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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 동거녀와 순애는 어떠신가요-139화 (139/194)

〈 139화 〉 138화. 귀환석_(2)

* * *

눈을 뜨고 천장을 봅니다.

천장에는 아침 햇살이 길게 늘어져 있고 창밖에서는 새소리가 들려요.

얼굴은 조금 차갑고, 이불 속은 따뜻하구요.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성현이가 있습니다.

이제는 너무 당연한 풍경이지만.

저 얼굴이, 창밖의 풍경이, 포근한 냄새와 이불 속의 온기까지.

이상하게 늘 새롭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른 아침부터 슈퍼 박다혜 등장!

후훗, 아닙니다! 이젠 하이퍼 박다혜가 더 어울릴지도 모르죠.

왜냐하면 저는 2023 인디 게임 페스티벌의 우승자거든요!

파워 밸런스가 무너진 아침입니다!

온몸에서 힘이 솟구치네요!

인디 게임 페스티벌은 정말 던전처럼 무시무시했습니다.

대기업들은 돈지랄을 하구요.

사람들은 게임사를 쓰레기처럼 바라보구요.

주아영 아줌마는 진상짓을 합니다.

그래도 저희는 이겨냈습니다!

당연한 결과죠!

성현이의 게임은 정말 재밌으니까요.

그리고 저도 코스프레를 하고 동백양님과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니까...

조금은 도움이 됐겠죠?

그렇게 우승이 확정되고.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성현이를 보면서 정말 꿈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피곤에 쩔어서 꿈속을 헤매다 눈을 떠보니, 집에 도착해있었습니다.

성현이가 안아서 옮겨준 거죠.

부산에서도 그렇고, 첫 인방에서 달아났을 때도 그렇고,

경찰서에서 돌아왔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저는 언제나 이 집으로 돌아오네요.

그 사실에 마음이 놓입니다.

사실 여전히 몸 여기저기가 아프고, 눈은 뜨기 힘들고, 피로가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뭐 어떤가요.

오늘부터 일주일간 내리 휴일인데요!

잠도 12시간 연속으로 잤구요, 뱃속엔 어제 잔뜩 먹은 구운 게가 느껴집니다!

아닌가?

몰라요, 어쨌든 기분 좋은 아침이라는 뜻이었어요! 히히...

오늘은 성현이도 엄청 편해 보이네요.

요즘도 저는 매일 밤 성현이를 안고 잠이 듭니다.

그러다 잠이 깊어지고, 제 품속에서 멀어지면, 성현이는 늘 끙끙 앓는 소리를 냅니다.

저는 매일 아침 그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요.

성현이의 위로 올라가서 안아주고 나서야 끙끙대는 소리가 편한 숨소리로 바뀌죠.

이게 저와 성현이의 하루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네요.

어쩐지 안아주지도 않았는데 숨소리가 편하게 들립니다.

어쩌면... 성현이의 불면증이 조금은 나아진 걸까요?

달라진 건 겨우 오늘 하루뿐이지만.

그랬으면 좋겠네요!

요즘 성현이는 무척 편해보입니다.

길드원분들이랑 있을 때도 마음껏 웃고요, 회사에서도 표정이 한결 풀려있어요.

예전에는 늘 냉철한 얼굴이라 로봇 같았는데,

이제는 다른 개발자들처럼 그냥 쩌들어있을 뿐입니다.

저는 길드원분들과 팀원분들이 늘 가족 같다고 생각하는데요.

성현이도 그렇게 된 걸까요?

성현이의 얼굴을 아무리 살펴봐도 마음은 읽을 수 없지만...

이렇게 침대에 누워있으면 어쩐지 성현이의 마음이 전해지는 기분이에요.

제가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그러니까... 성현이가 처음으로 저를 뒤에서 안아줬을 때는 말이죠.

이 침대가 뗏목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어떻게 생겼는지, 누가 살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로 그저 성현이와 뗏목을 타고 새카만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아닙니다.

여기는 뗏목 같은 게 아니죠.

우리의 보금자리인 걸요.

이제 성현이를 깨워볼까요?

오늘은... 회사도 안 가니까, 조금 편하게 일어나도 될 겁니다.

이렇게요!

“성현아! 지각! 지각이야 어떡해!”

“으헣! 뭐야! 지금 몇 시야!?”

“9시야! 나도 지금 일어났어!”

“하씨... 괜찮아... 빨리 씻고 나가자...”

성현이는 아침부터 마른세수를 합니다.

아침부터 절망에 빠진 표정을 보니 뿌듯하네요.

이제 사실을 밝히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되겠죠?

자고로 과거가 끔찍할수록 현재의 행복도 진해지는 법이니까요.

자아... 이제 행복해지세요!

“히히... 바보야. 오늘부터 휴가잖아.”

“...”

그런데 어쩐지 성현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진심으로 화난 표정인데...

말도 없는 걸 보니 확실하군요.

음... 어쩔 수 없네요.

이럴 때는 정해진 룰대로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천천히 성현이의 몸 위로 올라가서...

성현이의 얼굴을 끌어안습니다.

“사실 출근이 아니고 출렁이었습니다!”

그러면 성현이는 말없이 저를 끌어안아 줍니다.

가슴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엉덩이를 토닥여줘요.

언젠가 성현이가 만든 룰입니다.

[다혜야, 만약에, 만~약에 있잖아.]

[응? 만약에 뭐?]

[우리가 다투거나 의견 차이가 생겼을 때 말이야.]

[음... 그런 일이 있을까?]

[모르지. 그래도 만약에 그런 일이 벌어지면, 일단 안고서 생각해보자.]

저희는 아직까지 싸워본 적이 한 번도 없지만.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일단 끌어안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얼굴을 보고 말을 할 때 보다 기분이 풀리고, 모진 말을 하기 전에 서로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깨닫게 될 거라구요.

회사 사람들이 종종 성현이를 천재 디렉터라고 부르던데.

과연, 천재 디렉터는 다르네요.

“성현아 미안... 화 풀렸어?”

“아니. 모자라.”

“그러면... 이렇게 하면 어때?”

오늘은 원피스 잠옷이니까.

옷을 끌어 올려서 성현이를 잠옷 안에 넣어봅니다.

이러면 옷이 다 늘어나 버리겠지만...

안는 것 이상으로 가깝고, 화낼 수 없을 정도로 따뜻하니까요.

성현이가 이렇게 해주면 저는 어떤 화라도 다 풀릴 것 같은데,

성현이는 어떨까요?

“이러면? 화 풀렸어?”

“기분 좋아졌어.”

“히히... 오늘은 출근 안 하니까, 두 시간만 이러고 있자아...”

“먼저 도망치는 사람이 설거지하기.”

“굿굿!”

“근데 다혜야, 검색은 해봤어?”

“무슨 검색?”

“당연히 대회지. 이제 인터넷에 기사 올라왔을 텐데.”

“헐, 맞다!”

그리고 성현이랑 원피스 안에서 태블릿을 켜고, 차례차례 검색했어요.

처음에는 인디페스.

두 번째는 타이니 원.

권성현, 동백양. 등등.

검색어를 넣을 때마다 어마어마한 양의 영상과 뉴스들이 떠오릅니다.

뉴튜브에는 우리 게임이 왜 재밌는지 15가지로 정의한 영상도 있구요.

부끄럽게도 저의 PVP영상도 있습니다.

어제는 생각도 못 했는데, 코스프레 한 제 모습이 영상에 그대로 다 나오네요!

“으... 왠지 부끄럽다아...”

“이쁘기만 한데 뭘. 난 자랑스러운 느낌이야.”

“진짜...?”

“당연하지, 세상에 어떤 여친이 27킬을 해.”

“그럼 뽀뽀.”

뽀뽀를 15번이나 해주는 걸 보니 진심인가 보네요!

칭찬 포인트가 예쁘다가 아니라 27킬인 점은 유감이지만요.

인디 페스의 성공과 우리 게임에 대한 엄청난 관심.

성현이는 검색할수록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리고 제로투 영상을 보고는 하늘이 무너진 표정을 지었지만...

이번에는 제가 뽀뽀를 20번 해줘서 무마시켰어요.

전 그 장면이 자랑스러우니까요!

낙하산이라고 비웃던 여자 앞에서 당당히 우승을 가로챈 뒤에.

제로투로 조져버리다니...

키햐... 사이다도 이런 사이다가 없죠?

다음에 아줌마를 만나게 되면 허접이라고 놀려줘야겠습니다.

성현이는 영상을 쭉쭉 넘기다가 [2023년 최고의 기대작.]이라는 영상을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그리고는 머쓱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어요.

“그냥 앞만 보고 달렸는데, 왠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아. 그치?”

“그럼~ 엄청난 일을 했지이... 성현이 이제 월클 개발자야.”

“그럼 너도 월클이지. 우리 컨셉 아티스튼데. 앞으로 여기저기서 모셔가려고 안달일걸?”

“그런가? 히히... 우리 부자 되면 어쩌지?”

눈을 떴을 땐 평범한 아침이었는데.

정말 많은 게 달라졌네요.

성현이가 처음 프로젝트를 받았을 때, 목표는 인디페스 우승이었습니다.

이제 목표를 이뤘으니 앞으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어마어마한 부자가 될지도 몰라요!

아니면 언젠가 어떤 개발자분이 해주셨던 말처럼 팽당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어떤 일들이 펼쳐지든 상관없습니다.

빌리언 사가에서 도시를 떠나 모험하다 보면, 무서운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나 너무 멀리 온 거 아닌가?

이러다가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리면 어쩌지?

이렇게 계속 가도 되나?

그럴 때면 저는 언제나 귀환석을 바라봅니다.

한번 클릭하면 언제든 우리의 공용 창고로 이동할 수 있는 귀환석이요.

그게 있다는 걸 깨닫고 나면, 던젼이든, 숲이든, 어디든 갈 수 있는 용기를 얻습니다.

만약 우리가 출근할 때마다 롤스로이스를 타고 시가를 피우는 거물 개발자가 되더라도.

일이 끝나면 이곳으로 돌아오겠죠?

팽당해서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게 되더라도.

해가 지면 이곳으로 돌아올겁니다.

우리가 앞으로 어디를 가도, 어떤 일이 벌어져도.

언젠가는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온다는 걸 아니까.

이제 이 침대는 더이상 뗏목 같은 게 아닙니다.

방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위험한 것도 없고.

따뜻하고, 먹을 것도 많은.

우리의 보금자리에요.

성현이도 저랑 똑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가족의 품을 떠나서 홀로 헤매는 게 아니라,

우리의 보금자리에서 편안히 몸을 기대고 다음 던젼으로 여행을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제가 따라갈테니까요!

무서우면 이렇게 저를 끌어안고, 귀환석 대신 제 얼굴을 보고 안심하면 좋겠습니다.

“헐! 맞다! 오늘 발렌타인 데인데!”

“빌리언 사가 이벤트를 걱정하는 거야? 아니면 내 초콜릿을 걱정하는 거야?”

“음... 일단 초콜릿부터 차근차근 해결해볼까?”

“바보야, 오늘은 특별히 빌리언 사가에서 받아줄 테니까. 이벤트부터 하자.”

“내 사랑... 쟈기야... 사랑해!”

“이럴때만 자기야?”

그리고 우리가 돌아갈 곳은 또 있습니다.

빌리언 사가의 공용창고와, 언제나 언니 오빠들이 기다려주는 성 로즈웰의 다리요.

게임에 들어가보니, 이벤트는 취소 되어버렸습니다.

“헐... 뭐야? 갑자기 이러는 게 어딨어?”

“그러게... 이런 건 또 처음이네.”

“에이 몰라! 그래도 초콜릿 아이템 구해서 만들어줄 거야!”

“좋아. 그러면 드라이어드의 무덤으로 가야겠네. 카카오 세 개만 따오자.”

“꼬우꼬우!”

으... 똥겜은 똥겜이네요.

일주일이나 홍보한 이벤트를 당일에 취소하다니...

하지만 이벤트쯤이야 열리든 말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우리가 힘들게 일하다가, 언젠가 이곳을 떠올리고 돌아올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리 먼 곳이라도 떠날 수 있겠죠?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올 겁니다.

반드시요!

성현이와 내가 만드는 룰처럼.

이 룰도 영원히 변치 않을 겁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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