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흐으으.”
입에서 뜨거운 숨이 훅하고 새어 나왔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박동하는 것과 동시에 전신에 미증유의 힘이 퍼져나갔다.
은근히 몸을 옥죄던 구속감이 사라지고 티토가 마치 한 몸처럼 느껴졌다.
동조율이 폭주하듯 치솟았다.
쿠웅!
고작 한 걸음을 내디뎠을 뿐인데 아벨은 아찔한 스릴감을 느꼈다.
마치 미친 듯이 날뛰는 야생마 위에 올라타 있는 기분이었다.
쿵!
그러나 다음 걸음을 내디뎠을 땐 이미 그 거친 기운을 꽉 틀어쥐고서 자신의 통제하에 둔 후였다.
일순간 한계를 뛰어넘은 동조율이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후우우우웅-!
시야에 루크가 탄 티토의 주먹이 날아오는 게 보였다.
평소라면 아예 몸을 틀어서 피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벨은 그저 살짝 몸을 낮췄다가 쭉 펴며 주먹에 어깨를 갖다 댔다.
카각!
단단한 주먹이 어깨의 곡면을 따라 그대로 빗겨나갔다.
예상 못한 흘리기에 루크의 기체는 중심을 잃고 크게 비틀거렸다.
아벨은 루크의 당황한 기색을 선명히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깨달았다.
앞에 놓인 건 더 이상 위험스러운 적이 아니라 무방비한 사냥감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걸 깨달은 순간 아벨은 튕겨 오르듯 주먹을 위로 올려쳤다.
콰앙!
주먹이 그대로 턱을 가격했다.
기간트는 피와 살로 이루어진 생명체가 아니지만, 머리가 약점이라는 건 똑같다.
아벨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루크를 보고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다.
쾅! 콰앙! 쾅!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단단한 티토의 몸체가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아벨이 타고 있던 기체의 주먹도 같이 손상되었지만, 딱히 중요하진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그에겐 이곳에 있는 이들에게 똑똑히 보여주는 게 더 중요했다.
이곳에 괴물이 있노라고.
콰아악!
아벨은 이제 제대로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어 보이는 상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한 손으로 목을 콱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다리 사이를 꽉 쥐었다.
루크는 무얼 해보기도 전에 그대로 하늘로 번쩍 들어 올려졌다.
단박에 주변의 시선이 아벨에게 집중되었다.
티토를 역기처럼 번쩍 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벨은 주변 시선에 부응하듯 들어 올렸던 기체를 그대로 바닥에 꽂아버렸다.
콰아아아아앙-!
밀리터리 프레스 슬램이 작렬했다.
미젯보다 한층 더 무거운 티토가 사정없이 바닥에 내려 꽂히는 굉음은 아주 묵직했다.
물론, 그게 끝이 아니었다.
쿠우웅!
아벨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높이 뛰어올랐다.
육중한 거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높이 떠올랐다.
아벨은 짜릿한 해방감을 느끼며 기간트의 한쪽 무릎을 굽혔다. 바닥에 쓰러진 티토가 일어나려고 버둥거리는 게 보였다.
그의 기체는 그런 티토의 머리를 향해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콰지지직!
제대로 작렬한 니 드롭!
그 한 방에 단단한 티토의 머리는 산산조각이 났다.
아벨의 기체도 적지 않은 손상을 입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두 발로 섰다.
“미친…….”
누군가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은 아벨이 한 일을 지켜본 이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장내에는 때 아닌 침묵이 흘렀다.
아벨은 거친 숨을 진정시킨 후, 기간트를 통해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
아벨의 기체는 딱 봐도 손상이 심해 보였다.
거기에 격렬한 전투까지 치른 후이니 체력도 상당히 깎여 나갔을 터.
-아무도 없어?
그러나.
아벨을 향해 달려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아쉬운 목소리로 말을 끝마친 아벨은 다시 움직임을 재개했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본인이 가면 그만이니까.
그의 근처에 있던 이들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지만, 아벨은 그대로 달려가 가장 가까운 티토에게 주먹을 내리꽂았다.
콰앙-!
강렬한 굉음이 울려 퍼진 가운데, 응시자들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그 모습을 보면서 저들끼리 쑥덕거렸다.
“쟤가 걔죠? 클라인 백작가.”
“그런 것 같은데……. 백작이 어디서 자신과 똑같은 괴물을 데려왔군. 상대도 완전 천치는 아니었는데.”
“단순히 기간트를 잘 다루는 게 아니라 싸움에 이골이 난 것 같아. 안 그래?”
그 짤막한 전투를 보고 제법 날카로운 식견을 보이기도 하고.
“요새 도는 소문이 저 애랑 관련된 거 아닙니까?”
“그 동상? 그냥 헛소문이겠지.”
“헛소문이 아닙니다. 제펠 교수가 그때 그 자리에 있었는데 진짜 동상이 움직이면서 빛이 번쩍였답니다.”
한참 아카데미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가 잠잠해졌던 소문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또한, 단상 위에 선 제국의 거인도 아벨을 주목하고 있었다.
“흐음.”
마그누스는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동상에 얽힌 전설이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시험’이나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그는 설마 그걸 통과하는 이가 자기 대에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그 조건은 자신조차 넘지 못했으니까.
‘규격 외의 천재라.’
현시대는 과거와 다르다.
예전과는 달리 압도적인 천재 한 명이 수백, 수천의 병사를 대신할 수 있다.
그게 바로 아카데미에서 기간트 라이더를 육성하는 이유였다.
타국과의 전쟁에서 활약하는 것뿐만 아니라 ‘거신’을 상대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니까.
마그누스는 한참 동안 아벨을 바라보다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워낙 아벨의 재능이 화려하게 빛나서 그렇지, 원석이라 할 만한 이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눈엔 보였다.
보통의 경우라면 한 기수에 한 명만 나와도 대단하다 할 만한 천재들이 몇 명이나 더 있는 것을.
“재밌겠어.”
“예?”
마그누스는 옆에 서 있던 교수의 되물음에 대답 대신 그저 씩 웃기만 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는 이번 기수를 눈에 담았다.
슬슬 두 번째 시험이 끝나 가고 있었다.
* * *
장내에는 박살 난 티토의 잔해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시체가 없어서 그렇지 그 모습은 웬만한 전장 못지않았다.
아벨은 저걸 도대체 어떻게 치우려나 싶었지만, 마법사들이 나서서 마법을 쓰자 뒷정리는 순식간이었다.
“쟤가 걔지?”
“맞는 거 같은데?”
그때, 주변에서 나누는 대화 소리가 아벨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지금은 두 번째 시험이 끝나고 잠시 주어진 휴식 시간이었는데, 아벨은 편히 쉬기가 힘들었다.
‘생각보다 더 부담스럽네.’
시험 전에도 자신을 주목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두 번째 시험이 끝난 지금은 차원이 다른 관심이 쏟아지고 있었다.
애초에 확실하게 이목을 끌려고 더욱 눈에 띄게 날뛰긴 했지만 말이다.
특히 그가 박살 낸 기체의 주인들은 그야말로 타오르는 듯한 뜨거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건 바로 루크일 것이다.
‘거참.’
기본적으로 그는 악역으로 나오는 인물이라 성격은 개차반이었고 승부욕도 아주 강했다.
그런데 그냥 당한 것도 아니고 처참하게 깨졌으니 잔뜩 골이 날 만했다.
‘분명 나중에 개지랄하겠지.’
아벨에게 패하긴 했지만, 루크는 최종적으로 시험을 통과했다.
그게 가능했던 건 바로 이 시험의 통과 조건 때문이었다.
‘기체가 박살나든 말든 마지막에 서 있기만 하면 통과였지.’
루쿠는 기체가 거의 반파된 상태로 쭉 누워 기동 불능인 척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몸을 일으켰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 전략 자체야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나, 자존심 센 루크가 그런 방법을 택했다는 것이 놀라운 점이었다.
‘그래서 더 눈빛이 뜨거운 건가?’
아마 ‘나에게 이런 모욕을 겪게 하다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뻔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벨이 후환을 두려워하는 일은 없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른 기술을 써 봐야겠군.’
성격 더러운 놈이 상대라면 더 마음 편히 손을 쓸 수 있으니 오히려 기쁜 일이었다.
아벨은 뜨거운 시선을 무시하고서 휴식에 전념했다.
“자! 충분히 쉬었겠지!”
그로부터 15분 정도가 지나자 내부 정리가 완벽하게 끝났고, 마그누스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휴식이 끝났음을 알려왔다.
“즐거운 놀이는 방금 시험으로 끝이다. 이제부턴 본격적인 시험을 시작할 것이니, 모두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마그누스의 말에 남아 있던 이들은 몸을 떨었다.
앞으로 치를 시험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던 아벨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다음 시험들은 이전의 시험과는 전혀 다른 것들이었다.
아카데미의 시험은 크게 동조율과 마나 운용 능력, 그리고 체력을 평가한다.
방금까지는 필수 요소인 동조율을 평가한 것이고, 이 다음은…….
“이제 어디 한번 다들 근성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볼까!”
체력 차례였다.
“자! 다들 밖으로 나가!”
“뛰어! 뛰라고!”
단상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교수들이 아래로 내려와 소리쳤다.
미리 몸을 풀고 있던 아벨은 망설이지 않고 건물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세 번째 시험의 내용은 간단했다.
쓰러질 때까지 달리기.
너무 무식한 평가 방법이 아닌가 할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시험이었다.
‘얼마나 체력이 뛰어난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보이는 정신력이지.’
기간트를 다루는 데에 동조율만큼이나 중요한 게 바로 정신력이다.
동조율이 아무리 높다 해도 정작 멘탈이 안 좋으면 그것을 백 퍼센트 살릴 수가 없다.
어린아이에게 명검을 쥐어준 꼴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응시자들은 그렇게 건물 바로 뒤편에 있는 넓은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교수들은 한쪽에 서서 그런 응시자들을 관찰하며 무언가를 기록했다.
세 번째 시험은 몇 시간 동안이나 이어졌다.
“헉, 허억!”
“크허어억.”
곳곳에서 거친 숨소리가 울려 퍼졌다.
물론, 아벨이라고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동조율과는 달리 체력 면에서는 압도적인 수준까진 아니었으니.
“후우!”
반면, 체력 시험에서 확 두각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다.
특히 갈색 머리의 한 소년은 몇 시간 동안이나 달리고도 비교적 멀쩡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과연 저게 사람인지, 사람의 탈을 쓴 괴물인지 의심이 갈 정도의 모습이었다.
아벨은 그런 모습을 보고 더욱 힘을 내서 달렸다.
몇 번이나 한계가 찾아왔지만, 절대 쓰러지지 않았다.
“그만!”
그렇게 마침내 시험이 끝났을 때.
두 발로 땅을 디디고 서 있는 사람은 아벨을 포함해 오십이 채 안 되었다.
일찍이 뻗은 이들은 그런 사람들을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반면, 교수들은 눈을 반짝이고 있었고 말이다.
아벨은 시험이 끝나자마자 바닥에 쓰러지는 대신 숨을 가다듬으며 체력을 회복했다.
“자! 바로 네 번째 시험이다! 빨리 올라타!”
휴식 시간은 고작 10분.
곧장 네 번째 시험이 이어졌다. 시험의 내용은 티토를 탄 채 달리는 것이었다.
모두 그에 허겁지겁 티토에 올라탔다.
직접 달리는 게 아니라고 해서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모두 신체 피로만큼이나 정신적인 피로도 상당했으니까.
이는 세 번째 시험보다 더 노골적인 정신력 평가였다.
과연 극한의 상황에서도 기간트를 다룰 수 있는가를 보는 것이다.
네 번째 시험은 삼십 분이 넘게 이어졌다.
이번 시험 또한 가혹하긴 마찬가지였으나 아벨에겐 훨씬 나았다.
아벨은 다른 이들이 슬슬 지친 기색을 보일 때까지도 멀쩡하게 기체를 조종했고, 이번엔 감독관인 교수들마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최후에 남은 건 아벨을 포함해 겨우 스물 정도였다.
시험은 그 후로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마그누스의 “자, 다음!”이라는 외침이 들릴 때마다 모두의 얼굴에는 먹구름이 끼었고, 더 시간이 지난 후엔 다들 해탈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와중에도 아벨은 지치지도 않는 듯 대부분의 시험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와 비교할 수 있는 이들은 기껏해야 서너 명 정도. 그리고 그 서너 명이 마그누스가 말한 한 기수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인재들이었다.
물론 그조차도 몇몇 시험에서 앞서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뿐.
시험이 이어질수록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건 일관되게 아벨이었다.
“흐음.”
그렇게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끄는 가운데, 유독 더욱 뜨거운 눈빛으로 아벨을 보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마그누스였다.
마그누스는 눈을 반짝이면서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수석은 이미 정해졌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