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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 동거녀와 순애는 어떠신가요-126화 (126/194)

〈 126화 〉 125화. 인디 게임 페스티벌

* * *

아침부터 뜬금없이 시작된 눈싸움은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다.

어느 순간부터 다들 눈을 뭉칠 생각도 없이 손으로 퍼서 얼굴에 문대고,

허리까지 쌓인 눈밭에서 추격전을 하다 보니 바지도 다 젖어버렸다.

오늘은 분명히 행복한 크리스마스 아침이었는데.

드럽게 춥네.

이것은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그 순간, 눈을 들고 달려오던 마바지가 눈을 쏟아버리더니, 눈밭 한가운데에 그대로 멈춰버렸다.

“으... 으...”

“왜, 왜 그러셔... 더, 덤벼...!”

“소, 손이 아, 안구부려져...”

이 악물고 덤비더니...

원석이 형은 진작에 실내로 피신했고.

마바지는 이제 말도 제대로 못 하네.

늙은이들이 그렇지 뭐.

다혜와 아카는 아직도 신나게 눈싸움 중이지만,

“제, 제발... 살려줘... 나 죽을 것 가, 가타...”

“나... 나도... 쉬벌... 너무 추워...”

늙은이들은 레프리 아웃이다.

술 냄새가 풀풀 나는 걸 보니까 아침까지 겁나 달린 모양이지?

집에도 안 가고 여길 찾아온 걸 보면 탈락의 데미지가 컸던 것 같은데.

근데 미안하게 또 우리가 이겨버렸네.

“그러니까 이게 뭔 짓이냐고. 이제 들어가자. 다혜야! 너네도 그만하고 들어가자!”

소리쳐 다혜를 불렀더니 다혜가 눈 속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뒤늦게 튀어나온 아카의 얼굴은 눈이 덮혀서 엉망진창이었다.

저 꼴을 보면, 그쪽도 우리가 이겼겠지?

역시, 현실에서도 우리 파티가 짱이다.

“성현아! 우리가 이긴 거지!? 맞죠 언니!?”

다혜가 눈치 없이 묻자 마바지가 씩씩거리며 대답했다.

“자, 잘났다... 이 더러운... 재능충들...”

“패배 인정하면 따뜻한 거 만들어 줄게.”

“아, 그래, 졌다고! 빠, 빨리 들어가기나 해!”

다 큰 남자 둘과 여자 셋.

꾸역꾸역 엘리베이터에 타고 보니 꼴이 우습다.

늙은이들은 부들부들 떨고 있고, 아카랑 다혜는 볼이 새빨개서 터질 것 같고.

우리는 평균 나이가 서른에 가까운데, 아침부터 눈싸움하다가 동상 직전까지 오다니 초딩이 따로 없다.

다들 나랑 똑같은 생각이었는지 여기저기서 킥킥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다혜랑 둘이서만 맞는 고요한 아침을 좋아하지만.

이제보니까 이렇게 소란스러운 아침도 좋은 것 같다.

내가 이렇게 크리스마스스러운 크리스마스를 보낸 게 언제더라.

중학교 때쯤일까? 이젠 기억도 안 나네.

그때, 다혜가 옆구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히히... 재밌었다. 그치 성현아.”

“재미는 있었는데, 너 괜찮아? 볼 터질 것 같아.”

전투 후에 다시 만난 다혜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두 뺨이 땡땡하게 얼어서 추울 텐데, 그 이상으로 눈싸움이 즐거웠나 보다.

그 웃음을 보니 금수들이 와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게임에서라면 얼마든지 다혜를 즐겁게 해줄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아직 어설프니까.

이렇게 다혜와 몸으로 뛰어놀고 멍청하게 떠들다가 웃게 만드는 건 금수들밖에 못 한다.

금수들의 선물을 미리 사두길 잘했네.

고마우니까 집에 들어가면 엄청 맛있는 아침을 해줘야겠다.

몸이 사르르 녹을 수 있도록 따뜻하고 해장에도 좋은 그런 음식을.

그런데...

우리야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지만...

마바지네 남편은 지금 뭐 하고 있을까?

밥은 드셨을라나.

어쨌든, 그쪽도 메리 크리스마스.

“히히... 성현아, 너도 볼 엄청 빨개. 잠깐만 기다려봐.”

다혜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한참을 기다리더니, 두 손으로 내 뺨을 감쌌다.

이러면 다혜의 손이 시릴 테니까 뿌리쳐야 하는데.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따끈따끈 기분 좋아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머리가 얼어서 그런가, 아무런 생각도 나질 않는다.

이대로 잠들고 싶다.

그냥 내 예상이지만,

아마 지금 이대로라면 나라도 푹 잘 수 있지 않을까?

집에 다혜 말고 다른 사람들이 가득해도.

문밖에서 웃음소리와 잡담 소리가 넘쳐도.

왠지 지금이라면 안심하고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솔플과 파티는 천지 차이니까.

나는 겨우 말만 했을 뿐이고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어제 다혜에게 가족이 되어달라고 말해서 정말 다행이다.

동거도, 게임 개발도, 눈싸움도, 나는 다혜가 있으면 무서울 게 없다.

**

집에 들어오자마자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다들 짜기라도 한 것처럼 화장실로 달려가서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고 발을 넣었다.

그리고는

“하아... 이제 살겠네.”

“하... 씨, 진짜 뒤질 뻔.”

“저도요... 다혜 운동하더니 너무 세졌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 큰 어른들이 욕조 하나에 옹기종기 앉아서 저러고 있는 걸 보니까, 저번 정모가 생각나네.

쟤들은 학습 능력이 없는 걸까.

바보짓의 뒤처리는 늘 내 몫이다.

“니네 그러다 감기든다. 옷 가져다줄 테니까 갈아입어. 그리고 지금부터 밥할 건데, 먹고 싶은 건 없어?”

“헐... 양철이 오늘 왜 자상하냐? 니들도 이상하지? 쟤 요즘 이상하다니까?”

“승자의 여유 아니겠냐? 지는 본선 붙었다 이거지.”

“아니에요! 오빠는 어제 겁나 뜨거운 밤을 보내서 마음에 여유가 넘치는 것뿐이에요!”

“이제부터 지랄하는 사람 밥 없음.”

“...”

음, 역시. 금수들에겐 사료가 최고구만.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걸 보니 마음이 편하다.

금수들에게 두꺼운 옷들을 가져다주고, 보일러는 최대로 틀고.

이불까지 꺼내 줬더니, 이제 다들 도롱이 벌레가 되어서 거실을 굴러다녔다.

그리고 나는 홀로 주방에 들어와서 요리를 시작했다.

금수들의 요청은 따뜻한 국물 요리 하나와 고기.

국은... 농도가 있는 게 따뜻하니까,

걸쭉한 게살 스프랑,

해장용으로 청양고추를 팍팍 넣은 벨기에식 홍합탕을 끓이고.

버터를 발라 구운 빵과 LA 갈비면 충분하겠지.

“쉐프! 이러다 우리 다 죽어! 빨리 해장을!”

“방금 말한 놈 식사 열외.”

“마바지 언니에요!”

“마바지임. 나는 아님.”

그리고 음식을 가져다줬더니 정신없이 흡입하기 시작했다.

홍합살을 발라서 국물에 푹 적신 빵 위에 얹어서 한 입.

여긴 밥집이 아닌데, 공깃밥까지 추가해서 손으로 LA갈비를 조져댔다.

다들 맛있게 먹는 걸 보니까 기분은 좋네.

나까지 몸이 녹는 기분이다.

식사가 만족스러웠는지, 마바지가 엄지를 척 올리며 말했다.

“크어... 역시, 해장은 이 집이 잘한다니까, 내 말 맞지?”

“진짜요 언니. 언니 말 듣길 잘했어요. 안 왔으면 아쉬울 뻔?”

“맞아. 성현이는 예전부터 해장 요리가 기가 막혔지. 언제 굴라시도 먹으러 오자, 얘 굴라시 쩔어.”

처음에는 왜 왔나 싶었는데, 이제 보니까 아주 작정하고 오셨구만.

복수가 아니라 해장이 목적이었냐

“여기 밥집 아닙니다. 해장국집도 아니고.”

그러자 원석이 형이 대답했다.

마치 내가 뭘 모르기라도 한다는 듯, 자신들이 이곳에 온 게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 해장하러 온 거 아닌데.”

“그럼 아침부터 뭐 하러 오셨어요?”

“너네 뭔가 착각하는 것 같아서 힌트 주려고 왔지.”

“우리가 뭘 착각해요? 멀쩡히 크리스마스 잘 보내고 있었구만.”

“너희 둘 말고. 너네 회사 말야. 이제 인디 페스 본선 시작인데, 너네만 생각 없이 있는 것 같아서.”

음...

저 말을 들으니까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네.

안 그래도 각오하고 있었다.

어제와 오늘은 다혜와 행복한 시간을 보낼 거지만, 이제 출근하면 인디 페스가 끝날 때까지 단 한 순간도 못 쉴 테니까.

그런데 겨우 하루 쉬었을 뿐인데 저 말이 무슨 뜻일까.

우리 회사가 생각 없다니.

우리 프로젝트는 100% 내 책임이라, 저 말은 곧 내가 생각이 없다는 뜻이 된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거 봐바. 너네 빼고 이미 전부 마케팅 들어갔어.”

형이 보여준 건 광고물들이었다.

뉴튜브나 개인 방송 플랫폼에 들어가는 삽입 광고와, 인터넷의 배너 광고.

광고물은 수없이 많았는데, 내용은 하나같이 내가 아는 것들이었다.

뭐냐면...

우리와 함께 본선에 진출한 인디 게임들.

“이거 지금 광고 중이에요?”

“그래, 이제 정신이 드냐?”

솔직히 아니라면 문제 있는 거지.

우리도 당연히 마케팅을 생각하고 있지만 이건 일러도 너무 일렀다.

아직 본선이 두 달이나 남았으니까.

나는 프로젝트를 맡은 순간부터 예전 인디 페스의 자료를 철저하게 조사했지만 지난 3년간의 행보는 이렇지 않았다.

작년까지는 인디 게임답게 다들 인지도가 0인 상태로 본선을 치렀지.

나도 나름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이번 인디 페스는 뭔가 다른 느낌이 든다.

형이 말하려는 게 뭔지 이제야 알겠다.

“이거... 이제는 인디 게임 페스티벌이라고 할 수도 없겠네요.”

“그래, 인디라고 깔보다가는 본선 시작하기도 전에 묻힐걸?”

행사의 흐름이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지난 인디 페스 수상작들은 이미 소비자들의 기억에서 잊혀진지 오래였다.

나도 조사하면서 겨우 이름을 알아냈을 정도니까.

그러니까 주최측에서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고도, 수상작들이 아무런 성과도 못 낸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올해는 독감 바이러스가 끝나고 처음으로 오프라인 행사가 열린다.

이 모든 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

주최측인 어플 스토어 측의 막대한 적자다.

돈의 흐름을 생각한다면, 이번 인디 페스는 흥행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게 당연하겠지.

“헐... 성현아, 이거 어떡해?”

어떡하긴, 우리도 움직여야지.

이제부터는 피 터지는 마케팅 전쟁이 되겠네.

본선에 진출했다는 사실이 이제야 실감 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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