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 검은 고양이 (6)
그 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알렉세이는 몇 번의 탈출 시도를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다른 이들에게 잡혀 들어왔던지라, 결국 그녀와 함께가 아니면 방 밖으로 나오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그런데 하녀가 달려와 고양이에게 이상이 있음을 알렸다.
도대체, 방 안에 얌전히 있었을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급히 내 방을 향해 달렸다.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건만, 내 다리가 너무나 느린 것 같았다.
내 방 앞에 서 있던 이들은 내가 달려오는 소리에 즉시 길을 터 주었다. 그리고…….
“알렉세이!”
낑낑거리는 신음을 흘리며 몸부림을 치는 고양이가 그곳에 있었다. 누구도 쉽사리 손대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며 지켜보고 있던, 고양이가.
“아가씨!”
“고양이가-.”
“의사 불러와! 어서!”
“부르러 갔습니다. 곧 올-.”
“그럼 됐어!”
나는 즉시 방 안으로 들어간 다음 문을 걸어 잠갔다.
고양이의 밥그릇은 엎어졌고, 알렉은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몸을 떨었다. 나는 앞뒤 가릴 것 없이 바닥에 흩어진 고양이 밥을 한 움큼 집어 입에 넣었다.
삶은 닭 가슴살과 옥수수를 섞은, 평범한 고양이 밥이었지만-.
‘독!’
누가 이 작은 고양이를 죽이기 위해 밥에 독을 탔다.
나를 노리지 못하니 고양이를 노린 건가? 대체 누가? 왜?
입에 넣은 고양이 밥을 씹어 삼키고 즉시 내공을 운용했다. 고칠 거다, 해독해 낼 것이다!
“알렉! 이렇게 있지 말고 사람 모습으로 변해! 그 편이 나아!”
고양이에겐 치명적인 양일지라도 인간에겐 그 정도는 아닐지도 모른다.
급히 침대의 이불을 걷어 내 고양이에게 덮어 주었다.
내 말을 듣지 못했는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녀석의 입을 벌리고, 내 손가락을 깨물어 낸 피를 흘려 넣었다.
고양이의 작은 입에 피를 흘려 넣었다.
느리게 떨어지는 피가 마음에 들지 않아 더 깊은 상처를 냈다.
알렉세이의 작은 뺨을 두드리며 다급하게 외쳤다. 녀석에게 내 목소리가 들리기를. 그 정도의 정신이 남아 있기를 애타게 빌었다.
“몸을 감쌌어. 문도 잠갔으니까 사람으로 돌아와도 좋아. 어서.”
“끼이이…….”
힘없이 앓는 소리가 애처로웠다.
흐린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 듯하더니, 작은 고양이는 열두 살쯤 된 소년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안색이 창백하고 내가 먹인 피 때문에 입가가 엉망이었다.
고양이로 있을 땐 몸을 파들파들 떨면서 움직이지 못하던 녀석이, 인간으로 변하자마자 거칠게 기침을 해 대며 속에 든 걸 게워 내려고 했다.
안색이 파리해서는, 양팔로 몸을 감싸고 웅크리는 걸 억지로 고개를 들게 했다.
숨이 막히는지 연신 컥컥거리고 있어서, 급한 대로 내공을 실어 혈을 찔렀다. 우선 고통을 경감할 수 있게.
그다음엔…… 그냥 사지는 마비시키는 게 낫겠다. 버둥거리다가 날 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그리고 독이 더 퍼지지 않게 조치도 취할 겸.
푹, 푹!
빠르게 찔러 넣은 손가락은 정확히 혈도를 눌렀고, 나는 남은 고양이 밥을 모조리 입에 털어 넣었다.
이걸 삼켜서 내 것으로 만들고, 약을 뽑아내야 했다.
하녀들이 의사를 불러올 테니 시간마저 촉박하다.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고양이를 볼 수는 없을 테니 수의사를 불러오겠지만…….’
정확히 언제 올지 모른다는 게 문제지.
나는 송곳니로 손목을 깨물어 피를 짜냈다.
피로 해결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무릇 모든 독에 정통한 해독제는 세상에 없는 법이니까.
‘응급 처치부터.’
알렉이 이대로 죽으면 내 방에는 고양이 시체가 아니라 사람 시체가 생기는 거다.
물론 시체를 녹이는 독도 만들 수 있다.
문제는 그 화골산(化骨散)을 뽑아내려면 내 몸도 무지하게 축난다는 거지만.
내가 굳이 고집을 부려 녀석을 사람으로 돌아오게 한 이유는…….
‘이렇게 해야 하니까.’
단기간에 완벽한 해독제를 만드는 건 무리다. 나는 크게 숨을 내뱉고 들이쉰 뒤, 혈도를 찔리는 바람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알렉의 입에 숨을 불어 넣었다.
내 피의 영향을 받아 흐려지고, 조금은 안정된 독을 기로 정제하여 흡수하기 위해.
숨을 불어 넣고, 다시 빨아들이고.
전생의 나였다면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도 독을 흡수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할 수 없는 경지였다.
숨을 불어 넣으면서 중간중간 알렉세이의 맥을 짚었고, 입을 벌려 꾸준히 내 피를 먹였다.
마지막 한 가닥의 독까지 뽑아내야 했기에 녀석의 위에 엎드리다시피 하며 응급 처치를 했다.
죽으면 안 돼.
나는 독을 먹어도 죽지 않지만, 너는 죽을 수도 있잖아.
건강해져서 이제 돌아갈 일만 남았는데……!
***
알렉세이가 독을 먹은 건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다.
세작이 어찌 독에 대한 간단한 면역조차 기르지 못하고 파견된단 말인가.
특히 어린아이일수록 입맛에 맞게 기르기 편하니, 흔한 독 면역 정도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고양이 밥에 지독한 독을 섞은 건지, 그게 아니면 그의 면역이 형편없었던 건지.
알렉세이는 거품을 토할 정도로 괴로워하며 작은 고양이의 몸을 뒤틀었다.
아, 이대로 죽으면 고양이로 죽는 거구나.
인간인 알렉세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구나.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흐려지는 눈앞에 가깝게 지내던 꼬마 녀석이 다가왔다. 녀석이 무어라 외쳤다. 푹신한 것이 몸을 감쌌다.
인간으로 돌아오라는 외침에 그는 남은 힘을 짜내 모습을 바꾸었다.
그런데…….
‘내가 인간으로 모습을 바꾸면 네가 곤란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모습을 바꿀 기력조차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누군가가 배 속을 쥐어짜는 것처럼 아팠고, 무언가가 목구멍을 틀어막은 것처럼 숨 쉬기가 힘들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온몸의 감각이 멀어지고 눈앞이 점점 흐려져서, 알렉세이는 죽음을 예감했다.
이대로 죽을 거라고 여겼는데, 번진 시야에 무언가가 점점 가까워졌다.
숨통이, 조금 트였다.
저 혼자서 숨도 쉴 줄 모르고 가라앉아만 가던 폐.
짧게, 가끔은 길게 불어넣어지는 숨을 붙잡고 싶었지만 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알렉세이는 조금이라도 그를 현실에 붙잡아 두려는 숨결을 거부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거부할 기력도 없다는 게 맞았지만.
***
급한 불은 껐다.
피를 먹이고 숨을 나누고. 급히 빨아들일 수 있는 독은 모조리 내가 흡수했다.
남은 건 내가 이 독을 마저 소화하고 알렉세이의 몸에 남은 독마저 없애는 것.
그 순간 하인들이 밖에서 급히 문을 두드렸다.
똑똑!
“아가씨! 수의사가 도착했습니다! 문을 열어 주세요!”
“……이젠 필요 없어.”
나는 천천히 문 앞으로 다가가 외쳤다.
그렇다. 이제 수의사는 필요 없다.
알렉세이는 인간의 모습으로 정신을 잃은 상태니까.
나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의사 없어도 돼.”
“아가씨?”
“안 와도 돼. 나 잠깐만 더 방에 있을게.”
“아가씨…….”
이렇게 말한다면 다들 고양이가 죽은 줄 알겠지.
알렉세이의 상태는 심각했고, 그 모습을 본 사람도 많았으니까.
누군가 고양이 밥에 독을 탔다는 생각도 못 할 거다. 내가, 문을 열어 주지 않을 테니까!
나는 지금, 아끼던 고양이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방에 틀어박힌 아이다.
문밖에서 수의사로 추정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죄송합니다, 공녀님. 제가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내가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움직이지 않았어. 나도 늦었어.”
“하지만 아가씨-.”
“가!”
다행히 내가 일갈하자 더 이상 다른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바삐 걸음을 옮기는 소리만 들렸을 뿐.
저들이 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할 것이다.
나는 단단히 걸어 잠근 문에 빗장까지 걸었다. 밖에서 못 열게끔 단단히 조치를 취한 뒤, 바닥에 앉아 연공을 시작했다.
본래 운기조식이란 내력을 몸속에서 순환시키는 것.
자연의 기를 흡수할 수도 있지만, 내 경우엔 내가 삼킨 독을 쪼개고 쪼개어, 그것을 내력으로 전환한다.
가부좌를 틀고 정신을 집중했다.
스승님께 전수받은 내공심법인 영천대환귀원신공(永天大環歸元神功)은 그분이 독자적으로 만들어 낸 무공이었다.
사천당가 대대로 내려오는 심법에 당신의 깨달음을 첨가해 새롭게 만들어 낸 것으로, 무슨 이름이 이렇게 기냐며 배우는 내내 투덜거렸던 기억이 있다. 결국 심법의 이름은 외우고 말았지만.
줄여서 영귀공이라고 하면 안 되냐고 했었는데…….
‘아이고, 딴생각에 잠기면 안 되는데.’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운기조식을 하다가 기가 흐트러지기라도 하면 주화입마가 올 것이다. 지금 내 상태론 혼자서 주화입마를 해결할 수 없으니 조심해야 했다.
간만에 흡수한 독은 미약하지만 고스란히 나의 내공이 되었다.
운기조식을 마치고 눈을 떴을 때, 창밖은 이미 어두워진 뒤였다.
다행히 방 안에 누가 들어온 것 같진 않았고, 슬쩍 문을 열어 보니 앞에 다이닝 카트가 있었다.
내가 손댈 수 있는 높이에 뚜껑을 잘 덮어 놓은 식사가 있길래 그것만 쏙 빼서 방으로 들어왔다.
“알렉세이, 깼어?”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아직 정신을 잃은 모양이다.
접시를 바닥에 내려놓고 녀석에게 다가가 맥을 짚어 보았다.
인영혈(경동맥)을 짚으니 맥이 쿵쿵 뛰는 게 손가락으로 느껴졌다. 조금 느린 것 같긴 하지만, 숨도 잘 쉬고 있고 안색도 돌아왔으니 충분하다.
삼매진화를 쓸 수 있으면 초에 불이라도 붙일 텐데. 그게 아쉬웠다.
“아, 혈도 풀어 줘야지.”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풀리겠지만 녀석의 몸을 면밀히 살핀 뒤 아직 덜 풀린 혈도를 손수 풀어 줬다.
알렉세이가 깨면 밥을 잘 먹이고, 여비를 좀 챙겨서 보내 주면 되겠지.
‘여기서는 더 못 기를 테니.’
누가 이 작은 고양이에게 독을 먹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의심 가는 사람은 있었다.
증거가 없다는 게 문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