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3화 너는 바둑판에 있는 돌일 뿐이다
탑종 대인의 뜻은 분명했다. 그는 용진이 펼쳤던 추혼문심술을 할 생각이었다. 이건 진위를 판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다.
이때 용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이런 작은 일에 대인께서 나설 필요가 있겠습니까. 제가 증명해 드리지요."
용진은 화무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묻겠다. 화씨 가문에 온 손님 중에 여덟 명의 천행자가 외출한 적이 있느냐?"
"흥, 없다."
화무방은 당연히 인정하지 않았다.
펑!
용진은 갑자기 손을 한번 흔들었다. 그러자 공중에서 단약 하나가 터졌다. 온 하늘에는 연기 먼지가 퍼지면서 바람에 날렸다. 사람들은 멍해졌다.
"뭐지?"
갑자기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놀랍게도 화무방의 뒤에 서 있던 사람 중 일곱이 먹칠한 것처럼 얼굴이 까맣게 변한 것이다.
"이건……."
모두 어리둥절해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들은 얼굴뿐만 아니라 손과 목, 드러난 피부 모두가 먹처럼 까매졌다.
"감히 단수의 집에 들어와 날뛰다니, 멍청한 놈들 같으니라고. 설마 단수가 보호 수단을 남겨두지 않았을 것 같아? 너희가 내 방에 들어와 여자를 납치했을 때. 난 이미 구미안령단(九味顔靈丹)을 터뜨렸어. 이 단약은 방호단의 일종으로, 냄새에 물든 사람은 숨을 쉬지 않아도 냄새가 모공 깊숙이 들어가 일 년 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단수들은 이런 습관이 없겠지만, 우리 가문은 누군가 몰래 방에 들어왔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에 설치하지. 방금 내가 사용한 건, 적안분(赤颜粉)이다. 이 분말은 온 무색무취에 독성도 없지. 하지만 구미안령단에 당첨된 사람들은 피부색이 먹처럼 검게 변해. 흥, 가장 중요한 건, 이 색소가 피부 깊이 파고들면 껍질을 벗겨 새로 피부가 돋아도 여전히 먹처럼 어둡다는 거지. 그래도 다행히 약효가 유지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아. 한십 년 정도 지나면 돌아갈 거야."
용진이 담담하게 말했다.
십 년이라니? 십 년이 그리 길지 않다고?
사람들은 눈과 치아 빼고 전신이 새까매진 일곱 사람을 보고 표정을 구겼다. 저런 얼굴로 어떻게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난단 말인가?
유일한 장점이라곤, 밤길에 적에게 쉽게 발견되지 않는 것일 테다. 그래도 명망 있는 천행자가 밖에 나갈 면목이 없다니, 이런 손해가 어디 있단 말인가.
"어제는 여덟 명이었는데 방금 한 명이 죽었으니, 일곱이 남았군. 화무방, 이제 이 일에 대해 설명 좀 해 줘야겠는데?"
용진이 화무방을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용진이 손에 증거를 쥐고 있을 줄 몰랐던 화무방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왜 설명을 못 하지? 너랑 상관없다고 말하지 그래?"
용진이 충고했다.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야."
화무방이 화를 내며 말했다.
"모른다고? 어제 모두 너와 함께 화씨 가문에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나?"
용진이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
화무방은 식은땀을 흘렸다. 용진의 수법은 너무 모질어서 인정하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크흠. 아이들이 철이 없어 벌어진 일이다. 혈기가 왕성하여 바보 같은 짓을 벌인 것이지. 방이는 이 일을 몰랐으니, 내가 대신 사과하마."
화장생이 나서서 말했다.
"쳇, 사과해도 무슨 소용인가요? 내가 당신의 목을 칼로 베고 당신의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면 그 사과를 받아 줄 건가요?"
용진이 무시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용삼, 원인도 있고 과실도 있지만, 우리 화씨 가문은 도리가 없군, 하지만 너도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잘 알고 있겠지. 그러니 더는 피해자 행세하며 사람을 괴롭히지 말거라."
화장생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탑종 대인 앞이라 함부로 소리칠 수 없었지만, 차가운 목소리에는 위협이 가득했다.
"괴롭히다니요? 하하하, 그 말이 화씨 가문 사람의 입에서 나오다니, 우습군요. 화씨 가문이 못된 짓을 그리 많이 하는데, 누가 감히 당신들을 괴롭히나요? 괴롭히면 바로 산 채로 죽임을 당하지 않습니까? 화씨 가문은 혼돈영지에 있는 용진에게도 은밀히 사도 강자를 사주하여 죽였잖습니까. 도대체 누가 누굴 괴롭힌다는 겁니까?"
용진이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
"허튼소리! 함부로 모독하지 마라!"
화장생은 용진을 가리키며 분노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속으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일은 현천도종의 고위층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 화씨 가문은 엄청난 돈을 지급해야 했다.
현천도종은 강력한 세력이라 화씨 가문에 아첨할 필요가 없었다. 이번에 화무방이 첩을 들이는데도 현천도종에서는 사람을 보내지 않았다.
실제로 현천도종의 본부는 단곡과 관계가 있어서 화씨 가문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화씨 가문이 용진을 죽이는 바람에 그들은 현천도종에 약간의 보상을 해야 했다. 배상금은 수씨 가문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수씨 가문이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살을 깎는 고통으로 입막음 돈을 냈는데, 뜻밖에도 용진이 다시 이 일을 꺼내자 화장생은 화난 동시에 불안했다.
탑종 대인은 지위와 권세가 높은 인물이라, 그 어떤 세력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단곡의 인재를 뽑는 부서는 단곡에서도 분리되어있다. 비록 그들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만약 신고한다면 화씨 가문은 끝장이었다.
"모독이라니,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모두 이 유영옥을 봐주세요."
용진은 말을 마치자마자 유영옥을 활성화했다.
그러자 허공에 화면이 나타났다. 화장생은 그 화면을 보더니 곧바로 안색이 변했다. 현천도종이 그에게 준 유영옥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허공에 뜬 화면이 막 확대되는 순간, 탑종 대인은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화면은 일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러다 끝이 없겠어. 나는 늙어 시간이 없으니, 빨리 일을 처리하는 것이 좋겠군."
탑종 대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대략적인 것을 알았다. 화씨 가문 사람은 확실하게 용삼의 여자를 납치했다."
"탑종 대인, 아닙니다. 우리는……."
화무방이 몹시 억울해하며 말했다.
탑종 대인은 손을 저었다.
"네가 그랬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아. 용삼은 증거가 있지만 넌 용삼의 여자를 납치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없지. 너는 어제 용삼의 여자를 빼앗았고, 용삼은 오늘 너의 여자를 빼앗았다. 용삼은 결과에 만족하고 있지만 너는 불만이 많으니 이렇게 하지. 강호의 규칙에 따라 해결하는 것이다. 너희 둘이 대결해서 이기는 자가 미인을 가진다. 어떤가?"
"좋습니다. 옛날부터 놈이 눈에 거슬렸는데 잘됐군요."
용진이 소리쳤다.
좋은 결정이었다. 화무방을 세게 때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화무방은 불을 뿜을 것 같은 눈으로 용진을 노려보다 입을 열었다.
"저는……."
"화무방, 패배를 인정합니다."
화장생이 불쑥 끼어들자 장내는 고요해졌다.
패배를 인정하는 말에 용진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놀랐다. 패배를 인정한다는 건, 여자를 잃는 것뿐 아니라 체면까지 잃는 것이었다.
화무방은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여자 하나일 뿐이다. 네 지위라면 얼마든지 여자를 가질 수 있지 않느냐."
화장생은 이어서 용진을 향해 말했다.
"이번에는 패배를 인정한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야. 결국,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는 마지막에 알게 되겠지. 너는 바둑판에 있는 돌일 뿐이다. 그 바둑돌이 쓸모없게 되면 네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군."
화장생은 말을 마치고 탑종 대인에게 인사한 후, 분노에 찬 얼굴을 하고 있는 화무방을 끌고 자리를 떠났다.
* * *
퍽!
정교한 백옥 바둑판이 바닥에 세게 떨어지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깨진 바둑판은 화무방의 분노를 잠시나마 누그러뜨렸다.
"할아버지, 왜 패배를 인정하셨습니까? 전 용삼을 죽일 자신이 있었습니다."
화무방이 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용삼을 너무 얕보고 있어. 놈은 실력이 아주 강해. 지금 네가 그 녀석을 상대해서 이길 확률은 반밖에 되지 않아. 여자 하나를 위해 너의 실력을 드러내는 건 가치 없는 일이다. 아직 바둑을 절반밖에 두지 않았는데 전력을 드러낼 필요는 없지.
방씨 가문은 유력한 바둑돌을 쟁취하여 잠시 상대가 유리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이길 기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네 몸의 뼈는 아직 완전히 결합하지 않았어. 아직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지. 네 뼈가 완벽하게 결합하면 용삼은 아무것도 아니다.
손 한 번 흔드는 거로도 녀석을 죽일 수 있을 거다. 지금 네게 중요한 건 결승전에 온 집중을 다 해야 한다는 거다. 만약 네가 우승한다면…… 흥, 방씨가문과 시씨 가문도 전부 날려버릴 수 있어."
"하지만 용삼은 이상하게도 연단술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놈입니다. 그냥 두었다가는 화근이 될 것입니다. 만약 오늘 죽였다면 우승은 쉽게 제 차지가 되었을 겁니다."
화장생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너무 간단하게 생각하는구나. 설사 네가 용삼을 격파하더라도 탑종 대인 앞에서는 죽일 수 없다."
화무방이 말했다.
"탑종 대인의 수련이 도대체 어느 정도길래 그러시는 겁니까?"
화장생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는 원래 이번 단황 비무의 주 시험관이 탑집 대인인 줄 알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탑종 대인까지 직접 왔더구나. 우리가 그분을 공경하는 이유는 지고무상의 권위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종주급 강자기 때문이다."
"종주급? 그게 도대체 어떤 경지입니까?"
화무방이 말했다.
"종주급은 조타수의 호칭이다. 실제 경지는 주태경(鑄台境)으로, 피해경 위의 경지지. 주태경 강자는 전체 동황에서도 최고급 강자로, 몇몇 최상급 파벌에만 있지. 이런 인물은 좀처럼 접하기 어려워. 주태경 강자는커녕, 반보 주태경도 몇 번 본적 없을 정도로 희귀하지."
화장생이 말을 마치자 화무방이 놀라며 물었다.
"할아버지께서는 피해경 정상의 강자이지 않습니까? 이치대로라면 다음 단계가 바로 주태경일 텐데요."
"하하, 이 세상이 이치대로만 돌아가면 얼마나 좋겠느냐. 피해경은 사실상 기해를 개척하는 것이다. 기해를 최대로 확장하고 피해경의 영원 용량을 선천 정상보다 백배 이상 높이지. 선천경은 피해경으로 가는 디딤돌에 지나지 않아. 피해경에 들어서야만 기해가 폭등하여 영원을 저장할 뿐 아니라 전투할 때 기해 이상을 소환할 수 있지.
피해경에 이르러야만 진정으로 천지지력을 장악하고 술법의 힘으로 전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건 수행 경지에 있는 하나의 분수령이야. 천행자는 등급을 뛰어넘을 수 있는 도전이라고 일컬어지고, 통맥경은 선천을 제압한다지만 선천경 이후의 천행자에 진입하면 피해경을 제압한다는 건 비현실적이다.
피해경 강자는 천지지력을 장악할 수 있어서 천도화명의 압박을 받아도 강하게 받아들이지 않아. 그래서 어떤 선천경 천행자는 피해경 강자에게 도전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모두 초기 피해경 강자일 거다. 중기는 불가능해. 후기는 더 말할 것도 없지."
화장생이 말했다.
"자, 이런 것들은 네가 알아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 너는 가능한 한 빨리 몸을 조절하고 모든 정신을 연단에만 집중해서 결승전에서 이기거라."
"예, 할아버지, 알겠습니다. 이번에 우승하면 시씨 가문과 방씨 가문을 멸망시킬 겁니다. 제 손으로 용삼과 화벽낙 이 년을 죽여버릴 겁니다."
화무방은 용삼을 생각하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