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간트 아카데미의 천재가 되었다-23화 (23/138)

23화

영광의 벽이 습격당한 일은 아벨의 예상대로 제국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전력의 적이 쳐들어왔거나, 방비가 특별히 허술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껏 한 번도 발견된 적 없는 특수한 능력을 지닌 개체의 등장. 그리고 지능적으로 빈틈을 찔렀다는 점.

그것은 앞으로 거신과 그 군세를 상대하는 전략을 토대부터 철저하게 바꾸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며칠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혼란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아벨은 나중에 큰 상을 받을 거란 이야기만 듣고 다른 특별반 생도들과 같이 며칠간의 휴식을 받았다.

여기까진 예상한 대로였다.

그러나 아벨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도 있었으니.

‘엄청나게 부담스럽네.’

타오르듯 붉은 머리칼. 마찬가지로 붉은색의 수염.

부리부리한 눈매와 옷 너머로도 보이는 어마어마한 근육. 그리고 험상궂은 인상까지.

워낙 인상적인 외모인지라 누군지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벨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델 키오르 공작님.”

델 키오르 공작.

바로 델 키오르 공국의 주인이자 헤나의 아버지였다.

‘도대체 왜…….’

아벨이 전혀 예상 못했던 것.

그건 바로 공작과의 독대였다.

아카데미까지 찾아온 것 자체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공작은 굉장한 딸 바보로 유명했으니까.

그러니 하나뿐인 딸이 죽을 뻔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건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왜 나를 콕 집어서 독대를 청했냐는 건데.’

아벨은 긴장 어린 눈으로 델 키오르 공작을 바라보았다.

“흠.”

공작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아벨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벨 클라인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이번 일에 공이 크다고 들었다. 네가 아니었으면 피해가 컸을 거라더군.”

“그…… 그런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아벨은 잠깐 말을 더듬긴 했지만, 다행히 예의 바르게 답변할 수 있었다.

공작은 잠시 또 침묵했다가 갑자기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크흠. 앞으로의 활약도 기대하마. 이건 내 개인적인 선물이다.”

“아…… 감사합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아벨은 당황스러워하면서도 늦지 않게 답했다.

하지만 더욱 당황스러운 건 그 다음이었다.

공작이 아벨의 대답을 듣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럼.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보지.”

그러고는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 아닌가.

아벨은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왜 부른 거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머리가 그대로 굳은 것 같았다.

아벨은 볼을 긁적이다가 아무 생각 없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주머니를 열어보았다.

그리고 이윽고 그의 입에선 격한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워. 미친.”

그 안에는 금화가 잔뜩 들어 있었다.

*       *       *

델 키오르 공작이 왜 독대를 청했는지, 그리고 왜 갑자기 금화 주머니를 안겨주었는지는 의외로 쉽게 알 수 있었다.

공작과 독대를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헤나가 찾아온 것이다.

“후우. 정말 아빠가 이상한 말 안 했지?”

“어. 근데 정말 이거 그냥 받아도 되나?”

“뭐. 너 쓰라고 주신 건데 당연히 받아도 되지. 이상한 말 안 했으면 됐어.”

헤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빠를 잡으러 가야겠다며 훌쩍 떠났다.

독대를 마친 후 갑작스레 찾아온 헤나가 한 말은 이러했다.

영광의 벽 사건 이후, 헤나는 공작과 대화를 나누다가 아벨의 활약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걸 들은 공작은 큰 관심을 보였고, 아카데미에 오자마자 아벨에게 독대를 청한 것.

아벨은 저 멀리 잰걸음을 옮기고 있는 헤나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공작이랑 성격이 비슷하네.’

할 말만 하고 휙 가버리는 점이 특히 닮았다.

아벨은 손에 들린 주머니를 보다가 우선 품에 집어넣었다.

돈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잘된 일이었다.

클라인 백작가에서 얼마간 지원을 받긴 하지만, 그래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돈이 많은 건 당연히 좋았다.

‘마침 돈 쓸 곳도 있었는데 잘됐네.’

아벨은 그리 생각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일어나자마자 샤워만 하고 공작과 독대를 한 것이라 배가 출출했다.

먼저 식사부터 해결할 생각으로 식당으로 갔는데, 안에 들어서자마자 밥을 먹고 있던 생도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이전에도 시선을 받는 일은 많았으나, 지금은 그때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번 일은 그 스케일부터가 달랐으니까.

‘익숙해져야지.’

이런 것에 부담스러워하거나 우쭐할 생각은 없었다.

아벨 자신이 계획하고 목표로 삼은 것들에 비하면 이번 일은 작디작은 일일 뿐이니까.

“아벨!”

접시에 음식을 담고 자리를 찾는데 누군가 그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니 다니엘이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일부러 음식을 담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부른 듯했다.

그 옆에는 샬롯과 리안이 앉아 있었다.

아벨은 그쪽으로 걸어가 빈자리에 앉았다.

“몸은 좀 괜찮아?”

자리에 앉자마자 다니엘이 질문을 건넸다.

아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럭저럭.”

전투가 끝난 후, 아벨은 그대로 기절했었다.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끌어다 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쓰러진 후 꼬박 12시간이 지난 후에야 일어났으니 걱정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내내 최상급의 치료를 받았는데도 후유증이 남을 정도로 몸이 만신창이였으니…….

하지만 다행히도 지금은 아주 멀쩡했다. 퀘스트의 추가 보상으로 치료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벨은 큼지막한 고깃덩이를 포크로 푹 찌르며 예의상 되물었다.

“너는?”

“나도 괜찮아. 훈련을 못해서 몸이 좀 쑤셔서 그렇지.”

빈말이 아니라 다니엘은 한눈에 보기에도 멀쩡해 보였다. 분명 전투할 때 꽤나 무리했을 텐데도.

물론, 아벨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부럽네.’

다니엘은 괴물 같은 체력 그 이상으로 엄청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미친 듯이 훈련을 하고도 기운찬 모습이, 그냥 단순히 성격이 그런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다니엘이 가진 특성도 불굴이었지.’

이런저런 효과가 있는, 무려 S급 특성이었다.

아벨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옆에 앉은 샬롯이 한 마디를 했다.

“쉬라고 하면 푹 쉬어야지. 난 아직도 온몸이 쑤시는데.”

“맞아……. 죽을 것 같아.”

리안도 옆에서 한 마디를 거들었다.

둘은 아벨 이상으로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온몸에 붕대를 감고 골골대고 있었다.

아벨도 따로 치료제를 복용하지 않았다면 아마 비슷한 꼴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휴식이 주어져서 다행이군.’

당시 현장에 있던 특별반 생도 전원은 이틀 후까지 강제 휴식이었다.

훈련은 절대 금물이며 무조건 푹 쉬면서 요양하라는 명이 내려왔다.

다니엘은 답답하다느니 뭐라느니 하면서 구시렁대다가 아벨을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오늘 밖에 나간다며?”

“어. 잠깐 나갔다 오려고.”

원래 외출은 주말에만 나갈 수 있지만, 지금은 지난 사건으로 잠시 수업이 멈춘 상태였다.

단순히 특별반 생도들 때문만이 아니라 교사들 상당수가 소집되었기 때문이다.

교사는 현역에서 물러난 이들도 많지만, 대부분이 지난 대전쟁 때 활약한 이들이었다.

즉, 거신을 상대한 경험이 많다는 뜻이다.

‘아카데미랑 아예 관련이 없는 사건도 아니고.’

어찌 됐든, 덕분에 아벨은 외출할 기회를 얻었다.

물론, 모든 생도가 자유롭게 외출할 권리를 얻은 건 아니었다.

아벨은 세운 공도 있고 본인의 강한 요청으로 특별히 허락을 받은 것뿐.

그가 또 잠시 딴생각에 빠진 사이, 다니엘을 비롯한 이들은 또 한마디씩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외출 신청이나 할 걸 그랬나. 으으.”

“나가서 사고 치지 말고 기숙사에나 있어.”

“내가 뭔 사고를 쳐?”

아벨은 투덕거리는 그들 사이에서 조용히 식사를 이어갔다.

가장 늦게 앉았지만, 제일 먼저 일어난 것도 그였다.

“나 먼저 간다.”

“어, 어.”

식기를 반납하고 배웅을 받으며 식당을 빠져나온 아벨은 곧바로 기숙사 밖으로 향했다.

이미 아침에 나올 때 필요한 건 모두 챙겼기에 따로 방에 들를 필요는 없었다.

기숙사 밖으로 나오자 삼삼오오 모여서 학교를 거니는 생도들이 보였다.

“야야, 저기.”

“어? 쟤가 걔 맞지?”

식당에 들어섰을 때처럼 많은 시선과 목소리가 그를 향했지만, 아벨은 신경 쓰지 않고 길을 따라서 쭉 걸어갔다.

아카데미가 워낙에 넓어서 정문까지 가는 데에는 시간이 꽤나 많이 걸렸다.

오늘 들르려는 곳에 비하면 아주 짧은 거리였지만.

“오셨습니까.”

다행인 건 목적지까지 걸어갈 필요는 없다는 점이었다.

정문에는 클라인 백작가에서 보낸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오늘 외출을 위해 백작이 직접 마차를 보내준 것이었다.

아벨은 마부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짤막한 대화 후 아벨은 마차에 올라타 목적지를 이야기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곧이어 마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아카데미를 빠져나와 한참을 달린 마차가 멈춰선 곳은 제법 외진 곳이었다.

“도착했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아벨은 마차에서 내려 익숙한 거리를 둘러보았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예.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마부와 대화를 나눈 아벨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까지는 살짝 거리가 있었다.

일부러 목적지와는 조금 먼 곳에 내려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시선을 끌고 싶지 않기도 했고 조금 걷고 싶어서였다.

‘여긴 똑같네.’

이곳은 바로 아벨이 내내 살던 거리였다.

거리는 그가 떠나기 전과 전혀 다른 게 없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고작 한 달 만에 변해봤자 뭐 얼마나 변할까.

길거리에는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술이나 무언가에 취해 널브러진 사람들이 가득했고, 붉게 충혈된 눈으로 아벨을 노려보는 이도 있었다.

“끄으으으으…….”

아벨은 취객의 신음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쭉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이 거리에 들어선다면 좋은 꼴은 못 볼 것이다.

그러나 아벨에게 섣불리 접근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차에서 내렸을 때부터 일부러 날카로운 기세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얼마 전까지 이 거리에 속해있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밑바닥 인생이라 하더라도 자기 목숨을 걸고 장난질하는 놈은 없다는 것을.

캉, 카앙-!

한참 걷다 보니 저 멀리서 금속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벨은 익숙한 그 소리에 씩 웃었다.

소리가 들린 곳으로 걸어가자 주변의 허름한 건물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건물이 보였다.

지금이야 큼직큼직한 건물들에 익숙해져 있지만, 처음 저 건물을 보았을 때만 해도 입이 떡 벌어졌었다.

아벨은 공방 건물을 올려다보며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맨 처음 불카누스를 만났을 때를.

‘어째서 돈도 많은 양반이 이런 곳에 자리를 잡았냐고 물어봤었지.’

그에 대한 불카누스의 대답은 간단했다.

‘이런 곳에 있는 공방을 찾아올 정도는 되어야 진짜 손님이지. 쭉정이는 받을 생각 없어.’

그에 아벨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었다.

아벨은 피식 웃으면서 공방으로 걸어갔다.

카캉-!

가까이 갈수록 망치 소리가 점점 커졌다. 커다란 문의 위에는 공방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불카누스 공방’

간단하기 그지없는 이름이다.

아벨은 망설임 없이 건물로 다가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나무로 만들어진 계산대와 거기에 서 있는 여인이었다.

“어서 오세…… 어머!”

그녀는 귀찮음이 팍팍 묻어나오는 말투로 말을 하다가 아벨을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아벨?”

“응. 오랜만에 보네.”

“누님한테 응이 뭐니 응이? 존댓말 하라니까.”

여인은 투덜거리면서도 반가워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의 이름은 카야. 공방의 직원이다.

하는 일은 손님 가려 받기. 손님이 오면 귀찮아하기. 심심하면 퍼질러 자기 등이 있다.

아벨은 어째서 그녀가 잘리지 않는 건지 궁금해 했었는데, 이유는 시시할 정도로 단순했다.

카야가 불카누스의 딸이기 때문이다.

아벨은 미소를 지으며 카야에게 말했다.

“알았어. 노력해볼게. 영감은?”

“안에 있지. 들어가 봐.”

“일 방해한다고 화내는 거 아니야?”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다고.”

“그건 그렇지.”

카야의 심드렁한 대답에 아벨은 키득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공방에서 그와 나이대가 비슷한 사람은 카야뿐이었기에 그녀와는 제법 친분이 깊었다.

카야는 안쪽으로 향하는 아벨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살아 돌아와.”

“노력해볼게.”

아벨도 마주 손을 흔들며 안으로 들어갔다. 문 안쪽으로 들어가자 점점 열기가 강해지는 게 느껴졌다.

이어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불카누스 공방은 그 큰 규모만큼이나 많은 사람이 일한다.

내부에는 덩치가 커다란 사내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개중 한 명이 아벨을 보고는 깜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어, 아벨!”

“아벨이라고?”

한참 일하는 중이었기에 그들은 일하던 자리에서 손을 흔들며 반가운 기색을 드러냈다.

“다들 오랜만이에요!”

아벨은 적당히 인사를 받아주며 계속 안쪽으로,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공방의 가장 안쪽에 도착하자, 드디어 만나러 온 사람이 보였다.

“영감.”

캉, 캉, 카앙-!

대답 대신 날카로운 소음이 귓구멍을 파고들었다.

아벨은 땀을 뻘뻘 흘리며 망치질을 하는 불카누스를 보며 팔짱을 꼈다.

불카누스는 거의 10분이 넘게 망치질을 한 후에야 고개를 들었다.

“빨리도 왔구나.”

불카누스의 질문에 아벨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물건은 잘 받으셨습니까?”

“그래. 그거 아니었으면 방해하지 말고 나중에 오라고 했을 거다.”

그도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불카누스는 뛰어난 장인이다. 그리고 뛰어난 장인이 으레 그렇듯 희귀한 소재에 환장한다.

아벨은 지난번 카울에게서 뜯어낸 텔레시움을 모조리 이곳으로 옮겨달라고 했다.

“텔레시움을 11㎏나 써서 도대체 뭘 만들려는 거냐.”

“그야 이미 정해진 거 아니겠습니까.”

아벨은 미리 생각해두었던 대답을 꺼냈다.

“무기. 그것도 거대한 양손 검으로 부탁합니다.”

아벨은 확실한 공격력을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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