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7화 옛 친구를 만나다
용진은 머리를 저었다.
이는 매일 구려밀경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정의의 사도거나 영웅, 협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조용하고 멋진 사내로 지내고 싶었다.
구려밀경에서는 자신 외에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되었다. 용진은 구려밀경에 들어오기 전 별원 제자들에게 그렇게 귀띔했었으니 이런 잘못을 저지르면 안 되었다.
용진은 상대방이 건드리지 않으면 자신도 건드리지 않는 철칙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굳이 약자를 도와주는 영웅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주위 사람들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런데 그가 멍하니 서 있자 그 여인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이건 정말 예상 밖의 상황이었다.
"못 본 척해."
용진은 속을 자신에게 말했다.
여인이 관련된 일은 뭔가 귀찮은 일일 수 있었다.
퍼엉.
기력을 다한 여인에게 한 사내의 장검이 날아갔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면서 거꾸로 나가떨어졌다.
"죽어."
한 사내가 그 틈에 검으로 여인의 심장을 찌르려고 했다. 마침 여인이 착지하기 전에 공격한 것이라 그녀는 절대 피하지 못할 것 같았다.
여인은 막다른 상황에 이른 걸 보고 두 눈을 감았다.
바로 이때 낮은 소리와 함께 한 손이 장검을 잡았고 푸른색 장포를 입은 사내가 그녀 앞에 나타났다.
"애송아, 괜한 일에 참견하지 마. 아니면 너도 함께 죽일 거다."
용진이 나타나자 세 사람은 깜짝 놀랐다.
용진은 한 손으로 그 사람의 장검을 잡고 있었다.
확실히 실력이 대단해 보였다.
그러나 세 사람은 용진의 경지가 역근경 초기인 걸 발견하고는 안도해서 당당하게 맞선 것이다.
'제기랄, 못 본 척한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용진은 스스로 한숨을 쉬었다.
원래 참견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 여인의 상황을 보니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제법 그럴듯하게 생긴 분들이 왜 여인 한 명과 싸우는 것이오? 나의 체면을 봐서라도 이만 돌아가오."
용진은 짐짓 온화하게 말했다.
'제법 그럴듯하게 생겼다고? 칭찬인 건가, 욕인 건가?"
세 사람은 화가 치밀었다.
특히 용진에게 장검이 잡힌 사내는 욕설을 퍼부었다.
"촌뜨기야, 죽어!"
그 사람은 욕설을 내뱉은 후 전력을 다해 검을 뽑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검은 용진의 손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아무리 힘을 줘도 뽑아낼 수 없었고 그 사람만 얼굴이 빨개졌다.
"어이, 왜 욕을 하는 것이오?"
용진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또한, 이렇게 기분 나쁜 표정을 짓다니."
용진은 이렇게 말하면서 손에 검을 놓았다.
그가 아무런 기미도 없이 손을 놓았기에 힘껏 검을 당기고 있던 자는 자신의 검자루에 가슴을 맞아 뒤로 나가떨어졌다.
퍼억.
그 사람은 선혈을 토해낸 후 거꾸로 나가떨어졌다. 나머지 두 사람은 깜짝 놀라면서 검으로 용진의 급소를 찌르려고 했다.
"꺼져."
용진이 낮게 외치면서 손을 흔들자 강한 바람이 불었다.
그 두 사람은 용진 가까이 가기도 전에 몸이 격렬하게 떨렸으며 선혈을 내뿜었다.
"너……."
세 사람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경지가 역근경 초기인 사람이 이 정도로 강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이때 자리에서 일어선 여인이 다가와 인사를 하려다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용진."
용진은 멍한 표정으로 낯이 익은 여인을 보다가 불현듯 깨달았다.
"백령?"
그 여인은 바로 봉명제국 화운각을 책임지고 있던 백령이었다.
그녀는 전에 그를 도운 적이 있었다.
세 사람은 용진의 이름을 들은 후 낯빛이 변하더니 조금도 망설임이 없이 도망쳤다.
"용진, 얼른 저 사람들을 죽여요. 절대 저들을 살려두면 안 돼요."
순간 백령은 조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용진은 백령이 그렇게 말한 이유를 몰랐지만, 직감적으로 그녀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임을 느꼈다.
후우.
용진이 손가락을 튕기자 자줏빛 원구가 번개처럼 세 사람에게 날아갔다.
그건 원구가 아닌 용진의 단화였다. 이제 용진은 봉작자염을 잘 통제할 수 있었다.
그가 오랫동안 신경 써서 길들인 수화기 때문에 봉작자염은 용진의 생각을 조금도 배척하지 않았고 매우 고분고분했다.
화르륵!
봉작자염은 순식간에 세 사람을 덮쳤고 곧 폭발했다.
그러자 자줏빛 화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주위 백 장을 뒤덮었다.
세 사람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잿더미가 된 걸 본 백령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전에 용진과 은무쌍이 격전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더 이상 풍명제국에서 냉대를 받던 용진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 연도자 세 명을 격살하는 건 너무 놀라운 일이었다.
선천도문 세 개가 허공에서 천천히 사라지는 걸 보지 못했다면 그녀는 자신이 잘못 본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백령 아가씨, 오랜만이네요."
용진이 웃으며 말했다.
세상은 정말 좁았다.
구려밀경에서 백령을 만나게 된 용진은 자신의 행동이 정확했다고 생각했다.
만일 아까 돕지 않았다면 백령은 꼭 죽고 말았을 것이다. 나중에 그 여인이 백령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면 그는 오랫동안 자책에 빠질 것이었다.
그제야 충격에서 벗어난 백령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녀는 복잡한 표정으로 용진을 보더니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오랜만이네요. 당신의 성장 속도는 정말 놀라워요."
예전에 풍명제국에서 백령은 용진을 포섭하려고 했었다.
그녀가 용진의 실력을 높이 평가한 것이 아니라 단수의 신분 때문이었다.
지금의 용진은 연단사의 신분이 아닌 강한 실력으로 정도, 사도를 놀라게 했다.
이건 그녀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용진은 웃으며 말했다.
"과찬입니다. 백령 아가씨, 참. 왜 저 세 사람을 죽이라고 했었나요?"
용진은 연도자들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백령은 매우 긴장된 기색이었다.
"설마… 모르고 있었어요? 당신은 수배되었기에 저들이 당신의 종적을 퍼뜨린다면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죽이러 찾아올 거예요."
백령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수배요? 절 죽이려 한다고요? 누가요?"
용진은 매우 의아했다.
"보아하니 당신은 정말 모르고 있네요. 제가 자세히 설명 해주죠."
백령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용진에게 사건의 경과를 알려주었다.
용진이 은무쌍을 물리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현천별원 제일고수인 한천우가 수배령을 내렸다는 소식이 퍼졌다.
용진은 성정이 난폭하고 정도 제자들을 함부로 죽이며 매우 잔인한 수단으로 보물을 빼앗았기 때문에 극악무도한 죄를 범했다는 것이었다.
만일 누군가가 용진의 행방을 발견하고 제일별원에 알린다면 매우 큰 상을 받을 수 있었다.
"상을 걸어서 절 수배하는 거군요. 한천우가 저를 찾고 있나요?"
용진의 얼굴에 냉소가 어렸다.
'어디 한 번 덤벼봐. 내가 무서워할 줄 알아?'
"용진, 경솔하게 대하지 마요. 듣건대 한천우가 며칠 전 단골경에 들어섰다고 해요. 한천우가 단골경을 돌파하는 광경을 직접 본 사람이 있는데 그 기세가 하늘을 찔렀고 주위 산들이 무너졌으며 난폭한 의지 때문에 천 리 밖에 사람들마저 간담이 서늘해진다고 했어요. 한천우는 구려밀경에 들어온 제자들 중에서 처음으로 단골경에 들어선 강자에요. 제 예측이 틀리지 않다면 그는 이 기세로 적들을 모두 죽여버리려고 할 거예요. 지금 한천우는 윤라의 행방을 찾고 있어요. 그의 첫 번째 목표는 윤라고 두 번째 목표는 당신이에요."
백령이 조금 걱정하면서 말했다.
"정말 뻔뻔하네요. 만일 한천우가 정말 제 주제를 모른다면 제가 벽돌로 그의 얼굴 길이를 측량해줄 거예요."
용진이 이를 갈면서 말했다.
용진은 제일별원이거나 한천우의 미움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예전에는 그를 모함하더니 지금 수배령까지 내린 것이었다.
이에 용진은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용진이 한천우의 수배령에 대해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자 백령은 입이 떡 벌어졌다.
순간 백령은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참, 용진, 당신에게만 수배령을 내린 것이 아니에요. 제백팔별원 제자들에게 모두 수배령을 내린 것 같아요."
"뭐라고요?"
용진은 극도의 분노를 느꼈다.
"왜냐하면, 보름 전에 누군가가 현천별원의 당… 뭐라고 하는 여인이……."
"당완아를 말하는 건가요?"
용진은 별안간 긴장되었다.
백령이 말했다.
"네, 네, 당완아라고 했어요. 한천우의 남동생 한천풍이 당완아를 쫓고 있는 걸 본 사람이 있대요."
"젠장."
용진은 낮게 외쳤으며 분노에 이마 핏대가 솟아올랐다.
바보들의 도를 넘는 행동에 그는 살의가 솟아올랐다.
백령의 용진이 내뿜은 살의에 깜짝 놀랐다.
지금의 용진은 사신과 같았고 순식간에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듯하였다.
그건 기세가 아닌 용진 본연의 살의였다.
이에 백령은 낯빛이 창백해졌고 오한이 들었다.
"한천풍은 왜 당완아를 쫓고 있는 거죠?"
용진은 이를 악물며 물었지만 백령이 대답하지 않아도 이유를 예측할 수 있었다.
그 바보들은 정정당당하고도 그럴듯한 이유를 백만 가지도 지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미치자 용진은 살의가 미친 듯이 솟아올랐다.
"용진, 조급해하지 마요. 당완아는 무사했고 도리어 한천풍이 참패하여 도망쳤어요."
용진이 곧 폭주할 상태에 이르자 백령은 다급히 말했다.
"왜요?"
용진은 멍해졌다.
"공교롭게도 한천풍이 당완아를 쫓고 있을 때 지나가고 있던 묵염이 마침 그 상황을 발견했어요. 두 사람은 격렬하게 싸웠고 묵염은 패배하여 도망치려는 한천풍을 계속 쫓아갔어요. 자신을 모함한 대가로 상대방의 알을 터뜨리겠다고 중얼거리면서요."
말을 마친 백령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묵염은 확실히 그런 말을 했었고 그녀는 그저 전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묵염?"
용진은 불현듯 깨달았다. 정사대전에 함께 싸웠던 묵염은 당연히 당완아 일행을 알고 있을 것이니 수수방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예전에 묵염이라고 사칭한 적이 있었다.
보아하니 묵염은 그 일에 대해 원한이 대단했으며 그 화풀이를 한천풍에게 하고 있었다.
당완아가 무사하다는 소식에 용진은 매우 안도했다.
묵염이 한천풍을 노린다면 그는 아마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용진은 묵염이 한천풍을 죽이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기껏해야 한바탕 때리면서 덤터기를 쓴 원한을 풀 것이었다.
한천풍은 당완아를 죽이려고 했었다.
비록 성공하지 않았지만, 용진은 이 일을 가슴 깊이 새겨두었다.
자신 곁에 사람을 건드렸으니 응당 자신에게 죽을 준비를 해야 했다.
그들이 먼저 역린을 건드렸으니 그의 무정함을 탓할 수 없었다.
용진은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은 용서할 수 있었다. 결국, 수행의 세계는 매우 잔인한 곳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자 주위에 사람을 건드리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묵염은 당신의 친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