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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인데 악마와 계약했습니다-9화 (9/376)

〈 9화 〉 천상의 소프라노 (4)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윤희는 갑자기 스파게티를 먹고 싶어졌다며 펍 주방에서 스파게티를 만들어서 하랑에게 대접했다.

요리 실력은 괜찮다고 말하기엔 약간 부족했지만 얻어먹는 주제에 음식 타박을 할 정도로 하랑은 무딘 인간은 아니었다.

식사를 하는 내내 윤희는 하랑의 노래를 칭찬했다.

실제로 노래를 듣고 대성통곡을 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고백했다.

뭐, 대성통곡이라고 표현할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다만. 대충 감명 깊었다는 의미로 접수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식사를 마치고나자 하랑은 본론을 꺼내기로 했다.

“언니. 혹시 가수 필요없어요?”

“가수? 여기 아르바이트하는 가수 말하는거니?”

“네.”

식사 내내 하랑의 노래를 칭찬했던 것과는 다르게 윤희의 얼굴에선 고민이 떠올랐다.

하랑은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제 처음 만난 여자애가 알바 자리를 요구하는 걸 덥썩 허락 하지 못하는 게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다.

이게 현실적인 거겠지.

친하게 지내는 거리까지는 허용하지만 그게 일적인 관계가 되는 걸 수용하는 것은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하랑아.”

당연히 곧바로 들어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다.

윤희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는 순간 거절을 직감한 하랑은 못내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네.”

“여기 술집이야.”

“알아요.”

“라이브 펍이니, 음악 주점이니, 뭐 그런 다가가기 쉬운 이름으로 본질을 가리고 있긴하지만. 결국 여긴 술집이야.”

“네.”

“너는 미성년자야. 스타를 꿈꾸는 연습생이기도 하고.”

윤희는 하랑의 손을 두 손으로 꼭 붙잡았다.

표정만으로도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는 알았다.

거절하려는 거다.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원론적인 이유를 대면서.

“이런 곳에서 일을 했다간 나중에 네 커리어에 문제가 생길거야.”

맞는 말이다.

하랑이 목표로 한 세상, 그리고 이미 경험해 본 연예계라는 세상은 정글 같은 곳이다.

없는 흠도 만들어내서 경쟁자를 고꾸라뜨려야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비열한 야생이다.

게다가 좋은 사람이 자기 술집에 미성년자를 취업 시켜준다?

그게 좋은 사람일리가 없지.

처음 만났을 때 느낌처럼 윤희는 도의를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거절 당하고 나니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도 여기서 일할 수 있으면 연습생 커리큘럼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할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충분히 이해했어요.”

“하랑아, 혹시 돈 필요하니? 그래서 알바 자리 구하는거야?”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아버지가 사정이 안좋아서 생활비를 보내주는 게 힘들다고 문자 주셨거든요. 이대로는 그나마 살던 옥탑방에서도 쫓겨날 것 같아서요.”

“저런!”

표정에서부터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게 느껴졌다.

“알바 자리야 다른데서 구하면 되요. 이왕이면 내 재능을 사용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죠.”

“그러면 정말로 가수 알바 안해볼래?”

이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지?

방금 전까지 정색하면서 안된다고 하지 않았나?

이어진 윤희의 말은 하랑의 오해를 바로 잡아주기에 충분했다.

“여기 말고 위층. 우리 아빠가 하는 카페가 있어.”

“카페요? 커피 마시는 데 아니에요? 거기도 가수가 필요해요?”

“필요하지. 어쩌면 여기 보다 더. 가수가 노래 부르길 좋아하는데 실력이 영 꽝이거든.”

윤희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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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는 말나온 김에 면접을 보러 가자며 하랑을 채근했다.

끌려가다시피 지상으로 올라온 하랑은 1층과 2층 전체를 사용하고 있는 대형 커피숍을 마주했다.

카페 드몽드 (Café du monde

프렌차이즈 카페도 이 정도의 규모는 드문데, 이 카페는 무려 개인사업자로 운영하는 곳이었다.

1층은 가운데를 비워두고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고, 2층은 테라스 형태로 1층 홀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중세 유럽의 극장이 연상되는 고풍스러운 느낌이다.

일종의 랜드마크로 불리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우와, 아버지가 부자신가 봐요.”

위압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카페를 마주한 하랑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조물주 위의 건물주라고 들어봤니?”

“이 건물이 통째로 누나 아버지꺼에요?”

“누나 아니고 언니. 그리고 울 아빠는 이 건물 말고도 비슷한 건물 몇 개 더 가지고 있어.”

얼마나 더 부자라는 거야?

서울에 이 정도 건물을 여러개 가지고 있다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부자라는 건데.

“언니. 저랑 결혼해주시면 안돼요?”

“어머! 얘 좀 봐라. 프로포즈에 사심이 너무 노골적으로 들어갔잖니.”

윤희는 깔깔 웃으며 하랑을 카운터 쪽으로 안내했다.

카운터를 보던 알바생이 먼저 윤희를 알아보고는 인사를 건넸다.

“작은 사장님 오셨네요. 커피 드릴까요?”

“응. 아인슈페너. 휘핑 그득하게 올려서. 하랑아, 너는 뭘로 할래.”

“전 아메리카노요. 차가운걸로.”

자연스럽게 커피 주문까지 이어졌다.

윤희가 카드를 내미는 것으로 봐서는 부녀 지간에도 계산은 가차없다는 가풍이 느껴졌다.

커피를 하나씩 들고 테이블에 앉자 윤희가 말했다.

“아빠는 곧 나오실거야. 곧 공연 시간이거든.”

“카페 사장님이 공연을 하세요?”

“취미야. 가수가 꿈이셨거든. 이 카페도 아빠 취미 생활의 일환으로 운영하는 거라 보면 돼.”

돈 걱정이 없으니 취미 생활의 스케일도 남다르다.

노래가 부르고 싶어서 서울 한복판에 2층 짜리 카페를 짓고 직접 무대에 서는 부자라니!

곧 홀 중앙 벽면에 위치한 공연 중이라는 네온싸인에 불이 들어왔다.

“은근히 기대되는데요?”

“놀라기엔 이르단다.”

노란 양복을 차려입은 민머리의 중년 아저씨가 어깨에 통기타를 메고 등장했다.

머리가 훤하게 비어있는 것에 비해 수염이 덥수룩한게 언밸런스의 극치를 달리는 외모였다.

“저 분이······.”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울 아빠란다.”

카페 손님들의 시선도 온통 홀 중앙에 선 중년 아저씨에게 집중됐다.

몸에 착 달라붙는 노란 양복과 어디서 구했는지 조차 의문인 하얀색 뾰족 구두는 사람의 시선을 빼앗는 마법이 걸려있었다.

마이크를 톡톡 두들겨 사람들의 이목을 끈 중년 아저씨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중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도 저희 카페 드몽드를 찾아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와! 사장님! 멋있어요!”

단골 손님들은 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익숙했는지 격한 환호를 보냈다.

뜨내기 손님들 또한 너무나도 생소하고 요란한 차림새에 흥미를 보이는 눈치였다.

“자, 그러면 여러분들의 열렬한 환호에 힘입어 인기 가수 나진우가 한 곡조 신나게 뽑아 올리겠습니다! 첫 곡은 사랑의!”

“지하철!”

단골 손님들은 아예 중년 가수의 레퍼토리를 꿰고 있는 모양인지 가수의 선창에 노래 제목의 뒷부분을 일제히 외쳤다.

- 사랑의 지하철을 타세요!

- 지금은 사당행 막차를 타고 떠날 시간이에요!

숫제 회식 자리에 온 기분이었다.

여기가 카페인지 뒷풀이를 하러 온 노래방인지 구분이 안되었다.

홀 벽면에 매달린 미러볼이 번쩍거리는 불빛을 내며 회전하고, 뽕끼가 다분한 MR이 스피커를 타고 울려퍼졌다.

고급스러운 카페 한 가운데서 통기타를 든 대머리 아저씨 한 분이 신나게 트로트를 불러 제끼고 있는 광경이라니!

손님들은 그걸 또 신나게 즐기며 박수를 치며 따라 부르고 있다.

여기가 무슨 7080 라이브 카페라면 이해하겠지만 손님들은 대부분 20대, 30대의 젊은 층이다.

컬쳐 쇼크다.

“어, 여러가지 의미로 대단하네요.”

솔직히 놀랐다. 카페 사장님의 가창력이 딱히 좋은 것도 아니다.

그저그런 아마추어 트로트 가수 정도의 실력이다.

하지만 그의 표정과 몸짓에서 행복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전염성이 매우 높은 행복감은 순식간에 카페 전체를 감싸안았다.

손님들 중 누구도 뚱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사람이 없었다.

단골 손님들이 격정적으로 호응을 하자 다른 손님들도 분위기에 휩쓸려 노래를 따라 불렀다.

“멋져요. 멋진 사람이네요, 카페 사장님은.”

가창력으로 인기를 재단할 수는 없다. 결국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가수가 발라드를 부르던 트로트를 부르던 청자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으면 그게 곧 인기다.

그런 의미에서 카페 사장은 충분히 좋은 가수였다.

공연은 약 한 시간 동안 이어졌다.

카페 사장님은 중간 중간 트래쉬 토크를 섞어가며 물 흐르듯이 공연을 이어나갔다.

방송 물을 먹은 연예인 못지않은 노련함이 엿보였다.

총 3곡의 노래를 부른 뒤에 카페 사장님은 무대를 내려왔다.

조명들이 꺼지고 카페가 환해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카페는 세련된 도시 카페의 분위기로 돌아왔다.

윤희는 하랑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어땠어?”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요?”

“얼마든지.”

하랑은 얼음이 녹아버린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호로록 들이키고는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어요.”

“그랬을거야. 창피하니까 카페에서 공연같은 거 안하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그건 죽어도 싫다고 하셔.”

“아니, 그런 거 아니에요. 사장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응? 울 아빠가 대단하다고?”

“당황했다고 말한 건 의외성 때문이에요. 딱 봐도 이렇게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클래식 음악도 아니고 뜬금없이 뽕짝이 튀어나온다고 생각해봐요. 그건 누가 들어도 당황할 수 밖에 없어요.”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여기가 방금 전까지 트로트 메들리가 휘몰아쳤던 광란의 공연장이었다는게.

윤희가 눈을 말똥거리면서 다음 말을 기다리는 것 같아보이자 하랑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주위를 보세요. 특히 손님들의 연령대를요. 대체적으로 트로트 같이 연식이 오래된 음악에는 호의를 보이지 않는 젊은 연령대가 대부분이죠.”

“그렇긴 하지. 나도 그닥 당기지 않아.”

“그런 장르를 가지고 불호하는 관객들을 흡입력 있게 끌어들였어요. 사막에서 전기장판을 팔고 북극에서 에어컨을 팔았다는 이야기에요. 그것도 아주 열광적으로 매진을 시켰죠.”

“사기꾼 기질이 있긴 하지.”

“토크는 또 어떻고요. 손님들 반응 보셨죠? 수시로 빵하고 터지는 거.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대단하신 거에요. 노래 사이사이에 재치있는 입담을 넣어서 공연을 지루할 틈 없이 만드신거죠.”

“칭찬이지?”

“당연히 칭찬이죠. 방송국에서도 저렇게 완급 조절을 잘하는 진행자는 몇 없어요. 저보고 저렇게 하라고 하면······. 솔직히 불가능해요.”

하랑의 답을 들은 윤희는 원하는 답을 들은 것처럼 굉장히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조용히 빨대로 거품을 휘젓다가 이윽고 하랑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서 공연하는 건 어떻게 생각해? 아빠랑 같이.”

“영광이죠.”

“다행이네. 그렇게 생각한다니. 이제 아빠만 설득하면 되겠는데. 아, 저기 오신다.”

무대 의상인 노란 양복 대신 평범한 흰티와 청바지로 갈아입은 대머리 아저씨가 테이블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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