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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공에게 덕질당하는 중입니다-61화 (61/159)

<61화>

“음료수 역시 더 준비되어 있으니, 부족하시면 언제든,”

“저기.”

메리의 말을 끊고 손을 드는 아이가 있었다. 레티시아였다.

“무슨 일이신가요, 아가씨?”

“이거 말인데, 다즐링으로 바꿔 줄 수 있을까? 난 이런 애기 음료는 안 먹어서.”

레모네이드 잔을 잡고 입에 가져다 대려던 아이들이 멈칫했고, 메리는 나를 쳐다봤다.

정처 없이 흔들리는 시선이, 당혹감을 여지없이 보여 주고 있었다.

나는 대충 입 모양으로 대꾸해 주었다.

‘해 달라는 대로 해 죠.’

음료 바꿔 주는 게 뭐 어렵다고.

대수롭지 않은 일로 레티시아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메리는 공손히 대답했고,

“나도!”

“나도 그거 먹을래!”

“저도 바꿔 주세요!”

아이들도 덩달아 손을 들었다.

군중 심리에, 어른스러워 보이고 싶은 마음이 합쳐진 모양이었다.

애 취급 받는 걸 좋아하면, 이미 아이가 아니긴 했다.

“아가씨 음료도 바꿔 드릴까요?”

“난 댓오.”

나는 에이드 잔을 양손으로 쥐고서 들어 올렸다.

가을이 오고 있다지만 낮은 아직 더웠다. 테이블이 있는 정원에 차양은 물론 그 흔한 나무 그늘 하나 없었기에 더 그랬다.

잔 위에 떠 있다 입가에 부딪치는 얼음의 느낌이나, 입 안을 새콤하게 채우는 에이드는 이 상황에 퍽 달가운 것이었다.

메리는 내가 에이드를 반쯤 비웠을 때에야 다시 나타났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아가씨, 도련님들.”

아이들 앞에 빈 찻잔을 하나씩 놓은 메리가, 김이 펄펄 올라오는 티 팟을 들었다.

“아직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차를 모두 따른 메리가, 이번엔 설탕과 우유 단지를 집었다.

“이건 어디에 놓으면 좋으려나……. 케이크 옆에 두는 게 좋겠죠?”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레티시아가 또 말했다.

“교양 있는 신사 숙녀는 홍차에 쓸데없는 이물질을 넣어 본연의 맛을 흐리지 않는 법이랍니다.”

레티시아는 가볍게 웃은 뒤 찻잔을 집어 들었다.

잔을 잡는 동작이 능숙한 것으로 보아, 레티시아는 홍차를 마시는 게 익숙한 듯했다.

물론 그건 레티시아에게만 한정된 이야기였고.

“뜨, 뜨!”

“으윽…….”

“써…….”

다른 아이들은 찻잔의 뜨거움에 질겁하거나, 혀를 아리는 쓴맛에 미간을 확 찌푸렸다.

그렇게 힘들면 설탕이나 우유의 힘을 빌리면 될 텐데.

레티시아가 그건 귀족답지 못한 짓이라고 하니, 눈치가 보이는 듯했다.

멍하니 제 찻잔을 내려다보는 아이들 사이에서, 단연 레티시아는 돋보였다.

차를 마시는 레티시아는 어린 나이임에도 귀부인 같았다.

‘하지만 벌써부터 저런 모습을 할 필요가 있을까?’

레티시아 본인이야 저 모습이 좋아서 그런다 치고.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까지 쓴 홍차를 감당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해서 나는 아이들의 찻잔으로 각설탕을 던져 넣어 주었다.

“……?”

“공녀님?”

“오.”

일을 마친 나는 손에 묻은 설탕을 탈탈 털어 내고서 히히 웃었다.

“내가 실수로 빠뜨려 버렷내?”

“예?”

“누가 봐도 실수 아닌 것 같은,”

그 와중에 진실을 말하는 레티시아는 가볍게 무시했다.

“어차피 차도 떨어졋겟다. 구냥 머거.”

“어…….”

“네, 넵!”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아이들이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스푼으로 설탕을 녹이는 소리가 한참 요란하게 울렸다.

“음…….”

“확실히…….”

설탕이 들어가자 먹을 만해졌는지, 아이들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다니엘과 클로드가 등장한 건 그때였다.

“머야? 요긴 어떻게 와써요?”

다니엘이 대답했고,

“하녀에게 물어보니 대답해 주더군요.”

“나 역시.”

클로드도 뒤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안자오.”

여기까지 온 사람을 내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마침 메리가 안 가고 옆에 서 있었던 터라, 바로 의자 두 개가 추가되었다.

“이렇게 합석하게 되어 영광입니다들. 그런데…… 왜 공녀님 잔만 에이드입니까?”

“난 각자도생이 몬지 아는 사람이라소.”

“……아?”

다니엘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래도 대충 상황을 눈치챈 듯,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구래서 넌 머 먹을 고야?”

“전 세상 이치에 통달한 공녀님과 같은 것을 마시도록 하겠습니다.”

“나 역시.”

곧 메리가 에이드를 두 잔 내어 왔다.

아이들이 마시지 않은 에이드가 많이 남아 있었던 터라, 에이드는 빠르게 준비되었다.

아이들은 에이드를 마시는 우리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바꿔 달라 말하진 못했다.

“움…… 케이크 좀 머글래?”

홍차의 쓴맛을 중화하는 데 달다구리만 한 것이 또 없을 테니까.

마침 우리 앞에는 손대지 않은 케이크가 남아 있었다.

“조, 좋아요.”

“저어…… 여기 있는 갈색 인형, 제가 가져도 될까요?”

“안 댈 게 머 잇오? 요기 칼루 네가 잘라.”

“네!”

활발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너두 케이쿠 머글래?”

“아니요. 전 괜찮아요. 것보다 아까부터 여쭤보고 싶었는데요.”

레티시아가 방실방실 웃으며 내 머리를 가리켰다.

“그 머리핀은 도대체…… 무엇을 의도하신 건가요?”

“우?”

“입고 계신 옷에 비해 질이 떨어지는 게…… 솔직히 싸구려처럼 보여서요.”

그게 또 하필 클로드가 선물한 머리핀이라, 클로드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마침 제게 더 좋은 머리핀이 있어요. 이걸로 바꿔 끼세요.”

내가 대답하지 않았는데, 레티시아가 내 머리핀을 멋대로 바꿔 끼우려 했다. 나는 그녀의 손이 머리에 닿기 전 몸을 멀찍이 물렸다.

“비싸야지만 꼭 죠은 거야?”

물론 값어치로만 따지면 레티시아가 든 머리핀이 훨씬 좋을 터였다.

하지만 그만큼 여러 장식이 달려 무거워 보였다.

내가 거절할 것을 예상하지 못한 듯, 레티시아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몇 초 후. 그녀가 어색한 공백을 메우려는 듯 더 과장스럽게 웃었다.

“음, 안목이 부족하실 수 있죠. 이해해요. 공녀님께선 아직 어리시니까.”

“……모?”

어이가 없어서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는데, 레티시아가 손수건을 들어 올리더니 내 입가를 벅벅 문질렀다.

“아포!”

“그리고 그렇게 입에 다 묻히고 다니시면 안 되어요. 깔끔하게 먹는 건 식사의 기본이랍니다.”

레티시아는 다시 자리에 앉더니 “이렇게요” 하며 시범을 보여 주었다. 완전히 자신의 어른스러움에 도취된 표정이었다.

“이게 무슨 짓,”

그에 클로드가 일어서려는 걸, 바로 저지했다.

“갠차나오.”

기반 세력이 부족한 사람이 귀족과 척지면 안 된다.

클로드는 한숨을 쉬더니 다시 앉았다.

만류하는 사람이 없자, 레티시아는 물 만난 고기처럼 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까 리아모 영애께서 의자에 앉으실 때 소리를 내신 거, 엄청 불편하고 무식하게 보였어요.”

“네, 네?”

“또 레노아 영식. 찻잔을 든 손을 그렇게 떨면 채신머리없어 보인답니다. 사교계에서 단번에 웃음거리가 되실 거예요.”

“그리고…….”

레티시아가 지적한 아이들은 얼굴을 붉히거나, 입을 꾹 다물며 시선을 피했다.

나는 레티시아가 예법을 중시하는 것 자체를 나쁘게 보진 않았다.

어쨌든 내가 뒤집어쓴 껍데기는 귀족이었고, 상류 사회에 합류하려면 반드시 익혀야 하는 게 예법이었으니까.

하지만 레티시아가 다른 사람의 실수를 지적하면서, 그걸로 자신을 드높이는 건 좋게 보이지 않았다.

레티시아는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다 마신 에이드 잔을 옆으로 치워 둔 뒤, 박수를 쳤다.

레티시아가 잠시 멈칫하더니, “뭐죠?”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미첼 영애는 우리랑 수준이가 다른 거 가타서.”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롤케이드 공녀님이시라면 그러실 줄 알았어요! 무려 피올레 부인께서도 극찬하신 예법이랍니다. 흠잡을 데 없다고 하셨어요.”

지나친 자아도취에 다니엘이 “뭡니까” 하며 끼어들려 했지만, 손으로 가로막았다.

내 본론은 지금부터니까.

“구래서 하는 말인대.”

“피올레 부인을 소개시켜 드릴까요? 그래도 단기간에 저만큼 되시기는 좀,”

“영애는 좀 더 격 노픈 자리로 가는 게 조을 것 같오.”

“……네?”

레티시아가 입을 뻐끔거렸다.

그녀의 뒤로 이런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당신은 우리와 함께하실 수 없습니다!

“그…… 렇죠. 제 수준이 좀 높죠. 아하하.”

레티시아는 멀어지려는 이성을 붙잡고서 애써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너무 낙담하지 마세요, 공녀님. 예법의 계단은 재능이 아니라 노력으로도 오를 수 있다고 하니까요. 열심히 노력하시면 언젠가는-,”

“와, 나. 못 들어 주겠네, 진짜.”

다니엘이 말했다.

“영애는 예법만 만점이고 제국어엔 통달하지 못했나 봅니다?”

“뭐라고요?”

“공녀님께서 그러시잖습니까. 여긴 당신이 있을 곳이 아니니까, 당신 수준 맞는 곳으로 꺼지라고.”

레티이사의 얼굴이 빨개졌다.

“함부로 공녀님의 뜻을 곡해하시다니. 무례함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에요.”

“그리 어렵지도 않은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당신 지능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안 합니까? 그리고.”

다니엘은 어깨를 으쓱인 뒤, 아까부터 입을 다물고 있던 아이들을 가리켰다.

“눈치 못 챘습니까? 아까부터 당신 혼자 떠들고 있었습니다.”

“그건…….”

“당신이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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