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모두 다 몬스터다
그렇다.
정말로 물어뜯은 것이었다.
북진은 방어할 틈도 없이 어깨를 제대로 물리게 되었다.
북진은 그제서야 거한이 착용하고 있던 초록빛 갑옷이 기이하게 생긴 녹색 구렁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까지 녹색 구렁이는 거한의 몸을 감싸고 조금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생기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기이한 형태의 갑옷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녹색 구렁이는 북진의 검에 반으로 잘려져 빈사 상태에 빠지는 순간에도 북진의 왼쪽 어깨를 물었고, 자신의 어금니에서 독을 분출해냈다.
북진은 왼쪽 어깨가 점점 마비되는 것을 느꼈다.
"하하! 이 잡종 같은 놈이 감히 나를 습격해?"
거한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전신의 힘이 빠지는 상황에서도 억지로 버티며 쓰러지지 않고 있었다.
"여봐라! 이 잡종 같은 놈을 잡아들여라! 어떤 놈이 나를 암습하기 위해 보낸 자객인지 알아내야겠다!"
그러자 투수원 안에 있던 모험가들이 검을 뽑고 북진을 향해 사납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무홍은 지금까지도 북진이 누구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서 도망쳐! 우리는 신경 쓸 필요 없어!"
무홍이 큰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북진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거한을 향해 말했다.
"설마 덩치만 크고 멍청한 곰 같은 놈이 뱀을 부리는 녀석일 줄은 몰랐구나."
북진은 자신의 도란검을 잠시 땅에 꽂아놓고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어깨를 물고 있던 녹색 구렁이를 강하게 당겨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는 발을 들어 구렁이를 밟아 죽여버렸다.
동시에, 뱀에게 물린 상처에 수환을 펼쳤다.
푸른빛의 고리가 북진의 상처를 감쌌다.
왼쪽 어깨에 나 있던 물린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
동시에 북진은 [저장소] 어플 안에서 '만독역벽단(萬毒易僻丹)'을 꺼내 삼켰다.
만독역벽단은 만독노조에게서 빼앗은 물건이었다.
만독노조는 독을 연구하는 자답게 해독에도 정통했다.
북진이 모든 조치를 끝냈을 때, 주변에서 악질 모험가들이 이미 달려들고 있었다.
북진은 다시 도란검을 집어 든 뒤 빠르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사악-! 삭-!
검 날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사월검법이었다.
1성급 검술인 사월검법이 북진의 손에서 엄청난 위력으로 펼쳐졌다.
검 끝에서 차가운 별빛이 쏟아져 나오는 듯했다.
북진의 검광이 앞에서 다가오던 네 명의 모험가의 목을 단숨에 꿰뚫었다.
그때, 북진이 방금 전 삼킨 만독역벽단의 약효가 발휘되었다.
시원한 느낌과 함께 마비되었던 왼쪽 어깨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북진이 마비가 풀린 왼손을 들어 올리자 정이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죽어라."
북진이 출수하기 시작했다.
검광이 계속해서 빛났다.
북진의 한 수를 받아내는 적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악질 모험가들의 피가 바닥에 흥건히 흐르기 시작했다.
파앗-!
새가 날갯짓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운중비우를 펼친 북진이 거한을 향해 날아갔다.
적을 이기려면 우두머리부터 잡는 것이 이치였다.
거한 오(五) 맹주를 제압하기만 한다면 나머지는 손쉬울 것이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거한은 점점 상황이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자 큰소리로 고함을 쳤다.
"어, 어서! 저놈을 막아라!"
고함을 친 거한이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는 2급 무부경의 고수로, 천향삼소산에 중독되고도 억지로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북진이 엄청난 속도의 신법으로 순식간에 그의 곁에 다가가 그의 등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생사존망의 위기 속에서 거한이 괴성을 지르며 옆으로 몸을 굴렸다.
북진의 검광이 그의 왼쪽 어깨를 찌르고 지나갔다.
"제, 제발! 나를 죽이지 마라!"
거한이 눈물, 콧물을 모두 쏟아 내리며 엎드려 애원했다.
북진은 마음속에 조금의 연민도 들지 않았다.
앞으로 나선 북진이 그에게 몇 번이고 검을 찔러 넣었고, 거한은 마침내 죽음 직전에 내몰리게 되었다.
"으윽!"
비명을 지른 거한이 원한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주먹을 들어 올려 북진의 가슴을 향해 최후의 반격을 날렸다.
콰직-!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향삼소산에 중독되고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 최후의 힘을 쥐어짜 내 일격을 날린 것이었다.
그 위력은 무부경의 고수답게 보통이 아니었고, 북진의 갈비뼈를 부러뜨렸다.
하지만 북진은 신경 쓰지 않았다.
'부러진 게 뭐 어떻다고?'
북진은 손을 들어 자신에게 수환을 연속해서 펼쳤다.
북진의 몸이 푸른빛에 휘감겨지고 부러졌던 뼈가 완전히 치유되었다.
북진은 거한의 등을 밟고 서서 큰 소리로 말했다.
"네놈에게 정의의 심판을 내리겠다! 죽어라!"
북진의 도란검이 오 맹주의 머리를 잘라냈다.
"오 맹주님이 당했다!"
"감히 오 맹주님을! 모두 저놈을 죽여라!"
자신들의 대장이 당한 것을 본 악질 모험가들이 눈에 불을 켜고 북진에게 달려들었다.
"죽어라!"
북진은 무정한 사신과 같은 표정으로 몸을 돌려 악질 모험가들에게 달려들었다.
북진이 움직이는 곳마다 피가 강처럼 흐르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십여 명의 악질 모험가들이 목숨을 잃고 쓰러졌다.
평범한 악질 모험가들은 모두 무사경의 수준이었고, 가장 수준이 높아도 9급 무사경 이상은 되지 못했다.
북진의 앞에서는 추풍낙엽처럼 쓰러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다.
북진은 일 검에 한 명씩 목숨을 빼앗았다.
"모두 저놈을 포위하고 지치게 만들어라!"
누군가 소리쳤다.
휙-! 휙-! 휙-!
각종 암기들이 북진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북진은 제수검법의 초식 중 하나인 '수만제천(水漫諸天)'을 시전해 검기의 벽을 만들어내 암기를 모두 막아냈다.
동시에 신형을 번쩍이며 두 팔을 세차게 휘둘렀다.
휙-! 휙-! 휙-!
북진의 팔에서 쏘아져 나간 은빛 화살이 암기를 쏘아 보낸 악질 모험가들을 모두 죽여버렸다.
그리고 북진은 자신에게 수환을 펼치며 힘을 회복했다.
이런 전투가 몇 번 이어지자 악질 모험가들은 북진의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어, 어서! 다른 맹주님들을 불러와라!"
"저 잡종 놈, 보통내기가 아니다!"
악질 모험가들이 겁을 먹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문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모두 쓰러지고 있었다.
북진은 투수원으로 들어올 때 조용히 문과 벽에 독약과 마취약을 발라놓았다.
때문에 달아나려던 수십 명의 모험가들은 모두 중독되어 바닥에 꼬꾸라지고 있었다.
잠시 후, 투수원 안에는 북진, 무홍, 남자아이를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게 되었다.
무홍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북진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지? 이렇게 강하고 잔인한 실력이라니!'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불장미 모험대의 무홍이라 합니다. 존함을 알려주시면 대인의 은덕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무홍이 공수를 취하며 말했다.
북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그녀에게 수환을 시전해 주었다.
당황한 표정을 짓던 무홍의 얼굴 위로 그녀에게서는 보기 힘든 수줍은 표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곧 그녀의 그런 표정은 놀라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의 몸 위에 나 있던 상처들이 푸른빛에 닿는 순간 치유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푸른빛이 몸을 비추고 지나가자 피로감이 사라지며 힘이 8할이나 회복되었다.
"당신은 신전의 사제인가요?"
무홍이 물었다.
왜냐하면 신명을 모시고 신명의 인정을 받은 사제들만이 상처를 치료하는 신통력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북진이 머리를 덮고 있던 외투를 벗으며 말했다.
"저같이 잘생긴 미소년을 벌써 잊으신 겁니까?"
북진의 얼굴을 보게 된 무홍이 크게 놀랐다.
몸을 가늘게 떨던 무홍이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다, 당신은……? 아아! 당신이었군요!"
북진이 말한 것처럼 무홍이 북진을 잊었을 리가 없었다.
그녀에게 북진은 불장미 모험대가 습격을 받았던 날 밤 출수해 도움을 주었던 은인이었다.
불장미 모험대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희망을 가져다준 사람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북진이 소령에 의해 검에 찔리는 참혹한 장면은 불장미 모험대의 대원들 모두 목격하게 되었었다.
때문에 무홍은 마음 깊이 자책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북진이 살아서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자 무홍은 큰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북진은 그런 그녀의 표정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자신이 내린 판단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
소령의 일은 주성이 말한 그대로였다.
불장미 모험대의 여검사들도 모두 속은 것이었다.
어딘가 꺼림칙하긴 했지만 분명 배후에 또 다른 내막이 있을 것이었다.
"나는 사신이 이 세계로 보낸 사람입니다. 그렇게 쉽게 죽을 수야 없지요."
북진이 말했다.
이 말은 사실이었다.
북진은 정말로 알 수 없는 이상한 사신에 의해 스마트폰과 함께 이 세계에 떨어진 것이었다.
북진은 문득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지 않은 것이 정말로 사신이 자신의 배후에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입니다! 임 학우님이 살아계셨다니! 풍사낭께서 이 사실을 듣게 되면 분명……."
무홍이 격동에 차올랐다.
하지만 풍사낭을 떠올린 그녀는 몸을 가늘게 떨며 금세 슬픔에 잠겨 들었다.
습격 이후 불장미 모험대의 결말은 매우 잔혹했다.
북진이 말했다.
"두 분은 적당한 장소를 찾아 숨어계십시오. 제가 이 마굴에 있는 다른 쓰레기들을 모두 청소한 뒤 방법을 찾아 두 분을 데리고 이곳을 나가겠습니다."
"뭐라고요?"
무홍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귀를 의심했다.
"당신 혼자서 이 악질 모험가 무리를 멸망시키겠다는 것인가요?"
"안 되나요?"
북진이 환하게 웃으며 이를 드러냈다.
"이 쓰레기 소굴에 가담한 모든 사람은 죽어야만 합니다."
"하, 하지만……. 당신은 혼자인걸요? 혼자서 저들 모두를 상대할 수는 없어요."
"방금도 저는 혼자 상대하지 않았나요?"
북진의 미소는 점점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때, 북진이 갑자기 손을 휘둘러 은 화살을 쏘아 보냈다.
은 화살이 향한 곳.
그곳엔 천천히 기어 밖으로 탈출하려던 모험가가 쓰러져 있었다.
"안 되겠군."
북진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역시 확인 사살을 해야 해."
그리고 펼쳐진 다음 장면은 무홍의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이었다.
그녀는 북진이 검을 들고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정신을 잃거나 움직이지 못하게 된 악질 모험가들을 일일이 찔러 죽이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북진은 모험가 한 사람당 검을 두 번씩 찌르고 있었는데, 일 검은 심장, 이 검은 목을 노리고 있었다.
설사 이미 죽은 것이 분명한 자에게도 북진은 검을 찌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마치 사신이 출석을 부르는 듯한 무시무시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북진은 마치 채소를 다듬는 것처럼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적들을 주살하고 있었다.
"모두 다 몬스터다. 사냥감이야, 사냥감. 게임 속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이라 생각하자."
북진은 머릿속으로 조용히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