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선재차-242화 (242/420)

242화 창과 방패의 대결

소병감은 심계가 깊고 체면치레가 없는 학생이었다.

얼굴이 두꺼운 정도는 북진에 필적할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 녀석도 굉장한 괴짜였군.'

'과연 임북진과 소병감 두 괴짜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보통 사람의 머리로는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통한 임북진호의 조원 하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만약 우리가 조파천 보다 먼저 임북진의 전대와 마주치게 되면 어떡하지?"

그 말을 들은 관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조파천을 속였더라도 조파천 보다 먼저 임북진의 조와 마주하게 된다면 앞서 조파천을 속인 것이 모두 허사 아닌가?!'

그때, 수정화면에서 소병감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우리가 그렇게 운이 나쁘지는 않겠지? 조파천을 만난 것도 재수가 없는데 조파천보다 먼저 임북진과 마주친다? 그럴 확률은 높지 않아. 하지만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나 소병감은 사촌 형님에게 임북진에게 고통과 한을 안겨준다고 하늘에 대고 맹세를 했지. 때문에, 그 일 만큼은 반드시 해내야 해. 하지만 분명 새로운 책략을 연구해야 할 거야. 뭐, 정 안되면 일단 그 녀석에게도 겁먹은 척하고 가짜 깃발을 넘기지 뭐. 가짜 깃발은 아직 많이 남아 있거든."

말을 마친 소병감이 자신의 품 안에서 한 뭉치의 가짜 깃발을 꺼내 들었다.

가짜 깃발의 모양은 진짜 깃발의 모양과 완벽히 같은 모양으로 도저히 구분이 안 될 정도였으며, 그 수량은 십여 개는 되었다.

그런 모습을 본 소병감의 조원들과 관중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자신의 이마를 짚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가 말이 안 나오는군!'

많은 교육청의 관원들 또한 어처구니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뭔가 잘못되었다!'

'앞선 시험에서 소병감은 저렇게 교활한 모습이 없었는데…….'

'갑자기 사람이 저렇게 바뀔 수가 있나?'

자신의 아버지 뒤에 숨어있던 소씨 가문의 도련님 소장 또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보아하니 소장의 아버지의 얼굴에도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져 있었다.

그의 입술은 가늘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수정화면 속에 나오는 조카의 모습 때문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가장 앞줄에 앉아 있던 소씨 가문의 노 장로의 얼굴에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저 녀석이 언제부터 저렇게 얼굴이 두꺼워진 것이지? 어쩐지……. 내 젊은 시절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 * *

류채 보석 상회호.

갑판 위.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어오고 있었다.

"임 학우. 저는 당신이 교양쟁패전에서 보여준 활약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어요. 당신은 평범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특별한 재능이 있어요."

왕형여가 시원시원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성격이 호탕하고 단정한 외모를 가지고 있어 동년배 여학생들과는 차별화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시종일관 웃음을 잃는 법이 없었으며 언제가 여유 있는 태도로 모두의 존중을 받고 있었다.

왕형여가 검을 들어올려 예를 갖추고 말했다.

"이번에 저는 당신의 조에 기회를 한번 드리고 싶군요. 우리 일대일 대전을 해요. 오 판 삼 선승제로 해서 당신의 조가 먼저 삼승을 거두면 저는 즉시 배를 돌려 떠나갈게요."

그녀가 볼 때 이런 제안은 분명 북진에게 좋은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시험의 성적이나 실력이나 그 어느 것을 보아도 북진의 조원들은 그녀의 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녀가 다른 조원 하나와 북진을 잡아두고 그녀의 나머지 조원 세명이 북진의 조원 넷을 상대한다면 손쉬운 일이었다.

북진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잠시 생각을 하다가 대답했다.

"좋다."

북진이 대답했다.

왜냐하면 눈앞에 있는 소녀 왕형여는…….

매우 바른 소녀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제안을 수락한 북진을 본 왕형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주 좋군요. 우리 조의 출전 순서는 원예(袁銳), 구천계(瞿天階), 저, 위자룡(魏子龍), 오패염(吳佩炎)의 순서에요. 당신들도 출전 순서를 정하세요. 순서를 정하고 구지 저희에게 말해 주실 필요는 없어요."

그것은 절대적인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왕형여의 뒤에 서 있는 네 조원들은 모두 제1 학원의 학생들이었다.

그녀가 학교에 있을 때부터 충성을 다해 그녀를 따르는 학생들이었다.

왕형여는 학교 안에서 남다른 명망과 엄청난 인기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제1 학원의 교사들은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제1 학원 안에서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은 교사들도 왕형여를 진심으로 아끼고 있었다.

왕형여에게는 동년배에서 찾아보기 힘든 지도자의 기질이 있었다.

마치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태어난 학생 같았다.

때문에 왕형여의 결정에 대해 그녀의 조워들은 조금의 이견도 없었다.

왕형여의 말을 듣던 북진은 그녀에게서 공명정대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조에서 첫 번째로 출전할 조원은 한불부다."

두 개의 전투선이 마주했을 때, 제1 학원호를 알아본 악홍향과 미여연이 왕형여와 그녀의 조원에 대한 자료를 모두 알려주었다.

제1 학원은 자부심이 강한 학원이었고, 학생들의 단결력 또한 황실 초급학원 못지않은 학원이었다.

그리고 왕형여과 그녀의 조원들은 모두 제1 학원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천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왕형여의 실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나머지 네 명의 조원들 모두 운몽성에서 알아주는 젊은 천재들이었다.

첫 번째로 전투에 나선 원예는 왕형여의 조에서 실력이 중간 정도 되는 인물이었다.

북진이 미여연이 아닌 한불부를 선택한 것은 자신의 조에서 실력이 중간 정도 되는 한불부를 내보내 상대의 실력을 가늠해 보고 순서를 정하기 위함이었다.

전투를 치르는 학생을 제외하고 모두 뒤로 물러났다.

한불부가 갑판 중앙에 나와 선 뒤 공수를 취하며 말했다.

"원 학우. 잘 부탁합니다."

원예는 평범한 체구를 지녔지만 탄탄하고 균형 잡힌 근육질 몸을 지닌 소년이었다.

갑판 중앙으로 나온 원예가 활짝 웃으며 정중하게 검사의 예를 취하고 말했다.

"한 학우. 앞선 전투에서 보여준 당신의 의지와 투지에 감동했었어요. 오늘 당신과 전투를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그 말을 들은 한불부는 원예에게 큰 호감을 느꼈다.

"원 학우, 과찬입니다."

원예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에게 감탄을 했기 때문에 오늘 저는 당신을 진정한 상대로 인정하고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당신에게 보일 수 있는 존경이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한 학우. 이제부터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저는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겠습니다."

한불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불부가 기운을 끌어올리자 그의 몸에서 노란빛이 흘러나왔다.

장검을 손에든 한불부가 반산검법의 방어 자세를 취했다.

현재 한불부는 조파천과 대결을 했을 때보다 반산검법에 대해 더욱 많은 깨달음을 얻은 상태였다.

그의 반산검법은 더욱 진보했으며, 그가 검법을 시전하자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거대한 산과 같은 기세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왕형여 등이 크게 놀랐다.

'저 사람의 수행이 언제 저렇게 늘어난 것이지?'

조파천을 상대했을 때 한불부의 수행은 이제 겨우 1급 무부경에 오른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보여주는 현기의 파동과 분위기는 3급 무부경에 달하고 있었다.

시간은 짧은 이틀이 흘렀을 뿐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빠르게 강해진 것이지? 설마 조파천과의 전투가 그에게 자극이 되어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더욱 큰 깨달음을 얻은 것인가?'

전투가 시작 되기 전 원예는 강한 자신감을 품고 있었다.

원예는 한불부의 체면을 위해 가장 빠르고 강한 공격을 펼쳐 속전속결로 승리를 거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마음속에는 커다란 압박감이 밀려오고 있었다.

"하앗!"

원예가 마치 원숭이처럼 가벼운 몸놀림으로 자리를 박차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나간 원예는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한불부의 면전에 도착했다.

휙-!

원예가 한불부의 목을 향해 일 검을 찔렀다.

한불부를 향해 빠르게 나아가던 원예의 검은 돌연 기묘한 변화를 일으킨 뒤 한불부의 심장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리고 그의 검이 한불부의 심장에 닿기 직전, 그의 검은 다시 한번 불가사의한 세 번째 변화를 일으켜 한불부의 미간으로 날아갔다.

그가 펼친 모든 변화는 번개와도 같이 빨랐다.

마지막 변화를 일으켰을 때, 원예의 검은 그 속도가 처음보다 세배나 빨라져 있었다.

만약 평범한 상대가 원예의 이런 변화하는 검과 마주했다면 수비자세가 무너지고 현기가 흔들려 검식이 흐트러졌을 것이었다.

하지만 한불부의 정신력은 매우 견고했고, 의지는 태산처럼 무거웠다.

한불부에게서는 조금의 동요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불부가 익힌 반산검법은 최고의 방어를 자랑했다.

원예의 검이 어떠한 변화를 보이든 결국에는 모두 방어해 낼 수 있었다.

땅-! 땅-! 땅-!

금속의 충돌음이 빠르게 연달아 들려왔다.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원예의 신형은 굉장히 빨랐고 매우 영민했다.

원예의 현기는 미여연과 마찬가지로 바람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지만, 원예는 좌우 양손에 세검을 꺼내 들고 있었다.

원예의 검은 유성과도 같이 빠르게 앞으로 찔러지고 있었으며, 계속해서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의 검이 변화를 일으킬 때마다 허공에는 차가운 검광이 퍼져나갔다.

하지만 한불부는 불변(不變)으로 만변(萬變)을 받아내고 있었다.

한불부는 제자리에 꼿꼿하게 서서 자신의 기세를 가다듬고 태산과도 같이 흔들림 없이 버티고 있었다.

반산검법은 보기에는 느려 보였지만 실제로는 매우 빠른 검법이었다.

한불부의 검에서 뻗어 나온 검광이 수많은 변화를 일으키며 겹겹이 쌓인 뒤 거북이 등껍질과 같은 방패를 형성해 냈다.

그리고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원예의 두 자루 세검을 방패로 완전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자리에 서 있는 한불부는 움직이지 않는 거대한 암석과도 같았다.

원예가 아무리 공격을 퍼부어도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사실 이러한 전투의 양상은 관중들에게는 볼거리가 적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예를 익힌 많은 무사들은 크게 놀라며 흥미진진하게 전투를 관람하고 있었다.

가장 빠른 창과 가장 견고한 방패의 대결이라 할 수 있었다.

땅-! 땅-! 땅-!

금속의 충돌음이 긴박하게 들려왔다.

마치 누군가 망치로 강철을 내려치는 듯한 소리였다.

족히 향 하나가 탈 정도의 시간이 흘러갔다.

갑자기 원예가 긴 숨을 내쉬고 검을 거두며 뒤로 물러났다.

원예는 호흡이 가빠 와 있었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제가 졌습니다."

검을 회수한 원예가 고개를 젓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설마 한 학우의 방어 검술이 이 정도로 조예가 깊을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이미 제가 시전할 수 있는 모든 검술을 시전하여 최고의 검초를 모두 쏟아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당신의 방어를 뚫을 수는 없었지요. 이대로 계속한다면 저는 현기가 고갈되어 패배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한불부도 검을 거두었다.

그의 이마에도 땀이 맺혀있었다.

하지만 한불부의 상태는 원예의 상태보다 훨씬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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