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 동거녀와 순애는 어떠신가요-87화 (87/194)

〈 87화 〉 86화.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은 길드 마스터_(2)

* * *

요즘 회사 분위기가 붕 떠 있길래 예상은 했지만...

이거 진짜냐고...

내가 4월 매출을 보고 말을 잇지 못하자, 곽과장님의 입이 귀에 걸렸다.

하긴, 최근에 대형 업데이트가 있긴 했어도 이건 마케팅팀의 공이 확실하니까.

G펙스에서 코스프레로 확실하게 이슈 메이킹에 성공했고, 그다음으로 했던 인방 프로모션도 인터넷 밈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라이벌 게임인 블루 엔트로피와의 격차가 모든 것을 증명했다.

이터프리는 벌써 4주 연속으로 수집 게임 분야 1위.

우리와 매주 격전을 벌이던 블루 엔트로피는 4주간 2위.

이 정도면 우리가 업계 1위라고 당당히 말해도 되겠지.

이 이상 잘해낼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성과였다.

나도 겁나게 일했는데, 마케팅 쪽은 인센티브 엄청 챙기겠네.

곽과장님의 미소에서 액수가 보이는 것 같았다.

“축하드려요 곽과장님. 마케팅의 신이 되셨네요.”

“푸하하, 내가 뭐 한 거 있나요? 박다혜 작가 쥐어짠 게 단데. 어젯밤에도 꿈에 나온 거 알아요? G펙스에서 박다혜 작가가 내 눈앞에 딱! 하고 나오는데,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더라니까요?”

“하긴,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아찔하네요. 망하기 직전이었으니까.”

“우리 회사는 진짜 운으로 돌아가는 것 같죠? 망하기 직전에 대기업 게임이 먼저 다 망하질 않나, 그리고 박다혜 작가 같은 보물이 갑자기 나타나질 않나.”

그리고 곽과장님의 말대로, 마케팅팀의 활약 뒤편에는 전부 다혜가 있었다.

본인은 스트레스만 잔뜩 안고 인방과 코스프레 업계를 떠나버렸지만,

다혜의 노력이 아직도 우리 회사를 먹여 살리고 있었다.

4월달 매출이 회사 창립 이래 최고 매출을 찍었으니말 다했지 뭐.

그리고 이제 또 한 번 아바타 출시를 앞두고 있었다.

“음! 그래요! 하지만 아직 멀었습니다. 이제 이모티콘 작업도 거의 끝나가고, 다음 업데이트도 앞당길 거에요!”

“무슨 업데이트요? 신규 패키지요?”

“네! 이미 개발팀하고 얘기 다 끝났어요. 5월에는 정식 패키지랑 여름방학 패키지로 두 번 출시할 예정이에요.”

“욕먹지 않을까요? 업데이트 한 번에 상품 너무 푸는 것 같은데.”

“그래도 해야죠! 박다혜 작가님의 영향력이 아직 남아있을 때 하나라도 더 팔겠어요.”

게이머로서는 피눈물이 나는 얘기지만,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저게 정석이었다.

만약 다혜가 계속해서 인방이나 코스프레를 했다면 이터프리갤의 갤주로서 영원히 매출을 올려줬겠지만.

방송 한번 하고 사라져버렸으니까.

한 달만 지나면 거짓말처럼 없던 일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마케팅팀에서는 다혜가 언급되는 동안 1원이라도 더 땡기는 게 맞겠지.

하지만 덕분에 일복 터졌다.

다혜나 나나 이제 죽은 목숨이다.

“시안 통과됐으니까, 일단 출시일부터 맞추자구요! 원화가분들 안 늦게 잘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권대리님 파이팅이에요!”

**

그러면 이번 달부터 내 일은 원화가 관리가 아니라 채찍들고 원화가를 후려갈기는 역할이구나.

일단 전화부터 돌리고, 작업 진행 상황부터 확인해야겠다.

다시 인사팀 사무실로 돌아오니, 박과장님이 손을 까닥하며 나를 불렀다.

“권대리, 그쪽 일은 어때?”

“일복 터졌네요. 뭐, 저보다는 원화가분들이 난리겠지만요.”

“아냐. 너도 좃됐어.”

“안 쓰시던 단어를 쓰시니까 무섭네요. 혹시 또 뭐 있나요?”

“이거 봐라. 축하한다. 너 부서 이동 허가 나왔어.”

“네? 그게 통과됐어요?”

“그러게, 나도 의외네. 너 일 잘한다고 소문나서 그쪽에서 탐낸 모양이야.”

“우와...”

“너무 좋아하는 티 내지 마라. 너 떠나면 이젠 내가 좃되니까.”

박과장님에게 서류를 받아 읽었다.

벌써 4개월 전에 제출했던 지원서였는데.

기억에서 잊히기 직전에 이게 통과될 줄이야.

서류에 적힌 내용에 따르면, 이제 나는 게임 개발팀으로 부서 이동된다.

인사팀 똥치우개에서, 게임 기획자로 직무가 바뀐다는 뜻이다.

“네가 제출한 기획서 되게 좋았다더라, 난 봐도 모르겠더만.”

“진짜요? 우리 회사랑 안 맞아서 씨알도 안 먹힐 줄 알았는데.”

“그러게, 신규 프로젝트라도 만드나? 그래도 너 7월까지는 인사팀이니까 마음 콩 밭에 가 있고 그러면 혼난다?”

“에이~ 저도 짬이 있는데, 당연히 일은 완벽하게 처리하죠. 믿어주십시오!”

“그래, 너나 나나 다시 자리 잡힐 때까지 고생 좀 하자.”

7월이라... 슬슬 인수인계 준비를 해둬야겠다.

그리고 이것저것 배우고 싶었던 것들도 배워야겠지.

코딩도 기초는 알았으면 좋겠고, 게임 엔진도 만져보고 싶고.

정신이 하나도 없네.

그래도 일단 다혜에게 톡부터 날려야겠다.

다음 패키지 판매의 주역은 박다혜 작가의 신규 일러스트니까!

[나 : 다혜야 신규 일러스트 시안 통과했어! 축하해!]

[짱다혜♡ : 헐 진짜루? 이제 작업하면 돼?]

[나 : ㅇㅇㅇ! 이번 달 15일까지 1차 완성본 나와야 해. 할 수 있겠어?]

[짱다혜♡ : 죽어도 한드아아아아!! 근데 왜 안 깨우고 갔어 ㅠㅠㅠㅠ 너무 오래 못 봤어...]

[나 : 완전 골아떨어졌더만ㅋㅋㅋㅋ 푹 자고 회복하는 게 낫지.]

[짱다혜♡ : 뽀뽀가 회복량 지림ㅋㅋㅋ 근데... 나 이거 써봤다?]

[짱다혜♡님께서 사진을 첨부하셨습니다.]

다혜가 보낸 사진은 우리의 게임방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컴퓨터를 배경으로 브이를 하고, 두 눈을 감은 채 입술을 쭉 내민 다혜가 보인다.

회사에서 이런 걸 보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후방 주의라는 말이 이래서 있는 거구나.

나는 주변을 살피고 내 자리로 돌아와서 다시 사진을 열었다.

귀엽기도 하지.

다혜 뒤쪽에는 아침에 설치한 태블릿이 켜져 있었다.

벌써 그림을 그렸네.

태블릿의 액정 안에는 바다에서 뛰어노는 사람 둘이랑 개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아무래도 다혜의 그림일기가 디지털로 업데이트 된 것 같다.

[나 : 올ㅋ 쓸만해?]

[짱다혜♡ : 개짱조음 ㅠㅠㅠ 이제 하루종일 그림만 그릴 거야.]

[나 : 이따 밤에 필라테스 상담 가기로 했는데, 갈 수 있겠어?]

[짱다혜♡ : 헐. 벌써 예약했어? 엄청 빠르네?]

[나 : 원석이 형한테 말했더니 바로 오래. 어차피 지금 운동 안 하면 평생 못할 것 같으니까. 꼭 가자.]

[짱다혜♡ : 응! 이제 슈퍼 빵댕이 만들어줄게!]

음... 내가 언제 저런 말을 했었나.

다혜는 지금도 충분히 예쁜데.

마르고 근육은 없지만 그래도 타고난 몸매가 있어서 옷을 입으면 모델처럼 핏이 살았다.

그래서 슈퍼 빵댕이 같은 건 한 번도 요구한 적 없는데.

그래도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니까...

그저 감사합니다.

[나 : ♡]

**

말도 안 되는 출시 일정 덕분에 오늘은 하루 종일 전화랑 톡만 붙들고 있다가 퇴근했다.

그래도 정시 퇴근이라 행복하네.

원하던 부서 이동도 통과됐고, 다혜도 새 무기를 얻었고, 외주 계약도 성사됐고.

모든 게 잘 풀린다.

박과장님이 일복이라고 말했을 때는 한숨부터 나왔지만, 진짜 복이라고 생각해야 할 정도로.

나도 잘 풀리지만 진짜 대단한 건 다혜였다.

다혜는 나를 만난 지 두 달 만에 진짜 일러스트레이터가 됐다.

원래도 손 그림은 잘 그렸으니까, 액정 태블릿까지 얻은 이상 앞으로는 광랩 하겠지.

설마 나보다 더 잘 버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된다면 당연히 좋겠지만... 그래도 다혜가 날 의지해줬으면 좋겠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다가 두 정거장 전에 미리 내려서 햄버거를 샀다.

다혜가 제일 좋아하는 달콤한 소스가 든 걸로.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면 다혜가 막 달려들겠지?

그러면 나는 다혜랑 뒹굴뒹굴하다가 기분 좋게 햄버거도 먹고, 태블릿이 얼마나 좋은 지 자랑 좀 들어주고.

그러면 오늘도 최고의 밤이 되겠다.

삑삑삑삑삑.

그런데 내가 문을 열어도 현관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네.

다혜가 우리 집에 온 뒤로는 늘 마중 나와줬는데.

아직 아카네서 안 들어왔나?

밖은 깜깜한데, 불도 하나도 안 켜져 있고.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 보니, 컴퓨터 방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다혜 있었네.’

컴퓨터 앞에 다혜가 앉아 있었다.

어두컴컴한 방에서 불도 안 켜고, 컴퓨터와 액정 태블릿 불빛에 의존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마 일부러 불을 안 켠게 아니라...

너무 집중한 나머지 밖이 어두워진 것도 몰랐을 테지.

다혜는 등 뒤에 내가 있는 줄도 모르고 한 땀 한 땀 붓 선을 더해갔다.

나는 문에 기대서 그 모습을 계속 지켜봤다.

어린 게 진짜 어쩌면 저렇게 대단할까.

나도 저 나이 때는 아무나 붙잡고 징징대면서 의지하고 싶었는데.

다혜는 꿋꿋이 성장하는 것도 모자라서 남는 에너지를 나에게 나눠 준다.

집중하는 얼굴을 보기 나도 의욕이 샘솟는다.

앞으로 기획자가 되면 엄청 바쁘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서 맛있는 것도 사주고, 집 걱정도 영원히 덜어주고,

다혜가 실패하거나 다른 직업을 가지고 싶을 때는 마음껏 일을 그만둘 수 있도록.

내가 서포터 역할을 해주고 싶다.

“꺄아아아아아악!!”

“아우, 고막 터진다아!”

“엄마야... 놀라라... 왜 그러고 서 있어...!”

“집중하길래 보고 있었지. 문 여는 소리도 안 들렸어?”

“으응... 우와 벌써 밤이네.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헤헤...”

다혜는 나를 보자마자 태블릿 팬을 내려놓고 달려들었다.

1미터 앞에서 점프하더니, 슬로우 모션이 되어서 하늘을 날고.

온 힘을 다해서 내 팔 안에 안착했다.

열심히 일한 궁댕이가 뜨끈뜨근하다.

“성현아 보고 싶었어~ 아침에 왜 안 깨우냐고 바보야~.”

“어때, 나의 소중함을 좀 알겠어?”

“엄청... 성현아 죽으면 안 돼. 오래오래 살아야 해.”

“너무 나간 거 아니냐? 겨우 하루 나갔다 왔는데.”

“마음은 천년 같았사옵니다.”

“이 오버쟁이. 배고프지? 햄버거 사 왔어. 빨리 먹고 필라테스 상담 가자.”

“응... 근데 그 전에 쉬는 시간!”

뭐 그렇겠지.

내가 집에 돌아오면 늘 소파에서 10분씩 누워있는 게 다혜의 루틴이었다.

주말에는 일하다가도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부르고,

침대에서 뽀뽀하거나, 내 엉덩이를 주물주물하거나.

그렇게 한 두 시간은 우습게 날려버렸다.

하지만... 이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텐데.

슬슬 채찍을 들 필요가 있겠다.

다혜가 달려들면 스읍! 하고 밀어내야지.

그래야 지금처럼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

내가 다혜의 방해가 되는 상황 만은 절대로 피하고 싶다.

“뽀뽀해줘~.”

음...

오늘만.

진짜 오늘만 뽀뽀하고 내일부터 밀어낼 생각이었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 *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