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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패체결-3화 (3/680)

3화 재능을 드러내다

무를 중시하는 봉명제국에서 싸움이 일어나는 건 다반사였다.

제도 밖에는 연무대가 세워져 있는데 그곳은 개인적인 원한을 해결하는 장소였다.

쌍방의 동의 하에 생사 계약이 성사된 뒤 일단 연무대에 오르기만 하면 설령 상대를 죽인다고 해도 가해자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항상 대결이 열리는 이곳에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은 항상 많았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앞선 결투가 끝난 뒤 두 소년이 연무대에 오르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거 용진이 아니야? 쟨 왜 또 온 거야?"

"그러게. 어제 하마터면 맞아 죽을 뻔했으면서 왜 또 온 거야?"

"흥, 죽고 싶어 환장을 한 게지. 이곳에서 그냥 맞아 죽으려는 걸 거야."

용천소는 진원후로서 군신으로 불리고 있지만, 진심으로 그를 군신이라 존경하는 사람은 다년간 전쟁에 허덕이는 궁핍한 빈민들 뿐이었다.

그들과는 달리 태평성세인 제도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고위층들은 용천소를 곱게 보지 않았다. 용천소가 원래 평민 출신이었다는 것도 거부감으로 작용했다.

때문에 제도에서는 용진을 존중해주는 사람이 얼마 없었다.

"용진, 저 등신 같은 놈은 왜 또 온 거야? 시간 아깝게 누가 네 놈이 하는 결투를 본다고. 당장 꺼지지 못해?"

"그러게 말이야. 자살을 하고 싶은 거라면 다른 데로 알아봐. 아무도 네 놈이 싸우는 걸 보고 싶어 하지 않으니 시간 낭비하지 말고 꺼져!"

연무대 아래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들은 용진을 극도로 싫어하고 있었다.

저 멀리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 한편에 면사(面紗)를 하고 서 있는 두 소녀가 보였다.

그들은 연무대 위의 용진을 주시해보고 있었다.

"언니, 저자가 바로 언니의 약혼자야? 영 비실비실해 보이는데? 저 봐, 파동조차 없잖아."

한 소녀가 실망한 얼굴로 말했다.

"흥, 다 아버님 때문이지 뭐. 아버님께서 그 혼사만 약조하시지 않았더라도 저자가 내 약혼자가 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야. 짜증나!"

또 다른 소녀가 짜증이 잔뜩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연무대 위의 용진은 아마 지금 두 소녀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를 것이다. 그는 구경꾼들의 비난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단지 덤덤한 눈으로 이호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호가 들썩이는 관중들을 가리키며 냉소했다.

"봤지? 넌 아무에게 환영 받지 못하는 등신이야. 그냥 머리 박고 이대로 뒤지는 게 어때?"

용진은 이호를 덤덤히 바라볼 뿐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았다.

땡!

결투를 시작하라는 종소리가 울려왔다. 이 종소리는 생사를 가르는 소리기도 했다.

시끌시끌 떠들어대던 사람들은 종소리가 울리자 모두 숨을 죽였다.

생사가 걸린 결투이다 보니 누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언니의 약혼자는 수련이 전혀 안 된 사람인데 걱정되지도 않아요? 상대는 취기가 삼중천이잖아."

여인이 물었다.

"흥, 걱정할 게 뭐 있어? 죽으면 죽으라지. 나랑 뭔 상관인데?"

언니라고 불리는 소녀가 새침하게 답했다.

하지만 무심하게 뱉은 말과는 달리 손바닥에 무척 괴상한 무기가 나타났다.

"히히, 무기까지 준비해놓고는 아닌 척하기는. 걱정이 되긴 하나 보지? 그래도 좀 생기긴 했네. 언니가 싫으면 그냥 나 주면 안 돼?"

여인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내가 준다고 당장 저자가 네 부군이라도 되는 줄 알아? 저자가 정 마음에 들면 내가 혼사를 물린 뒤 네 마음대로 해."

언니로 불린 여인이 화를 내며 말했다.

"히히."

연무대 위의 용진은 무척이나 덤덤해 보였다. 이를 바득바득 갈던 어제의 용진과 비하면 아예 딴 사람 같았다.

"왜? 죽음이 가까워 오니까 오히려 평온해져? 걱정 마. 네가 건 내기 때문이라도 널 때려죽이진 않을 테니까."

이호가 으쓱하며 말했다.

"말이 많군. 빨리 덤비지? 이따가 볼일도 있는데."

용진이 약간 짜증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주위가 조용한 탓에 용진의 말이 연무대 아래에 서 있는 구경꾼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연무대 아래가 일순 비웃음 소리로 떠들썩해졌다.

"이호, 대체 뭘 기다리는 거야? 당장 저 자식을 때려죽여 버려!"

이호를 알아본 누군가가 큰 소리로 소리쳤다.

이호의 얼굴에 냉소가 서렸다. 그는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취기 삼중천에 속하는 실력을 전부 폭발해버렸다. 그의 주먹이 용진을 향해 날아갔다.

이호가 공격을 날리자마자 연무대 아래에서 환호가 터졌다.

이호의 자세는 아주 아름다웠고 멋있었다.

"역시 임풍옥수권(臨風玉樹拳)이야."

누군가 이호가 사용한 수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멀리에서 지켜보던 두 소년은 풉 하고 비웃었다.

용진의 입가에도 비웃음이 서렸다.

이렇게 허접한 수로 날 대적하겠다고?

주먹이 바람과 함께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데도 용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하, 저 등신. 이젠 피할 줄도 모르는구나."

연무대 아래에서 누군가 용진을 조롱했다.

하지만 조롱을 하자마자 날아오던 이호의 주먹이 용진의 바로 코앞에 멈춰 섰다.

용진을 조롱하던 구경꾼들이 일순 입을 다물었다.

퍽!

용진이 이호의 두 다리 사이의 급소를 차버렸다.

우쭐대던 이호의 낯빛이 순간 퍼렇게 질렸다. 용진의 발에 급소를 차인 이호는 엄청난 고통에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그는 꿈쩍조차 할 수 없었다.

이호는 움직일 수 없게 된 반면 용진은 움직임이 자유로웠다. 용진은 이호가 멈춘 틈을 타고 그의 머리채를 잡아 끌어내려 자신의 단단한 허벅지로 찍어버렸다.

퍽퍽퍽!

용진의 동작은 매우 깔끔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그의 동작에 소리까지 더해져 보는 이들에게 쾌감을 선사했다.

뼈가 부드득 부러지는 소리에 사람들은 소름이 돋았다. 연속 세 번이나 공격을 받은 이호는 코뼈가 내려앉아 변형되었을 뿐만 아니라 온 얼굴이 피범벅이 되고 말았다.

그는 결국 기절하고 말았다.

일시에 주변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취기경 삼중천인 강자가 기본도 되지 않은 폐인에게 패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게다가 용진은 가장 깔끔하고 간단한 방법으로 승리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에 모두들 어안이 벙벙해졌다.

몰래 지켜보던 있던 두 소녀조차도 얼이 빠지고 말았다. 물론 그녀들도 이호 정도는 쉽게 죽일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는 있었다.

하나 용진이 사용한 방법은 달랐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기를 조금도 사용하지 않았다. 순전히 일반인의 격투 방법으로 이호를 패배시켰다.

"용진 승!"

연무대 아래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연무대를 주관하고 있는 노인이었다.

용진의 가슴이 급격하게 오르내렸다. 그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살의를 억눌렀다.

지금은 살인을 할 좋은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 번 폭발해 버린 살의를 거둬들이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너무 오래 억눌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외부 사람들의 눈엔 그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씩씩거리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용진이 연무대 아래로 내려가 노인에게 다가갔다. 그는 자신이 내기를 건 장도를 챙긴 동시에 오천 금폐를 얻었다.

시합 전 내기를 건 물건을 심판에게 바치는 것이 규칙이었다. 이는 공정성을 위한 규정인데 중도에 선수들이 말을 바꾸는 경우를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검을 돌려받은 용진은 곧바로 석봉에게 돌려주었다. 오천 금폐를 품에 넣은 용진은 기분이 무척 들떴다.

비록 오천 금폐가 많은 돈은 아니지만 급한 불은 끌 수 있는 돈이었다.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용진은 석봉과 함께 천천히 자리를 떴다.

두 소녀도 용진이 자리를 뜨자 함께 사라졌다.

이호가 용진에게 패했다는 소식이 마치 발이라도 달린 듯 금세 전 제도에 쫙 퍼졌다.

처음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무예조차 익힐 수 없는 폐인이 어찌 하루아침에 고수가 되었단 말인가?

이호가 용진에게 패하는 것을 많이 사람이 직접 본 데다가 이호가 집에 실려 갔다는 소식까지 전해지자 사람들은 혼란스러워졌다.

석봉과 함께 떠난 용진은 사실 얻은 상금을 석봉과 나누려 했었다. 하지만 석봉이 극구 사양하는 데다가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며 먼저 가는 바람에 나주지 못했다.

그는 심지어 용진에게 어찌 하루아침에 강해진 것인지 묻지도 않았다.

용진은 석봉의 베푼 호의를 마음에 깊이 새겨 두고는 곧장 백초당(百草堂)으로 향했다.

백초당에 들어선 용진은 약재 목록 한 장을 얻어냈다.

목록에는 각종 약재들의 이름과 가격이 똑똑히 적혀있었다. 목록에서 풍부단(風府丹)을 정련하는데 필요한 약재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다행히 풍부단을 정련하는데 필요한 약재는 모두 구하기 어려운 약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위에 적힌 가격을 보자 용진은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갖고 있는 금폐로는 재료를 세 개밖에 살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돈을 모두 재료를 사는데 다 써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연단(煉丹)에 필요한 화로도 사야 하고 기타 예비 약재도 사야 했다. 모든 것을 다 갖추려면 그의 수중에 있는 금폐로는 어림도 없었다.

하지만 꼭 사야 하는 것이었다. 용진은 이를 악물고 마음을 독하게 먹기로 결심했다. 그는 천이백 금폐를 들여 품질이 가장 낮은 동으로 만든 화로를 샀다.

풍부단을 정련하는데 필요한 약재를 하나 더 사고 또 회기산(回氣散)을 대량으로 정제하는데 필요한 약재까지 사고 나니 오백 금폐밖에 남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용진은 곧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는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는 보아에게 아무도 방에 들이지 말라 명했다.

어머님도 분명 오늘 그가 연무대에서 있었던 일을 알고 계실 것이다. 그는 어머님이 걱정하실 것이 알고 보아더러 일부러 어머님을 막게 한 것이다.

어차피 어머님도 그가 무사하다는 것을 알고 계실 터이니 너무 걱정하시지는 않을 것이다.

용진은 지금 분초를 다투고 있었다. 그는 반드시 최대한 빨리 실력을 제고시켜야 했다. 지금의 용씨 가문은 집안 사정만 나빠진 것이 아니었다. 용진은 왠지 모를 위기감이 느껴졌다.

"후."

용진의 체내에서 영기가 돌자 손바닥에서 불덩이가 피어올랐다. 이것은 단사가 응집한 단화(丹火)였다. 하지만 불덩이를 본 용진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화력이 약해도 너무 약한 거 아니야?'

단화는 단사 체내의 영기가 독특한 운행 방식을 거쳐 응집된 영기의 불이었다.

하지만 용진이 응집한 단화는 온도가 매우 낮을 낮았는데 일반 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전의 지탱이 없는 용진의 단화는 일각 조차 버터지 못했다. 이는 단약을 정련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용진이 씁쓸하게 웃었다. 예비 약재를 사두기 잘한 것 같았다.

용진은 단약 정련을 멈추고 회기산의 약재를 화로에 넣고 하나하나 제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사용한 불은 단화가 아닌 장작불이었다.

모든 약재의 제련이 끝나자 회기액(回氣液) 한 단지가 얻어졌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용진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드디어 정식으로 풍부단을 정련할 때가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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