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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공에게 덕질당하는 중입니다-23화 (23/159)

<23화>

그는 기사들 여럿을 지목했다.

그들은 나와 자작의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희들이 철문 주위를 확인하고 있을 때, 자작님께서 오셔서 무슨 일인지 물어보셨습니다.”

“예. 저도 자작님의 질문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보십시오!”

기사들이 한마디씩 할 때마다 자작의 어깨가 펴지고 콧대가 올라갔다.

그는 증인을 댄 것으로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틀렸다. 저 기사들을 부른 것이야말로 자충수였다.

“구럼 왜 아죠씨 신발만 구러케 더러워오?”

나는 자작의 신발 밑창을 가리켰다.

거기엔 메리가 말한 것처럼, 진흙이 두껍게 묻어 있었다.

“어제눈 비도 안 왓자나오.”

그제야 자작의 신발을 확인한 사람들이 엇, 소리를 냈다.

호출된 기사들의 신발은 깨끗했기 때문에, 자작 신발에 묻은 진흙이 더욱 부각되어 보였다.

“그, 그러고 보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저눈 어떠케 된 곤지 아라오.”

사건은 기사와 자작이 공모를 하면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사건이 있기 전.

자작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사건을 터트리고, 기사는 그 안에 클로드를 죽이기로 합의를 보았다.

클로드는 선단 공포증이 있어, 검 앞에서 저항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저항하지 못하는 상대를 죽이는 데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둘은 철문을 부수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정도로만 시간을 끌기로 했다.

그리고 사건이 있던 밤.

쿵!

자작은 약속한 대로 철문을 부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자신이 철문을 부수었다는 걸 다른 사람에게 들켜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들이 오기 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지만…….

‘물리적 거리가 안 되었던 거야.’

무엇보다, 그렇게 돌아가는 자신을 누가 발견하는 것도 신경 쓰였다. 보나 마나 의심받을 테니까.

해서 그는 궁여지책으로 가까운 곳에 숨어 있다,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철문을 확인하려 나오면 슬그머니 끼기로 했다.

‘마침 어젯밤은 매우 어두웠으니까.’

그날 밤은 어둠만 한가득 보일 정도로 어두웠고, 이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덕분에 자작은 기사들에게 들키지 않고, ‘소리를 듣고 철문으로 나온 사람들 모임’에 자연스럽게 낄 수 있었다.

그가 그날 선택했던 장소는, 숨어 있기에 적당한 곳이 아니었으므로.

“어제 아죠씨눈 하단에 숨어 있어떤 거애오.”

움찔.

자작의 어깨가 떨렸다.

“비두 안 왓눈대 축추칸 진흑이 이쓸 고슨 한 곳뿐이자나오?”

하지만 화단엔 정원사가 주기적으로 물을 뿌렸을 것이므로, 땅이 젖어 있었을 것이다.

한데도 사람들이 그를 범인이라 생각하지 못한 건, 그날 많은 사람들이 철문으로 달려나오면서 그의 족적이 지워졌기 때문이다.

군데군데 흩어진 진흙은, 메리 같은 부지런한 하녀들의 손에 쓸려 나갔고.

하지만 그가 죄를 지었다는 증거들은 또렷이 남아 있었다.

“그, 그런 말로 나를 음해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어차피 증거가 없는 한,”

“그럼 화긴 해 보면 대죠. 하단에 아죠씨 신발과 똑가튼 자국이 잇눈지 아닌지.”

“!”

자작이 이를 악물었다.

나는 새파래지는 그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제 생가겐 이쓸 거 가튼데. 아죠씨는 어떠케 생가캐오?”

* * *

기사 중 한 명이 확인을 위해 밖으로 나갔다.

잠시 뒤, 돌아온 기사가 우렁차게 외쳤다.

“있습니다! 철문과 가까운 화단에서 발자국을 발견했습니다!”

싸늘한 정적 속.

자작은 덜덜 떨리는 자신의 손을 감추기 위해 깍지를 꼈다. 하지만 떨리는 입가는 감추지 못했다.

기사는 그의 앞에서 몸을 수그렸다.

“대조를 위해 필요하니, 편하신 쪽 신발을 벗어 주시겠습니까?”

자작은 신발을 벗지 않았다.

대신 나를 바라보며 눈에 핏발을 세웠다.

“저, 저는 그때 꽃을 보고 있었습니다!”

“……오?”

나는 팔짱을 끼고서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큰 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나가느라 화단에 발자국이 남은 것일 뿐! 불온한 의도는 절대 없었습니다!”

“구러쿠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가,

“……아죠씨 바보애오?”

살짝 비틀었다.

찰나의 순간, 안도로 밝아졌던 얼굴이 바로 구겨졌다.

“누가 캄카만 밤에 꼬츨 바오?”

뭐, 설령 그런 취미가 있다 치더라도.

“그리구 그 말이 지짜여쓰면 발자구기 가튼 쪼그로만 나 있엇게쬬.”

그날, 철문의 이상을 확인하고 달려나간 사람들은 자작을 제외하고 다 공작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밖이 아무리 어두워도 화단이 있는 곳을 경유하지 않는다. 몇 년씩 공작저에 근무했던 만큼, 다들 저택 지리에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화단에 남은 건 자작의 족적뿐일 수밖에 없었다.

이는 자작이 남긴 족적이 아주 잘 보존되어 있을 거란 뜻이기도 했다.

발의 머리 방향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자작의 주장이 맞다면 족적은 화단 끝에서 철문 쪽으로 쭉 이어져야 했다.

하지만 자작은 숨어 있었을 것으므로, 실제 그의 족적은 화단으로 들어가는 방향과, 나온 방향 두 가지를 그렸을 거다.

‘그리고…….’

나는 기사를 보며 웃었다.

내가 생각한 것을, 저 기사가 생각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구래서 발자구근 어때써오?”

“아가씨께서 말씀하신 대로였습니다.”

기사가 고개를 숙였고,

“……자작을 체포해라.”

조사관이 명령했다.

양팔이 기사들에게 붙들린 자작은 끌려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자작은 세월의 흐름에 순응해서 산 사람이었다.

근육을 뱃살로 치환한 지 오래인 그는 기사들을 뿌리칠 힘이 없었다. 그는 끌려가면서 고함만 질러 댔다.

“이건 모함입니다! 애초에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린아이가 어떻게 저런 사고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다 조작이고 음해,”

“구건 아죠씨가 흑모래 놀이 안 해서 그래오.”

“무슨 헛소리를!”

“발루 꾹꾸 몇 번 하묜 알 수 잇는골.”

나는 주먹 쥔 손으로 허공을 누르는 시늉을 했다.

아이의 운 좋은 관찰력으로 상황을 모면하려면, 과하게 시선이 집중되는 건 피해야 했다.

그러므로,

“아죠씨가 나빠오. 저나는 아죠씨 미덧는대.”

나는 자작의 범행을 다시 화두에 올렸다.

사람들이 일제히 시선을 돌려 자작을 바라봤다.

경멸. 혐오.

죄의 무게를 인지하는 시선들이 묵직했다.

자작이 현실을 부인하고 싶은 사람처럼 몸을 바르르 떨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던 그가, 문득 클로드를 보고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저, 전하!”

“…….”

“제가 그동안 얼마나 전하의 곁을 충심으로 지켰습니까! 다른 이들이 그렇게 회유해도 전하의 곁을 지키던 접니다! 그런 저를 생각하시어, 으악! 전하! 전하아!”

그러나 클로드는 침묵으로 그의 말을 외면했다.

자작이 떠난 자리엔 한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묵직해진 분위기 속에서 나는 혼자 쿠키를 와삭와삭 해치웠다.

손에 묻은 쿠키 가루를 대충 바닥에 털어 내다가, 문득 조사관과 눈이 마주쳤다.

당황을 감추고, 자신은 이 일과 무관한 척 구는 저 모습이 어찌나 우스운지.

“지짜 다행이애오.”

나는 조롱을 터트리는 대신, 활짝 웃으며 두 손바닥을 맞댔다.

조사관이 “예?” 하며 되물었다.

“버민 자바짜나오!”

“……예, 뭐. 그렇지요.”

조사관은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그가 어설프게 내 시선을 피하는 사이.

나는 엄지를 들어 자신을 가리켰다.

봤냐, 클로드.

내가 한 놈 보냈다.

클로드는 엄지를 같이 들어 보이는 것으로 화답했다.

* * *

롤케이드가의 비밀 회의실이 또 열렸다.

엘리샤와 클로드가 자신들만 아는 시그널을 주고받으며 웃는 모습이, 롤케이드 남자들의 위기감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회의 주제는 대충 이랬다.

-엘리샤와 1황자의 사이가 심상치 않다!

가장 걱정되는 건, 엘리샤가 1황자에게 또렷한 관심을 보인다는 점이었다.

기사에게 죽을 뻔한 1황자를 구한 것도.

가르텡 자작의 부정을 밝혀 낸 것도.

다 엘리샤가 한 일이었다.

애초에 엘리샤가 없었다면 황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딸이…… 황자를 위해 저렇게까지 머리를 쥐어 짜내다니!’

‘이러다 나중에 정말로 회색 머리 사위가 생기는 건 아니겠지?’

클로드와 딸이 결혼한 악몽을 아직 떨쳐 내지 못한 공작은 속으로 울었고,

“이, 이러다 아가가 정말로 황가 놈과 결혼해 버리는 것 아니냐?”

글랜은 주먹으로 애꿎은 탁자만 내리쳤다.

“그놈은 전망이 없는 놈이거늘!”

황비의 기세가 등등한 지금.

클로드가 살아서 황위를 이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하, 하지만 엘리샤가 좋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1황자가 너무 좋다며 가출이라도 하면,”

이안이 조심스레 의견을 냈다가, 글랜의 노성에 찔끔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그리되기 전에 막아야 할 것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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