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특별 평가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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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에서는 신규 걸그룹의 멤버를 8명으로 준비하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12명중 4명을 다시 쳐내야하다.
12명을 뽑는 것은 개인의 기량 순서대로지만 최종 8인의 멤버는 멤버들끼리의 시너지가 맞아야한다.
불협화음이 일어날 조합은 엔터 입장에서도 최대한 피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는 개인보다 단체가 중요해진다.
개개인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될성 부른 나무라면 미리 걸러내는 게 리스크 관리적인 측면에서 더 중요하다.
하지만 그건 12명에 뽑힌 이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을 문제다.
“하랑찡하고 같이 뽑혔으면 좋겠어.”
그렇게 말한 이나가 이온 음료를 들이켰다.
여동생과 함께 걸그룹으로 데뷔하는 오빠라니.
생각만해도 손발이 오글거린다.
하지만 지금은 류하민이 아니라 이나의 둘도 없는 단짝 이하랑이다.
아무도 진실을 모르는데 하랑이 전전긍긍할 이유는 없다.
설사 본인이 데뷔를 못해도 이나만큼은 꼭 데뷔를 시켜주고 싶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다.
고로 이하랑의 꿈보다 류이나의 꿈이 우선이다.
“이나는 꼭 데뷔했으면 해. 내가 떨어져도 아무 부담갖지 말고 꼭.”
“불길한 소리하지마. 하랑찡 떨어지면 나도 아이돌 안할거야.”
“땡깡 부리지말고. 오빠 일어나면 기뻐할 거다.”
하랑이 이온 음료를 벌컥 들이 마시다가 미묘한 소금 맛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맛이 왜 이래?”
“하랑찡이 좋아하는 거 잖아.”
“내가?”
이런 섬유유연제 냄새나는 음료수를 돈주고 마신다니.
취향 한번 독특하네.
“하랑찡 입맛이 많이 변했어. 싫어하던 국밥은 좋아하고. 안무 연습 끝나면 즐겨마시던 음료수는 싫어하고.”
“사람 입맛이라는 게 변하기 마련이니까.”
“우리 오빠도 이거 싫어하는데. 예전에 아이돌 체육 대회에서 이온 음료 마셨다가 배탈났었어. 너도 알지? 컨디션 엉망되고 결국 기권했었잖아.”
이게 그거였어? 어쩐지······.
잊고 싶은 기억이 떠올랐다.
아이돌 체육 대회의 끔찍했던 흑역사가.
오이나 고수의 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이 체질을 가진 류하민이었다.
그리고 그는 멋모르고 마신 이온 음료에서 그 악의로 가득 찬 냄새를 느꼈다.
아마 일재가 마시고 건네준 걸 덥썩 마셨던거 같다.
황급히 뱉어냈지만 이미 몇 모금은 식도를 타고 넘어간 뒤였다.
독약을 마신 것도 아닌데 위가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고 몇 분이 지나자 뱃속이 부글거렸다.
류하민이 등록한 계주 경기가 얼마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장이 지진난 것처럼 꾸륵거려서 참다못한 류하민은 경기 직전에 화장실로 뛰어갔다.
가까운 화장실로 뛰었었는데 하필이면 화장실 입구에 홀리데이가 드글드글했더랬지.
사실 배 아픈건 화장실에서 장을 비워내는 즉시 나았다.
다만 화장실 앞에 버티고 있던 홀리데이가 문제였다.
폭풍 같은 사운드의 장본인이 프라이데이의 리더 류하민이라는 소문이 날까봐 매니저에게 기권한다고 문자를 보냈다.
류하민이 출전했어야 할 계주는 운동신경이 젬병인 지창현이 대신 출전했다.
바톤 놓치고 넘어져서 그 날 경기는 다 망해버렸던가.
그런데 그걸 왜 꼬맹이가 알고있지?
멤버들과 영원히 비밀로 하기로 했었는데.
“창현 오빠가 억울해 하면서 이야기 해주더라고. 똥쟁이 리더의 체면을 지켜주기 위해 자신은 희생양이 된거라면서.”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바톤 놓쳤다고 악플 달리는 거 미안해서 비싼 노트북까지 사다 바쳤는데, 그걸 여동생한데 주저리주저리 일러바쳐?
“아니야, 그런 거. 설마 이거 하나 마셨다고 하민 오빠가 화장실로 뛰어갔을까. 급성 위경련이라고 기사에 나왔었잖아.”
그래, 위경련이다.
매니저와 그렇게 합의를 보고 기사도 그렇게 나갔다.
“그거 다 이미지 관리하느라 그런거야. 실상은 폭풍설사 때문에 기권한 거고.”
창현이놈, 우리 꼬맹이를 어떻게 세뇌한 거냐.
괜시리 뿔이 나는 하랑이었다.
“창현이가 과장해서 전달했나보지. 원래 걔가 양념을 잘 치잖냐.”
“걔라니? 한참 오빠한테. 그리고 창현 오빠가 얼마나 다정한데. 프라이데이한테 뭔 일 있으면 나한테 다 이야기 해 줘. 어떨 때보면 우리 오빠보다 더 친오빠 같다니까.”
그 놈이 스파이였구나!
바빠서 연락도 자주 못했는데 어쩐지 꼬맹이가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있는 것 같더라니!
하랑은 뾰루퉁한 표정을 짓고나서는 들고 있던 이온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온 음료 좀 먹는다고 배탈이 난다는 게 말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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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는 모양이다.
그 결과가 뒤틀리는 배를 움켜잡고 변기 위에 앉아있는 하랑이었다.
몸뚱이가 바뀌었으니 불호하는 음식에도 반응이 없을거라 생각한 건 오산이었다.
오이 맛이 나는 음료는 여전히 하랑에게 영향을 미쳤다.
“정신적인 문제라는 거지?”
단순히 유전자 단위의 문제는 아니다.
영혼을 옮겨도 기벽이 따라오는 걸 보면.
오이 향을 떠올리면 여전히 거부반응이 나타난다.
아마 실제로 오이를 먹어도 반응은 같을 것 같다.
굳이 실험해 볼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장을 비워내고 옷 매무새를 바로 할 때 쯤 핸드폰이 작게 진동했다.
- 하랑, 어디?
꼬맹이다.
화장실에 간다고 하고서 달려왔는데 왜 묻지?
하랑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답변을 보냈다.
- 화장실
- 아무도 없는데. 다른 층으로 간거야?
분홍색 토끼가 이마에 손을 올리고 주변을 살피는 이모티콘도 곁들여져 있다.
- 아니. 7층인데
한 층에 화장실이 두 갠가?
그 생각을 하는 순간 불안감이 또 다시 등 뒤를 엄습해왔다.
아침에 탈의실에서 겪었던 난감한 상황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자연스러웠지.
아무런 위화감 없이 화장실로 들어와 화장실 칸 안으로 들어왔다.
달랑 하나 뿐인 세면대와 나란히 서있었던 소변기들.
몸 밖으로 금방이라도 탈출하려 아우성을 치는 황금색 친구들 탓에 신경쓰지 못했다.
혹시나 잘못 기억하고 있는게 아닐까했지만 화장실 칸 안에 휴지통도 없는 걸로 보아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여성용품을 처리할 방법이 없다는 건, 굳이 처리할 필요가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남자 화장실.
“하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적응이 안되는 걸 보면 난 인간이 아닌가보다.
빠가사리도 아니고 어떻게 한 시간도 안되서 똑같은 사고를 칠 수 있는 걸까.
어쨌든 더 이상의 사고는 곤란하다.
성별이 바뀌었으면 이미 사회적으로 매장당했을 거다.
그러고보니 성별은 이미 바뀌었지.
그걸 자꾸 까먹어서 이 꼬라지가 난 거고.
하랑은 조심스럽게 화장실 문을 열었다.
예상대로 소변기가 줄지어 서 있다.
다행히 다른 사람은 들어오지 않았는지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슬금슬금 걸음을 회장실 칸 밖으로 내딛었다.
이대로 잽싸게 빠져나가면 아무일도 없다.
하랑이 종종 걸음으로 이동하는 순간 화장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네, 어머님. 잘 알죠.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화기에 대고 대화하는 남자의 목소리다.
화들짝 놀랑 하랑이 스무스하게 회전해서 다시 화장실 칸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화장실 칸인줄 알았던 그 곳은 청소도구함으로 사용하고 있던 작은 공간이었다.
“걱정마시라니까요. 따님은 명단에 꼭 들어갈 거에요.”
다시 밖으로 나갈 시간은 없었다.
하랑은 넘어지려는 마대 자루를 꽉 움켜쥐고 문 뒤로 숨었다.
잠금쇠를 잠그려고 손을 뻗었지만 안쪽이 아닌 바깥쪽에서 잠기게 되어있는 문이었다.
문은 한 뼘정도 열린 채로 멈췄다.
안쪽으로 여닫게 되어 있어서 밖의 상황은 보이지 않았다.
반대로 바깥에서도 안이 보이질 않는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했다.
“계좌는 저번에 불러드린 그대로입니다. 거기로 입금해주시면 돼요.”
남자의 걸음 소리가 화장실 안쪽까지 계속 됐다.
끝에 다다라 발소리가 멈추었고 이번에는 화장실 칸의 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가려나?
하랑은 남자가 칸으로 들어가면 재빠르게 나가려고 했지만, 발소리는 계속 들렸다.
이번에는 화장실 바깥을 향해 움직인다.
한 걸음. 두 걸음.
옆 칸의 문을 열었다가 닫는다.
그리고 또 다시 두 걸음을 걷는다.
또 다시 화장실 칸의 문을 여닫는다.
그제서야 남자의 이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달았다.
화장실 안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아, 걱정하지 마시라니까. 원래 걸그룹에는 얼굴 마담도 필요한 법이에요. 따님은 충분히 예뻐요.”
하랑의 옆 칸에 있는 문도 열렸다가 닫혔다.
이제 꼼짝없이 숨어있는 게 들통날 상황이다.
하랑은 들고있던 마대자루라도 휘두르고 도망칠 요량으로 자루를 잡은 두 손에 바짝 힘을 주었다.
“큰 거 한 장. 따님 인생을 생각하시면 푼돈입니다.”
남자의 손이 열린 틈 사이로 쑤욱 들어왔다. 하랑이 문 뒤로 몸을 바싹 붙였다.
들어온 손의 손목에 명품 시계를 차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문 틈으로 들어온 손은 더듬거리며 잠금쇠 부분을 만지더니 도로 밖으로 빠져나갔다.
청소도구함이라는 걸 파악한 모양이다.
이 칸에는 사람이 없을 거라 지레짐작한 거다.
위기가 지나가자 하랑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화장실 전체를 훑은 남자는 소변기로 걸어갔다.
“8명 중에 하나 끼워넣는게 뭐 대수라고요. 12명 뽑아도 따님은 이미 내정되어 있어요. 나머지 넷은 그냥 구색 맞추기입니다.”
조르르하고 소변을 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화를 통해 나누는 대화가 왠지 오늘 경연에 관련된 내용인 듯 싶었다.
일종의 청탁으로 추정된다.
돈을 받고 누군가를 합격시켜주겠다는 거래다.
하랑은 문을 열고 남자가 누군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심사에 관여할 수 있는 그는 레몬의 고위급 관계자일 거고, 하랑은 레몬의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는 연습생일 뿐이다.
어설프게 일을 키웠다가 그가 잡아떼기라도 하면 하랑은 증명할 수 있는 게 없다.
오히려 눈에 찍히면 레몬에서의 데뷔는 물 건너간다고 봐야겠지.
“평가에 참여하는 트레이너들과는 이미 말을 맞혀두었습니다. 원래 평가라는 게 주관적인 요소가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약간 높은 점수를 받아도 그러려니 할 겁니다.”
하랑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지잉하는 진동이 울렸다.
하랑은 허둥대면서 주머니 위로 핸드폰을 붙잡았다.
다행히 거의 동시에 소변기의 자동 센서에서 딸각하고 물이 내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핸드폰 진동 소리가 묻혔을까?
“따님이 큰 실수만 하지 않게 다독여주세요. 그 뒤는 저에게 맡기시면 됩니다.”
바지를 추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별다른 의심없이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랑은 그제서야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했다.
역시나 꼬맹이였다.
- 수업 시작하는데 뭐하고 있어? 핸드폰 걷는 중이니까 빨리 와.
스타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가장 빛나는 시절을 희생하는 아이들이다.
학교도 포기하고, 일상도 포기하고, 응당 있어야할 친구들과의 인연도 포기하고, 그렇게 땀내나는 연습실에서 하루 12시간을 연습에 매진한다.
천명 중에 한명만 성공하는 꿈을 위해 인생을 걸었다.
그런 애들을 들러리로 세우겠다고?
돈을 받고 꿈을 팔겠다고?
엔터 바닥이 썩은 줄은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돈으로 꿈을 팔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연예인이라는 상품을 만들어서 다른 기획사의 상품들과 경쟁하는 곳이니까.
적어도 이윤 추구라는 피도 눈물도 없는 목표가 있으니까 하자가 있는 상품을 만들거라고는 생각치도 않았다.
레몬 엔터에는 돈을 먹고 내부 총질을 하는 작자가 있다.
당장은 자신의 배를 불리겠지만 그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레몬 엔터 자체가 시장에서 도태될 거다.
아니, 그렇게 크게 볼 필요도 없다.
당장 실력없는 누군가를 합격시키기 위해, 실력 있는 누군가가 떨어진다.
그게 하랑이 될 수도, 꼬맹이가 될 수도 있다.
“쓰레기 같으니.”
찾아내야 한다.
쭉쩡이를 찾아내서 배제시켜야 걸그룹을 런칭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기반이 생긴다.
청탁을 주고 받은 인간을 찾아내지 못하면 이번에 런칭하는 걸그룹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시한 폭탄을 안고 가게 될 것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결성된 걸그룹. 언제고 터진다.
그게 뇌물을 쳐먹은 작자일 수도 있고, 그 작자가 섭외한 트레이너일 수도 있고, 철없는 연습생의 보호자일 수도 있다.
그게 터지면 데뷔조에 올라간 아이들의 꿈도 함께 박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