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 * *
내가 시녀에게 한 말은 이거였다.
[그럼 사용하지 않는 창고 방 하나를 빌려도 될까요?]
직접 심문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내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기도 했다.
내 선에서 사건이 종결되면, 감찰국이 끼어들 여지도 없어진다.
황비 궁이 연관된 사건인 만큼, 이 사건을 축소하고 싶은 황비에게 이보다 더 솔깃한 제안은 없을 터였다.
그렇게 사건의 진범인 후작 부인도 잡혀 들어오면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후 내 계획은 별거 없었다.
쥬벨리안은 한번 봐주고, 모든 책임은 후작 부인 쪽으로 돌릴 생각이었다.
셀톤 부인 말대로 쥬벨리안이 후회를 해서기도 했고, 내가 실질적으로 입은 손해가 전무해서인 것도 있었으며……. 리네트에게 후작 부인이 황비와 후작가 사이 커넥션이 있었다는 말을 들어서인 것도 있었다.
‘그럼 후작 부인을 후작가로부터 떼 놓는 게 급선무야. 그렇게 황비와 후작가 사이를 단절시켜 놓아야, 엘리아르 상단주의 숙원을 해결할 수 있을 테지.’
그런데.
[딸.]
왜인지 모르겠지만 공작이 왔다.
[기사 한 명 대동하지 않고 흉악범을 만날 생각이니?]
‘뭐, 같이 들어가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설마 별일이 있겠냐 싶어, 나는 공작과 함께 가는 것에 동의했고.
그 결과가 이거였다.
“나, 난 그저,”
“그 입 닥쳐.”
후작 부인이 입술을 오므렸다. 웬만한 일로는 화를 내지 않고, 화를 내더라도 귀족적인 선을 지키던 그가 한 반말이었다.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빠.”
그가 스르륵 시선을 내려 나를 보았다.
“저는 괜찮아요. 저런 말에 상처받지 않았으니까.”
“그래.”
“저는 엄마 없는 아이가 맞지만, 그게 아빠 잘못이라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래.”
“그래서 부족하다는 생각 역시, 하지 않았고요.”
“그래.”
“…….”
“그래, 알아.”
공작은 하나도 모르는 것 같은 얼굴로 연거푸 대답했다.
그의 시선은 내가 아닌 허공을 헛돌고 있었다. 그는 정신이 살짝 나간 것 같았다.
“일단 나가요.”
그래도 내가 이끄는 대로 순순히 일어서 주는 걸 보면, 이성의 한 자락이 남아 있기는 한 듯했다.
달칵.
나는- 문을 단단히 닫고 돌아섰다.
그런 뒤, 공작을 부르려는데.
“아,”
그대로 꼭 끌어안겨졌다.
“미안해, 딸.”
내 앞에 무릎을 대고서 나를 꽉 껴안은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하지만 나는 정말 괜찮,”
“그런 말을 듣고 괜찮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
“…….”
얼떨떨한 기분이 싹 떨어졌다. 겸양처럼 짓고 있던 미소도 같이 사라졌다.
공작은 정말로 내가 여덟 살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후작 부인의 폭언에 눈 깜짝하지 않는 내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내가, 그 없이 혼자 성장해 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에 바쁜 그가 만들어 낸 빈자리가,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공작을 만나기 한참 전부터 어른이었고, 어떤 일이든 혼자 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었다.
‘이 모든 것을 알게 된다면. 당신은 어떤 얼굴을 할까?’
상상하는 순간, 가슴 깊은 곳이 술렁이는 듯했다.
아주 오래전. 엘리샤란 이름을 부여받지 않았을 때부터 단단히 잠가 놓았던 감정 상자가 덜컹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 안에 든 것이 완전히 쏟아져 나오기 전.
“그, 아빠.”
나는 공작의 팔을 잡았다.
“사실 웬델라이트 후작 영애와도 이야기를 해 보고 싶은데요.”
“응.”
“혼자 가고 싶은데.”
“…….”
“……싫으세요?”
내가 너무 대놓고 피하는 모습을 보였나?
저도 모르게 공작의 눈치를 살피고 있을 때.
“아니.”
공작이 일어섰다.”
“그냥, 우리 딸이 너무 씩씩한 것 같아서.
그가 평소와 비슷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려 노력하며 내 등을 서너 번 토닥였다.
“후작 영애는 기사들과 함께 있다고 했지?”
“아마도요?”
“갔다 오렴, 딸. 아빠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석연찮은 구석이 있어 보이는 미소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방금은 정말로 위험했으니까.
나는 손을 흔들었다.
“그럼 이따 봐요, 아빠.”
* * *
엘리샤가 사라진 뒤.
공작은 일어섰다.
딸이 돌아오기까지는 아마 한 시간. 그동안 자신의 볼일을 보기엔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었으므로.
그는 엘리샤와 왔던 길을 돌아갔고, 그 끝에 위치한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불이 켜진 채 방치된 문 안엔 웬델라이트 부인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넋 나간 얼굴로 있던 그녀가 공작을 보자마자 숨을 들이켰다.
“왜, 왜 다시……!”
“아무래도 그냥 넘어가려니 좀 억울해져서 말입니다.”
무려 내 딸을 상처입힌 사람이 아닌가.
후작 부인은 방을 두리번거렸다. 정확히는 공작의 뒤쪽을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결국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한 그녀가 입을 열었다.
“고, 공녀는.”
“내 딸은 후작 영애를 만나러 갔습니다.”
공작은 낮게 웃었다.
그에게서 알 수 없는 한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오싹해진 그녀가 몸을 움츠릴 때.
공작이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 애는 이상하게 그렇더군요.”
“…….”
“작고 여리고 불쌍한 걸 보면 기회를 한 번씩 더 주고 싶어 하지 뭡니까.”
자신도 작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당신은 그런 측은지심을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고.”
어느새 공작의 목소리가 코앞으로 바싹 다가와 있었다.
아니, 실제로도 그가 코앞에 있었다.
후작 부인은 흐아악 비명을 지르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나는 공감하기보단 보복하는 것이 더 좋은 사람이라 말입니다.”
하지만 좁은 방 안이라 달리 달아날 곳이 없었다.
“해서 혼자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결국 공작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이, 이 더러운 이중인격자 같으니라고.”
물러설 곳이 없어진 후작 부인은 벽에 붙어 벌벌 떨면서도, 공작을 노려보기 위해 애를 썼다.
“딸이 없다고 바로 태도를 바꾸시다니. 참으로 신사답지 않으세요.”
“저는 그저 선을 지키는 것뿐입니다, 부인.”
“…….”
“많은 육아 서적에 그리 적혀 있더군요. 폭력은 교육에 좋지 않다고 말입니다. 부인께서 말한 대로 제 딸은 어미가 없어서 제가 혼자 두 사람 몫을 하려고 꽤나 고생을 했습니다.”
“그, 그 말은 공녀를 보고 한 말이 아니었어요! 공작께서도 알고 계시잖아요. 나 나는.”
쾅!
“그야말로 제가 들을 필요 없는 설명이군요.”
“!”
“내가 변명을 듣기 위해 돌아왔다고 생각합니까?”
공작은 벽을 내리쳤던 주먹을 내렸다. 그와 동시에 파스스스, 벽 일부가 함께 떨어져 내렸다.
“저, 저를 때리실 건가요?”
“제가요? 부인을?”
공작은 픽 웃었다.
“설마.”
그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두어 번 가로젓더니, 한 걸음 두 걸음 후작 부인에게서 물러났다.
덩달아 공작의 그림자도 멀어지면서, 후작 부인은 참았던 숨을 한 번에 뱉어 냈다.
“전 그런 야만적인 일은 하지 않습니다, 부인.”
“그, 그럼요?”
“꼭 사람이 맞아야 아픔을 느끼고, 칼로 찔러야만 죽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가 자신이 발로 걷어찼던 테이블을 들어 올리는가 싶더니, 부러지지 않은 다리들을 걷어차 평상으로 만들었다.
그런 뒤엔 품을 뒤적여 나온 서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확인해 보았는데, 부인께선 상당히 많은 일을 하셨더군요.”
그 서류엔 후작 부인이 행한 행적들이 남아 있었다.
감찰국을 시켜, 후작가의 뒤를 파 얻은 서류들이었다.
엘리샤가 성물 누명을 쓴 후, 공작은 차근차근 후작가를 밟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가 나서기도 전에, 이런 일이 터질 줄은 몰랐지만.
후작 부인은 자신의 행적들이 적힌 서류를 보았다.
대부분 황비가 시켜서, 일부는 후작가를 위해 한 일들이었다. 황비는 자신의 손에 지저분한 흔적이 남는 걸 싫어했다.
“누가 그러더군요. 진정한 사랑은 지옥 불 속에서도 건재하다고.”
“…….”
“모든 자료를 감찰국에 넘길 생각입니다.”
공작은 늘어놓았던 서류를 손끝으로 쓸어 다시 한곳에 모았다.
“후작께서 부인을 진정으로 사랑하신다면, 지옥까지 함께하시겠지요.”
그리고 공작이 일어서는 순간,
“아, 안 돼요!”
후다닥 일어난 후작 부인이 그를 가로막았다.
“이혼당할 거예요. 저 혼자 다 뒤집어쓰게 될 거라고요!”
“저런. 남편분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시군요.”
공작은 잡혀 주는 척 발을 끌며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부인. 모든 정황은 부인 혼자 단독으로 일을 저질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편분께선 아무것도 몰랐다 부인하고, 자신 몰래 추악한 일을 벌여 온 부인과 결별을 선언하기 좋은 상황으로 보입니다만.”
“그 사람은 늘 그랬어요. 지저분하고 힘든 일은 다 제게 떠넘기고, 혼자 고고한 척 굴었죠.”
“……그렇습니까?”
“그럼요!”
공작은 흥미롭다는 듯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이는 제 딸이 작은 방에서 무슨 일을 당하는지 알면서도 눈 하나 깜짝도 안 한 사람이에요. 무심하지만 괜찮은 아버지인 척, 관심 없으면서 신경 써 주는 척하느라 바쁘게 살지요. 나중에 황태자비가 된 딸이 자신을 아주 외면하면 안 되니까요! 하하. 우습기도 하지.”
“…….”
“그 애한테 준 약도 그래요. 사실 그 약도 그이가 준 거였거든요.”
이제 좀 듣고 싶은 이야기가 나왔다.
공작은 팔짱을 낀 채 평생 얻은 진리를 되새겼다.
세상에 혼자 죽고 싶어 하는 놈은 없다. 나쁜 놈일수록 더 그랬다.
“아까 하신 그 말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은데.”
그는 테이블 끝에 걸터앉아, 발로 테이블에서 떨어져 나간 다리들을 짓이겼다.
“자세히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내가 당신에게 썩은 동아줄이라도 줄 수 있도록.
공작이 느른하게 웃었고,
“그, 그러죠.”
그 행동에 또 움츠려 있던 후작 부인이 가까스로 대답했다.
* * *
한편 그 시각.
“쥬벨리안 웬델라이트 영애.”
나는 리네트에게 했던 질문을,
“어렵고, 길고,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고,”
아니. 많이 다른 질문을,
“어쩌면 모든 것을 버리게 될지도 모르지만.”
쥬벨리안에게 하고 있었다.
“그래도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
“잡을 건가요?”
내 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