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족들을-집착광공으로 키웠습니다 (146)화 (146/148)

#146

아버지의 손을 잡고 (1)

찰박, 찰박.

소년은 앞으로 걸어갔다.

흠뻑 젖은 몸이 무거웠지만, 소년에게는 내려진 명령이 있었으니까.

‘도착했어…….’

길고 긴 어둠을 지나, 드디어 섬에 도달했다.

이제는 새로운 명령을 기다릴 차례였다.

그렇게 소년은 멍하니 서서 신호가 오기를 기다렸는데.

“…….”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명령을 내려 주는 주인과 연결이 끊겨 버렸다.

이러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분명 감정 같은 불필요한 요소는 제거된 몸일 텐데, 불안과 초조함이라는 감정이 피어올랐다.

“어떻게, 하지.”

소년은 쭈그려 앉아 몸을 감싸 안았다.

그것이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게 불안은 마음을 좀먹고, 소년의 안에 깃든 검은 기운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소년의 몸에서 검은 액체 같은 기운이 뚝뚝 흘러내렸다.

마기는 나무뿌리처럼 모래사장 아래로 침식하기 시작했다.

* * *

허공에 나타난 포탈에서 세 사람이 내려섰다.

사나엘과 그란데일, 그리고 셰이드였다.

그란데일은 자신의 망토 자락을 잡고 있는 셰이드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네놈은 동행을 허락한 적 없다.”

“실례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좌표는 제가 알고 있다 보니…….”

셰이드는 멋쩍게 웃으며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심각하군요.”

참담한 풍경에 사나엘은 주먹을 꽉 쥐었다.

고작해야 수십 명이 살 법한 작은 마을은 검은 마기로 뒤덮여 있었다.

주민들은 쓰러져 미동도 않고 있었다.

‘이런 일은… 회귀 전에는 없었는데.’

사나엘이 황망한 시선을 던지고 있을 때, 셰이드가 말했다.

“아직 살아 있습니다.”

셰이드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암속성 마나가 피어올라 사람만 한 늑대 무리가 만들어졌다.

늑대들은 셰이드를 향해 꼬리를 흔들더니, 곧 마을 곳곳으로 흩어졌다.

늑대들은 주둥이로 쓰러진 주민들을 등에 태워, 마기가 닿지 않은 곳으로 이동시켰다.

“이곳도 곧 오염될 겁니다. 마기를 만들어 내는 근원을 찾아야 해요.”

셰이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란데일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가 마기로 꿈틀대는 곳 위로 한 걸음 내딛었을 때.

“……!”

마기가 그에게서 도망가듯 물러서더니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

손쉽게 정화한 것이다.

“가지.”

그란데일의 말에 사나엘과 셰이드가 뒤를 따랐다.

곧 그들은 해안가에 도착했다.

“이것인가. 황자가 말한 마신이.”

그곳에는 크기가 5미터쯤 되는 거대한 마기 덩어리가 있었다.

그 덩어리는 조금씩 해안선을 따라 움직이며 마기를 퍼뜨리고 있었다.

“마기의 폭주를 견디지 못하고 인간의 형태를 잃은 것 같군요.”

셰이드의 설명에 그란데일이 미간을 좁혔다.

“역겹군.”

그란데일이 스카디 스태프를 바로 쥐자, 셰이드가 앞을 막아섰다.

“이 상태로 처치하시면 그릇을 잃은 마기가 더욱 날뛸 겁니다. 좀 더 신중하게 대책을.”

“네놈, 정체가 뭐냐.”

그란데일이 검 끝을 셰이드에게 겨누었다.

“마기에 대해 아는 자는 많지 않을 텐데.”

“…보호자입니다.”

셰이드는 날카로운 검 앞에서도 태연히 웃음을 짓더니, 곁에 선 사나엘의 어깨를 도닥이며 말했다.

“여기, 이 아이의 보호자요.”

“…….”

이에 그란데일의 표정이 와작 구겨졌다.

그는 셰이드를 무시하듯 고개를 홱 돌리더니 곧장 마기 덩어리를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다 귀찮군.”

불길한 기운을 풍겨 대는 덩어리 앞에 선 그는, 스카디 스태프를 강하게 쥐었다.

“마기가 더 퍼져도 상관없다. 그만큼 정화하면 될 일이니.”

단숨에 베어 버릴 기세로 손을 휘두르려던 찰나.

“…전하, 잠시만요!”

사나엘이 그 앞을 가로막고 양팔을 벌렸다.

마치 마기 덩어리를 보호하는 것처럼 그란데일을 막은 것이다.

“거기서 비켜라.”

“못 비켜요.”

완강한 태도에 그란데일이 눈가를 찡그렸다.

“저 괴물을 보호할 생각이냐.”

여차하면 통째로 베어 버리면 그만이다.

그리 생각한 남자가 검 손잡이를 바로 쥐었을 때였다.

“전하의 힘은 무한하지 않잖아요.”

“…….”

“무리하시면 안 돼요.”

소녀의 얼굴이 보였다.

소녀는 걱정 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걱정, 나를……?’

낯선 감각에 몸이 얼어붙었다.

그 순간, 갑작스러운 두통이 그의 머리를 직격했다.

‘거기서 비켜라.’

‘못 비켜요. …이 아이는 안 돼요.’

배리어가 문제를 일으킨 뒤.

저 아이를 만나고 난 후부터 간헐적으로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이 아이는 안 돼요.’

‘그 괴물은 죽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저를 먼저 베고 가세요.’

“…….”

침음하며 두통을 참아 냈을 때였다.

스카디 스태프를 쥔 손 위로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사나엘이 그란데일의 손을 잡은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그란데일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당장에 무슨 짓이냐며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어째선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전하를 위해서라도 최대한 효율적으로 처리해야 해요.”

그란데일이 굳어 있는 사이, 사나엘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심상 결계를 만들어서 정화하는 거예요.”

“…심상 결계?”

그란데일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전하, 도와주세요.’

‘…무엇을.’

또, 알 수 없는 기억이 머릿속에 박혀 들어왔다.

‘유안의, 심상 결계 안에 들어갈 거예요.’

“헌팅 시즌에서 유안을 구했던 것처럼 하면 될 거예요.”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소녀에 그란데일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걸 네가, 어떻게…….”

헌팅 시즌에서 유안 다렌이 마신으로 폭주했던 것은 극소수의 귀족들만이 아는 극비였다.

거기다, 제게 마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오로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 누구에게도 알려 주지 않았고, 알려 주지도 않을 일이었는데…….

“전하, 그때처럼 저 아이도 구해 봐요.”

저 아이는 알고 있었다.

* * *

소년은 쭈그린 채 얼굴을 팔에 묻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야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불안하다.

명령이 없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언제쯤이면.’

언제쯤이면 명령이 주어지는 걸까.

그렇게 더더욱 어둠 속으로 파고들 무렵.

갑자기 팔뚝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어떤 생명체가 주변을 맴돌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두 쌍의 날개를 가지고, 얇은 종이처럼 팔랑거리며 날고 있는 검은 나비였다.

나비가 황금색 가루를 흩뿌리며 빙글빙글 돌자 점차 주변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너였구나.”

그때였다.

빛을 뚫고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비처럼 새까만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때도 네가 가장 먼저 이성을 되찾았지.”

“…….”

“나가자.”

“…명령이, 없는데.”

그 사람이 손을 뻗어 왔지만 소년은 도로 고개를 숙였다.

이때 갑자기 몸이 강제로 위로 들려 세워졌다.

소녀가 소년의 옷깃을 쥐고 우악스럽게 끌어 올린 것이다.

“미안하지만 너 달래 줄 시간이 없어. 셰이드가 보조해 주고 있긴 하지만, 지금도 전하의 마나가 소진되고 있으니까.”

“……?”

“그깟 명령 없이도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을 알려 줄 테니까.”

소녀는 소년을 옆구리에 끼우고서 걸음을 내딛었다.

“나랑 나가자.”

* * *

사나엘이 숨을 몰아쉬었다.

옆구리에는 추욱 늘어져 눈을 감고 있는 어린 소년이 있었다.

마기는 전부 정화되어 사라져, 바다는 원래의 푸른빛을 되찾았다.

“하아…….”

우선은, 일단락되었다.

마신의 폭주 계기는 확실치 않아도, 아마 명령이 끊긴 탓에 동요를 불러일으킨 것이 원인으로 보였다.

“수고하셨어요, 사나엘.”

셰이드가 격려하듯 사나엘의 등을 쓸고는 쓰러진 소년의 몸을 받아 냈다.

숨을 고르던 사나엘은 앞에 그림자가 진 것을 깨닫고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그란데일이 복잡한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돌아가면 제대로 설명하라.”

그의 떨리는 눈동자를 본 사나엘은 생각했다.

그란데일이, 기억을 되찾아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이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그리고.”

돌연 그가 이마를 짚고서 이를 꽉 깨물었다.

“네놈이, 누구인지…….”

그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어떻게든 버텨 보려 했지만, 지독한 두통에 육신이 아래로 허물어졌다.

흐려지는 시야 사이로, 지면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전하……!”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신을 향해 뛰어든 소녀였고.

마지막으로 느껴진 것은, 그 작은 품이었다.

“전하, 전하!”

“…….”

혼절하는 와중에도 그란데일은 어째선지…….

이 느낌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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