥 튀어나와 북진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대인! 이 소인 악홍설(岳紅雪)을 도와 목숨을 보전하게 해 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를 올립니다!"
소년 점소이였다.
소년의 이름은 악홍설이었다.
"응? 도망간 게 아니었나?"
북진이 의외라는 듯 말한 뒤 악홍설을 일으켜 세웠다.
"앗! 당신은…… 오늘 저녁 객잔의 그 손님……?"
악홍설이 마침내 북진이 누구인지를 알아보았다.
당황한 소년 악홍설이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방금은 소백 누님을 구하느라 정신이 없어 대인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소백 누님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제대로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자리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절대로 은혜를 몰라 저지른 실례가 아니니 용서해 주십시오! 소백 누님만 안전한 곳으로 모신 뒤 바로 돌아올 생각이었습니다……."
"바로 돌아와서 뭘 할 생각이었지?"
북진이 물었다.
악홍설이 얼굴을 붉히며 가식 없는 표정을 대답했다.
"당연히 대인을 도우려 했습니다. 만약 대인께서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면 제 목숨을 버려서라도 대인을 구해내려 했습니다."
북진은 악홍설의 표정을 보며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이 말이 거짓이라면 그가 이곳으로 돌아올 이유도 없었다.
"이름이 악홍설이라 했나? 그럼 악홍향이 너의……."
북진이 점소이 악홍설이 객장에서 자랑하듯 말했던 내용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는 악홍향이 누군지 알지 못해요."
그때, 차가운 여인의 음성 하나가 골목의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이름이 매우 비슷하긴 하지만 두 사람은 아무런 관계도 없어요."
골목 구석에서 왜소한 여인의 신형 하나가 걸어 나왔다.
귀밑까지 오는 검은 단발머리를 한 그 여성의 몸에서는 옅은 피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멀리 있는 가로등의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자 단정하면서도 단아하고 차가워 보이는 얼굴이 드러났다.
"소백 누님? 여긴 왜 오신 겁니까?"
악홍설이 크게 놀라서 뛰어가 그녀를 부축했다.
방소백은 방금까지 마취약 때문에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괜찮으니 비켜라!"
방소백이 엄한 표정으로 악홍향을 물리며 눈을 부릅떴다.
방소백은 위험을 벗어났음에도 다시 골목으로 돌아온 악홍설에게 화가 나 있었다.
만약 골목의 상황이 여전히 위험했다면 그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방소백은 강제로 현기가 진탕되는 위험을 무릅쓰고 마취약의 기운을 억누르며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예……."
악홍설이 큰 잘못을 하고 부모님께 혼이 난 아이의 표정을 하고 고개를 숙이며 옆으로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한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소백 누님……. 저 형님은 좋은 사람입니다……."
"시끄럽다!"
방소백이 또다시 악홍설을 노려보았다.
겁을 먹은 악홍설은 이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방금 일은……."
방소백이 북진을 위아래로 살펴보며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록 자의로 우리를 도운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고마웠어요. 최소한 우리가 몸을 뺄 시간은 만들어주었으니……."
매우 예의 없는 말투였다.
하지만 북진은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방소백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북진은 처음부터 수수방관할 생각이었지, 싸움에 끼어들 생각은 없었다.
만약 대머리 남성이 자신을 질풍형제단의 두목으로 착각해 시비를 절어오지 않았다면, 북진이 출수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
"나 방소백은 은혜를 아는 사람이에요. 나중에 꼭 갚도록 하겠어요."
방소백이 여전히 냉담한 표정으로 공수를 취하며 말했다.
"빚을 졌으니 이름을 알려주시겠어요?"
북진와 방소백은 교양쟁패전 선발전에서 이미 만났던 사이였지만, 북진이 변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방소백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북진은 한 쪽에 울상을 짓고 서 있는 악홍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이 세계의 사람들과 깊게 엮이지 않는 것.
북진이 모든 일을 할 때 내세우는 첫 번째 원칙이었다.
특히 북진은 호전적이고 사나운 방파의 인물들과는 절대로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저 악홍설과 같은 총명하고 마음씨가 착한 소년이 어쩌다가 방파와 어울리게 된 것인지 궁금하기는 했다.
'똑똑한 녀석인데 저런 무리와 어울리다니 아쉽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