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4화 나를 알고 있어?
"역시 같은 일족이군."
용진은 여자의 이마에 있는 무늬를 보고 온화한 눈빛을 했다.
방금 용진의 힘은 여자의 모든 힘을 일으켰다. 외력이 침입했을 때 폭발하는 건 일종의 본능이었다.
바로 그 순간, 용진은 여자의 이마에 희미한 무늬가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건 바로 '마(魔)'라는 글자였다. 월소천의 이마에 있던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용진의 머릿속에서 완벽에 가까운 월소천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그녀의 매력까지…….
"당신은 도대체 누구죠?"
여자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긴장할 것 없어. 난 당신과 적이 아니거든. 묻고 싶군. 혹시 월소천을 아는가?"
용진이 말했다.
"그…… 그 이름을 어떻게…… 성고(聖姑)의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죠?"
여자는 깜짝 놀랐다.
"성고라니? 내 눈에는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계집인데."
용진이 웃으며 말했다.
"설마…… 설마 당신, 용진인가요? 아니, 그럴 리 없지. 성고께서는 용진의 초상화를 보여준 적이 있어. 당신은 용진이 아니야."
그 여자는 고개를 저으며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를 알고 있어?"
용진은 다소 뜻밖이라 놀랐다. 잠시 망설이던 용진은 결심을 한 듯 얼굴을 살살 문질렀다. 그러자 원래의 얼굴이 천천히 드러났다.
"자, 이제 어떤가?"
용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 여자는 눈을 크게 뜨더니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용진이야. 정말 용진이었어! 죄송합니다. 아까는……."
"괜찮아. 사실 들어오자마자 너의 신분을 알아챘어."
용진이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아셨나요? 저는 오랫동안 계획을 세우고 잠입한 것이라, 아무런 허점도 없었을 텐데요."
그 여자는 다소 충격받은 얼굴로 말했다.
"허점은 위장과는 무관하지. 당신한테는 뼛속까지 월소천과 비슷한 느낌이 풍겼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확신할 수 없었어. 그러다 그 목걸이를 보고 확신했지."
용진은 여자의 가슴 언저리에 걸린 목걸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목걸이 안에는 악마의 수정이 봉인되어 있겠지. 나와 월소천은 이걸 수없이 많이 만들어서 그 기운에 익숙해. 그래서 난 당신이 월소천과 같은 종족의 사람임을 확신했어. 하지만 이상하군. 당신들은 전 세계에 수배되었을 텐데, 어찌 여기까지 왔지?"
용진이 물었다.
여자의 얼굴은 갑자기 무기력해지더니, 놀랍게도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도련님, 제발 성고 대인을 도와주세요."
용진은 급히 그녀를 일으켰다.
"도대체 소천에게 무슨 일이 있기에?"
여자가 말했다.
"성고 대인께서는 천마연심대법(天魔煉心大法)을 수련하다가 반서를 당해, 신혼이 상했어요. 그래서 신혼을 수양할 천유속혼근(天幽續魂根)이라는 진약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마천계(摩天界)에는 이런 약재가 자라지 않습니다. 그리고 외부에도 이런 진귀한 약재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죠, 우리는 속수무책이었어요. 우리는, 우리는……."
그 여자는 '우리'를 연거푸 두 번 말하다가 갑자기 머뭇거렸다. 용진은 답답해서 물었다.
"온 세상이 당신들을 공공의 적으로 여기니, 당당하게 밖을 걸어 다닐 수도, 찾아다닐 수 없었겠지."
용진은 수련이 향상되면서 점차 일부 상고 시대 뒷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 세계에는 강력한 종족이 하나 있는데, 그 이름은 바로 시마족(始魔族)이다.
그들은 사악한 무리로, 온 세상을 뒤엎고 창생을 멸망시키려 한다. 그러나 상고 시대에 강자에게 패배하면서 거의 멸종되었다. 살아남은 잔당들은 적으로 간주하여 세상의 틈바구니에 섞여서 살아갔다.
용진은 소식을 듣고 코웃음을 쳤다. 세상을 뒤집으려 했다? 그럼 뒤집으면 되지. 어차피 이 세상은 멍청한 놈들 천지였다.
그래서 월소천이 마족 사람인 것을 알면서도, 그녀의 종족 사람들에게도 선심을 품고 있었다.
그 여자는 용진이 시마족이라는 것을 알고도 도와주려 하자 마음 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시마족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만약 세상을 걸어 다닌다면 하늘에 천벌을 받고 멸합니다. 그래서 밖을 돌아다니려면 악마의 정골로 연화한 목걸이로 몸의 기운을 감춰야만 기운을 숨길 수 있습니다. 지난번 성고 대인께서는 몰래 나가 수많은 악마 정골을 가지고 돌아왔어요.
악마의 정골이 있으면, 우리 마족 제자들은 외출할 수 있게 됩니다. 전력을 폭발시키지 않고 족문(族紋)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외부 사람들은 우리를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 우리는 많은 사람을 파견하여 천유속혼근을 찾았지만, 마정(魔晶)은 선천경 이하의 기운만 감출 뿐, 피해경 이상의 강자에게는 효과가 없었어요.
강자의 지지가 없다면, 우리는 억지로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난 이 방법을 택한 거예요. 원래 이곳에 있던 여자를 가두고 그녀를 연기했어요. 세 가문의 도련님들을 유혹해 천유속혼근을 얻으려 했습니다."
그 여자는 말을 마치자마자 갑자기 아무런 동작도 없이 얼굴이 변했다. 더 아름다워지고, 분위기가 생겼다.
"이건 우리 종족의 천부적인 능력입니다. 우리는 마음대로 모습을 바꿀 수 있어요."
용진이 놀란 표정을 하자 여자가 설명했다.
"너희 마족 여자들은 모두 이렇게 예쁜가?"
용진이 물었다.
"하하, 당신은 이미 가장 아름다운 분을 만난 적이 있는걸요. 성고 대인은 우리 마족이 공인한 제일 미녀예요."
그 여자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웃으며 말했다.
용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월소천의 미모는 확실히 완벽했다. 특히 뼛속부터 풍기는 아름다운 분위기는 저항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건 일종의 넋을 빼앗는 아름다움이었다.
"천유속혼근은 찾을 필요 없어. 나한테 있거든."
용진이 말했다. 천유속혼근은 육급 단약인데, 용진의 성격에 어떻게 보관해 두지 않았겠는가?
"정말입니까? 다행이에요. 성고 대인은 이제 고통받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그 여자는 흥분을 금치 못했다. 아름다운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희 종족에 연단할 줄 아는 사람이 있나?"
용진이 물었다.
그 여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종족은 하늘의 저주를 받았어요. 본원지력을 제외하고 외부의 모든 원소지력(元素之力)은 갖추지 못했어요."
"이놈의 하늘은 정말 병이 있어. 배불리 먹고 할 일이 없어서 별 짓거리를 다 하는군."
용진은 동병상련을 느끼고 고개를 저었다.
월소천의 종족은 저주를 받았다. 하지만 용진은 저주가 아니다. 이건 피의 저주로, 천도는 언제나 용진의 목숨을 원했다.
"천유속혼근은 단독으로 복용하면 큰 효과가 없고, 약효도 느리지. 내가 단약을 좀 정련해 줄게. 먹으면 분명 나아질 거야. 그리고 그쪽도…… 나를 믿는다면 몸을 검사해 보고 싶은데."
용진이 말했다.
그 여자는 갑자기 얼굴을 붉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소접(小蝶), 용진 사형을 당연히 믿고 말고요.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잠깐, 잠깐. 검사하는데, 옷을 벗을 필요는 없어. 내 영원으로 몸속을 좀 들여다보면 될 뿐이야."
용진이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용진은 말을 마치고 바로 소접의 등에 손을 갖다 댔다. 영원이 그녀의 몸속을 돌아다녔다. 그는 마족의 수행 궤적을 반드시 알아야 했다. 그래야 월소천을 더 잘 도울 수 있었다.
용진은 소접의 몸을 탐사할 때, 놀랍게도 그녀의 단전 안에서 종래로 보지 못한 기이한 힘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영기도 아니고, 영원도 아니고, 외부 수행인이 사용하는 힘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건 우리의 본원지력이에요. 당신들이 수행하는 힘과는 완전히 다르죠."
소접이 말했다.
용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체구조는 전부 같았고, 영혼 파동은 같았지만, 핵심적인 힘만 유독 달랐다. 다른 부분은 특별히 다르지 않아, 단약을 복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요 며칠 너는 여기 남아서 몸을 잘 보호하고 있어. 난 돌아가 천유속혼근에 약간의 약재를 첨가하고, 천성속혼단을 정련할게. 그리고 다른 단약들도 만들어서 줄 테니 월소천에게 전해 줘."
용진은 말을 마친 후 바로 방씨 가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밀실을 잠그고 급히 약재를 꺼내 천성속혼단을 재빨리 정련했다.
천성속혼단은 일종의 육급 단약으로, 정련 난이도는 중급이나, 아직 정련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지화의 보조가 있어서 괜찮았다. 지금 지화는 수화 때문에 먹고 마실 수 있어 빠르게 커지고 있었다.
지화를 소환하여 단약을 정련하는 건 그야말로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같았다. 지화는 용진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용진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훤히 알고 그대로 해냈다.
세 시진이 되지 않아, 천성속혼단이 나왔다. 여덟 개의 현문이 있는 단약 하나 외에, 나머지는 전부 구현단이었다.
"아쉽게도 약재 자체에 영성이 부족해. 아니었다면 지화의 능력으로 최상품 단약을 정련해 냈을 텐데."
용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도 지화의 도움으로 용진은 연단을 쉽게 했다. 가장 중요한 건, 지화에게 영성이 있어 두 번째로 연단할 때에는 용진의 제어가 전혀 필요 없었다는 점이다. 지화는 자신의 화력을 통제할 수 있었다. 용진은 이점이 기뻤다.
"지화, 네가 직접 해 봐."
용진이 아예 손을 떼자 지화는 길이가 한 장 남짓한 작은 용으로 변하더니 단로를 칭칭 감쌌다. 그리고 용진이 통제할 때와 다름없이 화력을 크게, 또 작게 조절했다.
단로가 열리자, 안에는 일곱 개의 현문이 있는 천성속혼단이 생겼다. 비록 용진이 직접 정련하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충분히 놀라웠다.
"지화야, 너 정말 멋있다."
용진은 감탄하며 크게 웃기 시작했다. 지화는 용진의 칭찬을 받고 흥분했는지 다정하게 용진의 몸에 감겼다.
"하하, 지화야, 정말 대단해. 온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니, 앞으로 나를 도와 계속 연단 해줘."
용진은 지화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기쁨이 가득 차올랐다. 이건 앞으로 믿을 만한 조수를 얻게 된 것과 같았다.
"지화, 혼돈공간에 가서 연단을 도와줘. 난 다른 일을 해야 해."
용진은 지화가 혼돈공간 안에서 연단할 수 있도록 지화, 단로, 가루약을 혼돈공간 안에 놓았다.
"소첩의 말에 따르면, 월소천도 선천경에 들어섰다고 했지. 그것도 선천경 후기니, 차라리 혈살피해단(血煞辟海丹)을 만들어 주는 게 낫겠어."
용진이 정신을 움직이자, 손에는 아기 주먹만 한 붉은색 열매가 하나 나타났다. 바로 혈살주과였다.
그러나 혼돈영지에서 탈취한 건 아니었다. 그건 이미 종자로 만들어, 커다란 나무로 재배했다. 커다란 나무에는 과실이 가득 열렸다.
혼돈공간은 정말 놀랍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씨앗이든 어떤 성장 환경이 필요하든, 혼돈공간에서 키울 수 없는 건 없었다.
지금 용진의 혼돈공간 안에 있는 중심지대, 사방 수백 리의 약재 밭에는 진귀한 약재가 일급부터 칠급까지 가득 심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