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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은 무림 적폐 (116)화 (117/121)

118화 : 새외의 흑도를 박살내는 법 (11)

마뇌(魔腦)나 그 밑에서 일하는 각 부서의 총관들이 여럿 있지 않나.

내가 그…… 환 공자와 혼인하여 교내에서 마후 님이라고 불리긴 했는데 말이지. 경영에는 손대지 않아서.

심지어 환 공자 또한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후계자 공부를 하긴 했는데, 아버님이신 선대 교주께서 무림맹과 싸우다가 맹주에게 패해 사망해 버려서, 환 공자가 복수하겠답시고 덤벼들었다가 무참히 깨지는 바람에…….

그 뒤 면벽동에 처박혀서 수련만 하다가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맞았던 방식이 동굴 밖으로 나오고 보니 그른 방법이 되어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바뀐 게 많았단다.

그 탓에 마뇌와 장로들은 환 공자가 중원 나들이를 끝내고 천화교로 돌아오자, 교주로 있으면서 뭘 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바빠서 내게 뭘 가르쳐 줄 수가 없었다.

본래 나 또한 시어머니께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라 책이나 읽으면서 독학했다. 그런데 교주의 아내는 뭐 하는 것도 없더만.

애초에 마후에게는 후계자 생산보다 중요한 일이 없어서 나는 그냥 놀았다. 교에 남은 몇 안 남은 강자들이랑 진짜 종일 놀기만 했다.

놀면서 교에 조공을 바치는 근처 마을 나들이도 가고, 다친 사람들한테 침 몇 대 놔 주고, 처방전도 지어 주고, 교에 들어온 사람들 훈련도 좀 봐 주고.

‘놀기만 해선 안 되었는데……!’

환 공자는 내가 자기를 따라 천화교로 들어와 버린 것을 굉장히 미안해하며, 나만은 예절이나 격식 같은 거 따지지 말고 교내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라고 했다.

교주의 명령이 지엄하신데 감히 그 누가 내 행보를 막을쏘냐.

그래서 놀기만 했는데 그게 지금은 후회가 되었다.

***

고민해 봤자 해결되는 건 없다.

끙끙 앓는다고 해서 갑자기 머릿속으로 지식이 쏟아지진 않을 거 아닌가.

일단 바너드를 찾아가서 일의 진행 속도와 방향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일요일 이른 밤.

나는 피곤하다고 식사를 끝내고 여덟 시부터 방에 틀어박혔다.

하늘이 충분히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검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집에서 나왔다.

경공이 없었다면 이런 미친 짓 못 한다.

집에서 나오자마자 열심히 바너드의 학교로 향했다. 경공을 써서 달리다 보니 주변 풍경이 휙휙 바뀌었다.

늦은 봄이라 밤에도 그리 춥지 않았지만, 워낙 빠르게 달리다 보니 바람이 차게 느껴졌다.

‘방에 없진 않겠지?’

바너드가 하는 일은 위험하다.

다만 공작가 도련님인 그를 쉽게 위협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다. 내가 무공도 가르쳐 놨고.

문제가 있다면 독살인데.

‘뭐, 내가 어렸을 때 먹인 게 많으니 괜찮겠지.’

웬만한 독은 아무렇지도 않게 삼키고도 멀쩡할 거다.

바너드의 학교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어서 나침반과 지도를 확인하면서 가야 했다. 에딜에게 빌려 오길 잘했지.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학교.

어둑한 하늘 탓에 을씨년스러워 보이는, 고풍스러운 건물이 보였다.

가운데 건물에 떡하니 박힌 큰 시계가 신기했다.

‘그러니까, 기숙사는 이쪽이랬지.’

내가 기숙 학교에도 가 보겠다고 지도를 원하니 에딜은 어떻게 구한 건지 학교 지도도 구해다 줬다.

복잡한 지도를 보면서 기숙사를 찾아냈고, 그 많고 많은 방 중에서 바너드가 있는 곳을 찾아내기 위해 기감을 집중했다.

찾는 건 쉬웠다. 이 세상에 단전을 가진 이는 나 아니면 그 녀석뿐이니까.

바너드의 기운을 감지한 즉시, 나는 그쪽으로 달려갔다. 침입은 쉬웠다. 경비 서는 사람도 없었고, 멍청한 놈들이 복도 창문의 잠금장치도 잘 걸어 두지 않았으니.

***

자정이 살짝 넘은 시간이었지만 바너드는 잠들지 않았다.

대놓고 나선 건 좋은데, 어째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허구한 날 협박 편지에, 무슨 수를 쓴 건지 신발 안엔 못이나 유리 조각이 들어 있질 않나, 식사에 뭐가 들어 있지 않나.

학생회장이 되고 맨 처음 하는 연설에서 바너드는 학교 근처에 자리 잡은 환락가 이야기를 꺼냈다. 이 왕국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파릇파릇한 애들이 있는데, 그 옆에 거대한 환락가가 있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면서, 우리 착실한 학생들이 그런 불법적인 곳에 출입하지 못하게 막겠다고 했다.

1학년 어린애들을 따라 입학식에 참석한 부모들은 그 말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고, 같은 편인 선배가 미리 포섭해 놓은 바람잡이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그런데도 이 모양이다.

‘회의하면서 다 같은 걸 먹었는데 나만 멀쩡하기도 했고.’

학생회장인 그가 그런 발언을 했으니, 같은 학생회 사람들도 그에게 동조한다고 여긴 모양이다. 한번은 회의실에서 차를 마시며 일하던 도중 다들 배탈이 나서 쓰러진 일도 있었다.

보관 중이던 찻잎에 누가 설사약을 탄 것이었는데, 바너드 혼자만 멀쩡했다.

하지만 그는 재작년 여름에 일어난 교내 단체 식중독 사건에서도 멀쩡했기에 위장이 튼튼하다는 걸 전교에 알리는 기회가 되었을 뿐이었다.

대놓고 나만 노려라, 라는 의미로 얼굴을 드러낸 건데 아무리 그래도 공작가 후계자를 노리는 건 부담스러웠는지 자잘한 공격만 왔다.

놈들이 간만 보고 있을 때 어서 해치워야 하는데. 아버지와 국왕 전하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진짜로 화약이라도 밀수해서, 그 선배 말대로 사제 폭탄이라도 만들어 거기 투척해야 하나? 그러나 폭발에 말려들 죄 없는 사람들이 문제였다.

선배는 거기서 사느니 차라리 깔끔하게 눈 깜빡하는 사이에 죽는 게 낫다고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살고 싶어서 하루하루 목숨을 연명하는 게 사람 아닌가.

그 누구도 그런 식으로 죽고 싶지 않을 것이다.

주말 동안 바너드는 몰래 그 선배를 포함한 졸업생, 재학생들과 비밀리에 회담을 가졌다.

바너드는 대놓고 얼굴을 드러냈지만, 그들은 아니었기에 안전을 염려해 몰래 만날 수밖에 없었다.

같은 뜻을 가졌지만 힘이 없어서 계획과 조사만 하던 이들은 공작가 후계자라는,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 대표로 나서자 그간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차라리 엘렌도 같이 입학했다면 나았을까.’

그는 왕세자니까.

왕국 내에 왕족의 심기를 건드리는 게 있다면 당연히 치워야 마땅하다.

폭군으로 불릴지언정 그러는 게 맞지 않나.

한숨을 푹 쉬고 그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내일을 위해서라도 좀 자 둘 필요가 있었다.

그때, 낯선 기척을 느끼고 바너드는 걸음을 멈췄다.

그간 협박 편지나 자잘한 장난 같은 위협, 독살 시도는 있었어도 대놓고 암살 시도를 하는 이들은 없었는데……!

누군가가 그의 뒤를 잡고 있었다. 입술을 깨물며 그가 말했다.

“……누구냐.”

“어? 눈치챘어?”

“엥?”

여자 목소리? 게다가 익숙하다?

바너드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고, 그에게 손을 흔드는 여동생을 보고 기겁했다.

“으아아악!!”

네가 왜 여기 있어?!

***

놀랍다.

바너드가 내 기척을 눈치챈 것이다!

물론 알아 달란 의미로 은신도 안 하고 접근한 거긴 한데, 실로 대단했다.

녀석, 수련을 꾸준히 하고 있었구나.

감탄한 것도 잠시뿐, 나를 보고 비명을 지르는 녀석의 입을 틀어막았다.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비명을 지르는 거야?

“안녕, 오빠?”

“네, 네, 네가 어떻게 여기에-.”

“오빠 보러 왔지. 목숨이 위험할까 봐.”

“방금 너 때문에 심장은 위험했다.”

진짜 놀랐는지 가쁜 숨을 내쉬는 바너드를 보며 나는 웃었다.

“오랜만에 보네.”

“어차피 곧 방학이라 집에 갔을 텐데.”

“가기 전에, 오는 도중에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니까.”

“……그럴까?”

“사고사로 위장하기 딱 좋지.”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와 파필로나 부인이 가만히 두고 보진 않을 테니, 바너드가 방학을 하는 날에 맞춰서 가문의 기사들을 보내 줄 게 분명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지.

원래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 않나.

바너드가 환락가 박살을 입에 올렸지만 빠른 속도로 공격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칠 기회만 노리고 있는 지금, 그들은 야금야금 법에 저촉되는 노예 문서나 돈, 사람을 빼돌릴 수도 있다.

뭐, 그래서 에딜한테 미안하지만 그쪽 감시를 부탁했다. 나쁜 놈들의 동전 하나마저 모조리 몰수해 피해자 구제에 쓸 거다.

나는 회장 연설을 제대로 듣지 못했기에 바너드에게 물었다.

“회장 연설은 어떻게 한 거야? 환락가 박살 내겠다고 했어?”

“그렇게 지를까 했는데, 그냥 못 가게 막는다고만 했어. 없애 버리겠다고 했으면 진작에 암살자가 오지 않았을까?”

“현명하네.”

“자잘한 공격이 있긴 한데 괜찮았어.”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환락가 자체가 너무 거대한 데다가, 영토의 주인인 귀족이나 그 밑의 관리들에게도 듬뿍 뇌물을 먹여 놨고, 주기적으로 드나드는 손님들도 많다는 것.

비단 기숙 학교 남학생들뿐만이 아니라 졸업생이나 귀족도 있겠지.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냥 그 조직 수뇌부를 다 죽이면 안 돼?”

“뭐?”

“나한테 시간이 많다면 잠입이라도 할 텐데 그러질 못하니까.”

“가지 마! 거기가 얼마나 끔찍한 곳인데.”

아직 어린 여동생이 갈 만한 곳이 아니라며 바너드는 나를 급히 말렸다.

내가 전생에 뭘 보고 다녔는지 몰라서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굳이 진실을 말해 주지 않고, 나는 말을 돌렸다.

“아무튼, 국왕 전하도 도와주신대?”

“아버지가 설득 중. 귀족 영식들이 그런 데 드나든다는 사실을 밝히는 건 귀족 얼굴에 먹칠하는 일이니까. 그래서 대놓고 정체를 떠들진 않고 불법 도박장과 약물 밀매만 수면 위로 알릴 거야.”

“하지만 그런 데 가는 놈들이 잘못인 거지! 아가씨들은 그런 놈인 줄 모르고 결혼할 거 아냐.”

“다들 어렴풋이는 알 걸……. 사생아가 그리 숨길 것도 아닌 세상이니.”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작도 락버드 백작의 사생아라고 했지?

하여간 하반신 관리 못 하는 놈들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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