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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패체결-110화 (110/680)

110화 깨어나라

운기 대사가 말을 마치자마자 온몸에 불길이 치솟았다. 그의 양손 사이에는 수많은 사슬 같은 불꽃이 생기더니 조롱 모양이 되었다. 그 조롱 모양의 불길은 백의 남자에게 씌워졌다.

"열염조롱(烈焰囚籠)!"

속도가 더없이 빨랐다. 백의 남자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열염조롱에 갇혔다.

동시에 수많은 사슬이 그를 꽁꽁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으악!"

백의 남자는 운기 대사의 본원지염으로 만들어진 불꽃 사슬에 묶였다. 그것은 위창과 왕로양 같은 단부도 견디지 못하고 순식간에 죽임을 당한 불길이었다.

운기 대사는 격전을 벌이면서도 계속 용진이 있는 쪽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다 용진이 위기에 처하자 폭발했던 것이다.

단부의 화염지력은 길게 유지할 수 있었다.

운기 대사는 이미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짧은 시간 안에 승부를 가리기는 힘들었다.

용진이 곧 죽게 되자 그는 전력을 다해 본원지염을 소환했다.

그것은 그가 몇 년 사이에 새로 터득한 능력이었다.

불길을 몸에 융합시킨 뒤, 몸이 충분히 강해지면 그는 다음 단계인 단왕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지금 본원지염을 몸 밖으로 내보낸 그는 모든 것을 불태울 수 있을 정도로 힘이 강해졌지만, 생명을 소모하고 있었다.

백의 남자는 불길에 휩싸여 미친 듯이 발버둥 쳤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처절한 비명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놀랍게도 위창, 왕로양 같은 단부를 순식간에 죽인 본원지염은 백의 남자를 바로 죽이지 못했다.

"휴……."

운기 대사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늙어서 쓸데없게 되었군. 용진, 정말 미안하구나."

운기 대사의 말과 함께 그의 몸은 발끝부터 천천히 사라졌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이미 바람에 흩어지고 말았다.

"운기 대사님……."

용진은 눈물을 흘렸다. 운기 대사를 알게 된 뒤로 항상 그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았다.

그는 존경받을 만한 어른이었다. 그런 운기 대사가 자신을 위해 죽었으니 용진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가득 차올랐다.

"으악…!"

운기 대사가 사라지자 백의 남자를 가두고 있던 불길 사슬도 사라졌다. 백의 남자는 분노에 차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지금의 백의 남자는 '백의'라고 지칭할 수 없었다. 온몸이 타버린 그는 숯처럼 새카맸다. 하지만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기운은 여전히 무시무시했다.

"나쁜 놈, 나한테 준 고통을 열 배로 돌려주겠다!"

백의 남자는 용진을 죽이는 것을 포기하고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먼 곳에 있던 용천소가 강력한 힘에 이끌려 이쪽으로 날아왔다.

팍!

백의 남자는 시커먼 손으로 용천소의 목을 꽉 움켜쥐고 음산한 눈빛으로 용진에게 말했다.

"녀석, 난 네가 먼저 죽게 하지 않을 거다. 네가 날 화나게 한 대가로 네 주변의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죽는 것을 지켜보게 할 거다!"

"뭐 하는 거야? 빨리 아버지를 풀어줘!"

용진은 울부짖으며 뛰어오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말을 듣지 않아서 움직일 수 없었다.

"하하, 고통스럽지? 좋아, 아주 좋아. 이제 시작이야. 천천히 하자고."

백의 남자는 미친 듯이 웃었다.

"진아, 남자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한 점이 없다면 생사 또한 큰일 아니란다.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용천소는 목이 잡혀 반항할 수 없었지만, 그의 얼굴에서 두려운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버지가 목이 잡힌 것을 보자 용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무한한 살의가 가슴속에서 피어올랐다.

용진은 그의 마음속에서 살의가 고개를 쳐들 때, 발밑의 풍부성이 미친 듯이 운행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용진이 화를 낼수록 풍부성은 빠르게 돌아갔다.

용진의 노기가 한계에 이르렀을 때, 풍부성도 갑자기 멈추었다.

"죽는 게 무섭지 않아? 그래, 그럼 너부터 죽여주지."

백의 남자는 냉소를 하더니 오른손에 힘을 주어 용천소의 목을 으스러뜨리려고 했다.

"죽어!"

고함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하늘이 노한 듯한 외침에 사람들은 모두 귀가 먹먹하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용진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백의 남자는 머리가 울려 어지러웠다.

머릿속의 뇌가 으스러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퍼억!

백의 남자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뒤로 날아가 땅에 떨어졌다.

그제야 그는 정신을 차리고 놀란 눈으로 앞쪽을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햇살로 가득한 하늘에 시커먼 먹구름이 몰리더니 번개가 번쩍이기 시작했다.

세계가 멸망할 것 같은 그 모습은 아주 무시무시했다.

동시에 그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옅은 빛에 감싸인 그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흘러나와 천지를 뒤흔들었다.

"이게 뭐지?"

백의 남자는 깜짝 놀랐다. 그는 그 남자가 용진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지금의 용진은 마왕이 각성하거나 신이 강림한 것처럼 온몸으로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

탁!

용진 발밑의 풍부성이 파열되며 껍데기가 우수수 떨어졌다. 그러자 진흙에 묻혔던 진주가 드러나듯이 빛을 뿜었다.

껍데기가 떨어지자 안에서 성진(星辰)이 드러났다.

산천, 강, 바다가 보이는 진정한 성진이었다.

성진이 나타나자 고갈되었던 용진의 영기는 이 성진에 의해 채워졌다.

그는 일권으로 백의 남자를 날려 보내고 용천소를 구했다.

그는 아버지를 자신의 전쟁터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보냈다.

이는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그는 곧 무시무시한 일을 겪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용진은 천천히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구성의 제일성(星) 풍부 전신(戰身) 나타나라!"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동공에 성진이 나타났다.

이 성진이 나타나자 산사태가 일어날 것처럼 천지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수십 리 밖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넘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광경에 놀라서 도망치기에 바빴다.

그와 동시에 용진의 몸에서는 한없이 난폭한 기운이 구름층을 뚫고 하늘로 올라갔다. 하늘이 뒤흔들리자 주변에 있던 돌 부스러기들이 땅에서 떠오르며 서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파바바박!

돌 부스러기들은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알 수 없는 압력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다. 용천소 일행은 놀란 눈으로 용진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 아직도 그들이 아는 용진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지금의 용진은 강림한 마왕 같기도 하고 길을 걷는 천신 같기도 했다.

그의 시선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경외심이 들었다.

슈욱!

용진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갑자기 백의 남자의 앞에 나타나 주먹을 휘둘렀다.

백의 남자는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도 계속해서 용진을 주목하고 있었기에 용진이 사라지는 것을 보자 생각하지도 않고 주먹을 내찔렀다.

탁!

백의 남자와 용진이 부딪히며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팔 전체가 부서진 백의 남자는 처참하게 비명을 질렀다.

일권으로 백의 남자의 팔뚝을 부서뜨린 용진은 잠시도 쉬지 않고 왼쪽 발로 땅을 구르더니 오른쪽 무릎을 높이 쳐들었다.

퍽!

용진은 무릎으로 백의 남자의 코뼈를 가격했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백의 남자는 뒤로 날아갔다.

백의 남자가 날아가자마자 용진은 그림자로 변해 하늘로 솟구치더니 오른손을 쳐들고 일권을 날렸다.

퍼억!

백의 남자의 몸은 용진의 주먹에 맞아 땅에 털썩 떨어졌다. 단단하던 바닥은 수면처럼 파문을 일으켰다.

바닥에는 사방이 백 장 되는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다. 구덩이의 중심에서 새카맣게 타버린 사람이 누워 있었다.

백의 남자는 온몸의 뼈가 으스러졌는지 기괴한 모양으로 누워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여전히 죽지 않고 미친 듯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개미는 발악하지 말라며? 그럼 넌 왜 발악하고 있는 건데? 개미는 고통스럽게 죽어야 한다고? 그래, 좋아. 그대로 해주지."

용진은 구덩이 앞으로 다가가더니 밑에 있는 백의 남자를 바라보며 못을 잔뜩 꺼냈다.

"고통을 느껴봐!"

용진은 외치면서 손을 털었다. 그러자 수십 개의 못이 백의 남자에게 날아갔다.

푸푸푸푹!

못이 살에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숨을 몰아쉬던 백의 남자의 두 눈은 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커다래졌다.

"으악……."

처참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수십 리 밖에 있는 사람들도 고통에 찬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

"너야말로 개미야. 내 친구는 이 식골정이 몸에 가득 박혀도 소리 한 번 안 냈는데. 넌 폐물이야."

용진은 백의 남자가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차가운 그의 눈에는 복수를 해서 생긴 쾌감도 들어 있었다.

그는 무력감을 느끼기도, 다른 사람이 오만하게 그를 깔보는 것도, 다른 사람의 미끼가 되는 것도 싫어했다. 그는 누구도 자신에게 이런 수모를 줄 수 없도록 강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용진의 눈에 들어 있던 성진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용진은 갑자기 몸이 아주 피곤한 느낌이 들며 뒤로 벌렁 넘어졌다.

하지만 그는 차가운 바닥이 아닌, 따뜻한 품에 넘어졌다. 담담한 향기가 전해지자 그는 더없는 따스함을 느꼈다.

"용진."

초요는 지친 용진을 바라보며 행복의 눈물을 흘렸다. 온갖 고초를 겪은 뒤에 드디어 좋은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네 품에 안겨 있으니 너무 좋아. 여기서 푹 자고 싶어."

용진은 눈을 감은 채,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초요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었다. 용진이 다시 눈을 떠보자 아버지, 어머니, 석봉 일행이 이상한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초요의 얼굴은 더욱 빨개졌다.

용진도 민망하게 웃고는 일어나려고 힘을 썼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낯간지러운 말을 했으니. 그는 아직 낯가죽이 그 정도로 두껍지 않았다.

구덩이에 있는 백의 남자는 이미 비명을 멈춘 상태였다.

역근경 강자인 그는 식골정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던 것이다.

새카맣게 탄 백의 남자가 고슴도치처럼 몸에 못을 잔뜩 박고 죽은 것을 보자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괴물처럼 강하던 사람이 드디어 죽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때, 먼 곳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장군으로 보이는 남자가 뛰어와 용천소의 앞에 서더니 허리를 굽히며 예를 올렸다.

"진원후 나리께 알립니다. 저희가 대하제국의 간첩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칠황자를 인질로 협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나리께서 결정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그 장군은 아주 똑똑했다. 용진 쪽의 승리가 확정 난 것을 보고 그는 재빨리 상황을 파악한 뒤, 이쪽에 붙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초요는 안색이 변했다. 용진이 말했다.

"가보자."

병사들이 길을 비켜 주었다. 용진은 낯익은 두 얼굴을 보자 저도 모르게 냉소를 지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주요양과 하백지였다. 그들은 손에 장검을 든 채, 초풍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하백지는 용진이 다가온 것을 보고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용진, 이자가 무사하길 바란다면 얼른 우리가 떠날 수 있게 풀어줘. 안 그러면……."

"죽여."

용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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