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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트 아카데미의 천재가 되었다-87화 (87/138)

87화

아벨은 지하 격투장에서 몇 번이나 우승을 차지했었지만, 당연히 하위권을 전전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라고 처음부터 기간트를 능숙하게 다뤘던 건 아니니까.

그렇기에 그때엔 부족한 실력을 메우기 위해 온갖 수단을 써야 했다.

트래시 토크도 개중 하나였다.

-뭐…… 라고?

-지쳤으면 빨리 끝내죠. 슬슬 쉬고 싶은데.

이번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상대가 제대로 들은 것은 확실했다.

쿠웅-!

그 기세가 확연히 달라졌으니까.

퍼시벌은 땅을 강하게 박차더니 다시 한 번 간격을 확 좁혀왔다.

지치지도 않는지 전보다 배는 빠른 속도였지만, 오히려 궤도는 더 정직했다.

쾅!

‘제법.’

아벨은 공격을 막아내며 속으로 감탄했다.

그전까지의 공격은 여러모로 기대에 못 미치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달랐다.

제대로 막았는데도 묵직한 충격이 느껴진 것.

아마 상대도 힘을 아끼고 있었던 것이리라.

쿵!

퍼시벌은 아예 끝을 볼 생각인지 물러나지 않고 다시 한 번 창을 휘둘러왔다.

쾅! 쾅! 쾅!

막아도, 막아도 끊임없이 공격이 이어졌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방어 외에 다른 행동을 하는 게 그리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아벨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상대방을 도발한 것도 빠르게 승부를 보기 위해서였으니까.

완전히 재능을 개화한 후의 퍼시벌이라면 모를까, 현재의 퍼시벌이라면 충분히 공략할 수 있었다.

아벨은 상대의 공격을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다가 어느 순간 불쑥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콰앙!

퍼시벌의 창대가 어깨를 강타했다. 적지 않은 타격이 전해져왔지만, 검을 놓칠 정도는 아니었다.

-!

퍼시벌은 무언가 위화감을 느낀 듯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이미 기세는 아벨에게 넘어와 있었다.

‘틈이 없으면, 만들어내면 되지.’

아벨은 검을 꽉 쥐었다. 그리고는 물러나면서 창을 내뻗는 퍼시벌을 향해 그대로 세차게 검을 휘둘렀다.

퍼시벌의 창이 아벨의 검을 막으려던 그 순간.

후우웅!

돌연 검의 궤적이 확 비틀리면서 위로 솟구쳤다.

콰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퍼시벌의 기체가 위로 튀어 올랐다.

퍼시벌은 그 상태에서도 균형을 되찾으려고 했지만, 아벨은 그대로 놔줄 생각이 없었다.

콰앙!

아벨은 그대로 앞으로 달려 날아간 퍼시벌의 기체를 한 손으로 붙잡고는 다른 손으로 검을 뻗었다.

쿠웅!

그 직후 둘의 기체가 바닥에 추락했고.

아벨은 검을 상대의 조종석 쪽에 겨누었다.

-……항복.

힘없는 항복 선언이 나온 건 금방이었다.

-끄, 끝났습니다! 아벨 선수! 일방적으로 밀리는 듯싶더니 과감한 한수로 순식간에 전세를 역전시키고! 항복 선언을 받아냈습니다!

도일은 놀란 목소리로 크게 외치며 아벨의 승리를 선언했다.

아벨은 그걸 듣고 나서야 자세를 바로 하며 퍼시벌에게 손을 내밀었다.

-괜찮으십니까?

-그래.

퍼시벌은 어느새 흥분이 가라앉았는지 묘하게 홀가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1학년 중에는 자네 같은 괴물이 많은가?

갑작스러운 질문에 아벨은 씩 웃으면서 말했다.

-그럴리가요.

-하. 그렇겠지.

퍼시벌은 작게 웃더니 다시 말했다.

-내 패배다. 변명의 여지도 없군.

-좋은 승부였습니다.

-그래. 다음에 보지.

-아마 예상보다 빠르게 다시 보게 될 겁니다.

퍼시벌은 그 말에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아벨은 그 전에 경기장을 나섰다.

‘아슬아슬했네.’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 과감한 한 수로 얻어낸 압도적인 승리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더 끌고 갔으면 위험할 뻔했어.’

아벨은 보았다.

마지막 일격을 가한 순간, 허공으로 떠오른 퍼시벌의 기체에서 전격이 이는 모습을 말이다.

‘설마 이런 경기에서 비전을 쓰려고 할 줄이야.’

아직 퍼시벌의 실력은 아벨이 알고 있던 그 쾌속의 퍼시벌에는 한참이나 못 미쳤지만, 딱 한 가지 예외적인 특성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그의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비전이었다.

이 시기의 퍼시벌은 그걸 온전히 통제하지 못해 거의 사용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방금 전에 그걸 사용하려 했던 것.

만약 그대로 놔두었다면 경기 결과를 떠나 아주 위험한 싸움이 되었을 터였다.

‘역시, 입은 적당히 놀려야 해.’

아벨은 중요한 교훈을 가슴에 새기며 대기실로 걸어 들어갔다.

*       *       *

-벌써! 경기는 준결승전! 그것도 두 경기 중 한 경기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번 토너먼트는 그야말로 이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 역대 토너먼트 역사 중에 아카데미의 1학년 생도가 두 명이나 준결승전에 진출한 사례는 단 한 번밖에 없지요!

-거기의 한 명은 이미 상대를 꺾고 결승 진출을 확정 짓기까지!

도일과 다른 사회자는 누가 더 목소리를 크게 내는지 경쟁하기라도 하듯 열정적으로 떠들고 있었다.

특히 도일의 흥분도는 더욱 높아보였는데, 아마도 이전에 치러진 경기 때문이리라.

-아벨 선수! 아벨 선수는 기대 이상의 뛰어난 실력으로 빠르게 준결승전을 승리로 마치고 결승전에 진출했습니다!

아벨은 그 소리를 듣고는 헛웃음을 지었다.

‘운이 좋았지.’

사회자가 하는 말만 보면 상대를 실력으로 찍어 누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상대는 실력은 뛰어났지만, 그 전에 만만치 않은 상대와 혈투를 벌이느라 이미 기력이 바닥 난 상태였던 것.

덕분에 아벨은 어렵지 않게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자아! 그럼 이번 경기를 봐볼까요!

-사실 관객 여러분들이 가장 열광하는 경기지요. 아, 마침 저기! 쌍검의 자칼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관객들이 미친 듯이 환호성을 퍼부었다.

자칼은 실제로 이번 토너먼트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때, 반대편에서도 기간트가 나타났다.

사회자는 곧바로 그쪽으로 손가락을 돌리며 크게 외쳤다.

-반대쪽에서! 이올린! 이올린 선수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올린. 그녀도 준결승까지 진출한 것이다.

‘기대 이상의 결과야.’

아벨도, 이올린도.

처음 예상한 것보다 훨씬 높은 자리까지 올라왔다.

‘원래는 3등이 최종 목표였는데 말이지.’

어느 정도는 대진운이 따라줬다고 할 수 있었다. 둘 다 말이다.

물론, 실력이 받쳐주지 않았다면 운이 따라도 여기까지 오지는 못했을 테지만 말이다.

아벨은 팔짱을 낀 채로 마주 서는 둘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이번 경기는 아무래도 힘들 테지만.’

이번 토너먼트에 상당히 운이 따라준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이올린이 자칼까지 꺾을 거라고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저 정도면 현역 라이더로 뛰어도 부족함이 없는 실력이야.’

아벨도 결승전에서는 승리를 거머쥐는 것보다 남은 모든 힘을 쏟아내어 아쉽지 않은 마무리를 짓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었다.

휴식을 취하지 않고 이렇게 경기를 보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상대를 분석해두기 위해서.

-자! 이제 경기를 시작합니다!

그 사이, 드디어 장황한 설명을 끝마치고 도일이 경기 시작을 알려왔다.

‘신중하군.’

시작 신호가 떨어졌음에도 둘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무기를 들고 서로를 지긋이 응시할 뿐.

하지만 느낌은 사뭇 달랐다.

이올린은 차분하게 상대방을 관찰하는 느낌이었다.

반면, 자칼 쪽은 마치 사냥감을 앞에 둔 것처럼 언제라도 달려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누가 먼저 움직이려나.’

그런 생각을 떠올렸을 때.

스윽-.

자칼이 천천히 발을 앞으로 내뻗었다.

의외의 신중한 움직임.

양손에 한 자루씩 검을 쥔 자칼은 아주 조금씩 이올린과의 거리를 좁혔다.

‘갑자기 확 달려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실제로 이전 경기에서는 그런 모습을 자주 보여줬었다.

마치 퍼시벌처럼 시작과 동시에 달려들어서 압도적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다가 쾌속으로 승리를 쟁취하는 것.

같은 흐름으로 말이다.

반면, 지금의 자칼은 굉장히 신중해 보였다.

그런 모습에 관객 중 일부가 야유를 보내기도 했지만, 자칼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아벨은 자칼을 보다가 문득 이올린의 모습이 이상함을 눈치 챘다.

‘뒤로 물러나고 있어?’

지금껏 이올린과 수없이 많은 대련을 해왔지만, 뒤로 물러나는 모습을 본 적은 거의 없었다.

저건 꼭 기세에 눌린 느낌이 아닌가.

‘직접 대면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다른 느낌이 드는 건가.’

이런 건 실제로 상대를 앞에 두고 있지 않은 이상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자칼은 접근하고 이올린은 뒷걸음질을 쳤다.

다만, 그 속도에는 명확한 차이가 있어서 둘의 간격은 확실하게 좁혀져 갔다.

그렇게 둘의 간격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좁혀졌을 때.

휘익!

놀랍게도 이올린 쪽에서 먼저 선공을 펼쳤다.

얇은 검을 앞으로 쭉 뻗자 자칼은 곧바로 오른쪽으로 몸을 숙였다.

다만, 그것은 단순한 회피 동작이 아니었다.

타악!

가볍게 땅을 박찬 자칼은 마치 솟구치듯 두 자루의 검을 위로 휘둘렀다.

일반적으로는 생각하기 힘든 절묘한 궤적이었다.

휘이이이이익!

이올린은 뒤로 몸을 기울여 한 끗 차이로 공격을 피해냈지만, 자칼의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휙! 휘이이익!

자칼의 두 검이 각자 자아를 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기기묘묘한 궤적으로 이올린을 몰아붙였다.

이올린은 그 와중에도 몇 번이나 반격을 가했으나, 번번이 검에 가로막힐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쿵!

이올린의 기체가 경기장 끝에 도달했다.

더 이상 뒤로 물러날 구석이 없다는 뜻이었다.

‘끝났군.’

반응으로 보건데, 뒤가 막다른 길이란 것도 모른 채 계속 물러난 듯했다.

자칼은 마무리를 지으려는 듯 몸을 웅크리더니 폭발적으로 두 개의 검을 휘둘렀다.

이올린은 그것을 보고는 막거나 피하는 대신 다시 한 번 앞으로 검을 찔렀다.

콰아아아앙-!

그 직후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

아벨은 반사적으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마무리를 짓기 위한 자칼의 공격. 그것은 아벨이 보기에도 상당히 수준 높은 일격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올린은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노, 놀랍습니다!

-이올린 선수! 최후의 최후에! 놀랍도록 아름다운 일격을 선보였습니다!

이올린의 검은 상대의 기체를 뚫고 반대편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아벨은 어떤 식으로 공격이 이루어졌는지 똑똑히 보았기에 그 의미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연기였구나.’

뒤로 물러난 것도, 당황한 모습을 보인 것도 모두 연기였다.

마지막 일격을 위한 연기 말이다.

다만, 그게 그녀의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비록 패했지만! 아주 놀라운 모습이었다!

자칼의 두 검은 이올린의 탑승석 양쪽에 꽂힌 반면, 이올린의 검은 상대의 오른쪽 어깨를 꿰뚫었으니까.

마지막의 마지막에 자칼이 몸을 비틀었기 때문이었다.

-와아아아아아!

-자칼! 자칼!

그렇게 승리는 자칼의 것으로 돌아갔다.

관객들은 결과만 보고 자칼의 이름을 목 놓아 환호했지만, 아벨은 이올린의 기체를 보고 씩 웃었다.

‘나도 무력하게 당할 수만은 없겠는걸.’

저런 모습을 봤는데 적당히 싸우고 끝내자는 생각을 할 수는 없었다.

물론, 원래도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아벨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후의 승부를 위해 이제는 진짜 휴식을 취할 시간이었다.

그렇게 막 대기실로 향하려고 할 때.

“아벨?”

낯선 목소리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아벨은 상대방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네요.”

보라색 머리칼과 눈동자가 인상적인 여인.

“데보라라고 합니다.”

대부호로 불리는 데보라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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