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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트 아카데미의 천재가 되었다-29화 (29/138)

29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벨의 말에 훈련장 내에는 스칼렛의 맑은 웃음이 울려 퍼졌다.

“하하하. 그런 태도 아주 마음에 들어.”

단순히 말뿐이 아닌지 스칼렛은 아벨의 어깨까지 두드려주고는 한 마디를 더했다.

“그럼 나도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보상을 준비해줄 테니, 꼭 받아가라고.”

“예!”

“그래. 그럼, 나는 이만 가보도록 하지. 아직 일이 남아서.”

스칼렛은 그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아벨은 그녀가 나간 걸 확인한 후에야 등을 돌려 루푸스를 바라보았다.

“흐음.”

이틀.

이틀 후면 저 루푸스를 타고서 칼날 꼬리와 싸운다.

아예 걱정이 안 된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전투 자체는 그리 큰 걱정이 없었다.

고작 일주일 전에 티토를 타고서 제대로 된 실전을 치러보았기 때문이다.

‘칼날 꼬리면 좀 더 까다롭긴 하겠지만.’

그래도 생사를 넘나들었던 지난 실전과 비교할 수는 없을 테니까.

오히려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쪽은 그날 올 참관인들 쪽이었다.

‘당분간 눈에 띄는 일은 자제하기로 했지만 이건 예외지.’

눈에 안 띄려고 하다가 성적을 말아먹으면 오히려 본말전도다.

무엇보다 단순히 잘 싸우는 걸로는 의심을 살 일은 없을 터였다.

‘단순히 재능이 뛰어나고 잘 싸운다고 첩자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조심해야 할 건 말 그대로 ‘수상한’ 행위였다.

게임 내의 지식을 활용해서 아무도 모르는 이득을 얻는 것 같은 거.

대번에 의심을 사기 쉬운 일이 아닌가.

당분간은 대놓고 그런 이득을 취하는 걸 자제할 예정이었다.

당분간은.

“좋아.”

아벨은 생각을 정리하고서 루푸스에 가까이 다가갔다.

예상치 못한 스칼렛의 방문에 이미 시간은 꽤나 흐른 후였다.

오늘만 날이 아니니 이만 마무리하고 돌아가야 했다. 내일도 일찍 일어나 훈련을 해야 하니.

루푸스에 가까이 다가간 아벨은 차가운 금속 위에 손을 올리고서 말했다.

“이틀 후엔 오늘처럼 감질나게 움직이는 게 아니라, 제대로 뛰어놀 수 있을 거다.”

그 말은 루푸스를 향한 것이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가동을 종료하면서 루푸스의 의식도 가라앉았을 거다.

아벨은 그렇게 할 말을 끝내고서 몸을 돌렸다.

*       *       *

넓은 운동장 한편에 선 아벨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오늘도 푸르기만 했다.

“아벨!”

그때, 다니엘이 아벨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다.

막 체력 단련이 끝나서 지칠 만도 한데 다니엘은 쌩쌩하기만 했다.

아벨은 고개를 내리며 물었다.

“넌 어떻게 그렇게 매번 기운이 넘치냐?”

“응? 오늘은 평소보다 더 일찍 끝났으니까!”

“그걸 물어본…… 아니다. 가자.”

계속 대화해봤자 힘만 빠질 것 같았기에 아벨은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다니엘이 바로 옆으로 따라붙으면서 입을 열었다.

“바로 갈 거지?”

“그래야지. 일찍 와서 기간트랑 전장을 점검해도 좋다고 했으니까.”

“맞아. 아, 메이! 이리와!”

이야기하던 도중 다니엘이 번쩍 손을 들며 소리쳤다.

한쪽에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메이는 다니엘의 외침에 움찔 몸을 떨었다.

다니엘은 빠르게 뛰어가 그런 메이를 억지로 끌고 왔다.

아벨은 아직도 메이랑 그리 친분이 있는 편은 아니었지만 어색함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아니 그래서 어제는 내내 목검만 휘둘렀다니까? 이게 차라리…….”

다니엘이 세 사람 분 몫을 혼자서 떠들었기 때문이다.

쉼 없이 떠들어대는 입을 틀어막고 싶다는 충동이 들 때쯤.

“아벨! 다니엘!”

헤나가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달려왔다. 그녀는 가까이 와서야 메이를 발견하곤 그녀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메이! 너도 있었구나!”

“응…….”

“오늘은 더 기운이 넘쳐 보이네!”

“응…….”

물론, 그녀가 왔다고 해서 상황이 더 나아지지는 않았다.

헤나도 다니엘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수다쟁이였으니까.

메이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는 것도 그와 연관이 있으리라.

아벨은 최대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오늘 실습이 진행되는 곳은 그리 멀지 않았다.

‘저긴가 보군.’

특별 수업은 그날 수업 내용에 따라 그때그때 강의실이 바뀐다.

오늘 같은 경우에는 지난번 모의전을 치렀던 바로 그곳이었다.

“일찍 왔구나.”

그쪽으로 가까이 가자 특별 수업을 담당하고 있는 재클린이 아벨과 다른 생도들을 반겼다.

다른 생도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했다.

아벨은 깍듯하게 인사를 하면서 대답했다.

“예. 미리 와서 기간트랑 전장을 확인하고 싶어서요.”

“훌륭한 태도야. 기간트는 저쪽에 엔지니어들이 점검을 하고 있으니 가서 확인하렴.”

“예.”

“알겠습니다!”

“네!”

대답한 아벨은 다른 생도들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기간트가 어디에 있는지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밀레스 급 기간트 여덟 대가 나란히 누워있는 모습은 아주 멀리서 봐도 눈에 띄었으니까.

가까이 다가가자 기간트 주변에 있는 엔지니어들이 보였다.

그냥 수업을 진행할 때는 격납고 안에서 점검이 끝난 후에나 기간트가 나오기 때문에 그들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여기서부터는 각자 기간트를 점검하자.”

“그래.”

“응.”

네 명 중에 개인 기간트가 있는 건 아벨과 헤나뿐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도 오늘 쓸 기간트가 어떤 상태인지 정도는 확인해야 했기에 급히 걸음을 옮겼다.

아벨은 아벨대로 루푸스가 누워있는 곳으로 갔다.

그의 기간트엔 스칼렛이 수여한 무장이 장착되어 있어서 헤맬 필요가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루푸스가 있는 곳으로 걸어간 아벨은 먼저 기체를 점검하고 있던 엔지니어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기체를 확인하러 오셨습니까?”

“네. 따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기간트에 타기 전에 간략하게 상태 설명을 듣는 건 흔한 일이기에, 엔지니어는 곧바로 다른 사람을 불러왔다.

아마 보조 엔지니어를 불러오는 것이리라.

보통 설명은 보조의 몫이니까.

아무 생각 없이 기다리고 있던 아벨은 곧 누군가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

아벨은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고 곧 눈을 크게 떴다.

달려오는 사람은 푸른색 머리칼에 두꺼운 안경을 쓴 여인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꽤나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비슷하게 생긴 것일 수도 있지.’

아벨은 확실하게 하기 위해 급히 달려온 보조 엔지니어에게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아벨이라고 합니다.”

“아, 네, 네! 저는 테마린이라고 합니다! 루푸스의 마스터 분 맞지요?”

“그렇습니다.”

질문에 대답하면서 아벨은 동시에 눈을 반짝였다.

테마린. 아벨이 예상했던 바로 그 이름이었다.

‘벌써 만날 줄이야.’

아벨이 테마린을 보고 놀란 이유는 그녀가 게임에서 손꼽히는 엔지니어였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냐면 고작 몇 년 사이에 ‘불카누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였다.

‘나중에 시간이 될 때 찾아보려 했는데, 잘 됐군.’

아벨은 이미 불카누스와 인연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테마린과는 친분을 쌓을 필요가 있었다.

불카누스와 테마린의 전문 분야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불카누스는 말하자면 ‘제작’ 쪽에 특화되어 있었다. 대장장이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반면, 테마린은 발명가 포지션에 가까웠다.

새로운 장비를 발명하고 기존 장비를 개선하는 부분에선 그야말로 천부적이었다.

“저, 아벨 씨? 보고를 드려도 될까요?”

아벨은 테마린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녀를 앞에 두고서 너무 딴생각에 빠져 있었던 것.

“아, 죄송합니다. 보고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테마린은 씩씩하게 루푸스의 점검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보고 내용에 딱히 특별한 점은 없었다. 아직 수업 내용이나 개인 훈련만 했을 뿐 전투 같은 건 치르지 않았으니까.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아벨은 그리 대답한 후, 잠시 고민했다가 입을 열었다.

“테마린 님.”

“예?”

막 몸을 돌려 가려던 테마린은 아벨의 부름에 엉거주춤 멈추어 섰다.

아벨은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혹시 개인적으로 보셨을 때 개선할 만한 부분은 없나요?”

“개, 개인적으로요?”

테마린은 깜짝 놀라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른 엔지니어들이 들을까 두려워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상한 반응은 아니었다. 테마린은 어디까지나 보조 엔지니어니까. 물론, 그녀의 성격이 소심한 편인 것도 한 몫을 하는 것 같았지만.

“네. 아, 물론 불편하시면 말씀 안 해주셔도 됩니다.”

아벨도 강요할 생각은 없었기에 그리 말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테마린은 입을 떠듬거리다가 곧 용기를 낸 듯 말을 꺼냈다.

“사실…… 있긴 있어요.”

“그렇습니까?”

“네. 그런데 아무래도 짧게 설명하기엔 무리가 좀 있어서요.”

아벨은 그 말에 고민 없이 답했다.

“그럼 나중에 따로 만나서 얘기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따, 따로요?”

“네. 제가 개인 훈련장이 있어서요. 엔지니어분들 공방이 바로 붙어 있는 걸로 아는데요.”

테마린은 아벨의 제안에 얼굴을 붉힌 채로 머뭇거리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아벨은 아예 내친김에 그 자리에서 정확한 날짜와 시간까지 정했다.

계속 붙잡아두고 있을 순 없었기에 아벨은 테마린을 보내준 후, 루푸스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 사이, 다른 생도들도 속속들이 도착했다

아벨은 마지막으로 준과 리안까지 온 걸 확인한 후, 다시 걸음을 옮겨 큰 소리로 말했다.

“모두 모여!”

그의 외침에 모든 생도가 군말 없이 아벨에게로 걸어왔다.

아벨은 한 명씩 눈을 마주친 후 입을 열었다.

“이제 30분 정도 남았으니까 계획을 한 번 더 점검해보자. 다들 내용은 기억하고 있지?”

“응.”

“그래.”

이미 어떤 식으로 싸울지는 계획을 다 세워두었기에 아벨은 간단하게 그 내용을 상기시켜주었다.

“전투 시에 가장 중요한 건 진형이야. 칼날 꼬리는 굉장히 민첩한 데다가 꼬리도 굉장히 자유자재로 움직여서 까딱하면…….”

생도들은 이미 아는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아벨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 수업 때 모자란 모습을 보여 봤자 자신의 손해이기 때문이다.

메이조차 반쯤 졸린 눈을 하고 있긴 했지만 끝까지 깬 상태로 아벨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 그럼 궁금한 거 있는 사람?”

한 번 설명을 끝낸 아벨은 모두를 돌아보며 질문했지만, 따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실수하지 말고 완벽하게 해치워 보자고.”

“자, 이제 수업 시작한다! 다들 집합!”

때마침, 아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재클린이 손뼉을 치며 수업 시작을 알렸다.

아벨과 생도들은 재빠르게 재클린의 앞에 오와 열을 맞추어 섰다.

“이제 곧 오늘 수업을 참관하실 교수분들이 오실 거란다. 내가 신호를 보내면 그때 각자 기간트 앞에 가서 서도록.”

“네-!”

재클린은 생도들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한쪽을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재클린이 바라보고 있는 쪽에서 교수로 보이는 이들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개중에는 아벨의 후원자인 스칼렛도 있었다.

다른 교수들과 대화를 나누던 스칼렛은 아벨을 발견하고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모두 자신의 기체 앞으로!”

재클린은 교수들이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생도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 명령에 모두들 자신의 기간트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벨 또한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루푸스의 조종석 옆에 가서 섰다.

그렇게 언제라도 조종석에 올라탈 준비를 끝마쳤을 때.

-아우우우우!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칼날 꼬리가 창살에 갇힌 채 이송됐다.

아벨은 아무 생각 없이 그쪽을 보았다가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두근-.

갑자기 가슴팍에서 뜨거운 열기가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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