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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패체결-277화 (277/680)

277화 위대한 발명

용진에게서 건네받은 종이를 확인한 손 장로는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호통을 쳤다.

"별원에는 이렇게 많은 종류의 약재가 없다. 넌 나를 등쳐먹을 생각이구나. 차라리 그냥 강도질이나 하지 그래?"

용진이 손 장로에게 건네준 종이에는 몇백여 종의 진귀한 약재 이름이 적혀있었다. 어떤 것들은 손 장로마저도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뒤에 적어둔 양이 너무 무시무시하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진귀한 약재들을 살 때 사용하는 무게의 단위는 돈이었다.

그러나 용진은 근으로 사라는 것이다. 몇백여 종의 약재를 백 근씩 구매하라고 하니 진귀한 약재를 몇만 근이나 요구하는 것이었다.

"허튼소리를 하는군. 내가 강도질을 할 수 있으면 왜 당신과 같은 백치를 찾아왔겠어?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이 요구를 받아들일 텐가?"

용진은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종이에 적은 것은 옥형단의 일부 단방과 그에게 필요한 약재들이었다.

단방에 없는 약재들은 모두 통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라 일반 단약을 정련할 때에도 보조적으로 필요한 약재들이었다.

용진은 이번에 마음을 모질게 먹고 백 근씩 요구했다.

'내 목숨과 물건을 노렸었잖아, 네 소원을 이뤄주마.'

"그래도 백 근씩은 필요 없을 거다. 약재가 배추인 줄 아느냐?"

손 장로는 호통을 쳤다.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야? 내가 이 약재를 땔감으로 사용해도 당신이랑 무슨 관련이 있지? 원하지 않으면 관둬."

용진은 냉소하며 말했다.

"너… 안 돼, 너무 많다. 나의 공훈점으로 이렇게 많은 약재를 살 수 없으니 좀 깎아줘. 기껏해야 절반 정도 살 수 있다."

손 장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용진은 콧방귀를 뀐 후 손 장로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장 밖으로 향했다.

"어이, 무엇 하러 가는 것이냐?"

손 장로는 급히 물었다.

"도방 장로와 의논하러 가려고. 이 공법을 별원에 바치면 내가 원하는 물건을 얻을 수 있냐고 말이야."

용진은 이렇게 말하며 밖으로 걸어갔다.

"어이, 잠깐만. 잘 의논해 보자고."

손 장로는 다급하게 말했다.

"의논할 것도 없어."

용진은 딱 잘라서 말했다.

손 장로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했다.

"그래, 승낙하마."

용진은 그제야 냉소하면서 수중의 흑고석을 손 장로에게 던져주었다. 손 장로는 흑 고석을 받은 뒤 속으로 기뻐했다.

"꿈 깨, 이 공법은 상하편으로 나뉘었어. 지금 준 상편은 그저 예약금이고 스스로 진위를 구별해봐. 하편을 원한다면 모든 약재를 구해서 나에게 줘. 당연히 당신의 똑똑한 머리로 공법의 하편을 깨우쳐도 돼. 그런데 그게 소용이 있을지는 네가 더 잘 알 거야."

용진은 이렇게 말한 후 자리를 떴다.

손 장로만 홀로 남아 분노한 얼굴로 수중의 흑고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용진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손 장로의 표정도 분노에서 기쁨으로 바뀌었다.

"젠장, 이토록 수월하게 얻을 줄 알았다면 왜 위험을 무릅쓰면서 용진을 해쳤겠어?"

그가 골머리를 썩였을 때는 얻지 못하더니 지금 힘도 들이지 않고 얻게 된 것이다. 용진이 원하는 약재의 종류와 양은 매우 많았지만 그래도 손 장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였다.

손 장로는 수중의 흑고석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크기가 거위 알과 비슷하고 위에 그림 한 폭이 조각되어 있었다. 완전한 그림이 아닌 어느 그림의 일부분이었다.

그래도 손 장로는 인체 경락 그림의 일부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위에 영력을 운행하는 노선을 표시해둔 것이었다.

반나절 동안 연구한 손 장로의 얼굴에는 점점 놀라움과 기쁨의 빛이 어렸다.

왜냐하면, 그림에서 영력을 운행하는 방법이 매우 오묘하고도 복잡하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공법의 일부분이었지만 충분히 놀라울 정도였다.

"아주 대단한 공법이구나. 횡재했어."

손 장로는 하하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이렇게 강한 공법을 응혈경 애송이가 얻게 되었다니, 정말 보물을 낭비하는 일이야. 완전한 공법을 얻게 된다면 난 필히 통맥경에 들어서게 될 거야. 때가 되면 용진을 죽이고 현천별원을 떠나면 되지. 천하가 이렇게 넓고, 선천지경의 강자와 맞닥뜨리는 것만 아니라면 누가 감히 이 몸을 막아낼 수 있겠어?"

손 장로는 자신이 통맥경을 돌파하여 천하를 굽어보면서 세상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손 장로는 한참 뒤에서야 정신을 차리고 계속 그 흑고석을 바라보았다.

흑고석의 정면에는 그림 한 폭이 있었고 뒷면에는 고대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손 장로는 한참 동안 살펴본 뒤에서야 "역(逆)"자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문자의 글씨체는 매우 오래된 것이고, 표준적인 고대 글씨체가 아니었다.

"보아하니 이 공법은 매우 오래전의 것이구나. 저 자식은 정말 운이 좋아."

손 장로는 탄식하며 말했다.

한참 동안 살펴본 손 장로의 흑고석 정면의 그림이 매우 오묘하고도 신비하여 그림의 일부분으로 완전한 공법을 추리해낼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아니면 용진은 쉽게 이 흑고석을 자신에게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흑고석을 받은 손 장로는 한시름을 놓았다.

그는 용진이 진심으로 물건을 바꾸려는 것이라고 여겼다.

왜 굳이 자신을 찾아왔는지 조금 의아했으나, 용진이 진귀한 약재들을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이 요구하자 의심이 꽤 가셔졌다.

왜냐하면 용진이 아니라, 별원에서 몇십 년 동안 지낸 장로라 하여도 그렇게 많은 약재를 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손 장로는 오랫동안 별원에서 지냈으며 현천각이라는 좋은 자리에서 몇십 년 동안 있었으니 호주머니가 매우 두둑했다.

그렇다 하여도 용진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몇십 년 동안 모은 공훈점이 최소 절반은 감소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별원에 없는 약재들이 많아 분원에 가서 구매해야 했다.

그날 손 장로는 곧바로 용진이 준 종이를 들고 분원에 찾아가 약재를 대량으로 구매했다.

용진은 손 장로가 타협하는 일에 대해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의 계획대로 되고 있었다.

용진이 급작스럽게 손 장로를 찾아간 것이니 당연히 의심을 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용진은 터무니없는 조건을 내걸었고 공법 일부를 계약금으로 지불했다. 용진은 그 늙다리가 계약금의 유혹을 못 이겨 꼭 걸려들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손 장로 동굴에서 돌아온 용진은 어젯밤 거나하게 취했던 제자들이 모두 깨어나 폐관하러 간 것을 발견했다.

이번 정사대전은 그들에게 있어 매우 소중했다.

용진이 돌아오자 그들도 시름 놓고 폐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이번 정사대전이 그들에게 준 깨달음들을 소화하기 시작했다.

방에 돌아온 용진은 당완아와 청옥 모두 입정 상태에 처해있는 것을 보고 그녀들을 방해하지 않았다.

용진이 밖에 나가 아만을 찾았지만 아만도 없었고, 설이마저도 종적을 감추었다.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아만과 설이가 창명과 함께 사냥하러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용진은 그제야 아만이 며칠 동안 쫄쫄 굶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일반 마수는 아만의 허기를 달래기 어려웠다.

별원에 돌아오자 아만은 당연히 사부를 찾아가서 배불리 먹으려고 했다.

또한, 설이도 마수의 고기를 먹으면서 수행해야 하기에 아만은 설이와 함께 떠난 것이다.

모든 사람이 폐관하자 용진은 뭘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손 장로의 소식을 기다려야 했다.

손 장로는 자신보다 더 조급한 마음으로 약재 구매를 서두를 것이다.

잠시 생각에 잠긴 용진은 곽연의 동굴에 찾아갔다. 곽연의 동굴은 모든 동굴의 맨 끝에 있었다. 용진이 동굴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동굴 안에서는 댕그랑댕그랑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동굴 안에 들어가 보니, 곽연의 동굴은 쓰레기장처럼 곳곳마다 쇠 부스러기가 뒤덮여있었고 망가진 부품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용진이 들어왔지만 곽연은 의연히 고개를 숙인 채 큰 주기대(鑄器台: 무기를 제련하는 탁자) 위에서 무엇인가를 두드리고 있었다.

주기대는 매우 컸는데 각종 보조 물품들이 놓여있었으며 먼 곳에서 보면 철로 만들어진 괴물과 같았다.

그러니 당완아가 최근 곽연의 소비가 점점 더 많아진다고 투덜거렸던 것이다. 곽연은 끊임없이 당완아에게서 점수를 가져갔었다.

이 자식은 대장장이를 겸임하고 있었다.

곽연이 골똘히 철판을 두드리는 걸 보고 용진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자식도 진지할 때가 있구나.'

가까이에 간 용진은 그제야 곽연 수중의 집게에 길이가 구촌 되는 쇠못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조금 전 곁에 있는 화로에서 꺼낸 쇠못이었는데 곽연이 오른손의 망치로 내리치자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망치로 끊임없이 내리치자 쇠못의 끝부분은 점차 냉각되면서 거뭇거뭇해졌다. 용진은 쇠못의 끝부분에 다닥다닥한 무늬가 생긴 걸 발견했다.

용진은 비록 무기 제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강철을 단련할 때마다 무늬 한 줄기가 생긴다는 건 알고 있었다.

봉명제국의 대부분의 무기들은 모두 한 번에 정형된 것이다.

왜냐하면, 봉명제국의 무기들은 일반적인 철기들이라 이차 단련을 진행할 수 없었다. 단단하지 않아 이차 단련을 하면 모두 부서지고 말 것이다.

일반적인 무기를 일련강(一煉鋼: 한 번 단련한 무기)이라 불렀다. 단련한 무늬가 한 줄기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무늬도 희미해지지만 전문가들은 한눈에 무기가 몇 번이나 단련되었는지 알아차릴 수 있다.

좋은 무기들은 모두 열 번 이상의 단련을 거치고 십련강이라고 불렸다.

무기는 단련하는 횟수가 많을수록 안의 불순물이 적어지고 품질도 점점 좋아졌다.

상등 강철은 백 번 단련할 수 있다고 하는데, 백련강철이라고도 불렸다.

비록 강철은 가장 일반적인 금속이지만 백 번의 단련을 거치면 강도가 매우 무시무시해져 삼급 마수의 껍질도 뚫을 수 있었다.

곽연 수중의 강철에는 몇십 줄의 무늬가 있었다. 이는 곽연이 쇠못을 몇십 번이나 단련했다는 걸 설명했다.

치익.

곽연의 시선은 수중의 쇠못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쇠못의 색상이 어느 정도 변하자 빠른 속도로 쇠못을 곁에 있는 물속에 집어넣었다.

물통 안의 물은 곧바로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잠시 후 곽연은 수중의 쇠못을 들고 자세히 끝부분을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곽연은 쇠못 끝부분을 관찰할 때 앞에서 배시시 웃고 있는 용진을 발견하게 되었다.

"대장… 어이쿠."

급작스레 용진을 발견한 곽연은 깜짝 놀라면서 수중의 쇠못을 떨어뜨렸다. 쇠못은 그의 발등에 떨어졌고, 수평으로 떨어져서 천만다행이었다. 아니면 예리한 쇠못이 그의 발등을 꿰뚫었을 것이다.

그렇다 하여도 굵기가 손가락만한 쇠못은 무게가 몇십 근이나 되었기에 곽연은 얼굴이 일그러졌다.

"대단하구나, 장차 별원을 떠나도 굶어 죽지는 않겠어. 대장장이로 직업을 바꿔도 되겠네."

용진은 웃으면서 말했다.

곽연은 발등을 주무르더니 조금 화내면서 말했다.

"대장, 날 무시하는 건가요? 대장은 미래의 주기 대사를 무시하고 있어요. 얼른 저에게 사과해요."

용진은 웃겨서 하하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 주기 대사의 위엄을 보며 주면 너에게 사과할게."

곽연은 두 눈이 반짝거렸다.

"대장이 약속한 거예요. 그러면 위대한 발명이 무엇인지 대장에게 보여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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