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인데 악마와 계약했습니다-39화 (39/376)

〈 39화 〉 하랑 더 헤비메탈 아이돌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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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퀸에 들어선 4명의 소녀는 햄버거를 주문하려고 키오스크 앞에 모여들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식사를 하러 들어선 사람들로 매장 안은 북새통이었고, 리첼은 사람들의 눈에 띌까봐 매장 밖에서 대기 중이었다.

“자리 없는 것 같은데?”

“테이크 아웃으로 주문할 거니까 상관없어요.”

“여기 볼 일 있다며?”

“여기는 그냥 햄버거 사러 온거고, 볼 일은 요 앞 광장에 있어요.”

매장의 쇼윈도 밖으로는 넓은 광장이 있다.

사람들이 산책을 하거나 쉬기에 좋은 장소다.

테이크 아웃으로 근처 매장에서 먹거리를 사들고 광장 계단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라, 굳이 매장 안의 자리를 찾지 않아도 된다.

“제일 비싼 거 시켜요. 사이드 메뉴도 맘껏 추가하시고요.”

하랑이 리첼에게 빼앗은 신용카드를 흔들자 멤버들은 작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키오스크에서 저마다 원하는 메뉴를 눌러대자 순식간에 10만원이 훌쩍 넘는 주문 금액이 쌓인다.

“이래 많이 시켜도 돼나?”

“우리만 입인가요. 숙소에 있는 멤버들 것도 챙겨야죠.”

“리첼 선배가 뭐라 하지 않겠나?”

“돈도 많이 버는 양반이라 신용카드 결제 내역 확인도 안할 걸요.”

“그래도······.”

“쿼드러플 디럭스 한우 버거 세트는 내거니까 건들면 안돼요.”

한우 패티가 무려 네장이나 들어간단다.

가격도 무지막지해서 할인 혜택을 받지 않으면 무려 2만원에 육박하는 가격이다.

이 가격이면 그냥 고기를 사먹고 말지.

기간 한정 미끼 상품이지만 하랑은 망설이지 않고 세트 3개를 추가해 넣었다.

“아무리 니 돈 아니라지만 너무한 거 아이가?”

“하나는 바로 먹을거고 하나는 숙소에서 먹을 거에요. 나머지 하나는 가나 언니 먹일 거고요.”

“불쌍한 리첼. 호구 단단히 잡혀삔네. 가나는 뭔 죄를 저질렀길래 먹을 거로 고문하는데?”

“그 언니는 좀 먹어야 되요. 데뷔하기전에 통통하게 만드는게 제 목표입니다.”

“살찌워서 잡아먹을라꼬?”

희영은 탑처럼 높게 쌓아올린 햄버거를 보고 기겁할 가나에게 애도를 표했다.

소녀들은 주문한 햄버거 봉투를 품 안에 하나씩 끌어안고선 위풍당당하게 매장을 나섰다.

매장 밖에 서 있던 리첼은 커다란 갈색 봉투를 하나씩 안고 나오는 소녀들을 발견하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니네, 햄버거 가게 털어서 오는 거 아니지? 그거 다 먹을 수는 있는 거야?”

“그냥 후배들 회식 시켜줬다고 생각하세요. 여기 카드랑 영수증.”

“너한테 카드 맡기면 안되겠다. 거지 되는 거 시간 문제겠어.”

보통은 영수증을 확인하지 않는 리첼이었지만, 하랑이 건네준 영수증을 길이가 예사롭지 않았던 탓에 확인을 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게 대체 몇 개야? 어우, 여기 2만원짜리 햄버거는 뭔데?”

“쿼드로플 디럭스 한우 버거.”

“쿼······. 뭐?”

“기간 한정인데 한우 패티가 4장 들었데요.”

“야, 그걸 묻는게 아니잖아. 뭐 이런 비싼······. 됐다. 그래서 내건 뭔데?”

“아.”

“아? 설마 내건 잊어버렸어? 내가 카드 줬는데 내거는 안시킨거야?”

하랑은 모르쇠로 땅바닥을 쳐다보며 딴청을 피웠고, 리첼의 화살은 엉뚱하게도 소진에게 튀었다.

“소진아. 니가 얘네들 리더지?”

“어······. 네.”

“동생들이 사소한 걸 안챙기면 연장자인 네가 신경 써야지. 안 그래?”

“죄,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원하시는 거 말씀해주시면 지금 사오겠습니다!”

얼굴이 빨개진 채 어쩔 줄 모르는 소진에게서 시선을 거둔 리첼은 이번에는 희영을 노려봤다.

희영은 생글생글하게 웃는 상으로 슬그머니 소진의 등 뒤에 몸을 숨겼고, 이나도 눈치껏 그 뒤로 가서 소진을 방패막이 삼아 몸을 숨겼다.

리첼의 시선이 다시 하랑에게 돌아오자 하랑도 은근슬쩍 소진의 뒤에 숨으려다 리첼에게 붙들렸다.

“어디 가? 이 사악한 원흉아. 들고 있는 거 이리 내.”

“이건 안돼······. 요.”

“돼.”

하랑이 안고있는 햄버거 봉투를 반강제로 강탈해간 리첼이 두툼해보이는 버거 하나와 콜라를 꺼내들었다.

“이게 그거냐? 한우?”

“안돼. 내 쿼트로플 디럭스 한우 버거!”

“많잖아! 비싼 걸 왜 이렇게 많이 시켰어.”

“숙소가서 먹으려고······. 요.”

“내 카드를 네 비상식량 챙기라고 준 줄 아냐? 하난 압수야. 내가 돈 냈으니까 자격있어.”

“쳇.”

“뭐가 쳇이야. 니네 이런 거 먹으면 안돼지 않냐? 회사에 데뷔조 체중 관리 신경쓰라고 이야기한다.”

무시무시한 협박에 하랑도 백기를 들 수 밖에 없다.

영혼이 뒤바뀌었다고 먹어도 살이 안찌는 건 아니니까.

안그래도 요즘 식탐이 늘어서 곤혹스럽긴 하다.

회사에서 알면 강제로 식단을 조절하려 들텐데 요주의 대상이 되서 채소 쪼가리만 먹을 수는 없다.

“일단 저 쪽에 사람 없는데 앉아서 먹자.”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사람들이 완전히 못알아본다고 안심할 순 없다.

프라이데이나 클라우드 정도 되는 스타는 얼굴 윤곽이나 체형만 보고도 알아맞추는 팬덤이 존재한다.

가급적이면 사람들을 피하는 게 상책이지만 연습생 애들을 끌고 나온 모양새라 어디 숨어서 햄버거를 씹고 있는 것도 우습긴 하다.

위신이 떨어진다고 생각한 리첼은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다.

리첼은 소녀들을 데리고 광장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선글라스를 쓴 남자 하나와 확연히 얼굴에서 빛이 나는 소녀들이 졸롤이 앉아서 햄버거를 뜯어먹고 있는 게 눈에 띄지 않을 리 만무하다.

“저기······. 혹시······.”

리첼을 알아봤는지 교복을 입은 여학생 하나가 눈 앞에서 기웃거렸다.

리첼 옆에서 자기 얼굴 만한 햄버거를 오물오물 베어먹고 있던 하랑이 입 안의 음식물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클라우드 아니고요. 리첼 아닙니다. 관심 받고 싶지 않으니까 저리 가 주세요.”

여기 있는 사람 리첼 맞으니까 저리가라는 말과 다름 없다.

어이가 없어진 리첼이 선글라스 너머로 하랑을 노려봤다가 다시 교복입은 여학생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입술에 검지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여학생은 클라우드의 팬이었는지 환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임금님이 암행하는 것 정도로 생각한 것 같다.

다른 사람이 알아보지 못한 스타를 자신만이 알아봤다는 뿌듯함도 있겠지.

“그러면 요 옆에 앉아있다 갈게요. 조용히요.”

예의가 참 바른 팬이다. 두 걸음 정도 떨어진 광장 계단에 자리를 잡고 앉아 리첼을 뚫어지게 보고 있다.

여기 리첼 있다고 소리 안지른 게 어디냐.

정작 리첼은 팬의 뜨거운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햄버거도 못먹고 있다.

“우리 왜 여기 있냐?”

참다못한 리첼이 목소리를 낮게 깔면서 물었다.

하랑은 그 와중에도 햄버거를 우물우물 씹어대며 대답했다.

“저 현수막 보여요?”

“거리 예술 공연 한마당?”

“구청 홈페이지 보니까 오늘 여기서 공연하기로 일정이 잡혔더라고요.”

“누가?”

“제가 아는 친구들이요.”

“친구가 있어?”

이게 사람을 뭘로 보고.

방송국에 온통 적 뿐인 니네 보단 많을 거다, 병아리 놈들아.

하지만 오늘 보는 녀석들은 친하다는 의미의 친구들은 아니지.

오히려 마주치기 역겨운 놈들이다.

프라이데이 시절의 클라우드 엑스보다 더.

“반가운 친구들은 아니에요.”

“혹시 쟤네야?”

“그런 것 같아요.”

“그런 거면 그런거지 그런 것 같은 건 뭐야?”

리첼은 광장 중앙에 앰프를 연결하고 악기를 세팅하고 있는 무리들을 바라봤다.

버스킹을 하려고 소란스럽게 준비를 하고 있다.

개성이 난무하는 연예계에서 굴러먹은 리첼이 보기에도, 저 무리들은 예사롭지 않은 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가부키에 가까운 하얀색 분장으로 얼굴을 떡칠하고 스모키 화장으로 포인트를 강조한 무리들.

입술은 기본이고 코와 눈썹까지, 뚫을 수 있는 피부의 거의 모든 곳에 피어싱까지 하고 있는 걸로 보아 일반적인 음악을 하는 친구들은 아니었다.

“하랑이 친구라꼬? 저 무섭게 생긴 아재들이?”

희영 역시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도대체 얘는 사회있을 때 무엇을 하다 온 걸까?

하랑을 바라보는 희영의 눈빛에는 그런 의미가 숨어들어있다.

소진 역시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저 사람들을 어떻게 알아? 혹시 팬 같은거야?”

“안티팬도 팬이라면요.”

아무리 연결을 지으려고 생각하봐도 연결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하랑은 몹시 낯을 가리고 엄청나게 숫기가 없는 연습생이었다.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극단적인 취미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하랑이 그런 내색을 직접 내비친 적은 없다.

“하랑찡! 비밀이 많은 컨셉이야? 내 컨셉 빼앗아가지마! 출생의 비밀을 가진 건 나 뿐이어야 한다고.”

“그거는 출생의 비밀이 아니라니까, 꼬맹아.”

“그러면 저 아저씨들은 뭔데? 나 몰래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길래 저런 사람들을 알아?”

“나도 내 인생이 있단다.”

나윤희의 말투를 흉내내서 대답한 하랑이 광장 중앙의 무리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시리얼 킬러스.

연쇄 살인마들이라는 무시무시한 밴드명을 가지고 있는 메탈 밴드.

고하리라는 메인 보컬이 있었을 때는 인디 씬에서 최상급으로 이름을 날리던 밴드다.

고하리가 목소리를 잃고 소속사가 문을 닫자 저들 살길만 찾았지.

병적으로 인간 관계가 취약했던 고하리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연락을 끊었다.

고하리가 반지하방에서 천천히 죽어가고 있을 때 소속사 사장을 협박해서 지들 몫의 정산은 받아챙겼다.

고하리의 몫까지 빼돌려서 지들끼리 나눠드셨지.

그 돈 쳐먹고 성공이라도 했으면 기분은 더러울지언정 실력은 있는 밴드였구나하고 인정이라도 했을텐데, 공연을 하던 락카페에서도 쫓겨나 버스킹 바닥을 전전하고 있다.

남들은 치고 올라갈 발판으로 삼는 곳을 지원금 받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삼으면서.

“저 친구들 음악은 좀 해?”

리첼이 묻자 하랑은 쓰게 웃었다.

“메인보컬을 제대로 구했다면 여기서 공연을 하고 있을리는 없겠죠.”

“여기서 공연하는 게 어때서? 니들은 대형 소속사에서 연습생으로 시작한 거라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여기 서는 가수들 무시하면 안돼. 가수 중에는 버스킹으로 시작한 대선배들도 많아.”

“쟤네는 버스킹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 버스킹으로 떨어진 거에요.”

하랑은 고하리의 생전을 검색하던 중에 시리얼 킬러스가 이태원 광장에서 버스킹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매니악한 팬층을 가진 메탈 밴드가 일반 대중 앞에서 버스킹이라니.

처음에는 동명을 가진 밴드인줄 알았다.

하지만 밴드의 경력 사항을 확인해보니 고하리가 속했던 그 밴드가 맞았다.

이미 이 곳에서 두 차례나 공연을 한 이력이 있다.

헤비메탈 밴드를 대중 공연 명단에 올린 공무원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다양성의 측면에서 수락한 건가?

공연 참가자 목록을 보니 실제로도 분야가 다양하긴 했다.

댄스, 발라드, 사물놀이, 힙합까지.

거기에 헤비메탈 하나 끼어든다고 딱히 이상한 건 아니다.

담당 공무원은 저 놈들이 하는 음악이 뭔지 몰랐을 거다.

어쩌면 두 차례 공연 이후에 이미 시말서를 제출했을지도 모르지.

광장에서는 시리얼 킬러스의 경악스러운 분장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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