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화 얼굴 없는 자객단
"나는 당신의 몸에서 사악한 기운을 느꼈습니다."
야미앙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녀의 가슴 앞쪽에는 작은 검붉은 장인(掌印)이 찍혀있었다.
야미앙의 등 뒤로 검의 날개가 천천히 펼쳐졌다.
그리고 그녀의 몸 안에 있던 금기의 힘이 다시 천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야미앙이 입었던 여러 상처가 빠르게 치료되었다.
주군비호지광은 원래 수련자에게 강력한 치유 효과를 주는 무공이었다.
"사악하다고?"
상대가 교성을 터뜨리며 웃었다.
"히히히! 하지만 나에게 있어 힘이란 것은 정사의 구분이 없는 것이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렸지."
야미앙의 얼굴 위에는 전에 없던 신성함과 엄숙함이 떠올라 있었다.
"말도 안 되는 논리입니다."
미소녀 사제 야미앙이 표정을 굳혔다.
"광명과 흑암은 이 세계가 혼돈에서 시작되었을 때부터 양립할 수 없었던 힘입니다. 당신과 같은 천박한 생물이 신성한 결계의 전투에 참가하다니! 죽어 마땅합니다!"
순결한 은빛을 뿜어내던 세 번째 검의 날개가 야미앙의 등 뒤로 천천히 환상처럼 펼쳐졌다.
야미앙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 또한 계속해서 강력해지고 있었다.
야미앙의 힘이 미친 듯이 상승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눈 깜짝할 사이에 야미앙의 수행이 대종사경 수준이 되었다.
어두운 흑색의 현기에 둘러싸여 있던 신비한 상대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신형은 검은 현기에 완전히 잠식되어 있었는데, 그 정확한 모습을 또렷하게 볼 수는 없었으나 대략적으로 체구가 호리호리하고 작은 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히히히! 내가 이 결계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검의 주군께서 나의 힘을 인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꼬마 계집아 너는 이미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 내가 너에게 신의 의지를 다시한 번 깨우칠 수 있게 도와주겠다."
신비한 상대가 계속해서 웃음을 터뜨렸다.
"건방진!"
야미앙이 입을 열었다.
야미앙의 목소리는 이미 원래 그녀가 가지고 있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야미앙의 목소리에는 전과 다르게 위엄이 가득했다.
마치 감정이 없는 차가운 금속이 진동을 하며 내는 소리와 같았다.
이는 하늘 밖 황천으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처럼 공간 안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이 낼 수 있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야미앙의 음성 안에는 심판자의 위엄이 가득했다.
"사악한 신령이여! 죽어라!"
야미앙의 등 뒤에 있던 세 쌍의 날개가 동시에 움직였다.
휙-!
공기가 잘려 나갔다.
야미앙은 은빛 검을 들고 엄청난 속도로 상대를 공격해 나갔다.
"정말이지……. 너무 사나운 계집애로구나!"
가볍게 웃은 상대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기운을 폭발시켰다.
그러자 그녀의 등 뒤에서도 세 쌍의 날개가 펼쳐졌다.
하지만 그 날개는 암홍색의 기이한 기운이 흐르는 어둠의 날개였다.
펑-!
어둠의 날개가 빠르게 펼쳐지고 신비한 상대에게서도 대종사경의 힘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은빛 날개와 어둠의 날개.
흑백의 날개가 마치 매와 같은 모습으로 공중을 선회하며 충돌하고 찌르기를 반복했다.
두 사람의 속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빛살과도 같이 움직이는 두 사람은 허공에 잔상을 남기며 전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관전을 하고 있던 강자들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들이 볼 때 야미앙을 공격하고 있는 강자는 땅의 신위가 아니었음에도 보여주는 힘은 땅의 신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각성을 한 현기는 암예(暗裔)의 힘이라 불리는 매우 희귀한 어둠의 힘이었다.
암예의 힘은 사악한 힘이라 할 수 없었다.
극도로 희귀한 힘이긴 하지만 이 세계의 정통 신앙에서 인정하는 힘이었다.
그리고 야미앙…….
운몽 신전에서 출전한 그녀 또한 무명의 소녀라고는 할 수 없었다.
야미앙이 조휘 신전에서 수련을 한 시간 동안 그녀의 이름은 점점 많은 신전 인사들의 머릿속에 각인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엄청난 잠재력으로 인해 교황창시반에 들게 되었고 심지어 미래의 교황이 될 자질이 있다고까지 평가받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잠재력일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소녀 야미앙이 펼쳐내는 힘은 온 세상을 놀라게 할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신도 대종사의 힘!
이것은 한 지역의 중앙 신전 주교급 이상은 되는 성직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수행이었다.
관전을 하던 사람들은 충격을 받아 숨이 멎을 정도였다.
3호 결계 안의 전투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며 그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게다가 엄청난 수준의 전투를 바라보던 강자 중 소수의 사람만이 그 안에 담긴 위험성과 오의를 눈치채고 있었다.
전투를 지켜보던 연산선생의 눈 위로 음험한 빛이 떠올랐다.
"이런 수준의 신성을 각성했을 줄이야……. 저 소녀는 절대로 살려두면 안 되겠군.
다행히 아직 완전히 성장을 하기 전에 전투에 휘말렸군. 이번 전투에서 저 소녀를 제거할 수 있겠어. 만약 땅의 신위였다면 이번 전투는 이미 패했겠어."
그가 아래쪽 전투를 바라보았다.
모든 전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이 매우 중대한 사안이었다.
연산선생은 강범이 전사한 것을 보았음에도 표정에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허허…….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 운몽 신전이 모든 전장에서 승리하더라도 운명은 바꿀 수 없을 것이다."
* * *
"감히 저항을 하는 것이냐!"
회색 옷을 입은 무사들의 대장이 노성을 내뱉었다.
"너희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것이냐?"
최명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때, 옆에 있던 초흔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디서 굴러 들어온 녀석들인지 모르지만 너희가 누구이든 우리 제3 학원의 교사를 건드릴 자격은 없다."
"건방진!"
회색 무사들의 대장이 말했다.
"나는 해안왕 어르신 휘하에 있는 근위장이다! 전하의 명을 받들어 사람을 데리러 온 것이다. 감히 보잘것없는 초급학원 교사 주제에 우리를 막는 것이냐? 죽고 싶은 것이로구나!"
근위장이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뒤에 도열해 있던 회색 옷을 입은 수십의 근위병들이 파현신궁을 들어 올려 최명궤 등을 향해 활시위를 겨누었다.
살기가 사방에 퍼져나갔다.
초흔이 두 주먹을 맞대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신 있으면 해 보거라."
류계해와 반외민도 각자의 기운을 뿜어냈다.
주변으로 종사경의 위압감이 천천히 퍼져나갔다.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녀석들이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구나!'
해안왕이 자신의 손자가 죽은 일로 북진을 죽이려 하는 것은 논외로 치더라도 공전험신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만약 운몽 신전이 공전험신에서 패배하게 되면 북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할 것이었다.
그 안에는 초흔 등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에 거대한 위기가 다가와 있음을 알고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눈에 뵈는 것이 더욱 없었다.
그들은 이미 최악의 상황까지 산정해 둔 상태였다.
이런 상태인 그들에게 해안왕이 손을 뻗은 것은 매우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라 할 수 있었다.
세 주임 교사가 내뿜는 종사경의 기운을 느낀 회색 무사들이 식은땀을 흘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이런 작은 도시의 초급학원 안에 무도 종사경의 고수들이 숨어있었다고?'
회색 무사들의 대장은 높이 들어 올린 손을 내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파현신노가 이론적으로 종사경의 고수에게 상해를 입힐 수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거대한 범위 안에서 완전히 포위를 한 상태여야 했다.
고작 십여 명의 무사들이 쏘는 화살은 세 종사경 고수의 화만 돋을 뿐이었다.
회색 무사들의 대장은 자신이 손을 내려서 화살이 발사되면 종사경의 고수들이 자신들의 힘을 발산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과 동료들이 목숨을 보전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 될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던 해안왕의 얼굴 위로 노기가 떠올랐다.
그가 고개를 돌리고 거대한 마차의 마부석 위에 있던 모자를 쓴 인물에게 무어라 말을 했다.
그러자 마부가 천천히 마차에서 내려와 한 걸음씩 초흔 등에게 다가왔다.
노흔의 눈빛이 조금 변했다.
초흔은 남루한 차림의 마부의 체내에서 흐르는 공포스러운 현기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한 종사경의 강자였다.
하지만 의외는 아니었다.
해안왕이 강력한 실권을 지닌 사람은 아니었지만, 황실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었고, 그의 곁에 종사경의 호위가 있는 것은 그의 위명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부가 초흔 등의 일 장 거리까지 다가온 뒤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천천히 자신의 모자를 벗었다.
아래에 드러난 얼굴은 눈, 코, 입이 보이지 않는 기이한 얼굴이었다.
마부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옆에 있는 노예를 가두는 철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스로 기어들어 갈 테냐 아니면 내가 시체로 만들어 넣어줄까?"
"얼굴 없는 자객단?"
초흔이 눈을 가늘게 떴다.
드러난 마부의 얼굴은 매우 희귀하고 특수한 공법을 사용한 사람들의 특징이었다.
얼굴 위로 기이한 피부의 막이 생겨 이목구비를 덮고 있어 마치 가면을 쓴 것 같은 느낌이었고, 얼굴에서는 그 어떤 특징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눈, 코, 입의 기능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이 공법은 '무면무형무상공(無面無形無相功)이라 불렀다.
오직 얼굴 없는 자객단의 핵심 강자들만 수련할 자격이 있는 무공이었다.
얼굴 없는 자객단은 풍어행도 안에서 종횡무진하며 많은 영향력을 끼치며 많은 강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자객 조직이었다.
초흔은 설마 얼굴 없는 자객단이 해안왕과 관계가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저 약간 놀랐을 뿐이었다.
마부의 말을 들은 초흔은 옆에 있는 철창을 바라보며 냉소를 머금었다.
만약 예전이었다면 상대에게 어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시키는 대로 할 것 같으냐!"
초흔이 주먹을 내밀었다.
"네가 자초한 일이다."
마부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담겨져 있었다.
마부가 옷소매를 휘둘렀다.
펑-!
마부의 옷 소매 속에서 암청색의 우모비침(牛毛飛針)이 쏟아져 나와 초흔 등을 뒤덮으며 날아왔다.
시신망침(弑神芒針).
특수하게 제작된 암기였다.
전문적으로 무도 종사의 현기를 파훼하고 근거리에서 돌습을 가할 때 사용하는 암기였다.
종사경의 현기로는 막을 수 없는 암기였다.
시신망침이 피부에 꽂히게 되면 현기로는 제거할 수 없었으며, 현기를 끌어올릴수록 더욱 빠르게 혈관을 파고들어 혈액과 함께 몸을 타고 돌며 오장육부로 침입한 뒤 마지막에는 심장을 찔러 엄청난 고통과 함께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암기였다.
마부는 초흔 등과 일 장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시신망침을 시전하기에 최적의 거리였다.
마부는 원래 종사경의 수행을 가진 강자였는데, 이러한 대단한 암기까지 병행하여 사용하자 그 위력이 더욱 강력했다.
마부의 두 눈 사이로 잔인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마치 이미 초흔 등의 절망을 예견하고 있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