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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 동거녀와 순애는 어떠신가요-50화 (50/194)

〈 50화 〉 49화. 짱돌찍기_(2)

* * *

숨을 내쉬면 다혜가 내 등을 쓸어내리고, 숨을 들이쉬면 다혜의 향기가 느껴진다.

민망하다.

홀딱 벗고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다혜를 야단치고 등짝 스매싱을 갈기려고 했는데.

도무지 떨어질 수가 없었다.

그녀의 온기와 감촉이 너무나 달콤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그녀를 끌어안고 만다.

보드라운 살결 속에서 필사적으로 그녀의 심장 소리를 찾으면서.

[다혜는 어떤 마음으로 내 앞에 서 있을까.]

그녀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나는 이 질문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월세가 아까워서 방을 빌리고, 좋은 컴퓨터가 있으니 게임을 즐기고, 단순히 온기가

그리워서 나를 안는,

그런 단순한 목적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 하는 허그 또한 그런 허접한 의미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다면 나는 기꺼이 남창이 되어서 언제까지고 내 몸을 빌려줄 텐데.

그럴 리가 없겠지.

다혜는 그런 멍청한 여자가 아니다.

[사랑해.]

그녀의 목소리가 내 온몸을 헤집어놓는다.

고작 세글자의 단어가 글리치가 되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마음의 벽을 넘나들고 눈앞의 그래픽을 산산 조각내버린다,

언제나 허락도 없이 내 기분을 훔쳐대더니, 이제는 마음마저 똑같다고 말하는 걸까.

다혜가 내 기분을 훔쳤을 때는 기뻐서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마음을 도둑맞은 지금은 아프다.

맘 같아서는 당장 다혜를 내 것으로 만들고 그녀의 모든 것을 가지고 싶다.

이 온기와 감각이 영원히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

나도 사랑해.

라고 말하고 싶은데.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다혜를 사랑한다는 걸 깨달은 이후로 나는 필사적으로 마음을 감춰왔다.

다혜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니까, 내가 욕심을 부리면 다혜의 밝은 미래를 망치게 되는 건 아닐까?

이런 고민을 앞세워 내 마음을 숨겼다.

이제야 깨달은 사실인데, 그건 변명에 불과하다.

내가 내 마음을 말할 수 없는 진짜 이유는... 그런 도덕적인 관념 때문이 아니라,

그저... 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심한 겁쟁이라서 그렇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나는 무섭다.

29살 먹은 나는 아직까지도 혼자다.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내어주지 못했고, 그 누구의 마음도 얻지 못했다.

피를 나눈 가족은 물론이거니와.

2년간 사랑했던 그녀조차 나를 떠났다.

[서운해. 너무해. 실망이야.]

내가 사랑했던 이들의 마지막 문장은 늘 이런 단어들로 채워졌다.

나는 언제나 그들을 실망시키고, 결국은 혼자가 된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으니까.

사랑 같은 거 안 해도 좋으니까.

그래도 외롭지 않으니까.

그런데 내가 그렇게 억지를 부릴 수 있었던 이유는...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언제나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였다.

김폭딸.

내가 혼자가 되어도 폭딸이는 언제나 날 기다려줄 테니까.

이 세상이 멸망해도 폭딸이만큼은 나와 함께할 테니까.

그러니까 혼자가 되어도 행복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다혜의 사랑한다는 말에 나도 사랑해라고 대답해버리면...

언젠가 그녀를 잃고서도 난 살아갈 수 있을까?

[서운해. 너무해. 실망이야.]

다혜가 이런 말들을 내뱉으면서 나를 떠날 때.

우리가 남보다 더 못한 사이가 된 순간에.

난 살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다혜야...”

“괜찮아.”

내가 미처 말을 다 꺼내기도 전에,

그녀의 손이 내 머리를 끌어당겼다.

내 입은 그녀의 살결에 파묻혀 기능을 상실하고, 버그를 일으키고 만다.

나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은 한없이 행복해 보이는데.

그녀는 알까.

지금 눈앞에 있는 병신이 얼마나 한심한 인간인지.

그런데도 용감한 그녀는 언제나처럼, 내 손을 붙잡고 거침없이 미로 속으로 돌진한다.

“괜찮아 성현아. 그냥 네가 불편할까 봐 내 마음을 말한 것뿐이야. 그러니까... 지금은 그냥 이대로... 자자.”

다혜는 한 손으로 내 머리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내 등을 토닥인다.

그 위로에, 나는 주사위를 쥔 손을 다시 움켜쥐고, 애새끼처럼 그녀의 품속에 매달린다.

다혜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당겼다.

이제 어둠 속에는 우리 둘만 존재한다.

그녀의 숨결이 느껴진다.

뜨거운 체온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힘껏 서로를 끌어안는다.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죽을 것처럼.

땀이 흐르고, 촉촉해진 피부가 달라붙는다.

이대로 녹아서 영원히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

[못 던지겠어... 안 끝났으면 좋겠어...]

어제 닭과 원숭이와 공룡이 다혜를 끌어안고 울던 순간을 기억한다.

한심하게, 고작 게임이 끝나는 게 싫어서 울다니.

나는 그런 그들을 병신이라고 비웃었는데.

게임이 끝나는 게 무서웠던 건 나도 마찬가지였나보다.

위로받은 나는 어찌해보지도 못한 채, 눈물을 짜고 말았다.

사랑해라는 말에 사랑한다고 대답도 할 수 없고, 지금 끌어안은 그녀를 밀쳐내지도 못한 병신이 이제는 질질 짜기까지 하네.

쯧쯧.

나 같아도 정이 떨어질 것 같은데.

“♬~ ♪~”

다혜는 내 등을 토닥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또다시 루시드 타운의 BGM이다.

왕국에서 추방당한 공주가 모든 것을 잃고 스스로 영원한 꿈에 빠져드는 마을.

다혜는 이 노래를 좋아하는 걸까.

그녀의 콧노래를 들으니,

영원히 반복되는 꿈속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던 공주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도 그녀처럼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이 순간이 영원하길 빌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겠지.

나는 어른이니까.

언젠가는 스스로 꿈에서 깨어나 주사위를 던져야만 한다.

내가 그걸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지금은 주사위를 손에 꼭 쥔 채로,

그저 잠에 빠져들겠지.

꿈속에서 다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랑해.]

겁쟁이인 나는 꿈속에서나마 내 마음을 전해본다.

[뒤지게 사랑해.]

**

물에 빠지는 꿈을 꿨다.

숨이 막혀서 있는 힘껏 수면으로 올라왔는데, 눈을 뜨고 보니 다혜의 품속이었다.

“푸학! 으허...! 하아!”

와씨, 진짜 죽을 뻔했네.

이대로 죽었으면 대참사였다.

권성현 29세. 가슴에 파묻혀서 질식사.

이건 너무 불쌍하잖아.

아닌가? 어쩌면 해피엔딩일지도.

내 방은 채광이 좋아서 아침이 되면 햇살이 침대까지 들어오곤 했다.

그래서 지금은 다혜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그녀의 상반신이.

이불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음, 그래서 나를 난로로 쓰고 있었구만.

나는 바닥에 떨어진 이불을 다시 끌어당겼다.

다혜를 덮어주고, 나도 덮고.

그러자 찡그렸던 다혜의 눈썹이 다시 평평하게 펴졌다.

만난 지 3주가 지났는데도 다혜는 여전히 충격적으로 예쁘네.

알몸이 된 그녀를 보면 늘 옷매무새를 고쳐줬지만...

이상하게 오늘은 마음이 약해진다.

위로를 받아서 그런 걸까.

나는 애새끼처럼 또다시 그녀의 품속으로 뛰어들고 말았다.

“응... 성현아... 깼어?”

“더 자. 아직 6시야.”

“뭐야...? 오늘은 왜 안아줘?”

“몰라 나도. 그냥 이러고 싶어.”

“히히, 내 말 맞지? 맨살로 안는 게 진~짜 좋다니까...”

어제 내 형편없는 반응에 마음이 상할 법도 한데,

다혜는 눈을 꼭 감고 행복한 얼굴로 내 어깨에 얼굴을 부볐다.

따뜻하다.

“으아~ 엄청 오래잤네... 벌써 월요일이야. 일요일이 없어졌어.”

“그러네. 나 출근하면 오늘은 뭐 하고 지낼 거야?”

“음... 그림 그릴래. 내일 아카가 포토샵 쓰는 법 알려준댔거든. 손 풀어야지~.”

“좋네. 밖에는 안 나갈 거야?”

“음... 잠깐 산책하고 올까? 귀찮기는 한데.”

“햇볕 좀 쬐고 와.”

“히히, 알았어. 너 오는 시간에 맞춰서 마중 나가야겠다.”

“기다려줄 거야?”

“응? 당연하지. 매일 그랬잖아.”

그러네. 어제와 달라진게 없네.

다혜는 여전히 예쁘고, 오늘도 언제나처럼 나를 기다려주겠지.

그 당연함이 고마워서 다혜를 바라보고 있었더니...

“얍!”

“욱!”

다혜가 내 위로 올라와 내 목을 감싸 안았다.

“처음으로 안아달라고 했으니까! 제대로 해준다는 마인드!”

“홀딱 벗고 민망하지도 않냐.”

“음... 성현아. 그건 내가 할 말이야.”

“난 안 민망해. 남자 찌찌 뭐 볼 게 있다고.”

“그거 말고... 요고.”

“...”

음. 이 타이밍에 그걸 지적하다니.

사실, 다혜와 함께하는 내내 나는 흥분상태였는데,

다혜는 이제야 나의 주니어를 가르키며 얼굴을 붉혔다.

“그러니까 옷을 입어.”

“싫어~ 맨살이 좋다고... 너 8시에 일어나니까, 두 시간만 이러고 있자.”

남의 주니어를 맘대로 깔아뭉게고 민망하지도 않나.

나도 모르겠다...

나는 내 위에 포개진 다혜의 궁둥이를 토닥여줬다.

씰룩거리는 걸 보니 기분이 좋은가보다.

다혜와 이러고 있으니 어제의 시간이 꿈처럼 느껴진다.

다혜의 사랑해와 나의 비겁함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우리는 여전히 한심하게 방구석에서 뒹굴거리고 있다.

하지만 달라진 점은 분명히 있었다.

이제는 다혜의 눈에서 확실하게 보인다는 거.

사랑해라고 끊임없이 되뇌이는 말을 그녀의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준비해야한다.

그녀의 눈빛에 내놓을 대답을 말이다.

“에라, 모르겠다. 오늘 연차 조진다!”

“헐. 그래도 돼?”

“한번도 이런 적 없으니까 돼! 박다혜! 오늘 나랑 놀자!”

“개좋아!”

지금은 그녀가 벌어준 시간을 무책임하게 누릴 생각이지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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