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3화 당했다
초요는 응집한 나무 기둥의 크기도 마음대로 크고 작게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의 가장 강력한 점은 강도에 있었다.
나무 기둥 하나는 지존급 강자라도 전력을 다해야 파괴할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초요는 순식간에 수천, 수만의 나무 기둥을 소환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무 기둥의 공격력이 강하지 않더라도 방어력만큼은 초요가 제일이라 할 수 있다.
초요의 도움으로 전체 대오는 목숨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전력을 다해 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바깥에서는 묵염과 정문용이 절세의 강자들을 막고 있었다.
중간에서는 갑옷을 입은 곽연이 칼 두 자루를 들고 곡양과 함께 미친 듯이 살육을 벌이고 있었다.
정문용이 이끄는 화운종의 제자들은 예상외로 강했다.
손에 들고 있는 무기 역시 최상의 재료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은 연갑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몸에 칼을 맞아도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적을 죽였다.
정도 강자의 이를 갈리게 만드는 건.
바로 화운종의 제자들이 바지 안까지 보호가 되어 있어 칼로 건드리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화운종 제자들은 양말까지 모두 금실로 짜여 있었다.
정도 제자들은 찢어진 신발 사이로 그것을 보고는 너무나도 그것을 탐내했다.
금실은 금잠(金蠶)이 뱉은 실로, 매우 귀중한 것이었다.
보통 호신을 하는 데 쓰이는 물품인데 그 가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귀중했다.
그러나 화운종 제자들은 양말마저 모두 이런 보물로 만들어졌다.
녀석들의 돈이 이토록 많다니.
사람들은 화가나 죽을 지경이었다.
화운종의 제자가 바깥을 지키고 있는 사이, 안쪽에서는 장궁을 든 묵씨 가문 제자들이 끊임없이 화살을 발사했다.
화살은 어김없이 적의 갑옷을 뚫고 몸을 관통해, 적진을 쓰러뜨렸다.
그들의 힘은 너무 강했다.
종종 화살 한 자루가 여러 사람의 몸을 관통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화살 기술은 사람의 간담까지 서늘하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대오가 가진 비장의 패는 몽기를 포함한 다섯 여연과 아만이었다.
이들은 가장 핵심적인 전력이기에 쉽게 자신을 상대에게 드러내지 않았다.
비장의 패란 필요한 때에만 나와, 상대가 반격할 틈 없이 단칼에 찔러 죽여야 한다.
이래야만 비장의 패가 주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묵염, 정문용 등이 격전을 버리는 것을 보고, 화벽낙의 마음은 바늘에 찔린 것처럼 괴로웠다.
원래 그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우는 맹우였지만, 그녀는 지금 그녀의 맹세를 저버린 것과 같았다.
"개 같은 화무방, 망할 단탑! 열 받아 미치겠네.”
화벽낙 뒤에 서 있던 강자 하나가 참지 못하고 욕을 뱉었다.
그들은 모두 칠 척이 넘는 사내들이었다.
화무방에게 굴욕당하고, 묵염 등이 용감하게 싸우는 것을 보자 그들도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한창 욕을 하던 중에, 다른 강자 하나가 몰래 그를 쿡 찌르며 화벽낙 쪽으로 곁눈질했다.
사내는 화벽낙의 처량한 얼굴을 보고서야 입을 다물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견디기 힘들어했지만, 가장 괴로울 사람은 역시 화벽낙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마음속의 고통을 어디에도 말하지 못했다.
"그 검을 멘 수염이 있는 저 사내가 용진에게 달려갔어.”
누군가의 외침에 화벽낙의 시선은 용진 쪽으로 향했다.
용진이 신환으로 흡수한 영기는 한천우의 정혈의 힘을 상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기까지 천천히 회복시켰다.
지금은 거의 팔 할까지 회복되고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 있던 한천우는 얼굴이 종잇장처럼 창백했다.
이마를 따라 흘러내린 땀이 눈가에 송골송골하게 맺혔고, 두 눈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러다가 죽을 것 같아 보였다.
한천우는 용진과 대치하고 있었지만 바깥의 상황이 어떤지는 훤했다.
그 사람들이 한동안 돌격해 오지 못하는 것을 보고 한천우는 초조해졌다.
지금 그는 정혈 한 방울을 쓸 때마다 본원을 조금씩 손실했다. 본원의 힘이 너무 많이 손실되면 그의 근본마저 다칠 수 있었다. 그럼 천재에서 폐인으로 일순간에 떨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후.”
몸집이 큰 수염 사내는 용진 두 사람 앞으로 달려가 용진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
“너, 개천 제일식(第壹式)은 어디서 얻었지?”
그 수염 사내가 다가왔을 때, 용진은 몰래 치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질문을 듣자 문득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의 몸에서는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의 말을 듣자 용진은 그의 몸에도 개천 같은 난폭한 기운이 있음을 알았다.
‘개천 제일식이라니?’
용진은 가슴이 철렁했다.
설마 개천 제이식, 제삼식이 있단 말인가?
용진은 그 수염 사내를 보며 말했다.
“그건 내가 속세의 어느 시장에서 산 거요.”
용진은 제국의 태학궁 안에서 찾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 수염 사내가 아직 적인지 벗인지 모르기 때문에, 용진은 경계를 했다.
"허튼소리, 너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 수염 사내는 믿지 않고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용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차갑게 말했다.
"나 용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하든지.”
그 수염 사내는 용진을 보면서 용진이 말한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잠시 생각하는 듯싶더니, 입을 열었다.
“개천 전기는 우리 개천신종(開天神宗)에서 내려오는 비법이니, 반드시 회수해야겠다. 자, 더 할 말 있나?”
용진은 역린을 유지하며 눈앞에 있는 수염 사내를 차갑게 쳐다봤다.
사내의 말투는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의 말 속에는 사람을 내려다보는 오만함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용진은 눈앞에 있는 이 수염 사내를 여전히 신중하게 대했다.
그가 두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와 싸우기에 적합한 시기가 아니었다.
용진은 한 손에는 역린을 받쳐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낡은 수피지 한 장을 꺼냈다.
그건 바로 그가 얻은 개천비기(開天秘技)였다.
비록 수염 사내를 시험해 보지는 않았지만, 용진은 그의 몸에서 확실히 개천의 기운을 느꼈다.
“줄게.”
용진은 그 수피지를 수염 사내에게 던졌다.
어쨌든 이 물건은 이미 익혔기 때문에 용진에게는 쓸모가 없었다.
사내는 수피지를 덥석 잡아챈 후 한참 동안 자세히 살펴보더니,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나타났다.
쫙!
수피지가 그의 손에서 찢어졌다.
그 수염 사내는 영기로 수피지를 망가뜨린 후 차갑게 용진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내 뜻을 오해했나 보군. 내가 회수한다고 한 건 비기만이 아니다. 네게 있는 전기도 포함해서 회수할 거다.”
“무슨 소리야?”
용진은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짙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내 말은, 널 죽이겠다는 거다.”
수염 사내가 등 뒤에 있는 활검을 천천히 뽑아 들며 차갑게 말했다.
“하하하하하……."
용진은 하늘을 보며 길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는 분노와 살의가 가득했다.
용진은 이런 식의 조롱을 받는 것은 처음이었다.
용진은 평화를 위해 수염 사내에게 수피를 건네주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돌아온 것이 이런 모욕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용진은 평생 동안 자세를 낮추고 상대를 대했던 것은 두 번뿐이었다.
또 다른 한 번은 화무방과 내단을 나누려다 거절당한 일이었다.
용진은 압박에 못 이겨 사건을 진정시키려고 수피를 내놓았으나, 이렇게 모욕을 당하자 분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용진은 웃으면서 스스로가 조금 소심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안하무인인 멍청이들과 화해를 하려 했던 것 자체가 망상이었다.
"흥, 뭘 그리 웃느냐. 개천전투는 우리 개천신종의 진파지보(鎮派至寶)다. 절대 외부에 전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네가 우리 진파신기(鎮派神技)를 몰래 배웠으니, 네가 어디에서 비적을 얻었든지 상관없이, 그건 모두 우리 개천신종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 너는 절도 혐의를 피할 수 없다.
이런 말을 하는 건, 네 죽음의 이유를 확실하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 개천신종은 결코 불합리한 사람이 아니거든. 그러니 너도 편히 눈을 감거라.”
수염 사내가 차갑게 말했다.
“말은 그럴듯하나 결국에는 헛소리군. 네 눈이 계속 나의 공간 반지와 역린에 향해 있는데, 그렇게 해서 나를 속일 수 있겠어?
사람을 죽이고 보물을 빼앗으려고 그렇게 많은 이유를 찾아낼 수 있다니. 너의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너 역시 바보였어. 보물을 빼앗고 싶다면 덤벼 봐. 미리 말하는데, 덤비고 나서 후회하지 마.”
용진은 수염 사내를 향한 살의를 숨기지 않았다.
용진은 이 낯선 남자에게 제대로 화가 났다.
용진은 녀석의 눈빛 깊은 곳에 있는 탐욕을 읽어 냈다. 그는 처음에는 확실히 개천전기를 원했으나, 그가 수피를 받고 나서 실망했던 것도 진실이었다.
그래서 수피를 망가뜨리고 마음을 바꿔 용진의 보물에 욕심을 내는 것이다.
"흥, 죽음이 임박했는데도 이렇게 허세를 부리다니!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죽어라."
수염 사내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손에든 활검을 흔들었다.
길이가 칠 척에, 너비가 오 촌이나 되는 검은 매우 두껍고 무거웠다.
활검은 광포한 힘을 가지고 바람 소리를 휙휙 내며 용진을 향해 날아갔고, 활검이 채 닿기도 전에 용진의 옷자락은 강풍에 흩날렸다.
용진은 깜짝 놀랐다.
수염 사내는 역시 한천우에 버금가는 강자가 맞았다. 사내의 일격은 산을 부숴버릴 만큼 강했다. 현장에서 이 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몇 없을 것이다.
한천우는 수염 사내가 용진에게 덤비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게다가 처음부터 필살기라니.
이는 그에게 엄청난 도움을 주고 있었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한천우는 용진에게 죽임을 당할 운명이었다.
수염 사내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검을 휘두르는 것을 보자 용진의 눈빛은 사나워졌다. 왼손은 여전히 역린을 구동했고, 오른손은 장도를 세워 활검을 막아냈다.
용진이 자신의 검을 마주하고도 놀랍게도 한눈을 팔자, 수염 사내의 얼굴에는 분노가 치밀었다.
이건 그를 얕보는 게 아니겠는가?
“죽어라.”
펑!
수염 사내의 검이 용진의 핏빛 장도에 닿자, 굉음과 함께 용진의 발아래 땅이 무너졌다.
“푸웁.”
용진의 입에서는 선혈이 뿜어져 나왔지만, 두 눈에는 오히려 비웃는 기색 비쳤다.
그 모습을 보자 수염 사내는 저도 모르게 낯빛이 변했다.
검이 용진의 장도에 닿는 순간, 이상하게도 검의 힘을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용진은 그의 검의 힘을 기껏해야 삼 할 정도만 견뎌냈고, 나머지 칠할 정도의 힘은 영문도 모른 채 사라져 버렸다.
“아, 당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