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공주의 비밀
용진이 별안간 손을 잡자 초요는 몸이 살짝 떨렸다.
예쁜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
아름다운 눈에는 당혹스러운 기색이 조금 어렸다. 다만 손을 쳐내지 않고 몰래 용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용진의 낯빛은 조금 엄숙했다.
용진은 부끄러워하는 초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치 갓 피어난 꽃에 이슬이 맺힌 것과 같아 심장이 쿵쾅거렸다. 순간 자신이 뭘 하려고 했었는지 잊어버렸다.
"저기."
용진이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자 초요의 고운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
다만 아름다운 눈에는 기쁨이 일렁였다. 낮게 그를 부르고는 고개를 숙이고 더 이상 용진을 보지 못했다. 다만 손에서 전해지는 온도에 초요의 마음은 쿵쿵 뛰었다.
용진은 숨을 깊게 들이쉬어서야 기분을 가라앉혔다. 초요에게는 감히 다가가지 못할 기품이 있으면서도 부드럽고 온화한 정이 느껴졌다. 초요에게는 모순된 매력이 있었다.
예전 그물로 그를 잡던 도도한 초요와 지금의 부끄러워하는 온화한 초요.
그 사람 다 초요의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이 용진으로 하여금 마음이 설레게 했다.
"무례를 범했군."
쿵쾅거리는 마음을 추스르며 용진은 자신의 영혼지력을 초요의 손바닥 경락을 따라 초요의 단전으로 서서히 운행시켰다.
사실 용진의 지금 실력으로 이렇게 가까운 거리이니 단번에 영혼지력으로 초요를 살필 수 있었다.
다만 그렇게 한다면 초요는 마치 알몸으로 용진 앞에 서 있는 것과 같았다. 용진은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한 후 또 그물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까 두려웠다.
용진의 영혼지력은 서서히 초요의 단전으로 향했다. 영혼지력이 진입한 후 단전 내의 상황을 살핀 용진은 낯빛이 매우 어두워졌다.
"왜 그러니?"
초요는 용진의 낯빛이 크게 변하고 두 눈에 살의가 번뜩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용진이 분노한 이유는 초요의 단전 내에 아홉 가지 기이한 영력이 그녀의 단전을 꽉 조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아홉 가지 기이한 영력은 마치 비옥한 토지에 뿌리내린 아홉 가지 새싹처럼 탐욕스럽게 초요의 영력을 흡수하고 있었다.
그러니 초요의 영력이 이렇듯 혼잡하고도 약한 것이었다.
용진처럼 누군가가 그녀의 단전에 손을 쓴 것이다.
가장 용진을 분노하게 한 건 초요의 단전 내에 영기 한 덩어리인 영근이었다. 이 덩어리는 농도가 매우 진했다.
이것만 보더라도 초요는 보기 드문 천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나 보기 드문 천재의 단전이 이렇게 황폐된 것이다.
용진은 단지 이것 때문에 살기가 솟아오른 게 아니었다.
용진은 그 아홉 가지 괴이한 영력이 초요의 은밀한 그곳과 이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 말은 장차 초요가 시집을 가거나 합방을 하게 된다면 초요 체내에서 오랫동안 자양 되었던 영력을 상대방이 그대로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치가 떨릴 정도로 악랄한 계략이었다. 한 제국의 절세미인인 공주가 누군가의 바둑알이 된 것이다.
눈앞에 초요는 이 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용진은 이 미녀에 대해 동병상련을 느끼게 되었다.
"용진, 도대체 무슨 일이야?"
용진이 복잡한 표정을 보고 초요의 예쁜 얼굴에는 의아함이 어렸다.
"초요, 내가 널 믿어도 돼?"
용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정중하게 말했다.
용진이 별안간 엄숙하게 묻자 초요도 뭘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러나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예쁜 눈으로 용진을 빤히 보면서 말했다.
"넌 지금 내가 가장 믿는 사람이다."
초요의 이 말을 들은 용진은 마음이 따뜻해져 이렇게 말했다.
"너의 단전에 누군가가 손을 썼다."
다만 용진을 의아하게 만든 건 초요가 놀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에 애달픔과 무기력함이 어렸다.
먼 곳에 있는 산봉우리를 보며 초요는 손으로 바람에 의해 흐트러진 긴 머리를 만졌다. 그러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이 비밀을 말하면 너와 너의 가족들도 연루될 수 있어. 두렵지 않아?"
용진은 멍해졌다.
"너는 알고 있었던 거야?"
"먼저 나의 말에 대답할 수 있어?"
초요는 용진의 눈을 보며 물었다.
용진은 씁쓸하게 웃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가 서로를 믿기로 했으니 목숨을 잃어도 그럴 가치가 있지."
"믿음? 믿음이라……."
초요는 이 두 글자를 중얼거리더니 별안간 용진의 품에 와락 안겨 통곡하기 시작했다. 진주 같은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마치 모든 억울함을 단번에 쏟아내려는 듯하였다.
비록 미인이 품에 안겨있지만, 용진은 조금도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도리어 비장한 기분이 들었다.
용진은 초요보다도 비참한 상태였다. 영근, 영골, 영혈을 모두 가져갔다. 만일 단제의 영혼을 융합하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까지도 까맣게 모르고 있을 것이다.
두 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초요의 가는 허리를 안고 있었고 코는 그녀의 머리 향기를 맡고 있었다. 용진은 초요를 꽉 그러안았다. 마치 이 세상에 두 사람만 남은 듯이 말이다.
얼마나 울었을까.
초요가 드디어 눈물을 그쳤다. 용진의 가슴팍에 천은 이미 눈물에 젖어있었다.
초요는 별안간 고운 얼굴을 붉히면서 재빨리 용진의 품에서 벗어났다. 몸을 돌렸지만 아름다운 눈에는 지금 모두 기쁨과 방황으로 가득 찼다.
"에헴."
용진은 난처함에 헛기침을 하고는 물었다.
"초요, 언제부터 너의 단전에 누군가가 손을 썼다는 걸 알게 되었어?"
용진이 이렇게 묻자 초요는 표정을 천천히 갈무리했다.
그녀는 용진을 보며 말했다.
"어릴 적에 부황이 폐관하기 전, 나더러 보기 드문 천재라고 했었다. 장차 제국을 떠날 가능성도 있다고 말이야. 부황께서는 폐관하기 전 나에게 잘 수행하라고 격려해주었고, 나는 처음에 확실히 매우 노력을 했었단다. 다만 내가 열 살이 되던 해에 모후께서 별안간 이상한 병에 걸리게 되었지. 그때로부터 일어나지 못하셨고 운기 대사가 오기 전에 모친께서는 이미 별세하셨단다."
마지막 말을 뱉을 때 초요의 아름다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마치 아주 오랜 추억 속에 빠진 것 같았다.
"그때 나와 동생은 어렸었다. 다만 후에 점차 자라면서 궁내의 암투에 대해서도 점차 알게 되었단다. 난 곧바로 모후의 죽음이 절대 우연이 아니라는 걸 발견했었다. 그러나 모든 증거는 일찍부터 사라졌고 나에게는 아무런 방법도 없었지. 또한, 오 년 전부터 나의 경지는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전혀 진보가 없고 영력은 점점 희미해졌단다. 그때부터 나는 깨닫게 되었지. 그 악마가 모후를 죽인 후 드디어 그 마수를 우리에게 뻗었다는 걸. 그날부터 나와 동생은 제멋대로 방자하게 굴기 시작했단다. 그렇게 하니 마치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간 것 같았었다."
초요의 말을 들은 용진은 속으로 탄식했다. 보아하니 궁내의 생활은 그의 상상보다 더 잔혹했다.
"넌 이런 방식으로 당신의 동생을 보호했던 거야?"
용진이 탄식하며 물었다.
초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는 지금 가족이 동생 하나뿐이야. 난 동생에게 그 어떤 사고도 발생하길 원하지 않아. 지금의 동생은 다른 사람의 미움을 사도 최소한 다른 사람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응당 조금 더 안전해질 것이지. 비록 그들이 내 단전에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아마 내가 위협이 될까 나의 경지를 제한하고 있다는 걸 난 알고 있어. 그리하여 내가 수행에 관심이 없다면 연약한 여인인 나에게 관심을 돌리는 이가 없을 거야. 우리 남매의 목숨도 부지될 수 있을 것이고."
용진은 탄식하며 말했다.
"아쉽게도 넌 적의 잔인함에 대해 잘 모르는군. 그들은 정말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야."
재삼 고민하다가 용진은 결국 초요 단전 내의 상황을 초요에게 알려주었다.
초요는 그의 말을 듣고 두 눈에 분노와 당황으로 물들었다. 예쁜 얼굴이 창백해졌고 몸을 휘청거렸다.
용진은 큰 손으로 초요를 부축하며 말했다.
"다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나에게 시간을 조금만 주면 너를 도와 체내의 제재를 해결할 수 있어"
"정말?"
초요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날 믿어."
용진이 정중하게 말했다.
왜서인지 용진의 얼굴을 보자 초요의 마음은 믿음으로 가득 찼다.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용진이 매우 듬직하다고 느꼈다.
서로를 속이는 궁내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초요가 자신의 말을 믿어 의심치 않자 용진도 속으로 감동했다. 자신의 어깨가 조금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초요 협객, 당신의 절묘한 전기를 나에게 좀 더 보여줄 수 없소? 내가 좀 배울 수 있게 말이오."
용진은 분위기가 딱딱한 걸 보고 웃으며 말했다.
"짜증 나네, 이건 날 비웃는 거잖아."
초요는 별안간 얼굴을 붉히더니 토라져서 말했다.
"절대 아니야. 초요, 너의 기초는 매우 탄탄하단다. 다만 단전의 영력을 사용할 수 없어 이러는 것이지. 다만 걱정할 필요는 없어.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너를 도와 해결해줄 거야."
용진이 위로했다.
초요는 그제야 표정을 갈무리했다. 용진이 진심으로 말하자 인급 최상품의 전기, 파풍권(破風拳)을 보여주었다.
이번에 용진은 매우 자세하게 관찰했다. 보고 난 후 속으로 매우 경악했다. 초요의 영력은 아홉 가지 기이한 영력들이 흡수하고 있어 십 분의 일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박약한 영력으로 초요가 전기를 사용했지만, 영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크게 들지 않았다.
용진은 초요가 영력에 대한 통제가 매우 강대하다는 걸 발견했다. 일반 응혈경의 고수보다도 훨씬 뛰어났다.
초요에 대해 용진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말을 들은 초요의 예쁜 얼굴은 또 빨갛게 물들었다. 삼월의 복숭아처럼 눈부셨다.
용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 아홉 가지 기이한 영력은 사실 아홉 가지 영력의 씨앗이다. 초요의 단전에서 여태까지 흡수하였으니 이미 매우 강대해졌다.
만일 그들을 억지로 부순다면 너무 아까울 것이다. 그 방대한 영력으로 초요는 응혈경에 들어설 것이고 경지가 계속 오를 수 있었다.
용진은 파풍권을 배운 후 별안간 약액 한 병을 꺼냈다.
"이건 역용액(易容液)이다. 이걸 얼굴에 바르면 용모를 바꿀 수 있고 열두 시진 동안 유지할 수 있어 매우 편리하지."
용진은 이렇게 말한 후 몇 방울을 손바닥에 떨구고 얼굴에 균일하게 발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용진의 외모가 달라졌다. 눈썹이 진해지고 피부의 색상도 변해 다른 사람과 같았다.
초요는 이를 보고 기쁨을 금치 못했다.
"이걸 사용하면 앞으로 너를 찾아가기 쉽겠어."
말을 마친 초요는 그 약액을 얼굴에 발랐다. 그 약액은 얼굴 표면에 얇은 막을 형성하는 것 같아 임의로 그 모양을 바꿀 수 있었다. 일단 손을 멈추면 눈 깜짝할 사이에 모양이 바뀌었다. 매우 신기했다.
초요는 거울 속 매우 평범해진 자신의 얼굴을 보고 기뻐서 크게 소리 질렀다.
그녀는 용진의 팔짱을 끼더니 웃으며 말했다.
"용진, 우리 저잣거리를 돌아보자. 나는 여태껏 거리를 다녀본 적이 없어."
초요는 제국의 공주로서 비록 "오만"하고 "방자"하지만 그래도 너무 도를 벗어날 수 없었다. 빈곤한 백성처럼 자유자재로 다닐 수 없었다.
오늘 용진이 그녀에게 기회를 제공하니 초요는 당연히 놓칠 수 없었다.
초요는 스스럼없이 용진의 팔짱을 끼고 기쁜 기색을 보였다.
다만 승낙한 후 용진은 조금 후회하게 되었다. 그는 초요의 욕구를 낮잡아 본 게 분명했다.
하마터면 그와 함께 제도의 모든 거리를 한 번씩 둘러볼 뻔하였다. 그녀는 무엇을 보아도 신기해하면서 용진의 팔을 잡고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러던 용진이 별안간 걸음을 멈추었다. 초요를 데리고 곁에 있는 노점 뒤에 숨었다.
용진은 노점에 물건을 구경하는 척하면서 곁눈질로 먼 곳에 있는 몇 사람을 살펴보았다. 용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하장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