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간트 아카데미의 천재가 되었다-13화 (13/138)

13화

기간트가 날고 있다.

“어……?”

멀찍이서 그걸 지켜보고 있던 카울은 입을 쩍 벌렸다. 주변의 다른 생도들의 반응도 다를 바 없었다.

후우우우웅-!

그전까지 졸고 있던 메이 또한 수십 톤은 족히 넘을 두 거인이 하늘을 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영원할 것 같던 그 비행은 굉음과 함께 끝이 났다.

클로에는 멍하니 상대 기간트를 쳐다보았다.

그 기간트에 타고 있는 건 1학년이다. 그것도 입학한 지 이틀밖에 안 된 병아리 중의 병아리.

“하, 하하.”

그녀는 뭔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 저도 모르게 웃었다.

비현실적인 장면에 놀란 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카울은 그래도 교사답게 빨리 정신을 차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꿈인가?”

*       *       *

다행히 피해는 크지 않았다.

밀레스 급 기간트는 고작 몸통 박치기 한 번에 박살 날 정도로 부실하지 않았기에, 내부에 타고 있던 아벨과 클로에도 멀쩡했다.

대략 상황 정리가 끝난 후, 아벨은 카울과 대화를 나누었다.

카울은 한눈에 보기에도 혼란스러워보였다.

“아니, 거기서…… 스읍.”

교사로서 이걸 혼내야하는 건지 칭찬을 해야 하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름대로 연륜 있는 교사를 당황하게 할 정도로 아벨의 행동은 충격적이었다.

입학한 지 이틀밖에 안 된 생도가 한 일이라기엔 전혀 믿기지 않는 수준이었다.

클로에가 누구인가?

숱한 훈련과 실전을 치른 3학년생 중에서도 특출하기로 유명한 생도이다.

아벨은 그런 그녀의 기간트를 조금 물러나게 한 것도 아니고 아예 날려버렸다.

그 본인도 같이 날아가긴 했으나, 그건 중요치 않다.

카울은 잠시 입을 다물고서 아벨을 바라보다가 저 멀리 서 있던 생도들의 시선을 느끼고는 다시 말을 꺼냈다.

“아까 그건…… 비전이냐?”

처음 클로에의 기체에 접근할 때 보였던 기묘한 몸놀림과 근거리에서 보여주었던 폭발적인 힘.

그게 평범한 기간트 운용이 아니라는 것쯤은 카울도 잘 알고 있었다.

카울도 교사이기 이전에 오래도록 전장을 수없이 헤쳐 왔던 기간트 라이더니까.

아벨은 카울의 질문에 담담하게 답했다.

“예. 최근에 개발하고 있던 겁니다.”

“뭐?”

카울은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네가 개발했다고?”

“예.”

아벨은 당당한 표정으로 카울을 바라보았다.

굳이 자신이 개발한 거라고 한 이유는 그게 가장 자연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이야 우연히 익혔던 거라고 하거나 가문의 비전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스킬을 퀘스트 보상으로 받는 일은 이번이 끝이 아닐 터.

그때마다 적당히 둘러댈 수는 없었다. 매번 핑계를 댔다간 오히려 더 의심을 살 수도 있으니까.

차라리 처음부터 당당하게 나가는 게 낫다.

‘처음에는 꽤나 의심을 받겠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이쪽이 훨씬 합리적이지.’

어차피 아예 전례가 없는 일도 아니었다.

애초에 비전이라는 것들도 모두 누군가가 만들어서 존재하는 거니까.

물론, 비전을 만든 이들은 대부분 천재로 불리던 이들이지만 말이다.

‘어차피 눈에 띄게 활약하는 게 목표니까.’

아벨의 현재 신세와 이 세계의 미래를 생각하면 최대한 눈에 띄고 화려하게 활약하는 게 맞았다.

힘을 숨기고서 살아가기엔 너무도 험난한 세상이었으니까.

적어도 아벨은 그렇게 생각하며 행동하고 있었다.

“허. 거참.”

카울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아벨에게 거짓말하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다.

아벨이 수석이며 동시에 동상에 관한 소문의 당사자인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말 괴물이란 말인가.’

카울은 복잡한 눈으로 아벨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알겠다. 좀 과격하긴 했다만, 좋은 수였다. 상대가 생각지 못한 수단으로 목표를 이루었으니까. 온실 속의 화초를 키우려는 것도 아니니 수단의 과격함을 책망하는 건 멍청한 짓이지.”

카울은 그리 말하며 품에서 종이 두 장을 꺼내 건넸다.

텔리시움 1㎏과 10㎏ 증정권이었다.

하단에는 교장만 소유하고 있는 아카데미의 공식 인장이 찍혀 있었다.

“공방에 가서 이걸 주면 텔리시움을 그 자리에서 받거나 이걸로 원하는 걸 만들 수 있을 거다. 아니면 가격에 맞는 물건으로 받을 수도 있고. 설마 진짜로 주는 일이 생길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카울은 쩝 입맛을 다셨다.

교사 월급이 짠 편은 아니었지만, 텔리시움 10㎏의 가치는 절대 작지 않았다.

‘내 무장을 만들려고 샀던 건데.’

카울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종이를 내밀었다.

“저…….”

“응?”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아벨의 질문에 카울은 그제야 자신이 손에 꽉 힘을 주고 있었단 걸 깨달았다.

“크흠. 그래. 여기 있다.”

카울은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아벨은 그 손에 힘이 풀리자마자 증정권을 낚아챘다.

“감사합니다.”

아벨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종이를 품에 넣었다.

그리고는 어쩐지 기운이 빠진 카울을 따라서 다른 생도들이 서서 기다리고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이후 다시 실습이 재개되었다.

아벨이 보인 활약에 고무된 건지, 의외로 그의 뒤 차례들은 최소 가동까지는 성공했다.

특히 다니엘은 몸을 일으키는 것까지 성공해서 주변을 놀라게 했다.

콰아아아앙-!

세 발자국을 걷자마자 발이 꼬여 그대로 넘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카울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다니엘에게 텔리시움 증정권을 줬다.

세 발자국을 걷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긴 하니까.

‘어차피 이건 내 돈으로 산 게 아니거든!’

그 후로 몇 차례의 실패가 더 이어지고 마지막 순번이 왔다.

“메이. 앞으로 나와라.”

어느새 다시 졸고 있던 메이는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아, 네.”

아벨은 그녀가 카울의 지시를 받아 밀레스에 탑승하는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

비록 그녀가 시도 때도 없이 조는데다가 멍한 인상이긴 했지만, 아벨은 메이의 재능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잠재력만 따지면 최상급이라 할 만하니 어쩌면 놀랄 만한 모습을…….

“안 되네요.”

……보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밀레스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카울은 원래 어려운 일이라며 낙심하지 말라고 메이를 위로했지만, 아벨은 다르게 생각했다.

‘아니, 애초에 시도도 안 한 것 같은데?’

그 메이가 가동조차 못할 리가 없었다.

저건 누가 봐도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다시 나온 거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벨뿐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메이가 지닌 재능의 크기를 알고 있지 못했으니까.

아벨은 묘하게 아쉬움이 서린 눈빛으로 메이를 보았다.

아벨이 메이에게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단순했다.

‘어떻게든 빨리 의욕을 불어넣어 줘야하는데.’

그건 바로 혼자서 강해져봤자 의미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남 일인데 무슨 상관이냐면서 넘길 수는 없었다.

애초에 아카데미에 들어온 이유가 무엇인가?

메인 스토리에 합류하기 위해서다.

‘단순히 편하게 먹고살 거였으면 그냥 불카누스 밑에서 쭉 일했겠지.’

인간 장인 중에서는 독보적인 위치의 장인인 불카누스에게 실력을 인정받은 아벨이었다.

탄탄대로까진 아니어도 얼마든지 무탈한 삶을 살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벨은 그러지 않았다.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멸망해버릴 이 세계의 미래를.

그것을 막기 위해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이었다.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 있던 아벨은 카울의 우렁찬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자! 놀라운 활약을 보여준 친구들도 있지만, 원래는 가동조차 힘든 게 정상이니 너무 시무룩해 하지 마라.”

그리 위로를 건넨 카울은 생도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어차피 다들 지쳤을 테니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마! 모두 고생했다.”

그 말에 생도들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15분이나 일찍 수업이 끝났기 때문이다.

아벨도 속으로 카울이 생각보다는 더 좋은 교사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디 가지?”

“그러게.”

수업이 끝난 생도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일찍 끝났다고는 해도 이제 고작 첫 수업이 끝난 것뿐이라서, 잠시 쉬겠다고 기숙사를 갔다 오기엔 너무 멀었다.

카울은 병아리들이 짹짹거리는 모습을 보고는 한 마디를 더 했다.

“다음 수업은 초급 무기술이지? 그쪽 건물로 가다 보면 작은 공원 하나가 있을 테니까 갈 데 없으면 거기서 쉬어.”

“아, 네!”

그 친절한 설명에 생도들은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는 이동하기 시작했다.

아벨도 자연스레 그 무리에 합류하려고 했지만, 누군가 그를 불러 세웠다.

“아벨 맞나?”

클로에였다.

“예. 맞습니다.”

“아까는 제법이던 걸. 깜짝 놀랐어.”

클로에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본래 쾌활하고 붙임성이 좋은 성격이란 걸 잘 알고 있던 아벨은 당황하지 않고 마주 웃으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그래. 1차 실습 때 활약 기대할게.”

클로에는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흔들며 다시 기간트 쪽으로 걸어갔다. 정말 그냥 간단히 인사나 나누자는 생각으로 말을 건 듯했다.

‘1차 실습이라.’

빨라도 4주 후겠지만, 빡빡한 커리큘럼을 생각하면 금방 지나갈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곳의 실습은 아벨도 나름 기대하고 있었다.

클로에가 기간트에 올라타는 걸 본 후 몸을 돌리자 저만치 걸어가고 있는 동급생들이 보였다.

‘의리 없는 놈들.’

이 정도는 좀 기다려주지, 라고 생각하려던 찰나 멀뚱멀뚱 서 있는 녀석이 한 명 보였다.

“아벨! 가자!”

바로 다니엘이었다.

“어, 그래.”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에 아벨은 떨떠름해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발을 뗐다.

하지만 아벨은 자신의 선택을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후회했다.

“정말이지 아까 네가 갑자기 움직였을 때는 심장이 떨어지는 줄……. 나는 처음 기간트를 탔을 때……. 그래서 말이야. 아, 내 말 듣고 있지?”

“……그래.”

다니엘은 생각보다 더 말이 많았다.

귀가 아플 정도로.

*       *       *

아벨은 체력이 꽤나 좋은 편이었다.

본래부터 열심히 단련하기도 했고, 백작가에 양자로 들어간 후에는 그보다 몇 배는 더 혹독하게 훈련했다.

그러다 보니 본인도 나름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죽겠다.”

그러나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은 상상 이상으로 더 힘들었다.

‘시험만 빡셌던 게 아니네.’

아벨은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시험 때 미친 듯이 굴리던 걸 보고 알아챘어야 했는데’

게임으로 봤을 때야 클릭 몇 번이면 넘어가는 장면이었기에 깊이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이미 기간트 탑승으로 체력이 빠진 상태에서 무기술 수업에 가니, 거의 2시간 동안 미친 듯이 굴려댔다.

하지만 그조차 마지막의 체력 단련 시간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그땐 진짜 죽을 것 같았으니까.

마지막 수업이 끝났을 땐 체력은 자신 있다던 다니엘 녀석도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후우.”

앞으로 이런 생활이 계속 반복될 걸 생각하면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본래 기간트 라이더 과정은 평범한 인간이 아닌 초인을 만들어내는 걸 목표로 하니까.

그래도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우선 첫 수업 때 받은 텔레시움 11㎏.

단 1㎏만으로도 만들 게 수십 가지는 생각나는데, 11㎏이면 말할 것도 없다.

분명 전력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을 터였다.

‘자기 기간트는 자기가 챙겨야 하는 곳이니까.’

이곳은 아카데미이긴 해도 기간트 사양을 통일한다던가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편이었다.

형평성? 기간트에 한해선 돈이 많은 것도 재능으로 간주했다.

아니면 괴물같이 뛰어난 재능을 보여서 아카데미의 지원을 받던가.

아벨만 해도 벌써 텔레시움 11㎏을 얻었고, 곧 밀레스 급 기간트 1대도 지원받기로 하지 않았는가.

여기는 그런 곳이다.

‘앞으로도 챙길 수 있는 건 모조리 챙겨야 해.’

아벨은 아카데미에 관해 생각하다가 적당히 끊고는 다시 원래 생각하던 주제로 돌아갔다.

얻은 건 텔레시움뿐만이 아니었다. 물질적인 것 외에도 소득이 있었던 것.

아벨은 그걸 직접 확인하기 위해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러자 시커먼 어둠 속에서 환한 빛이 떠올랐다.

상태창만이 아니었다. 그 위로 새로운 창이 하나 더 떠올라 있었다.

오늘. 아카데미에서의 첫날을 마치자마자 새로운 시스템이 개방된 것이다.

[도전 과제 목록]

[아카데미의 모든 장소 가보기]

[본인 소유의 기간트 얻기]

[실습에서 만점 달성하기]

[카울을 고릴라라고 불러보기]

[친구 5명 이상 만들기]

[…….]

게임의 꽃.

도전 과제였다. 그리고 이 게임의 도전 과제는 하나하나가 후한 보상이 있기로 유명했다.

거기에 100% 달성했을 때에 주어지는 보상은 상상 이상이었다.

아벨이 흥분한 이유가 있었던 것. 그는 들뜬 마음으로 도전 과제를 쭉 살피다가 어느 한군데에서 멈추었다.

‘이건 내일 달성할 수 있겠네.’

그 항목은 다름 아닌 ‘거신의 파편과의 첫 대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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