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간트 아카데미의 천재가 되었다-30화 (30/138)

30화

솟구쳐 오른 열기는 쉬이 가라앉을 줄 몰랐다.

그때, 재클린이 크게 소리쳤다.

“모두 탑승!”

그 말에 대기하고 있던 생도들은 잽싸게 조종석에 올라탔다.

아벨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전히 뜨거운 열기가 그를 괴롭히고 있었지만, 우선 조종석에 올라타 코어에 손을 올렸다.

우우우우우웅-!

마력을 끌어올려 코어에 밀어 넣자 두꺼운 장갑이 움직여 조종석을 감쌌다.

그리고 이어서 마력에 반응해 루푸스가 눈을 떴다.

정체불명의 열기가 돌연 가라앉은 건 그때쯤이었다.

“후우우우.”

아벨은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왜 갑자기 열기가 솟구친 건지. 그리고 또 무슨 이유로 가라앉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거신의 파편. 개중에도 저 칼날 꼬리와 무슨 연관이 있는 건 확실한데.’

짚이는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당장 그걸 고민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보는 눈이 한둘이 아닌 데다가 할 일도 있었으니까.

아벨은 흩어졌던 집중력을 한데 모으며 루푸스와의 동조를 시작했다.

피와 살을 지닌 육신에서 금속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육체로.

정신은 코어를 통해 순식간에 확장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벨은 루푸스의 눈을 통해서 외부를 보고 있었다.

“루푸스.”

-주인. 오늘이 바로 그 날인가?

잠에서 깨어난 루푸스가 아벨의 부름에 질문을 던져왔다.

아벨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

“그래.”

쿠웅-!

두꺼운 두 다리가 대지를 디디고 섰다.

가장 첫 번째로 똑바로 선 아벨은 환한 웃음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오늘이 드디어 너와의 첫 실전이다.”

정체불명의 열기도, 수많은 참관인의 시선도 모두 다가올 전투의 흥분에 파묻혔다.

주변을 둘러보고 있자니 마치 오랜만에 지하 격투장의 링 위에 선 것만 같았다.

이대로 흥분에 몸을 맡기면 분명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활약을 펼칠 수 있을 터.

“후우.”

하지만 아벨은 짧게 심호흡을 해서 그 흥분을 가라앉혔다.

관객이 있는 전투라는 건 똑같지만, 지금 그가 서 있는 자리는 단순히 혼자 잘 싸운다고 고평가 받는 곳이 아니다.

만약 그런 걸 원했다면 아카데미가 아니라 용병단에 들어갔을 것이다.

쿵, 쿵-!

아벨이 마음을 가다듬는 사이, 다른 생도들도 차례대로 기간트를 일으켰다.

전체 생도 중에서도 특출한 이들만 모여서 그런지 아주 빠른 속도였다.

리더를 맡은 아벨은 큰 소리로 말했다.

-모두 진형대로 서!

쿵, 쿠웅-!

아벨의 명령에 모두가 원래 정했던 진형대로 움직였다.

검과 방패를 든 아벨을 중심으로 왼편에는 창과 방패를 든 다니엘이. 오른편에는 거대한 방패를 든 리안이 섰다.

그 뒤에는 두 자루의 검을 쥔 메이와 검 한 자루를 든 이올린. 그리고 준이 섰다.

맨 뒤에 선 건 마공포를 든 헤나와 맨손이지만 양팔에 아티팩트를 착용한 샬롯이었다.

아벨은 진형을 확인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전원 준비 완료입니다.

아벨의 보고에 재클린은 음성 증폭 아티팩트를 사용한 채로 말했다.

“3분 후 전투를 개시한다.”

그 말을 끝으로 재클린이 멀찌감치 물러서자 모의 전장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다들 긴장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일전에 영광의 벽에서 모두 실전을 겪은 덕분인지 아예 굳어 있는 사람은 없다는 점이었다.

‘따로 말은 안 해도 되겠어.’

분위기를 살핀 아벨은 안심하고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정도 이상으로 긴장한 사람은 없으니 따로 무엇을 할 필요는 없다.

작전을 제대로 진행한다면 한두 명 정도는 실수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테니까.

‘중요한 건 적이지.’

아벨은 눈을 가늘게 떴다.

우리 안에 갇혀있는 칼날 꼬리는 특유의 칼날 같은 꼬리를 치켜세운 채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칼날 꼬리의 붉은색 안광엔 마주한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

아벨은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거대하긴 하군.’

칼날 꼬리의 체고는 4m에 살짝 미치지 못한다.

네발짐승인 늑대의 형태를 하고 있어서 그 정도지, 만약 똑바로 선다면 6m 내외인 밀레스보다 더 커다랄 터였다.

-저 칼날 꼬리라는 거신의 파편은 강한 편인가?

갑작스러운 루푸스의 질문에 아벨은 간단히 대답했다.

“그래. 강한 편이야.”

칼날 꼬리는 거신의 파편 중 제법 강력한 축에 속한다.

영광의 벽에서 마주했던 파편들도 제법 위협적이긴 했지만, 그건 각 개체가 강해서라기보다는 그 막대한 물량과 환경 때문이었다.

갑작스럽게 습격을 받은 데다 변변찮은 무기도 없었고, 모두 밀레스보다 한 단계 아래인 티토 급을 타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이상하군. 솔직히 저기 서 있는 이들은 대부분 미숙한 전사가 아닌가? 그런데 강한 적을 상대하게 한다고? 네 설명에 따르면 모두 어느 정도 신분이 있는 거 아닌가?

루푸스가 질문을 다다다 쏘아냈다.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루푸스는 상당히 호기심이 많은 편이었으니까.

이렇게 기간트에 탑승할 때면 항상 끝도 없이 질문을 쏟아내곤 했다.

평소라면 나름 성실히 답변을 해줬을 테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아벨은 간단히 답했다.

“그래. 그렇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 할 테니까.”

-살아남지 못한다고? 너희 인간들도 그리 약해보이진 않는데.

“이곳에서는 그렇게 보이지. 하지만 바깥은 그리 만만치 않아.”

……그리고 몇 년이 지나면 높은 성벽에 둘러싸인 제국의 수도도 위협받을 것이다.

아벨은 뒷말은 속으로 삼키고서 다른 말을 꺼냈다.

“이제 곧 시작할 것 같군. 더 궁금한 게 있으면 나중에 답변해주지.”

-알겠다.

루푸스는 아벨의 말에 곧바로 조용해졌다. 그리고 약 1분 정도가 지났을 때.

우우우웅-!

강한 마력의 파동과 함께 쇠창살을 감싸고 있던 방어막이 사라졌다.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이 자리에 있는 생도들은 모두 찬란한 재능을 지닌 이들이다.

아직 완벽히 개화하진 않았더라도 그 재능은 주머니속의 송곳처럼 감추어지지 않았다.

콰아아아아앙-!

칼날 꼬리가 자신을 가로막던 우리를 뚫고 나왔을 때도 생도들은 진형을 굳건히 지켰다.

긴장은 했을지언정 겁을 집어먹고 물러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아벨은 그에 만족스러움을 느끼며 차분하게 지시를 내렸다.

-헤나.

-응!

헤나는 아벨의 부름에 곧바로 어깨에 견착하고 있던 마공포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후우우우우우웅-.

콰앙-!

마공포에서 굉음과 함께 빛줄기가 쏘아져 나갔다.

“호오.”

“과연. 델 키오르의 재능은 이번 대에도 빛을 발하는군.”

그 위력과 속도는 신입생의 그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라 참관인으로 있던 교수들 대부분이 감탄을 터뜨렸다.

타악!

하지만 그런 감탄이 무색하게도 칼날 꼬리는 가볍게 빛줄기를 피해냈다.

별다른 위협이나 견제도 없이 정직하게 마공포를 사용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헤나를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지휘를 내린 건 선두에 선 아벨이었으니까.

“흐음. 아무리 훌륭한 무기라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아무런 쓸모도 없거늘.”

“기간트를 다루는 재능이 반드시 전략에 관한 재능으로까지 이어지는 건 아니지요.”

몇몇 성질 급한 교수들은 고작 방금 전의 한 수를 가지고서 아벨을 비판했다.

하지만 안목 있는 교수들은 평온한 얼굴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그건 아벨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조금 전의 공격은 타격을 입히기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촤르르르르륵-!

칼날 꼬리는 이전처럼 성큼성큼 걸어오는 대신 경계의 기색을 드러내며 꼬리를 바짝 치켜세웠다.

그건 딱 아벨이 원하던 반응이었다.

‘좋아.’

모두가 보았을 것이다.

칼날 꼬리가 마공포 한 방에 경계의 기색을 드러내며 멈춰 선 것을.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았다면 저런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을 터.

그 효과는 명확했다.

다른 생도들의 머릿속에서 잔뜩 부풀려졌을 칼날 꼬리의 이미지를 현실로 끌어내리는 것.

물론,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훅.”

아벨은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헤나가 마공포를 쏘아내고 칼날 꼬리가 그걸 보고 경계하며 멈춰서는 동안, 그라고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지시를 내린 직후 ‘오버 플로우’를 사용했다.

그 덕분에 아벨의 몸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끓어오르고 있었다.

아벨은 한계에 한계까지 버티다가 아무런 전조도 없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콰앙-!

굉음과 동시에 루푸스가 쏘아지듯 앞으로 달려나갔다.

한참 경계심을 끌어올리고 있던 칼날 꼬리는 루푸스를 피해 날렵하게 왼쪽으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대현자의 관을 사용한 아벨은 그걸 예측하기라도 한 듯 몸을 비틀며 검을 휘둘렀다.

콰가가가가각!

금속판이 찢겨지는 듯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아벨이 휘두른 검이 칼날 꼬리의 옆구리를 헤집어놓은 것이다.

칼날 꼬리는 살갗이 찢겨나가는 고통에 입을 쩍 벌리면서도 반사적으로 꼬리를 휘둘렀다.

콰직!

날카로운 꼬리가 그대로 루푸스의 어깨를 관통했다.

칼날 꼬리는 앙갚음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일순간 기쁜 기색을 드러냈지만, 공교롭게도 그건 아벨도 마찬가지였다.

조종석에 탄 아벨은 씩 웃은 채로 소리쳤다.

-지금!

콱!

아벨은 그대로 방패를 놓고서 꼬리를 콱 움켜쥐었다.

칼날 꼬리는 뒤늦게 이상함을 눈치채고는 꼬리를 빼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후우우우웅!

그리고 팀원들은 아벨이 만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가장 먼저 다니엘이 방패를 아예 버린 채 창을 힘껏 내질렀다.

콰드드드득!

창은 그대로 칼날 꼬리의 한쪽 발을 꿰뚫고는 그대로 단단한 땅까지 파고들었다.

뒤이어 어느새 높이 뛰어오른 메이가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며 칼날 꼬리의 등을 헤집었다.

-우우우우우우!

물 흐르는 듯한 연격에 칼날 꼬리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아마 지금쯤 기간트에 탄 이들 대부분은 잔뜩 얼굴이 상기되어 있을 것이다.

아벨은 그런 고조된 분위기를 느끼고는 다시 크게 외쳤다.

-모두 뒤로! 리안!

첫 번째 말에 모두가 기민하게 반응하진 못했다.

예상한 상황이었다. 한창 몰아붙이고 있는 상황에서 뒤로 빠지라는 말이 바로 와닿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기에 아벨은 그거까지 예상하고 리안을 불렀다.

쿠웅!

내내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리안이 거대한 방패를 앞세운 채 달려왔다.

아벨은 그걸 보고는 곧바로 꼬리를 획 잡아당겼다.

고통에 찬 울부짖음을 흘린 후 내내 조용하던 칼날 꼬리가 움직인 건 그 직후였다.

콰아아아아앙-!

귀가 찢어질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굉음이 가져온 결과는 놀라웠다.

기운차게 달려왔던 리안은 저 반대로 튕겨 나갔고, 그가 들고 있던 방패는 반쯤 우그러졌다.

상태가 좋지 않은 건 아벨도 마찬가지였다.

-왼쪽 팔은 이제 쓸 수 없다.

꼬리가 박혀있던 왼쪽 어깻죽지는 거의 박살이 났다. 간신히 달려 있는 수준이었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찬물이라도 끼얹어진 것처럼 식었다.

하지만 전투는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챠르르르르륵-.

칼날 꼬리는 어느새 두 개로 늘어난 꼬리를 살랑거리면서 아벨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생긴 건 늑대인데, 하는 짓은 꼭 여우 같군.’

이름에 따로 늑대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은 건 그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애초에 거신의 파편 자체가 일반적인 생명체와는 결이 다른 존재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벨은 칼날 꼬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소리쳤다.

-리안! 괜찮아?

-어!

다행히 리안은 우그러진 방패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피해는 없어 보였다.

애초에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여분의 방패를 등에 매달고 있었으니, 실질적인 피해는 아벨의 팔 한쪽밖에 없었다.

아벨은 짧은 틈에 방금 상황을 되짚어보았다.

칼날 꼬리는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일부러 더 공격을 맞아가면서 방심을 유도했다.

치명적인 상처가 별로 없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벨은 처음부터 그걸 꿰뚫어 보고서 놈의 기습을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냈다.

더 빠르게 경고했다면 아예 피해를 입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이건 아벨 혼자만이 하는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걸로 모두 정신을 차렸겠지.’

이제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엔 방심하는 이도, 너무 과하게 흥분하는 이도 없을 터였다.

즉, 이쪽의 전력을 충분히 발휘할 환경이 갖춰졌다는 이야기다.

아벨은 미소를 지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무대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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