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내가 뭘 잘못했나?
"시간이 없어요."
왕형여가 말했다.
"우리 일 초(招)로 승부를 내요."
북진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아요."
북진은 자신이 가진 실력을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했다.
북진이 역혈행기광전술을 시전했다.
그러자 북진의 몸 주위에 펼쳐져 있던 푸른색 물 속성 현기 중에 옅은 혈색(血色)이 돌기 시작했다.
이것은 북진이 역혈(逆血)을 이용해 행기(行氣)를 할 때 강제로 체내의 끓어오른 열액을 증기화하여 모공 밖으로 뿜어내 피의 안개를 만든 뒤 현기에 섞어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앞서 솥을 들어 올리는 시험에서 북진은 절대적인 현기 양의 제한으로 역혈만을 일으 킬 수 있었을 뿐 행기는 이룰 수 없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옅은 붉은 빛을 뿜어냈었다.
현재 북진이 시전한 것은 역혈과 행기의 모든 과정이 완벽한 역혈행기광전술이라 할 수 있었다.
북진의 몸 주변 일 장 안을 둘러싸고 있던 푸른색 현기가 삽시간에 붉은 안개와 뒤섞이며 요염하고 기이한 빛깔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역혈행기광전술이 금술로 여겨지는 이유 중 하나였다.
정말로 자신의 피를 소모하는 술법이었다.
"내 안에 있는 작은 우주가 폭발하는 기분이구나."
북진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북진이 덕검을 쥔 손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펼칠 초식은 해족에서 전수된 '벽해조생(碧海潮生)'이라는 초식입니다. 저도 처음 시전하는 초식이기 때문에 그 위력이 얼마나 강할지 가늠할 수 없군요. 왕 학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왕형여가 자신의 아름다운 두 눈을 빛내며 말했다.
"좋아요. 제가 시전할 초식은 '리리원상화(離離原上火)'라는 초식입니다. 저 또한 스승님께 전수받은 뒤로 한 번도 시전 해 본 적이 없는 초식이지요. 임 학우! 조심하세요!"
* * *
"자료! 저 소녀의 자료를 가져오세요."
황실 중급학원의 부 교장 왕여의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곁에 있던 그녀의 부관이 급히 그녀에게 자료를 전달해 주었다.
자료를 한 번 살펴본 왕여의가 두 손으로 자료를 찢어버린 뒤 화가 난 듯 말했다.
"이게 운몽성 교육청에서 만든 자료란 말이에요? 길에 굴러다니는 광고 전단같이 우습기 짝이 없군요! 왜 그 누구도 왕형여가 두 가지 현기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주지 않은 것이지요?"
곧 옆에서 해안 제1 중급학원의 부원장인 온다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아이는 제 것입니다. 우리 학원으로 꼭 데리고 갈 것입니다. 저에게서 저 여아를 빼앗으려 든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어서! 저 여학생의 가문으로 연락해 전액 장학금을 제시해라!"
하지만 그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원하는 교사진을 모두 붙여주겠다고 해라!"
"그 어떤 요구사항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설득해야 한다!"
"어서 가서 왕씨 집안을 설득해라! 설득하지 못하면 돌아올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명문 학원의 부 교장들이 미친 사람처럼 큰 소리로 자신의 수행원들에게 고함을 치고 있었다.
수행원들은 즉시 왕형여의 부모와 제1 학원의 교사진을 찾아 나섰고, 그 어떤 대가도 상관하지 않고 가장 먼저 대면하여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쟁탈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왜 고함을 치며 지시를 내렸을까?
그것은 바로 주변에 모여 있는 시민 관중들의 함성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항구 전체가 우렁찬 함성으로 가득 차 있었고, 모든 사람들이 거대한 해일이라도 밀려온 듯한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이런 보기 드문 격전 앞에서 함성을 지르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시민들은 자신이 무슨 함성을 지르고 있는 것인지도 분간하지 못하고 있었다.
왕형여의 한 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만큼 충격적인 것이었다.
"두 가지 속성의 현기라니!"
"지금까지 운몽성에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심지어 풍어행도의 제일 행정관 담고금의 얼굴 위에도 놀란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이 변방에 있는 작은 도시 운몽성에 어찌 이런 괴물 같은 인재들이 계속 나타난단 말인가?'
옆에 있던 백해금의 얼굴에도 동요가 일어났다.
"운몽성 안에 저런 괴물이 숨어있었단 말인가?"
백해금은 왕형여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왕형여가 보여주는 재능은 예전 조파천이 보여준 재능보다 더욱 강력한 것이었다.
만약 왕형여가 이런 재능을 가진 것을 알았다면 조파천을 제자로 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순간의 충동일 뿐이었다.
다음 순간, 백해금의 얼굴에 떠오른 기이한 표정은 빠르게 사라졌다.
왜냐하면 그는 마음속으로 이번 교양쟁패전의 우승자는 자신의 제자인 조파천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상황은 이미 모두 안배가 끝나있었다.
왕형여가 아무리 괴물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고, 설사 북진을 격파한다고 하더라도 조파천의 조와 마주치게 되면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백해금이 보기에 현재 상황에서 왕형여는 아무리 기를 써도 조파천의 발판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한쪽에 조용히 앉아 있던 임진남의 얼굴 위에 약간의 놀람과 노기가 떠올랐다.
임진남은 이번 경기에서 북진이 완전히 패망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임진이 자진해서 교양쟁패전에서 물러난 지금 조파천이 북진을 꺾으며 우승을 거머쥐고 운몽성을 떠나가면 운몽성 안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인재는 자신의 아들인 임역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듯했다.
그 순간.
펑-!
엄청난 크기의 충격음이 항구 안을 뒤흔들었다.
대지마저 흔들릴 정도의 엄청난 소리였다.
수정화면 위에서는 북진과 왕형여가 서로의 절초를 펼쳐 마침내 충돌한 모습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찬란한 오색 빛깔 불꽃이 류채 보석 상회호의 갑판 위에서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빛이 너무 강해 수정화면의 화면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잠시간의 소강상태가 지나고 나면 승부가 분명하게 갈릴 것이었다.
수정화면 위로 송출되는 화면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삼 장 높이로 솟구쳤던 오색찬란한 빛무리 속에서 신형 하나가 휘청거리며 걸어 나왔다.
입술 사이로 한 줄기 선혈을 흘리며 양손에 검을 쥐고 있는 신형이었는데, 그 신형의 쌍검 위에서 피가 한 방울씩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 신형의 주인은 바로 왕형여였다!
'내가 진 것인가?'
왕형여의 아름다운 얼굴 위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대장……."
"괜찮은 거죠?"
원예, 구천계 등이 빠르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왕형여는 입에서 피를 토해낸 뒤 긴 한숨을 내쉬었다.
표정이 한결 나아진 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나는 괜찮다. 후……."
그녀의 입에서 또다시 피 냄새가 섞인 탁기가 뿜어져 나왔다.
왕형여는 그제서야 폭주하는 혼란한 자신의 현기를 겨우 다스려 낼 수 있었다.
왕형여의 반대편.
북진이 두 손으로 쥐고 있던 덕검이 천천히 지면을 향했다.
"제가 육신의 힘을 대성한 이래로 왕 학우처럼 저를 몰아세운 동년배 학생은 없었습니다. 당신의 실력은 제 예상을 훨씬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북진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왕형여는 패배를 하긴 했지만, 그녀의 두 눈에는 어느 때 보다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벽해조생. 굉장히 대단한 초식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이 초식 뒤에 더욱 무서운 초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초식의 이름이 알고 싶군요."
잠시 고민하던 북진이 대답했다.
"제가 시전한 것은 벽해삼검이라는 검법입니다. 제1 검은 벽해조생이며, 제2 검은 세지탁랑(世之濁浪), 제3 검은 장청우탁(藏淸于濁)이라고 합니다."
"좋은 검법이에요."
왕형여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제 부상이 회복되면 임 학우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싶군요. 벽해삼검에 담긴 묘리에 대해 더욱 알고 싶어졌어요. 임 학우께서 가르침을 베풀어주셨으면 좋겠군요."
북진이 할 말을 잃었다.
사실 북진은 왕형여와 같은 성격의 사람을 가장 어려워했다.
북진은 왠지 왕형여가 계속해서 자신에게 들러붙어 도전을 이어나갈 것 같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인생이란 게 계속해서 싸우고 부딪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데……. 그냥 평범하게 우정을 나누며 친구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비무가 하고 싶다는 말인가요? 음……. 솔직히 말하면 만약 왕 학우가 무공이 아닌 다른 것에 흥미가 있다고 하면 환영할 마음은 있지만……."
북진이 완곡하게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북진이 말한 '다른 것'은 당연히 다른 방면의 학식이나 지식 교류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말이 북진의 입에서 나오게 되니 듣는 이에게 가져다 드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북진의 말을 들은 원예와 구천계 등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왕형여는 일순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곧 차가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북진의 자신의 머리를 감싸며 생각에 잠겼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내가 뭘 잘못했나?'
그 순간 항구에 있는 관중석에서도 욕설이 터져 나왔다.
"저런 망할 놈이! 이런 상황에서 제1 학원 최고의 여검사를 희롱을 해!"
"저놈은 정말 답이 없는 놈이군!"
"역시 망나니의 본보기 같은 놈이군!"
"승리자의 특권이랄 수도 있지만……. 좀 지저분하군!"
관중들은 난리도 아니었다.
그들이 볼 때 북진은 괴짜 중에 괴짜였다.
얼굴만 보면 절세의 미남인데 좋은 분위기를 3초 이상 유지하지 못하는 녀석이란 생각이 들었다.
방금 전 엄청난 강자의 기세를 뿜어내며 모두를 감탄시켰을 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것 나름대로 관중들에게 큰 재미를 안겨다 주었다.
관람 구역에 있던 각 명문 학원의 인사들은 더욱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임북진이 이겼다니!"
"그가 방금 시전한 것이 무슨 검법이지?!"
"힘 하나로 모든 것을 깨부순다는 것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임북진 저놈이 제 아비의 재능을 물려받았군! 이곳이 전장이었다면 저 녀석은 분명 절세의 맹장(猛將)이 되었을 거야!"
"특기생! 특기생으로 선발해야 한다!"
"저 녀석은 특기생으로 뽑기에 부족함이 없는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 신분과 배경이……. 휴, 고민을 좀 해봐야겠군."
각 명문 학원의 인사들은 의견이 분분했다.
북진이 지금까지 교양쟁패전에서 보여준 뛰어난 활약은 각 학교에서 특기생 제1순위라 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진정으로 북진을 감당하려는 학교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왜일까?
먼저 북진의 아버지 임근남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음은 바로 북진이 조파천과 한 생사를 건 내기 때문이었다.
왕여의가 자신의 미간을 쓰다듬었다.
'임북진……. 내 상상을 초월하는 우수한 인재다. 두 종류의 현기를 각성한 상태의 왕형여를 꺾다니. 괴물 중의 괴물이다!
하지만 혈기를 태워 순간적으로 끌어올린 전투력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까? 그리고 금술을 시전한 뒤엔 얼마가 지나야 체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조파천을 마주했을 때 얼마나 대단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왕여의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혈기를 태워 강제로 힘을 끌어올려 겨우 승리를 거둔 북진에 비하면 왕형여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맞았다.
왕형여의 재능은 발군 중의 발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