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지화를 발견하다
알은 모두 네 개였다.
높이가 용진의 어깨에 이를 정도였고 위에는 약간의 피가 묻어 있었다. 이는 용진이 본 것 중에서 가장 큰 알이었다.
알 위의 피를 본 용진은 손을 뻗어 만져 보았다. 옅은 비린내를 풍기는 피는 아직 마르지 않아 끈적했다.
용진은 깜짝 놀랐다. 화석수는 금방 알을 낳아 가장 허약할 때여서 힘이 평소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상태였던 것이다.
이 점을 생각한 용진은 식은땀이 돋았다.
그는 자신이 삼급 마수를 얕잡아 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수가 삼급에 이르면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들은 자신만의 전승 기능과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용진은 생각할수록 겁이 났다. 화석수가 가장 약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그는 오늘 큰 화를 입었을 것이다.
"아우…!"
용진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설이는 이미 커다란 알을 물어뜯고 있었다.
하지만 알이 너무 커서 설이가 아무리 입을 벌려도 깨지지 않았다.
"고기를 못 먹었으니 이 알로 배를 채워."
용진은 미소를 지으며 주먹으로 알을 내리쳤다. 커다란 알은 흔들리더니 껍데기가 갈라졌다.
알은 껍데기가 아주 단단했지만, 금이 생기자 금방 구멍이 나며 액체가 줄줄 새어 나왔다.
그것을 본 설이는 다급히 입을 벌린 채, 알에 붙어 미친 듯이 빨아먹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안의 액체는 말끔히 사라지고 말았다.
설이가 알 안의 액체를 빨아먹자 기운이 점점 더 강해지더니 경지가 오를 조짐을 보였다.
설이가 알 한 개를 다 먹어치우자 용진은 두 번째 알을 깨서 설이에게 건네주었다.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이 알은 삼급 마수의 알이다. 부화하면 화석수의 새끼가 나올 수 있었다. 아주 귀한 존재인 것이다.
화석수는 수화를 만들어낼 수 있어 수많은 단부들이 열광하는 보물이었다.
하지만 이미 내단을 가진 용진은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설이가 빨리 진급하기를 바랐다. 설이를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아깝지 않았다.
설이가 벌컥벌컥 마시는 것을 보고 용진은 나머지 알 두 개도 깨서 주었다. 설이는 용진을 실망시키지 않고 알 네 개를 말끔히 먹어치웠다.
알 네 개를 먹어치운 뒤, 설이는 바닥에 엎드려서 눈을 감았다.
주변의 기운이 미친 듯이 움직이며 불안정하게 변했다.
"진급하려는 건가?"
용진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 원래 삼급 마수인 설이는 순수한 혈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영계에서 온 강자의 도움을 받아서 수행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게다가 화석수 알 네 개의 기운을 모두 흡수했으니 설이의 몸속에서는 무시무시한 기운이 들끓고 있었다. 알 네 개 안에는 강한 기운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설이는 본능적으로 수행 상태에 들어갔다. 녀석이 난폭한 기운을 미친 듯이 흡수하자 온몸의 기운이 강해지며 공간마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용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이가 삼급 마수로 진급하게 되면 전성기의 화석수보다 더 강해질 것이다.
'그러면 난 삼급 마수를 타고 다니겠지. 그것도 삼급 마수 중에서 가장 강한 적염설랑을 말이야. 생각만 해도 흥분되는걸.'
용진은 마수가 진급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설이를 보호하는 것뿐이었다. 이곳은 화석수의 영역인지라 찾아올 마수가 없긴 했다.
그래서 용진은 여유를 가지고 동굴 안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곳은 거대한 동굴이었는데 안에서 보면 지붕이 동그랗게 보였다.
거리를 가늠해 보니 이 지붕이 바로 밖에서 봤을 때 눈에 잘 띄지 않던 언덕이었다. 언덕은 쇠가마를 뒤집어 놓은 것처럼 생겼다.
주변은 텅 비었지만, 앞쪽에는 커다란 용암지가 있었다. 용암지에 가까이 다가가자 안에서 용암이 무서운 기세로 펄펄 끓고 있었다.
"사막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보잘것없는 사막 중심에 이런 무시무시한 용암지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생각을 해보니 알 것 같기도 했다. 밖에는 사막전갈이 출몰하고 이곳에는 화석수가 지키고 있으니 살아남아서 이 정보를 외부에 알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사막은 수행자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곳이라 사막에 들어오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이 용암지가 지금까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막에 화석수가 있다는 것이 소문났다면 아마도 이곳은 발칵 뒤집어졌을 것이다.
너도나도 화석수를 얻기 위해서 뛰어들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용진이 내단을 얻을 기회는 절대 없었을 것이 뻔했다.
용암지의 직경은 십여 장에 달했는데 안에서는 무언가가 펄펄 끓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가 전해지자 용진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는 단염호체를 시전했지만 여전히 숨쉬기 어려웠다. 동시에 그는 화석수가 바로 이곳의 화염 기운으로 수행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행히도 화석수는 무리 지어 다니는 동물이 아니었다. 게다가 자웅동체라서 다른 화석수가 공격할까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존재였다.
웅!
공간이 떨리며 용암이 들끓더니 수위가 점점 올라갔다. 용진은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용암의 수위는 세 척이나 위로 올라오며 투명한 파란색 불길이 서서히 퍼졌다. 일 장 남짓한 불길이 나타나자 천지가 뒤흔들리며 무시무시한 고온이 덮쳐왔다.
용진은 자신이 불에 타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풍부성이 전력으로 운행되며 그도 뒤로 물러났다.
순간, 용진은 자신의 옷이 모두 방금 전의 불길에 타서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의 화염지력도 말끔히 사라졌다.
그 불길은 나타나서 사라지기까지 숨을 들이쉴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용진은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지화(地火)!
그것은 지화였다.
지화는 대지가 키운 불길로 위력으로 말하자면 바다를 끓일 수 있을 정도였다. 용진은 단제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 이 무시무시한 불길을 알아본 것이었다.
용진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건 지화잖아. 수화는 지화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게다가 지화는 탄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난폭하지 않았다. 지금이야말로 지화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용진은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단제의 기억에 의하면 가장 약한 지화도 현재 그의 실력으로는 손에 넣을 수 없는 존재였다.
용진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도방 같은 강자도 이 지화를 잘못 건드리면 순식간에 타버릴 것이다.
"이젠 어떡하지?"
용진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절세 보물이 눈앞에 있는데 가져가지 못하다니.
이것은 무인에게 가장 잔혹한 엄벌이었다.
또다시 잠잠해진 용암지를 바라보며 용진은 숨을 들이쉬었다. 지금 지화를 얻으려고 하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용진은 설이의 옆으로 돌아왔다. 그의 표정은 어딘가 어두웠다. 이곳에 지화가 탄생한 것은 엄청난 소식이었다.
'이 소식이 새어 나가게 해서는 안 돼. 내가 발견했으니 이 지화는 내 거야!'
용진은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이 장 정도 되는 동굴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는 동굴 입구의 모양을 그대로 종이에 그렸다.
반복적으로 크기를 확인한 뒤, 용진은 또 근처에서 거대한 암석을 찾았다. 민둥 언덕 근처에 많은 암석이 흩어져 있었다.
그 암석은 동굴 입구와 색깔 및 무늬가 비슷했다.
용진은 크기가 비슷한 바위를 찾아 조각하기 시작했다. 그가 들고 있는 장검은 아주 날카로워 암석을 두부 자르듯 자를 수는 없었지만 조심하기만 한다면 검을 부러뜨리지 않고 암석을 곧잘 자를 수 있었다. 그는 천천히 도안대로 암석을 조각했다.
돌문을 만들 생각이었다.
동굴 입구에 꼭 들어맞는 돌문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떠날 때 동굴 입구를 완벽하게 막아 다른 사람이 발견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암석은 아주 단단했다. 용진은 장검이 부러질까 걱정되어 힘을 크게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전체 과정이 아주 느리게 진행되었다.
사흘째 되는 날.
용진은 드디어 돌문의 대체적인 윤곽을 조각해 냈다. 풍부 전신을 소환한 그는 무게가 십여만 근이 되는 돌문을 동굴 앞으로 옮겼다. 동굴 입구에 대 본 그는 또다시 마무리 작업을 시작했다.
다섯째 되는 날이었다.
용진은 이마 위의 땀을 훔쳤다. 드디어 동굴 입구에 꼭 들어맞는 돌문을 조각해 낸 것이다.
쿠웅!
동굴 안에서 폭발음이 들리며 공간이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더없이 강한 기운이 전해졌다. 용진은 흠칫 놀랐다.
"설이가 진급했나 보군."
용진은 크게 기뻐하며 동굴로 들어가 보았다. 순간,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설이는 몸이 일 장 남짓하게 자랐으며 온몸이 새하얀 털로 뒤덮여 있었다. 미간 중심에 있는 빨간색 털이 하얀 털과 어우러져 더욱 눈에 띄었다.
"아우!"
설이는 고개를 쳐들고 길게 울부짖었다. 엄청나게 큰 소리가 동굴 안을 가득 채웠다. 용진은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귀가 먹먹하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녀석, 다 컸다고 이젠 주인도 못 알아보는 거야?"
용진은 먹먹해진 귀를 만지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우!"
설이는 뛰어오며 전처럼 애교를 부렸다. 하지만 지금은 몸집이 매우 커진 상태라 머리만 해도 용진의 키와 비슷했다. 설이가 머리를 비비자 용진은 그 힘에 밀려서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만해. 그만해. 장난친 거야. 지금 떠나야 해."
용진은 설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설이와 동굴을 나선 용진은 돌문을 닫고 모래로 틈새를 꽉 채웠다. 그리고 단염을 운행시켜 완벽하게 밀봉한 다음 암석 부스러기로 바깥층을 한 층 더 발랐다. 밖에서 보면 여기에 문이 있다는 것을 절대 알아볼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을 마친 용진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손뼉을 치고 지도를 꺼냈다. 방향을 자세히 대조한 뒤, 지도에 표기해 두었다. 나중에 이곳을 찾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였다.
넓은 사막에서 이런 자그마한 언덕은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용진도 불빛에 이끌려 온 것이 아니라면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용진은 설이의 등에 올라탔다. 설이는 소리를 지른 뒤, 발을 굴렀다.
그리고 번개처럼 앞으로 뛰어갔다.
보름 뒤. 용진은 곧 현천별원의 세력범위에 들어서게 되었다.
설이가 진급하니 그 속도가 훨씬 더 빨라져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간을 계산해 보니 정해진 날짜와 여유가 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잠시 여유를 가지고 속도를 늦추었다. 이제 몇만 리 길밖에 남지 않았으니 급히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용진은 설이를 탄 채로 유유히 걸어갔다.
밀림을 벗어나는 순간, 누군가 용진의 길을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