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그런 게 아닙니다
웅!
단로에서 격렬한 진동이 울리더니 무시무시한 원기 파동이 전해졌다. 단로 안에서 난폭한 마수가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봉인!"
용진이 높은 소리로 외쳤다. 그는 단로 뚜껑을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그러나 단약의 정화는 육체의 힘만으로 봉인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휴."
손바닥으로 단로 뚜껑을 막자 강한 영혼지력이 밀물처럼 밀려 나오더니 단로의 주변을 겹겹이 감싸고 빈틈없이 막았다.
격렬한 떨림이 반 시진이나 지속된 후에야 단로는 조금씩 조용해지다가 시간이 지나니 완전히 고요해졌다.
단로 뚜껑을 천천히 열자 어두운 방이 갑자기 환해졌다.
야명주(夜明珠) 같은 단약이 부드러운 빛을 뿌리고 있었다.
"드디어 성공이다!"
용진은 한숨을 내쉬고 이마 위의 땀을 훔쳤다.
강렬한 피곤함이 몰려오더니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이는 그가 세 번째로 정련한 단약이었다. 첫 번째는 초요를 위해 정련한 용성단이었다.
다른 것과 비교한다면 용성단을 정련하는 게 가장 쉬웠다.
두 번째는 서혼부심단(噬魂腐心丹)이었다.
부심초를 재료로 정련한 독단으로 호신용에 쓰였다.
야명주 같은 마지막 단약은 정련하기 가장 어려웠는데 이름하여 양혼단(養魂丹)이었다. 연단 재료는 화운각에서 얻은 야마의 머리뼈였다.
야마의 모양새는 박쥐와 비슷했는데 성체의 몸길이는 삼 척에 달했고 피를 좋아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영혼 공격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건 아주 무서운 공격 수단이었다. 사람의 영혼을 직접적으로 공격해 미처 방어할 수 없게 만들었다.
용진은 이급 마수의 머리뼈 안에 결정핵을 주요 재료로 양혼단을 정련했다.
양혼단은 아주 특별한 단약이었다. 현대 세계에서는 거의 종적을 감추었지만.
양혼단은 영혼의 힘을 키워주었다. 특히 영혼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수행 초기에 이런 양혼단을 한 알 먹으면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시작점에 설 수 있었다.
이것은 부작용이 없는 소수의 단약이었다. 용진에게도 이 단약은 아주 귀중한 것이었다.
연약사에게도 강한 영혼지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야명주 같은 양혼단을 바라보자 용진은 몽기의 완벽한 얼굴이 떠올랐다.
몽기는 어수사로 영혼을 수련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이걸 먹는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몽기는 지금 풍혼각에 있었다. 용진은 풍혼각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몽기에 대한 소식도 알아낼 수 없는지라 그녀에게 줄 수 없었다.
한숨을 내쉰 그는 양혼단을 넣었다.
반년 안에 몽기를 만나지 못하면 그가 복용할 수밖에 없었다.
양혼단은 다른 단약과 달리, 반년이 지나면 단약의 약효가 유실되기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단약을 잘 챙긴 용진은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단약을 제조하는 데 너무 많은 힘을 썼기 때문이다. 피곤이 몰려오면서 그는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다음날 점심이었다.
너무나도 피곤했던 탓에 하루가 지난 줄도 몰랐다.
일어나서 세수를 마치고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린 뒤, 점심 식사를 한 용진은 초풍을 만나러 밖으로 나갔다.
그는 초풍과 한 찻집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용진이 도착했을 때, 초풍은 미리 도착하여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풍의 옆에는 한 중년 남자가 있었다.
중년 남자는 용진이 온 것을 보고 입을 열려고 하다가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기절했다.
일장을 날려 그 시위를 기절시킨 뒤, 용진은 얼굴을 변화시키는 역용액을 얼굴에 발랐다.
잠시 뒤.
용진은 그 시위의 옷으로 갈아입고 초풍과 함께 황궁으로 걸어갔다.
모든 것이 그의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초풍은 한동안 용진의 지시대로 용진을 그의 시위처럼 옆에 거느리고 다녔다.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용진이 초풍의 옆에 있어도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돌아다니던 둘은 순조롭게 황궁의 안뜰로 들어갔다.
용진은 처음 황궁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황궁에 들어가서 꼬불꼬불한 길을 보자 용진은 눈앞이 어지러웠다. 그의 영혼지력이 강하지 않았다면 진작 길을 잃었을 것이다.
"용 형, 누님은 그녀가 좋아하는 옥요궁(玉瑤宮)에 있소. 밖에 시위가 있지만 내가 들어갈 때는 날 막지 않소. 하지만 용 형을 데리고 들어갈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소."
초풍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괜찮아요, 운에 맡기죠. 억지로 들어가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용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용진은 초요에게 단약을 주어 그녀의 몸속 진기를 없애려고 찾아온 것이었다.
용성단은 한 알밖에 없었고 단약을 연화하는 데도 수단이 필요했다.
만약 용진이 그녀의 옆에 있다면 그녀가 연화할 때 사고가 생겨도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용진은 등회에서부터 이 아름다운 소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는 초요에게 자신심을 불어넣으러 왔다.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될지라도 자신이 그녀와 함께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었다.
그는 그녀가 힘든 나날을 보내는 게 싫어 마음속의 고통을 덜어주러 온 것이었다.
드디어 앞에 궁전이 나타났다.
그 궁전이 바로 초요 공주의 옥요궁이었는데 입구에는 금의(錦衣) 시위 여덟 명이 지키고 있었다.
옥요궁의 밖에는 수십 명의 병사가 오가면서 지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용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이곳은 황궁이자 초요의 집이었다.
‘자신의 집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감시를 받고 있다니, 감옥에 있는 것과 뭐가 다르다는 거야?’
용진은 생각할수록 황실에 혐오감이 생겼다.
"태후마마께서 외부인은 절대 옥요궁에 들어갈 수 없다고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초풍이 용진을 데리고 입구에 다가가자마자 시위에게 가로막혔다.
"무엄하다. 누님을 보러 왔는데 왜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이냐?"
초풍이 노한 얼굴로 호통쳤다.
"죄송합니다, 칠황자전하, 전하께서는 들어가실 수 있지만, 이 시위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시위는 굴하지 않고 말했다.
"무엄하다. 이자는 내 최측근 시위이고 내가 가장 믿는 사람인데 어찌 감히 막는 것이냐? 내가 말 한마디면 네 목숨을 거둘 수 있다."
초풍이 위엄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침착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태후마마의 명이시니 누구도 바꿀 수 없습니다."
초풍이 시위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용진은 신식을 펼쳤다.
그는 창가에 기대앉은 한 사람을 보고 마음속으로 안쓰러운 기분이 들었다.
초요는 여전히 아름다웠으나 살이 빠져 초췌해 보였다.
감금당하는 동안 그녀는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았다.
용진은 그들을 막고 있는 시위를 때려죽이고 싶었으나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이곳은 황궁이니 그가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냐? 왜 이리 소란스러운 것이냐?"
갑자기 언짢은 목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사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사황자 초하였다.
마침 이곳을 지나다가 떠들썩한 것을 보고 온 것이었다.
사황자가 나타난 것을 보고 용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초하가 그를 놀란 표정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용진은 마음속으로 흠칫 놀랐다. 그는 자신이 뭘 실수하여 들켰는지 알 수 없었지만, 초하가 자신을 알아보았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어찌 된 일이냐?"
초하는 용진을 힐끗 보더니 언짢은 얼굴로 시위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사황자 전하께 아룁니다. 칠황자 전하께서 이 시위를 데리고 옥요궁에 들어가고 싶어 하시는데……."
"무엄하다. 감히 내 동생을 의심하는 것이냐? 내 동생이 누님에게 나쁜 짓을 하기라도 한다는 것이냐?"
사황자가 엄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아닙니다."
시위는 깜짝 놀라더니 다급히 무릎을 꿇었다.
시위는 사황자를 칠황자보다 더 무서워했다.
"들여보내거라."
사황자가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시위는 머뭇거렸다.
"태후께서 죄를 물으신다면 내가 나설 것이다. 설마 나조차도 믿지 못하는 것이냐?"
사황자가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아닙니다."
시위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들어가."
사황자는 초풍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하지만 시선은 줄곧 용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용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사황자가 왜 자신을 돕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용진과 칠황자가 옥요궁에 들어간 것을 보고 사황자는 미소를 짓더니 잠깐 뭔가를 생각하다가 사라졌다.
옥요궁에 들어가서 앞문을 가로지른 뒤, 뜰로 들어가자 창문에 기대서 못 안의 물고기를 바라보던 초요가 고개를 돌리고 둘을 바라보았다.
용진을 본 그녀는 잠깐 멍해 있다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용진을 알아본 것이다. 용진은 천천히 초요의 앞으로 다가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미안, 내가 너무 늦었지?"
"엉엉."
초요는 더는 참지 못하고 용진의 품에 와락 안겨서 통곡했다. 그동안의 모든 설움을 쏟아내기라도 할 것처럼.
그녀는 줄곧 감금되어 있었다. 태후가 그녀를 하장풍에게 시집 보내기로 결정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미칠 것만 같았다.
초풍이 몰래 용진의 약속을 말해 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진작 이 희망 없는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그동안 초요는 매일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바라보며 애타게 용진을 기다렸다.
일 년 같은 하루를 보내면서 그녀가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그녀밖에 몰랐다.
용진은 초요의 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가 마음껏 울게 내버려 두었다.
그와 동시에 용진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꼭 초요를 잘 보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초요를 보호할 거야!’
그는 초요가 자신보다 더 불쌍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다. 용진에게는 자신을 아껴주는 부모님이 있었지만 초요는 인정미가 전혀 없는 황궁에서 살고 있었다.
‘믿음직하거나 의지할 데도 없이 여인인 그녀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용진은 초풍이 떠나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것을 보았다.
"흠."
용진은 가볍게 기침을 했다. 그제야 초요는 정신을 차리고 다급히 용진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녀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초풍을 바라보지도 못했다.
"내가 나가 있는 게 어떻겠소?"
초풍이 떠보듯 물었다.
"그럴 필요는 없어요. 초요와 비밀스러운 일을 해야 하니 망 좀 봐줘요."
초풍의 멍한 표정을 본 용진은 그가 오해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급히 말했다.
"그런 게 아니에요."
하지만 해명하니 오히려 더욱 이상하게 들렸다.
초요의 얼굴은 잘 익은 사과처럼 상기되었다.
용진은 해명하는 것을 포기하고 초요의 손을 잡고서 위로 올라갔다. 입이 떡 벌어진 초풍만 제자리에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