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인데 악마와 계약했습니다-78화 (78/376)

더 래퍼 (3)

일재의 자살 소식이 뉴스에 알려진 것은 팬사인회가 끝나고 이틀이 지나서였다.

소속사인 그루밍 엔터는 이일재가 공황 장애를 앓았으며 심리적으로 불안정했다는 걸 강조하면서 마약이 아닌 자살이라는 단어에 논점을 맞췄다.

타살의 정황이 없었고 고인의 가족들도 일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수사 역시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되었다.

일부 누리꾼들이 마약 공급책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지만, 순수하게 이일재의 죽음을 애도하는 누리꾼이 압도적으로 많았기에 소수 의견은 조용히 묻혀버렸다.

홀리데이인 나윤희는 가게 문까지 닫고 이일재의 빈소를 찾아갔지만, 입장이 허락되지 않아서 빈소 앞에 모인 홀리데이의 비공식 추모 행사에 참여하고 돌아왔다.

혜수와 마요도 애도를 표했지만,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다.

시트러스밤의 커리큘럼은 계속 이어졌고, 데뷔에 불이익을 받으면서까지 일재의 추모 행사에 참여할 만한 여유는 없었다.

마음속으로 애도를 하는 게 최선이었다.

하랑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재를 추모하기로 결정했다.

***

“시트러스밤에는 아직 래퍼 롤을 감당할 만한 아이가 없어. 루비, 네가 들어온다면 거의 확정적으로 데뷔 명단에 오를 거야.”

치프 매니저 도지철이 앞장서서 걸으며, 뒤따라오는 여자에게 말을 건넸다.

백금발로 염색한 단발머리의 여성은 조금 전 이문학에게 시트러스밤의 열두 번째 멤버라고 소개를 받은 연습생이었다.

이름은 노루비. 나이는 24세.

그루밍 엔터 소속의 연습생이었다가 포스트 뮤직으로 이적했고, 구지아와 스와프 트레이드되었다.

아이돌 판은 기본적으로 외모를 우선시하기에 실력까지 겸비한 여성 래퍼가 드물었다.

실력과 외모로만 따진다면 이 노루비라는 연습생은 진작 데뷔를 했어야 마땅한 인재였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장님.”

“감사는 이문학 이사님한테 해. 널 콕 집어서 시트러스밤의 데뷔조에 넣어주신 분이니까.”

“어쨌든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숙소로 가기 전에 사옥 한번 둘러보고 싶다고 했었지? 저녁 시간이니까 빠르게 한번 쓱 둘러보고 가자고.”

이문학에게 히스토리는 전달받았다.

백금발의 연습생, 노루비는 글로벌 스타인 LEXY의 데뷔조에 올랐던 경력이 있었다.

3대 레이블인 그루밍 엔터의 데뷔조까지 올라왔으니 실력은 검증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다만 시트러스밤의 다른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치명적인 흠결이 있다.

이 아이는 정상적으로 데뷔하지 못한다.

데뷔와 동시에 시트러스밤을 휘청거리게 만들 이슈를 가진 폭탄이다.

류하민이 식물인간이 되고 이일재까지 사망한 지금, 망연자실한 프라이데이의 팬덤은 갈 곳 잃은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아이는 그 목적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는 먹잇감이다.

지금 당장은 노루비라는 예명을 사용하고 있지만, 실명이 밝혀지고 홀리데이의 거센 공격을 받는 건 시간문제다.

노루비와 같은 자리에 선 시트러스밤은 그녀가 쫓겨난 이후에 홀리데이의 새로운 먹잇감이 될 거다.

무례한 태도로 인해 연습생들에게 쥐새끼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도지철이었지만, 희생양으로 영입된 노루비를 차마 매정하게 대할 수가 없었다.

“7층에 안무연습실이 있어. 연습생들은 시간을 나눠서 사용하고 있는데, 시트러스밤은 연습실 하나를 고정으로 사용하고 있지.”

도지철은 노루비를 7층으로 안내했다.

연습생 커리큘럼이 끝난 시간이라 대부분의 안무연습실은 불이 꺼져 있었다.

유독 하나의 안무연습실만 불이 켜져 있었는데, 유리문 입구에는 ‘시트러스밤’이라는 라벨이 붙어있었다.

“여기가 시트러스밤이 사용하는 안무실이야. 누가 있는 거 같은데 미리 인사하고 갈래?”

“네!”

안무실을 열고 들어서자 시끄러운 음악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고무로 된 운동화 밑창이 마루와 마찰을 일으키면서 나는 경쾌한 소리가 귀를 자극한다.

작은 키의 소녀가 클라우드 엑스의 히트곡 ‘피그말리온’에 맞춰서 절도있게 춤을 추고 있다.

춤을 추는 데 정신을 빼앗겼는지 안무실에 다른 사람이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 짝! 짝!

도지철이 두 차례나 손뼉을 크게 치고 나서야 소녀는 비로소 인기척을 느끼고 도지철 일행을 돌아봤다.

“어? 실장님? 여긴 어쩐 일로······.”

리모컨으로 음악을 끈 소녀가 도지철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도지철 뒤에 서 있는 백금발의 여성을 바라봤다.

도지철은 노루비를 소개하기 전에 잔소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직 퇴근 안 했어?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수업 다 끝나고 나머지 공부를 하더라. 이쪽은 너희 새 멤버. 인사들 나눠.”

루비가 환하게 웃으면서 먼저 다가왔다.

“노루비에요. 이번에 시트러스밤으로 영입되었어요. 잘 부탁해요.”

“류이나입니다. 시트러스밤 막내예요.”

루비가 내민 손을 이나가 마주 잡고 흔들었다.

체이에 이어서 두 번째 외부 영입 멤버다.

그리고 시트러스밤의 마지막 멤버이기도 했다.

첫인상도 나쁘지 않다.

체이는 첫인상이 살짝 드세 보였는데, 노루비라는 이름의 이 언니는 왠지 모르게 친근함이 느껴진다.

이나가 혹시나 해서 물었다.

“혹시 우리, 전에 본 적 있어요?”

“어? 저도 그 생각했는데. 제가 아는 누굴 많이 닮았어요.”

“그런 이야기 많이 들어요. 인정하긴 싫은데 오빠랑 인상이 닮아서 그런 것 같아요. 좀 유명한 사람이거든요.”

“오빠요?”

루비의 물음에 이나는 살짝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시트러스밤의 모든 멤버가 알고 있는데 더는 숨길 필요가 없다.

“네. 프라이데이 류하민이요. 제 친오빠예요.”

이나의 대답을 들은 순간 루비는 자신도 모르게 악수를 하던 손을 놓아버렸다.

“하민······. 오빠, 동생이에요?”

“네. 울 오빠 아시죠? 아마도 그래서 낯이 익어 보인 걸 거에요.”

해맑게 웃는 류이나의 얼굴에선 정말로 류하민과 닮은 구석이 엿보였다.

정말로 류하민과 친남매 사이라면 루비는 이나와 전에 잠깐 마주친 적이 있었다.

류하민의 오피스텔 앞에서.

이나가 루비를 본 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그때의 기억이 남아 있는 탓이리라.

“바, 반가워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저는 다른 곳도 좀 둘러봐야 해서······.”

루비가 서둘러 다시 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려 안무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도지철도 약간 당황스러웠는지 저절로 루비를 두둔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쟤가 낯을 좀 가리나 봐. 같이 지내다 보면 금방 편해질 거야.”

“멤버 중에도 낯가리는 사람들 많아요. 특별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래, 연습 적당히 하고 들어가. 난 쟤랑 사옥 한 바퀴 둘러보고 니네들 픽업해 줄 테니까 숙소 가거든 좀 친해져 봐.”

“네, 실장님. 들어가세요.”

도지철까지 나가고 나자 류이나가 작게 중얼거렸다.

“수줍음이 많은 언니네. 분명 어디서 본 거 같은데······.”

***

“지하에는 보컬룸하고 녹음실이 있어. 예약제로 운영되는데, 보컬룸은 너희가 원하면 사내 인트라넷으로 예약할 수 있어. 녹음실은 값나가는 장비가 많아서 연습생한테는 개방이 안 돼.”

지상에 있는 안무실은 노을빛이 들어와서 밝은 편이었지만, 지하에 있는 보컬룸 복도는 영화관에 들어온 것처럼 꽤 어두운 편이었다.

“오후 6시 이후로는 회사 정책상 복도 조명을 꺼놓거든. 나라에서 절전하라고 공문이 와서 말이야. 바닥 잘 보고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

4평 남짓 되는 보컬룸 여러 개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구조다.

출입문에는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창이 나 있고, 방음벽으로 공사가 되어 외부에서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네요.”

불 켜진 방은 복도 끝의 보컬룸 딱 하나뿐이었다.

도지철도 은근히 찔렸는지 저절로 변명이 나왔다.

“월말 평가 시즌이 아니라서 그래. 월말에는 방이 꽉 차서 예약하려면 대학교 수강 신청하는 수준이야. 지금처럼 여유 있을 때 연습 많이 해둬.”

도지철이 비어있는 보컬룸 하나를 열어서 조명을 켰다. 거창한 기기 같은 건 없다. 책상과 의자, 마이크와 스피커 정도가 전부다.

“단출하네요.”

“공짜잖냐. 그래도 공간은 널찍해. 방음도 잘 돼 있고.”

이 정도면 그루밍 엔터와 비슷한 환경이다.

포스트 뮤직에 있었을 때는 연습생용 보컬룸도 따로 제공되지 않아서 연계된 보컬 학원의 보컬실을 대여해서 사용했다.

이 정도 보컬룸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훌륭한 혜택이다.

노루비가 보컬룸을 둘러보고 있는 사이에 도지철은 스마트폰을 꺼내 인트라넷을 확인했다.

보컬룸 예약 테이블을 띄워 현재 보컬룸을 사용하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를 확인했다.

“보자, 지금 보컬룸 사용하고 있는 녀석도 시트러스밤 멤버구나. 인사하고 갈래?”

“네, 그럴게요.”

복도 끝에 불 켜진 보컬룸을 사용하고 있던 사람이 시트러스밤의 멤버인 모양이었다.

도지철이 앞장을 섰고, 루비가 뒤를 따랐다.

불 켜진 보컬룸 입구의 작은 창으로 아까 안무실에서 보았던 류이나만큼 작은 여자애 하나가 보였다.

입구를 등지고 서 있었는데, 손짓이 화려한 걸로 보아 안무는 아니고 퍼포먼스를 연습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모양이었다.

“쟤는 이하랑이야. 최근에 유명해졌는데 혹시 알아?”

“아! 알아요, 이하랑! 메인보컬이죠? 인터뷰하고 노래 부르는 거 봤어요. 진짜 소름 끼치게 잘하던데요.”

도지철이 탐탁잖게 웃었다. 원래대로라면 열애설 때문에 시트러스밤에서 쫓겨났어야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우연이 겹치면서 여전히 시트러스밤에 남아 있는 아이였다.

이제는 김중식 대표의 집중 케어를 받고 있어서 도지철은 고사하고 이문학 이사도 함부로 쳐낼 수 없게 되었다.

다른 건 몰라도 실력만큼은 진짜배기였다.

“실력도 괴물 같은 녀석이 늦게까지 보컬 연습을 하고 있으니까 좋은 결과가 나올 수밖에. 넌 쟤랑 포지션이 안 겹쳐서 그나마 다행이다. 래퍼라고 했지?”

“네, 래퍼 롤로 영입됐어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경쟁자 없다고 자만하지 말고 열심히 해. 얼른 얼굴보고, 바로 숙소로 가자고.”

도지철이 문을 두드렸지만, 방음이 잘되어 있는 탓인지 하랑은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안에서 문을 잠글 수 없는 구조라서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가기로 했다.

한 뼘 정도 문을 여는 순간 보컬룸의 소리가 복도로 새어 나왔다.

- 쓰레기 더미에서 왕이 돌아왔노라 고해

- 기레기 마와리해서  뺑이 치느라고 왜

- 찌끄래기 무리 왔어? 많이 혼날라고 해?

- I.B.I.T.T. 소리 내서 저기 하늘나라 Go away

멜로디가 있는 음악이 아니다.

보컬룸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는 드럼 비트와 랩 가사였다.

랩에 관해 문외한인 도지철이 듣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수준이다.

도지철이 당황하면서 노루비의 눈치를 봤다.

포지션이 겹치지 않는다고 소개를 해놨는데 메인보컬이라는 녀석이 보컬룸에서 랩을 연습하고 있다.

민망하고 어색한 상황이다.

“메인보컬이라면서요?”

노루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도지철을 바라봤는데 도지철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시트러스밤의 보고서는 담당 트레이너를 통해서 매주 올라오지만, 이하랑이 랩을 한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어······. 요즘 아이돌은 다재다능해야 돼. 노래도 하고 랩도 조금 할 줄 알면······.”

“저건 조금이 아닌데요? 그냥 흠잡을 때 없는 래퍼잖아요.”

기성곡도 아니다.

처음 듣는 가사에 드럼 비트만 있는 걸 보면 완성된 곡이 아니라 만들고 있는 곡이다.

심지어 완숙한 래퍼처럼 레이백으로 박자가 살짝 어긋나게 가사를 씹어댄다.

박자 감각이 타고나야 저렇게 할 수 있다.

분명 메인래퍼 포지션으로 듣고서 레몬으로 이적했는데, 시트러스밤에 이미 메인래퍼가 있다.

객관적으로 봐도 노루비 자신보다 실력이 월등히 뛰어나다.

좀 더 들어보니 정박으로 들어가는 라임이 거의 없다.

반 박자 빠르게 라임을 박는 싱코페이션과 반 박자 느리게 라임을 박는 레이백을 교차로 사용하고 있다.

정박으로 들어갈 때도, 빠르게 뱉거나 혹은 느리게 뱉어서 병적으로 디테일에 집착한다.

플로우가 단조로워 지는 걸, 극단적으로 꺼리는 성향이다.

프라이데이 이일재가 자신의 솔로곡에 이런 형태의 플로우를 즐겨 사용했다.

단순히 흉내를 내는 게 아니라 자유자재로 박자를 가지고 노는 느낌이다.

그제서야 등 뒤에서 인기척을 느낀 하랑이 뒤를 돌아봤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도지철을 발견한 하랑이, 노래를 멈추고 스피커를 껐다.

“쥐······. 철 실장님?”

“너 방금 쥐라고 했지?”

“아유, 그럴 리가요. 지철 실장님이라고 불렀는데 잘 못 들으신 거예요. 스피커 사운드가 너무 컸죠?”

“그냥 도 실장님이라고 불러.”

“이름 부르면 친근하고 좋잖아요. 쥐철 실장님.”

“기분 탓이 아닌 것 같아. 이름 부르지마, 인마.”

“여긴 어쩐 일이세요?”

하랑이 머쓱하게 헛기침을 하고는 도지철에게 물었다.

볼 때마다 되도 않는 잔소리를 늘어놓는 도지철과는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굳이 하랑이 연습하는 보컬룸까지 찾아온 이유가 궁금하긴 했다.

“시트러스밤 새 멤버가 숙소 가기 전에 사옥 좀 둘러보고 싶대서 구경시켜 주는 중이야.”

그와 동시에 문이 활짝 열리고 도지철의 등 뒤에서 노루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두컴컴한 복도에 서 있었기에 보컬룸의 조명이 완전히 닿지는 못했다.

“반가워요. 노루비라고 해요. 이번에 시트러스밤에 영입되었어요.”

“아, 마지막 영입 멤버시구나. 저도 반가워요. 시트러스밤의 막내 이하랑이에요.”

“하랑 씨도 막내예요? 안무실에 있던 친구도 자기가 막내라고 소개하던데······.”

“이나 먼저 만나고 오셨나 보네요. 걔랑 저랑 동갑내기에요. 18살이요. 저보다 언니시죠? 말씀 편하게 놓으세요.”

“그래도 될까요?”

“물론이죠.”

하랑이 도지철 뒤에 서 있는 노루비에게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밀었다.

원래는 연장자가 악수를 청하는 게 맞지만, 노루비의 앞을 가리고 있는 쥐새끼가 괜히 꼴 보기 싫어서 옆으로 비켜달라는 의미로 손을 내민 것이다.

노루비가 하랑과 악수를 하려고 보컬룸 안으로 한걸음 들어섰다.

컴컴한 복도에서 밝은 보컬룸으로 완전히 들어서자 하랑은 비로소 노루비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루비는 하랑과 마주 보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보조개가 쏙 들어가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난 노루비야. 성은 노. 이름은 루비. 잘 부탁해.”

루비의 손이 악수를 청하는 하랑의 손을 마주잡았다.

루비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던 하랑이 과장되게 눈을 깜박였다.

처음 듣는 이름인데 분명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벼락을 맞은 것처럼 뇌리를 스쳐 가는 이름이 있었다.

“양혜리?”

하랑의 입에서 불시에 튀어나온 이름을 들은 루비는 그 자리에서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시트러스밤에 자신의 본명을 아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얼음처럼 굳어가는 루비의 표정을 본 하랑도 같이 얼어버렸다.

자신이 내뱉은 이름에 상대방이 반응하는 걸 본 순간, 정확하게 집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양혜리.

프라이데이 류하민과 스캔들이 터지고 잠적했던 연습생의 이름이었다.

호감을 느끼던 사이였는데 스캔들이 터지는 바람에 연애까지는 가지도 못했다.

머리 색도 달라지고 이름도 달라서 순간적으로 알아보진 못했지만, 절대로 잊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같은 데뷔조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