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하랑 더 헤비메탈 아이돌 (5)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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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영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팔짱을 낀 이나가 몸을 잡아당기고 있는데 미동조차 할 수가 없었다.
손가락 하나도 꼼짝할 수 없는 무력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괴물······.”
따라오지말걸.
그냥 숙소에 있을걸.
영상으로 확인했던 것에 만족했어야했다.
그냥 영상의 음향 상태가 좋지 않아서 실제보다 더 잘 부르는 것처럼 들렸다고 자위하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그럴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억지로라도 그렇게 되새겼다.
저런 걸 라이브로 들어버리면 너무 비참해지잖아.
메인보컬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쟤를 이길 수 있나?
아니, 근처라도 갈 수 있긴 한 거야?
리드보컬 조희영? 서브보컬 조희영?
조희영의 이름에서 메인이라는 단어가 빠지는 상상을 하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괜시리 울컥하고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무대 위의 하랑은 오롯이 스스로 빛을 내고 있다.
매니악하기 짝이 없는 음악으로 매니악하지 않은 관객들을 끌어모은다.
스스로 눈부시게 타올라 사방에서 부나방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밴드원들은 박자도 맞지 않는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데 깡그리 무시하고 홀로 무대를 장악하고 있다.
시너지라는 단어조차 사치다.
독단적이고 오만한 여왕이다. 혼자서 연주하고 혼자서 노래한다.
그리고 혼자서 모두를 압도한다.
저런 애가 대체 왜 걸그룹을 하려고 하는데!
솔로로 데뷔해도 충분하잖아!
너 같은게 여기 있는 거 자체가 생태계 파괴라고.
꽉 움켜쥔 희영의 주먹에 손톱이 파고들어 멍울을 남기고 있었지만, 떨리는 눈길은 하랑에게 박혀 떨어지질 않았다.
- 우리는 좀비! 도시로 가자!
- 오와! 오와! 오와아아!
이제는 후렴구를 따라 외치는 관객들까지 생겨났다.
오와!를 외치는 음률은 단순하지만 반복적이고 중독성이 있었다.
“염병할! 왜 음이 달라!”
건반를 담당하던 시리얼 킬러스 멤버가 비명을 질렀다.
하랑의 노래는 이미 그들이 알던 좀비 축제가 아니었다.
눈 앞에서 실시간으로 노래가 바뀌고 있다.
익숙했던 기타 리프도 어느 순간 부터 낯설게 바뀌어간다.
리더인 드러머만 간신히 박자를 맞추며 따라갈 뿐 기교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관객들은 그걸 알아챌 정신이 없었다.
하랑의 기타 리프는 더없이 강렬했고 금속을 긁어대는 듯한 목소리는 폐부를 찔러왔다.
무대를 압도하는 여자 보컬만 눈에 들어올 뿐, 나머지 밴드 멤버가 진땀을 흘리며 허둥대는 모습은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와! 오와! 오와아아!”
간이 무대 앞까지 밀려든 관객들이 매력적인 훅을 따라 외쳤다.
“멀리서 봤을 때는 몰랐는데, 쟤 겁나 이쁘지 않냐?”
“화장 지우면 엄청 예쁠 것 같은데? 귀도 정화되고 눈도 정화되네.”
“진짜 카리스마 폭발이다. 쟤네 원래 어디서 공연하지?”
위험할 정도로 무대 가까이 몰려는 관객들이었다.
이제는 인파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규모다.
불쌍한 구청 공무원은 양팔을 벌려 몰려드는 관객을 애처롭게 막아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오와! 오와! 오와아아!”
처음에는 낯선 하랑이 무섭다고 희영에게 팔짱을 끼고 오돌오돌 떨고 있던 이나도 어느새 하늘을 향해 주먹을 뻗으며 후렴구를 외치고 있다.
“이게 헤비메탈이구나! 나 오늘부터 헤비메탈 매니아가 되기로 했어!”
“정신 사나우니까 조용히 해. 팔 아프니까 이것도 놓고.”
희영이 딱딱하게 말했다. 웃음기가 싹 빠진 말투에 사투리 억양도 전혀 없다.
그냥 무대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왠지 화가 난 듯한 표정이다.
이나가 머쓱해 하면서 팔짱을 낀 희영의 팔을 놓아주었다.
슬그머니 소진의 쪽으로 다가가자 소진이 머리를 쓰다듬고는 이나를 자신의 품으로 살짝 끌어안았다.
“혼났어요? 우리 쪼꼬미.”
이나가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이자 소진이 싱긋이 웃어주었다.
“희영이가 집중해서 듣고 있었나보다. 무대 끝날때까지 언니랑 있자.”
광란의 도가니는 곧 수그러들었다.
강렬한 샤우팅으로 시작한 노래는 하랑이 기타에서 손을 뗌과 동시에 마무리 되었다.
“앵콜! 앵콜! 앵콜!”
이제 막 흥이 돋기 시작한 관객들의 앙코르 요청이 쇄도했다.
소음이나 다름없는 곡만 줄창 들었다가 보컬이 바뀌고나서야 제대로 된 노래를 들었다.
끓어오른 텐션을 이대로 끊어버리는 것도 무대에 오른 가수로서의 예의가 아니다.
하랑은 시리얼 킬러스 밴드 멤버들을 슬쩍 돌아보았다.
짙은 화장이 땀 범벅으로 인해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눈빛을 보니 하랑의 변주를 따라오느라 멘탈이 와르르 무너진 게 느껴진다.
평소 같았으면 성질을 부리고 공연을 여기서 멈췄겠지만 지금의 분위기에서는 그럴 수 없다.
자신들의 공연에 기여한 바가 일정 수준만 되었어도 발언권이 주어졌겠지만 시리얼 킬러스는 단 한곡의 합주만으로 하랑에게 먹혀버렸다.
미친 암늑대에게 쫓기는 양떼가 되어 무대를 내려가는 건 자존심상 용납할 수가 없는 거다.
하랑이 드러머를 향해 씨익 웃었다.
드러머의 눈에는 빨간마스크를 벗은 입 찢어진 귀신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랑이 다시 관객들을 바라보며 외쳤다.
“여러분 즐거우셨나요!”
“네에!”
“한번 더 즐길 준비, 되셨나요!”
“네에에에!”
“그럼 한번 놀아 봅시다!”
하랑이 검지 손가락을 하늘로 뻗으며 소리쳤다.
시리얼 킬러스는 동시에 사형선고라도 받은 사형수의 표정을 지었다.
이 짓거리를 또 한다고? 이번엔 뭔데!
이런 건 약속에 없었잖아! 한곡만 하고 내려간다며!
하랑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음 곡을 주문했다.
“월야. 준비해.”
월야는 엄일히 따지면 시리얼 킬러스의 곡은 아니었다.
한창 공중파에서 활동 중인 락밴드인 이대리 밴드의 곡이었다.
“야이, 미친년아. 상의도 없이 무슨 짓이야. 우리 그거 연주 못해!”
“지랄하지말고. 니네 플레이 리스트에 들어가 있는 곡인거 다 알고 있어.”
시리얼 킬러스는 자작곡이 많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자작곡 일부에 다른 가수의 커버곡을 들고 무대에 올라간다.
자주 무대에 올리진 않았지만 월야도 그 바리에이션 중 하나에 속했다.
월야는 꽤 난이도가 높은 곡이다.
톱 클래스의 락밴드가 공중파에 올라타기 위해 만든 곡이니 어련하겠냐만은.
멤버들의 손발이 제대로 맞지 않으면 무대를 망치기 일수인 곡이다.
실제로도 무대를 크게 망친 이후엔 무대에 다시 들고 올라가지 않았다.
타고난 음색을 가진 고하리가 있을 땐 어떻게 수습이라도 해서 내려오긴 했지만 지금 보컬 자리에 서 있는 건 고하리가 아닌 그녀의 여동생이다.
“고하리도 간신히 수습한 노래야. 그 이후로는 무대에 올린 적도 없다고.”
베이시스트가 슬쩍 옆을 바라봤다.
그래.
고하리의 여동생.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는 모르겠는데 고하리보다 더 강렬하고 압도적인 보컬이다.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 정신이 반쯤 나간 보컬은 방금 전 무대에서도 지 혼자 다 해먹지 않았는가.
심지어 고하리와 같은 음색을 가지고 있고 음역대는 고하리보다도 넓다.
그리고 성격도 개차반이다.
“쫄보 새끼들. 이 관중들을 그냥 돌려보낼거야? 나 같으면 쪽팔려서 불알떼고 밴드 때려친다.”
하랑의 도발에 욱하고 욕지기가 치민다.
반면 고하리와 같은 음색을 지니고 있으니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시발, 해!”
“이번에도 아마추어처럼 빌빌거릴건 아니지? 잠깐, 프로가 아니니 원래 아마추어인가?”
계속되는 도발에 드러머가 인상을 팍 쓰다가 악을 질러댔다.
“원, 투, 쓰리, 고!”
이번에는 고삐를 쥐고 가겠다는 의지인지 드러머는 갑작스럽게 튀어나갔다.
경쾌한 드럼 소리와 함께 앙코르 공연의 막이 올랐다.
요란한 악기음들이 한데 어우러지자 사람들은 다시금 신이 나서 박자에 맞춰 발을 굴렀다.
“하랑찡, 신나 보여요.”
“그러게 의외로 잘 어울리네. 무대에 많이 서 본 사람 같아.”
이나의 말에 대답을 하는 소진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래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건 처음일건데. 떨리지도 않나봐요.”
“좋겠다. 용감해서.”
관중의 함성소리에 덩달아 흥분된 소진이 자신을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떨린다.
본인이 무대에 올라간 것도 아닌데 열광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지고 손이 떨려온다.
오늘은 리첼 선배하고 바람 쐬러 나간다고 해서 화장도 하고 나왔는데 어째서?
아무도 이쪽을 바라보고 있지않다는 걸 아는데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소진 언니 괜찮아요?”
“응?”
“손을 왜 그렇게 떨어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나도 모르게 긴장했나봐.”
의도치 않게 목소리도 계속 떨린다.
시야도 흐릿하고 사람들이 겹쳐보인다.
이건 무대 공포증의 증상이다.
무대에 서지 않아도 이렇게 되는 거야?
단지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는 이유로?
오늘은 화장까지 했다고. 심지어 무대에 서지도 않았어!
“조, 좀 앉아 있자. 하랑이 노래가 진을 다 빼놔서 피곤하네.”
소진이 계단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람들에 가려서 무대가 안보이니 숨통이 약간 트이는 기분이다.
이런게 진짜 무대구나.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진짜 무대.
그동안 숱하게 봐왔던 공연이며 콘서트들은 애들 소꿉놀이에 불과했다.
그토록 선망하고 되고 싶었던 아이돌은 무대에 서 있는 하랑에 비교하면 태양 앞의 반딧불 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쟤랑 무대에 서면 항상 이렇겠지?”
하랑과 함께 무대 위에 서 있는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광분한 관객들이 자리에서 방방 뛰면서 공연장을 떼창으로 가득 메우는 상상.
손끝의 떨림이 도무지 멎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팔짱을 껴고 서있던 리첼이 소진을 힐끗 내려다보더니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익숙해져. 그거 말고는 답이 없어. 너희는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와 있잖아.”
마치 소진의 병증을 알고 있는 듯한 말이었다.
소진이 고개를 들어 리첼을 바라봤지만 여전히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리첼 선배는 무대에서 떨린 적 없어요?”
“왜 없겠냐. 런칭하기도 전에 회사에서 프라이데이의 라이벌이라는 언플로 거품을 터지기 직전까지 키워놨는데. 첫 무대부터 망치면 어떻하나 하는 생각 뿐이었지. 무대 끝나고 나니까 다리에 힘이 풀려서 저절로 주저 앉게 되더라.”
“하랑이는 그런게 전혀 없어보여요.”
“쟤는 논외야. 누구나 쟤처럼 할 수 있으면 클라우드고 프라이데이고 간에 이미 차트 밖으로 밀려나서 사라졌어. 괴물들만 모여서 차트인하고 있겠지.”
“하지만 겁나요. 사람들 앞에 서는게······.”
“다들 그래. 버티면 올라가는 거고 못 버티면 추락하는 거야. 동앗줄 꽉 잡아. 저 녀석이 너희가 정상으로 올라가게 만들어 줄 동앗줄이 될 테니까.”
리첼이 소진 앞에 마주보며 쪼그려 앉더니 선글라스를 벗어서 소진의 눈에 씌워주었다.
소진이 살짝 당황했지만 리첼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섭다고 피하면 끝이 없어. 저 녀석의 무대를 눈에 똑똑히 새겨. 익숙해지는 게 신소진, 네가 해야될 일이야.”
선글라스 때문에 시야가 약간 어두워졌다.
단지 그뿐이다.
하지만 어느샌가 손의 떨림도 멈췄다.
이제야 흐릿하게 보였던 사람들이 제대로 보인다.
얼굴에 검은 안경 하나 걸쳤을 뿐인데.
“당장은 이게 도움이 될거야. 다만, 명심해. 얼굴에 화장을 진하게 한다고, 혹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다고 남들이 널 못 보는게 아니다.”
“선배, 어떻게 그걸?”
이 사람은 자신이 무대공포증을 겪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화장을 진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도.
“내가 시간이 남아서 월말평가 때마다 심사보러 들어가는지 알았어? 평가 때마다 겁에 질려 울면서 무대를 내려갔던 연습생을 난 아직 기억해.”
“안 울었어요······.”
“매번 아무것도 못하고 울면서 내려가는데 기억 못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트레이너들한테 물어봤는데 맨투맨으로 가르칠 땐 실력이 출중한 연습생이라더라. 그런데 무대만 올라가면 목각 인형이 되어서는 삐걱거리다 울면서 내려가.”
“안 울었다니까요.”
“무대를 마무리 짓지 못해서 매번 최하위를 기록했던 연습생이 어느 날 갑자기 평가 1위를 찍었어. 고난이도의 댄스를 보여주면서도 단 한번도 실수를 안했지. 궁금하잖아. 어떻게 한건지.”
리첼이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가를 누르고 옆으로 길게 늘어뜨렸다.
“눈화장. 바로 알겠더라. 꼬마애가 엄마 화장품 훔쳐서 화장한 것 같이 어설펐으니까. 팬더 곰 같아보여서 보는 사람은 되게 웃긴데 본인은 시종일관 진지해서 웃을 수도 없었지.”
“그 때는 익숙하지 않았으니까.”
“그 화장은 정신 무장 같은 게 아니었어. 그냥 가면이었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너 자신을 가둔거야. 다른 사람이 못보게 할 수는 없으니 네가 스스로 안보이기로 한거야. 얼추 맞지?”
소진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았다.
검은 안경알 너머의 리첼이 소진을 똑바로 바라봤다.
“시도는 좋았어. 대부분은 눈치를 못챘고, 방어 기제도 극히 자연스러웠으니까. 하지만 스스로도 알잖아. 이대로는 힘들다는 거.”
리첼이 소진이 착용한 선글라스의 양쪽 끝을 매만져 기울어진 균형을 다시 맞춰주었다.
“그러니까······. 봐. 익숙해져. 저런 무대는 흔치 않아. 네가 무대에 서지 않고도 간접적으로 무대를 마주할 수 있는 경험이야.”
리첼이 소진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왠지 힘이 나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계단에서 일어나 사람들의 머리 위로 펼쳐진 무대를 바라봤다.
하랑은 여전히 그 곳에서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선글라스를 써도 그 광채는 결코 사그러들지 않는다.
“둘이 뭘 그렇게 떠들어요? 혹시 리첼, 하랑찡 버려두고 소진 언니랑 바람피는 거?”
이나가 눈치 없이 끼어들자 리첼이 가볍게 정수리에 꿀밤을 먹였다.
“아야!”
“이상한 소문 만들지마라, 꼬맹아. 안그래도 그것 때문에 신경 쓰여 죽겠는데.”
“꼬맹이 아니거든요!”
이나가 과장되게 정수리를 매만지며 반항을 했지만 자리에서 일어난 소진이 이나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속삭이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쪼꼬미야. 리첼 선배가 누구랑 바람을 피운다고?”
이나가 딴청을 피우며 잠잠해지자 소진은 다시 무대로 눈을 돌렸다.
이제야 무대가 눈에 제대로 들어온다. 웅웅거리던 밴드 사운드도 제대로 들려온다.
강렬한 드럼소리와 일렉기타, 베이스와 건반이 한데 어우러져 오케스트라 같은 느낌의 하모니가 광장에 울려퍼지고 있다.
그걸 깨닫는 순간 거대한 위화감이 몰려든다.
오케스트라?
헤비메탈 밴드 아니었어?
소진과 대화를 나눈느라 정신이 팔렸던 리첼도 이제야 깨달았다. 밴드 사운드가 장엄해진 게 아니다.
저들의 정체성은 여전히 메탈 밴드다.
보컬이 바뀌었다.
거친 락앤롤의 연주 위로 하랑의 맑은 목소리가 덮어지고 있다.
이건 성악의 발성이다.
“락페라(Rockpera ?”
즉흥적으로 저런 시도를 한다는 게 가능할까?
아니면 이런 일이 벌어질 걸 알고 미리 준비한 걸까?
리챌이 허탈하게 웃었다.
이제는 하랑이 뭘하든 놀랍지도 않을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