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4화 검사면 검으로 대화하자
북진은 감정을 추스르고 자리에 차분히 앉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진 주제님께도 아시겠지만 천초 신전의 계시는 분명 그 위명신 그놈이 꾸며낸 것일 겁니다. 이 점을 생각만 하면 화가 납니다. 저희는 너무 소극적입니다. 방법을 찾아 그 녀석에게 먼저 역공을 취할 수는 없는 건가요?"
진 주제가 담담히 대답했다.
"그것은 나중의 일입니다. 지금은 우선 눈앞에 있는 위기부터 버텨내야 할 겁니다."
북진은 무언가 더 말하고 싶은 눈치였다.
하지만 진 주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하죠. 이런 일은 말을 많이 해도 무익할 뿐입니다. 당신도 일찍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겠어요. 수련을 열심히 하셔서 칠일 뒤에 출수의 기회를 잘 잡도록 하세요."
북진이 고개를 끄덕이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제가 가진 모든 능력을 다 하여 운몽 신전을 지켜낼 것입니다."
말을 마친 북진은 몸을 돌려 정원 한쪽에 있는 잡동사니를 보관하는 창고 쪽으로 향했다.
현재 남아있는 방은 그곳이 전부였고, 신전의 사제들이 북진을 위해 청소를 해 놓은 상태였다.
야미앙은 한쪽에 서서 아광을 품에 안고서 말했다.
"아광의 몸이 아주 부드럽군요……. 오늘 밤 끌어안고 자도 좋을까요?"
"???"
'제기랄. 사람이 쥐새끼보다 못하구나!'
"안 됩니다. 아광은 다른 할 일이 있습니다."
북진이 단호하게 야미앙의 요구를 거절했다.
'아광은 이미 성인 사람급의 사고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북황산에는 수십 마리나 되는 처첩을 거느리고 있지. 저런 속물 같은 쥐새끼와 야 사제가 한방을 쓰게 할 수는 없다.'
* * *
운몽성 사람들 중 그 누구도 갑자기 내린 폭우가 삼 일 동안이나 계속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성안 도처에서 폭우로 인한 수해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런 피해가 발생한 지금 사람들은 임군현이 10년 동안 운몽성을 경영해 온 방식이 정말로 중요한 순간에 효과를 보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성안에 곳곳에 물이 범람하기는 했지만 물은 배수로를 따가 흘러내려 가며 지속적으로 빠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피해가 크지 않았고, 성이 온통 물바다가 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가장 심각한 수해라고 하면 평민 구역의 몇몇 집의 지붕이 기울거나 무너진 정도였다.
그리고 다행히도 행정청, 경무청 등 6대 기관에 임군현이 임명해 놓은 좋은 관원들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고, 그들은 피해를 입은 평민들을 최선을 다해 구조하고 피해 복구에 힘쓰고 있었다.
신임 성주인 최호의 실종과 성 관부의 대청이 무너져 내린 소식은 이러한 폭우 속에서도 운몽성 안에 파다하게 퍼져나갔다.
듣기로 최명궤는 실종된 자신의 아버지를 오랫동안 찾아다니다가 분을 참지 못하고 결국 화병에 걸려 혼절했다고 했다.
그는 현재 제3 학원 안에 있는 북진의 거처인 죽원에서 요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두 강자의 결전의 날이 마침내 다가왔다.
결전의 날.
하늘에는 여전히 먹구름이 짙게 깔려 있었다.
빗줄기가 조금은 가늘어진 듯했다.
성 밖에 있는 항구는 연일 계속된 비로 인해 이미 모든 어선들이 항구로 돌아와 정박해 있었다.
운몽성 안에서 수많은 강자의 기운들이 항구가 있는 바다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두 종사급 강자의 결전은 성안의 많은 사람들에게 전율을 안겨다 주고 있었다.
관전을 하기 위해 항구를 찾은 강자의 수도 적지 않았다.
두 종사경의 강자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생사의 대전을 펼치는 모습을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는 너무나도 적었기 때문이었다.
무사들에게 있어서는 천금과도 같은 기회였다.
당연히 그 안에는 걱정 어린 마음을 끌어안고 자리한 사람들도 많았다.
평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강자들도 많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다 위에는 군함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거대한 배 한척이 이미 정박하여 결전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주벽석은 이미 그 배의 갑판 위에 우뚝 서서 먼 곳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전의 시간이 도래했다.
빗줄기가 점점 약해졌다.
하지만 바람은 여전히 거셌다.
바다 위에서는 사나운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다.
마치 바닷속에 사는 악룡 한 마리가 흉흉한 기운을 내뿜으며 날뛰고 있는 듯했다.
해안선에서 20리가량 떨어진 바다 위.
주벽석이 서 있는 거대한 배 주위에는 이미 수십 척 정도 되는 적지 않은 수의 배들이 조금 떨어진 곳에 떠서 전투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배 위에서는 강대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돌풍이 계속해서 부는 거센 파도 위에서 각자 자신들이 타고 있는 배가 안정적으로 파도를 피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때, 어두운 바다 위로 무언가 하나 빛났다.
작은 흰색 배 한 척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천천히 파도를 뚫고 관전 구역 안으로 나아왔다.
그 작은 배는 길이가 약 일 장, 넓이가 반 장 정도 되는 배였는데, 그 배가 지나는 곳마다 바람과 비가 멈추고 파도가 잠잠해지고 있었다.
매우 기이한 현상이었다.
작은 배의 뱃머리에는 순결한 백색의 치마를 입은 절세의 미녀 하나가 서 있었다.
한 점의 얼룩도 없는 흰 치마와 광택이 나는 피부, 눈처럼 하얀 장발과 금색의 허리띠, 풍만한 몸매와 길게 뻗은 다리, 모든 것이 완벽하게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뱃머리에 서서 앞을 주시하고 있는 그녀의 눈동자는 깊고 흔들림이 없었으며,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에서는 고귀하고 신성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아름다운 여성의 우측에는 자태가 곧은 소년 하나가 서 있었다.
소년은 약 16세 정도로 보였는데, 넓은 어깨와 탄탄한 허리, 여성보다 조금 더 큰 신장, 옥처럼 수려한 얼굴과 칠흑과도 같이 긴 장발, 밤하늘과 같은 깊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 소년은 평범한 청색의 검사복을 입고 있었다.
외모만 봐서는 천하일색의 한 쌍이었다.
바다 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에게 자연스레 시선을 빼앗겼다.
무도를 종사경까지 수련한 강자들이라 해도 눈앞이 밝아지는 기분을 느끼며 그들에게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방금 막 하얀 배를 타고 나타나는 한 쌍의 남녀는 바로 진 주제와 북진이었다.
북진은 정삼석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을 거둘 수 없었고, 결국 진 주제를 설득하여 함께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주벽석 또한 두 사람의 등장을 의식했다.
주벽석은 두 사람이 정삼석을 위해 자리에 온 것임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
"보아하니 오늘은 손속에 사정을 두어서는 안 되겠군."
주벽석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작은 배 위.
"오늘의 결전에서 당신은 절대로 출수를 하면 안 됩니다."
진 주제가 말했다.
북진이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진 주제님. 이미 몇 번이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절대로……."
북진은 대답을 하면서도 시선을 이리저리 이동하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북진은 마침내 몇몇 커다란 배 위에 있는 전문 인원들과 천리목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막 현문 진법을 설치하고 북해제국 무도계를 뒤흔든 두 무도 대종사의 대결을 방송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북진은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 다경의 시간이 흘러갔다.
결전의 시작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정삼석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주변의 배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 위에는 의외라는 표정이 떠오르고 있었다.
"어째서 아직까지 오지 않는 것이지?"
"설마 겁을 먹은 것은 아니겠지?"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인가?"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다 중간에 있던 커다란 배 위에서 주벽석이 신형을 움직여 공중으로 뛰어오른 뒤 약 십 장 거리를 격해 바다 위에 섰다.
그의 발아래서는 현기가 흘러 나와 회전을 하고 있었고, 그의 모습은 마치 바다 위를 자유롭게 이동하는 해족과 같아 보였다.
그의 발아래서는 작은 물기둥이 천천히 솟아나 그의 신형을 곧게 받치고 서 있었다.
"정뇌! 시간이 되었다! 모습을 드러내 죽음을 맞이해라!"
주벽석이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천둥소리와도 같았다.
그의 음성이 음파가 되어 전방 수십 장 거리까지 퍼져나가며 공기를 뒤흔들었다.
그 음파로 인해 해수면 위로 물보라가 칠 정도였다.
"정말 강한 현기 수행이다!"
"대단하구나! 역시 4대 검노의 수장이다!"
주변에 있던 관전자들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 하나로 그의 심후한 공력을 알 수 있었다.
"스승님이 어째서 아직도 오시지 않는 것이지?"
주벽석이 날뛰는 모습을 발라보던 북진은 마음이 급해졌다.
'설마 폐관 수련을 하시다가 주화입마에 빠져 돌아가신 것은 아니겠지?'
바로 그때.
휙-!
그 길이가 수십 장은 되는 백색의 검광 하나가 항구가 있는 방향으로부터 허공을 가르고 날아왔다.
"이제 막 전투 시간이 되었는데 그리 급하게 죽고 싶은 것인가?"
정삼석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항구 쪽에서 울려 퍼졌다.
정삼석이 내 뿜어낸 백색의 검광은 마치 천지를 양단하는 기세로 주벽석의 음파로 생겨난 물보라를 단칼에 가르며 수십 장의 거리를 넘어 파도를 뚫고 주벽석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주벽석의 눈 위로 놀란 빛이 떠올랐다.
그가 즉시 허리에서 검을 뽑은 뒤 앞으로 찔러 넣었다.
펑-!
검광과 검광이 바다 위에서 격돌하며 귀가 울릴 정도로 거대한 충격음이 들려왔다.
공포스러운 힘이 충돌하며 바닷물이 폭발하며 하늘로 솟구쳤다.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모습의 물기둥이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주변이 물안개에 휩싸였다.
충돌의 여파가 가라앉고, 주벽석이 서 있는 곳 십 장 밖에는 바다 위로 일 장 가까이 솟아오른 물기둥 위에 덕행검을 손에 쥔 정삼석이 우뚝 서 있었다.
그의 마른 체형에서는 마치 태고의 신산(神山)과 같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모든 관전자들은 정삼석이 어떻게 나타난 것인지도 알아채지 못했다.
마치 검광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단하군. 역시 과거 백운성의 검선이라 불렸던 자답구나!"
주벽석이 전의에 불타오르는 눈동자로 정삼석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의 몸 주위에는 보랏빛 현기가 구름처럼 일렁이며 퍼져나가 있었는데, 마치 우주의 은하를 보는 듯했다.
그 보랏빛 현기의 구름 안에서는 보랏빛 번개가 번쩍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멀리서 보아도 한눈에 느낄 정도로 거대한 파멸의 힘을 지닌 현기였다.
"그 정도는 되어야 나 자전신검의 손 아래서 죽을 자격이 있지."
주벽석이 머리를 휘날리며 말했다.
그의 손에는 매우 오래되어 보이는 보랏빛 검이 한 자루 들려있었다.
검신은 은은한 보라색이었고, 재질은 특수한 암석인 듯했다.
검신 위에는 암석의 표면에서 볼 법한 문양이 흐르고 있었으며, 그렇게 날카로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매우 무겁고 둔탁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천초행도에서 이름이 난 자전신검(紫電神劍) 이었다.
주벽석의 존호(尊號)는 바로 이 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말을 많이 해 봤자 무익할 뿐. 검사면 검으로 대화를 하도록 하자."
미소를 지은 정삼석의 몸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