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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인데 악마와 계약했습니다-214화 (214/376)

214화. 또 다른 악마 (2)

그냥 안다.

대체 그게 무슨 뜻일까?

예전부터 체이는 의뭉스러운 면이 있었다.

시각적으로 표출되는 빨간 아지랑이를 제외하더라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다.

린신옌의 이중 계약.

아오야마 마요의 지하 아이돌 경력.

데뷔조 멤버들이 꽁꽁 감춰둔 치부를 체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왕슈란의 부정 청탁을 회사에 찔렀던 사람도 체이가 아닐까 의심스럽다.

이문학이 시트러스밤에 체이를 끼워 넣었다고 해서, 체이에게 모든 정보를 건네주진 않았을 거다.

이문학은 체이가 사이코패스 내지는 성격파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영입을 했다.

팀 내에서 분란을 일으키라고.

이문학의 바람대로, 체이는 신옌의 이전 소속사인 만위에의 계약서를 들고 신옌을 협박했다.

사본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 사본을 과연 이문학이 건네줬을까?

이문학은, 시트러스밤을 한순간에 날려버릴 수 있는 폭탄을 통제불능 사이코패스의 손에 쥐여줄 정도로 미련한 사람이 결코 아니다.

‘난 알아. 상대방의 약점을.’

그러니까 도대체 어떻게?

마음을 읽는 것도 아니고,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채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고명한 PD가 우리에게 수작질을 시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오늘 새벽이고, 체이는 고명한의 약점을 정확히 알고 있다.

세상에 그렇게 편한 우연이 있을 리가.

‘이전 뮤프 CP님이 어떻게 낙마했는지 기억이 안 나시나 봐요? 난 그거 재방송할 준비가 되어있는데?’

분명히 이전 CP도 체이가 날려버렸다는 뉘앙스였다.

혹시 심부름센터 같은 곳에 의뢰를 넣었던 걸까?

설마, 걸림돌이 될 만한 사람들의 약점을 죄다 긁어모으는 기벽이 있는 건 아니겠지?

* * *

“첫 음방 1위 축하하고, 오늘 하루 고생 많았다.”

JBC에서의 모든 일과가 끝났다.

허인수가 스타밴의 문을 열어주면서, 시트러스밤을 재차 격려했다.

지친 얼굴을 한 멤버들이 차례로 차량에 탑승했다.

“내일도 새벽에 인나야 되죠?”

차에 오르던 조희영이 볼멘소리를 하자, 허인수는 군인처럼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 4시 기상. 샵 들렀다가 바로 NTV로 가야 하니까, 핸드폰으로 어스튜브 보지 말고 곧장 취침해.”

“첫날부터 이래 빡쎄가 숨이나 쉬겠능교?”

“난 너희들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야 돼. 앙탈 부리지 말고 냉큼 타.”

희영이 차에 오르자, 소진이 뒤따랐다.

“매니저 오빠도 수고하셨어요.”

“그래, 소진이 너도 수고했다. 숙소 가거든, 애들 애먼 짓 하지 않게 신경 좀 써주고.”

멤버들이 차례로 차에 오르고, 마지막으로 하랑이 올라탔다.

반쯤 눈이 감겨서 길게 하품을 하는 모습이었다.

걱정이 된 허인수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오늘 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숙소로 들어가거든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자라.”

“저, 숙소 말고 회사로 데려다주세요.”

“응? 회사는 왜?”

“아직 일이 남았어요. 가면가수왕 MR 준비해야 해요.”

눈을 감은 채로 중얼거리는 하랑을 허인수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룹의 막내가 혼자서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냥 내일로 미루면……. 안 되겠지? 내일은 오늘보다 스케줄이 더 빡빡하니까…….”

내일은 NTV의 음방인 ‘핫 차트’ 새벽 사녹이 잡혀있다.

다섯 개의 음방이 5일 동안 로테이션으로 돌아가고, 나머지 이틀은 다른 스케줄이 잡혀있다.

일주일동안 쉬게 두지 않고, 풀로 돌린다는 이야기다.

거기에 더해, 이 꼬맹이는 가면가수왕의 마지막 공연까지 준비해야 한다.

허인수는 애써 하랑의 고충을 외면했다.

뭐 어떡하겠어.

앞으로 최소한 한 달 동안은 ‘난 죽었소!’를 복창하며 오기로 버텨야지.

“밥은? 니들이 피곤하다고 해서 숙소로 배달시켜 놨는데…….”

그나마 밥이라도 잘 챙겨주는 게 허인수가 해줄 수 있는 배려였다.

“알아서 시켜 먹을게요. 어린애도 아니고.”

“국물 있는 거 먹지 마. 많이 먹지도 말고. 얼굴 팅팅 붓는다.”

“울 엄마예요?”

허인수는 꼬맹이의 머리통을 쥐어박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얼른 타기나 해.”

차에 오르고 보니, 하필 체이의 옆자리만 비어있었다.

하랑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체이의 옆에 앉았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앞만 보고 앉아있는 것이, 분홍 머리는 아직까지도 빈정이 상한 것 같다.

문을 닫은 허인수가 조수석에 올라타고, 배희재가 운전대를 잡았다.

주차장을 벗어나자, 밖에서 기다리던 감귤단이 차량 근처로 따라붙었다.

시트러스밤은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어 주는 것으로 팬서비스를 마감했다.

차량은 회사를 향해 출발했고, 차에 타기 전에도 이미 비몽사몽 했던 하랑은 출발과 동시에 곯아떨어졌다.

“하랑이 피곤했나 보네.”

백미러로 뒷좌석을 바라보던 허인수가 입을 열었다.

잠에 빠진 하랑은 체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낮게 코를 골았다.

묵묵히 어깨를 빌려준 체이는, 하랑이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 찰칵.

“으음…….”

핸드폰의 플래시 불빛이 하랑의 눈꺼풀 위를 때렸다.

하랑은 잠결에도 미간을 찡그렸다.

더 뒷좌석에 있던 이나가 카시트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언니, 사진 찍어요?”

“응. 하랑이 자는 게 귀여워서. 뉴스타에 올릴 거야.”

“저 브이로그 찍으라고 캠코더 받은 거 있는데……. 영상 담아오면 오피셜 계정에 올려준대요.”

이나가 가방을 뒤적여 캠코더를 꺼냈고, 체이에게 건네주었다.

체이는 녹화 버튼을 누르고,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잠든 하랑의 모습을 담았다.

“감귤단 여러분, 우리 하랑이 보세요.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게 자고 있어요.”

뷰파인더를 훔쳐보던 이나가 나긋나긋한 어조로 말하자, 뒷좌석의 멤버들이 숨을 죽이고 큭큭거렸다.

체이가 손가락으로 하랑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고, 광채가 나는 이마가 드러났다.

하랑은 캠코더에 녹화가 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세상모르게 잠에 빠져 있었다.

- 코오오……. 코오오…….

“쪼꼬미, 코 고나? 엔간히 피곤했나 베.”

희영이 웃음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체이는 계속 하랑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입술을 하랑의 이마로 가져갔다.

- 쪽.

하랑의 이마에 선명한 립스틱 자국이 새겨졌다.

체이가 뻔뻔한 얼굴로 뒷좌석을 돌아보며, ‘쉿!’ 하고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

뒷좌석이 멤버들은 터져 나오려는 폭소를 간신히 틀어막았다.

20여 분이 지났을까?

스타밴은 회사 앞에 다다랐고, 조수석의 허인수가 뒤를 돌아보았다.

“이하랑. 회사 도착했어. 근데 너 이마에…….”

체이가 허인수에게도 ‘쉿!’ 하는 제스처를 보냈다.

허인수도 금세 체이의 장난임을 눈치채고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크흠. 이하랑. 하랑?”

여러 차례 이름을 불리고 나서야 하랑의 눈꺼풀이 바르르 떨렸다.

살짝 벌린 입술 사이로 입안에 고였던 침이 주룩 흘렀고, 체이의 어깨를 적셨다.

“츄릅……. 도착……. 했어요?”

하랑이 축축하게 젖은 입가를 손등으로 훑어내고는, 반쯤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체이는 재빨리 캠코더를 접어, 뒷좌석으로 넘겨주었다.

눈치 빠른 허인수가 하랑을 타박하며 주의를 끌었다.

“큰 언니 어깨에 침을 흘리고 그러냐. 어린애도 아니고.”

허인수가 글로브 박스를 열어 티슈를 꺼내주었다.

잠이 덜 깬 하랑은 엉겁결에 티슈 뭉치를 받아 들었다.

“아우, 미안해요. 불편하면 좀 깨우시지.”

하랑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침 범벅이 된 체이의 어깨를 닦아주었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체이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JBC 주차장에서 체이를 벌레 대하듯 굴었던 것이 떠오르는 바람에 괜스레 더 미안했다.

체이는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로 말했다.

“어깨가 좀 저리긴 한데, 괜찮아.”

아까는 엄청나게 화가 난 것 같더니, 지금은 기분이 좀 풀린 모양이다.

체이의 표정에선 싸늘함이 완전히 사라졌고, 은근한 미소까지 떠올라있다.

그 사이에 스타밴은 빌딩의 지하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하랑만 내려주고 곧바로 숙소로 돌아가야 하기에 따로 주차는 하지 않았다.

“언제 다시 픽업하러 올까? 10시쯤에 오면 괜찮겠어?”

허인수가 묻자, 하랑이 손을 내저었다.

“뭘 다시 픽업을 하러 와요? 인수 형은 우리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 한다면서요? 들어가서 쉬세요. 매니지먼트 팀에 야근하는 사람 있겠죠. 정 안되면 택시 타고 가면 돼요.”

“그래, 혹시라도 필요하면 바로 전화해. 숙소 가기 전에 꼭 톡 남겨주고, 도착해서도 톡 남기고. 스케줄 엉키는 바람에 고생이 많다.”

“저는 올라가 볼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하랑이 차에서 내리자 멤버들이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희영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적당히 하고 온나. 얼른 화장 지우고 쉬어야제.”

웬 화장?

피부가 푸석해 보이나?

하랑은 괜히 뺨을 문질러 손끝의 촉감을 확인했다.

나이가 깡패라고, 피곤함에 절어 있는데도 애기 피부처럼 매끈하고 부드럽다.

“오래는 안 걸려요. 되도록 빨리 마치고 돌아갈게요.”

다들 왜 저렇게 웃어?

퇴근하는 게 그렇게 좋은가?

스타밴은 주차장을 한 바퀴 돌아 밖으로 빠져나갔다.

엘리베이터로 걸음을 옮기던 하랑이 핸드폰을 꺼내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짧은 신호음이 끝나기도 전에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윤희 언니, 저 이제 회사에 도착했어요. 오래 기다렸어요?”

- 우리도 길을 잘못 들어서 조금 전에 도착했어.

생방송을 찾아와서 시트러스밤을 응원해 준 나윤희였다.

아무래도 그냥 보내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진나경과 함께 회사로 와달라고 미리 전화를 해뒀었다.

어차피 저녁은 먹어야 하니까, 겸사겸사 식사라도 같이할 생각이었다.

“1층 로비로 들어오시면, 제가 출입 게이트 앞에 서 있을 거예요. 오신 김에 회사 구경도 시켜드릴게요.”

- 어머!

수화기 너머로 윤희 특유의 정감 있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하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올라갔다.

출입 게이트로 걸음을 옮기자, 하랑을 알아본 보안요원이 서둘러 다가왔다.

출입증을 가져오지 않은 하랑이 쑥스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저 시트러스밤…….”

“네, 알고 있습니다. 뮤직 프론티어 1위 축하드립니다.”

다행히 보안요원은 하랑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봤다.

하긴 연습생일 때부터 수차례 마주친 얼굴이니 못 알아보는 게 이상하지.

“감사합니다.”

“저기……. 그런데…….”

보안요원은 무슨 할 말이 있는지, 머쓱하게 이마를 문지르면서 하랑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사인을 받거나, 같이 사진을 찍고 싶은 모양이다.

내부 직원이 소속 연예인의 사인을 받는 건 금지되어 있어서 망설이는 거겠지?

“사인해 드려요? 사진도 같이 찍어드릴게요.”

보안요원이 말을 꺼내기 힘들어하니, 하랑이 먼저 말을 꺼냈다.

연예인이 먼저 사인을 해주겠다고 했으니, 회사에서도 사규를 걸고넘어지진 못한다.

첫 방송을 마친 하랑은 무척이나 관대했다.

보안요원의 입꼬리가 어색하게 떨렸다.

“그게 아니라……. 그 이마에…….”

보안요원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랑!”

돌아보니 나윤희와 진나경이 손을 흔들며 달려오고 있었다.

하랑도 얼른 손짓을 보냈다.

“윤희 언니! 나경아!”

당장이라도 하랑을 끌어안을 것처럼 달려온 두 사람이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나윤희는 눈을 껌벅거리면서 하랑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고, 진나경은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질 것 같은 표정으로 입술을 씰룩거렸다.

“언니, 이마에 그건 뭐야?”

“응? 뭐가?”

“꼭 누가 뽀뽀한 거 같은데?”

하랑이 이마를 매만지면서 보안요원을 돌아보았다.

보안요원 또한 입꼬리를 씰룩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윤희가 핸드백에서 손거울을 꺼내 하랑에게 건네고 나서야, 하랑은 사태를 파악했다.

거울에 비친 말끔한 이마의 한가운데에 입술 모양의 립스틱 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무방비로 자고 있을 때 이런 짓을 해놔?

내가 우리 팀을 1위로 만들겠다고 온종일 뛰어다녔구만!

이 배은망덕한 계집애들!

하랑의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에이, 진짜……. 어쩐지 차에서 내릴 때, 계속 웃더라니…….”

“하랑, 혹시 왕따야?”

윤희가 서글픈 표정으로 물었고, 하랑은 콧김을 뿜어대며 분을 터뜨렸다.

“왕따 아녜요! 아오, 배신자들……. 반드시 복수할 테다.”

한 손으로 이마를 가린 하랑이 다시 보안요원을 돌아보았다.

“웃지 마세요. 에잉.”

* * *

“와, 이게 다 뭐라니?”

테이블 위로 펼쳐진 초밥 세트를 본 나윤희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60 피스짜리 특대형 도시락이 세 개.

회전 초밥집에서 먹는다면 아흔 접시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화장을 지우고 돌아온 하랑이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면서 말했다.

“카메라에 이쁘게 나오겠다고, 온종일 굶었어요. 뱃가죽이 등에 붙을 것 같아요.”

“저런……. 먹는 거 좋아하는 애를 굶기면서 일을 시키니?”

“어쨌거나 환상을 파는 일이니까요. 무대 의상이 크롭티라서 조금만 먹어도 티가 나요. 뱃살이 삐져나오는 게 귀엽다는 사람도 있지만, 소수의 취향이죠. 굶는 것도 아이돌 업무의 일환이에요.”

얼굴이 알려진 이상 밖에서 식사하는 게 마땅치 않다.

프라이빗 룸을 제공하는 식당을 찾아야 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매니저도 동행해야 한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이제야 퇴근한 매니저를 다시 부를 수는 없어서, 그나마 평가가 좋은 배달 초밥집에서 식사를 주문했다.

어쨌든 국물 있는 음식은 아니니까, 허인수의 말을 어긴 건 아니다.

카드 명세서를 보면 난리를 치긴 하겠지만.

“드세요. 근방에선 이 집 초밥이 괜찮아요.”

“잘 먹을게.”

“나경이도 많이 먹어.”

“응, 언니.”

하랑도 젓가락을 들고 초밥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햄스터처럼 볼이 빵빵해진 하랑에게 윤희가 물컵을 건네주었다.

“천천히 먹으렴. 체하겠구나.”

“괘않아요.”

“여기는 작업실이니?”

물을 들이켠 하랑이 유리 벽 너머의 녹음 부스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네. 곡도 쓰고 녹음도 하죠. 원래 클라우드 엑스가 사용하던 작업실인데, 저희가 물려받았어요. 팀 내에 곡 쓰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거의 저 혼자 사용하고 있죠.”

“진짜 아이돌이란 게 실감이 난다. 우리 하랑이, 진짜 연예인이구나?”

“언니랑 사장님이 안 도와주셨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어요. 사장님한테도, 앨범 활동 끝나면 꼭 찾아뵙겠다고 전해주세요.”

“그렇지 않아도 아빠가 너 되게 보고 싶어 하더라. 우리 호랑이, 우리 호랑이, 노래를 부르셔.”

하랑이 문어 초밥을 입에 넣었을 때, 작업실을 둘러보던 나경이 입을 열었다.

“언니, 리첼하고는 헤어졌어?”

“쿨럭!”

와사비가 코로 넘어왔다.

강렬한 매운 향 때문에 콧잔등이 싸해지고, 눈물이 핑 돈다.

하랑이 코를 부여잡고 고개를 숙이자, 눈치 없는 나경이 하랑을 위로했다.

“미안! 울리려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울긴, 누가! 쿨럭! 쿨럭!”

저 고삐리는 데려오지 말 걸 그랬다.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내가 잘못했어, 언니. 울지 마.”

“야, 내가 리첼이랑……. 쿨럭! 왜 사겨!”

와사비의 매운맛이 코끝을 찌르는 바람에 눈물이 줄줄 흐른다.

나윤희까지 오해를 했는지, 티슈를 한 움큼 뽑아서 하랑에게 건넸다.

“울지 마렴. 원래 첫사랑이 아픈 법이란다.”

“그것 때문에 우는 거 아니에요!”

“언니는 다 이해해. 나도 여러 번 사랑하고 여러 번 이별해 봤단다.”

아니라니까!

이놈의 와사비는 왜 이렇게 매운 거야?

“와사비요! 와사비. 코로 넘어왔어요.”

“그래. 와사비가 참 맵지?”

저 측은한 눈빛은, 하랑이 다른 핑계를 대고 있다고 믿는 눈빛이다.

와, 진짜 열불 터져서…….

종이컵의 물을 한 번에 들이켠 하랑이 진나경에게 경고했다.

“너, 리첼 이야기 하지 마. 쫓아낸다.”

“나는 그냥 걱정돼서 물어본 건데……. 리첼이 언니 때문에 소속사 옮겼나 싶기도 하고.”

“너, 나가.”

“칫, 알았어. 리첼 이야기 안 할게.”

콧잔등을 만지면서 마비된 후각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진나경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체이가 우리 학교 찾아왔던 건 알아?”

뜬금없는 이야기에 또다시 사레가 걸릴 뻔했다.

“체이가 너희 학교에 왜 찾아가?”

진나경과 체이의 연결점이 있었던가?

둘은 전혀 모르는 사이일 텐데…….

“내가 뭘 가지고 있는 줄 알고, 찾아왔었어. 그거 내놓으라고 하더라.”

“그거?”

“외장 하드? USB? 암튼 자기 거라고 돌려달라고 하길래, 나한테 없다고 했더니……. 도로 한복판에 날 버려두고 갔어. 나, 그때 차에 치일 뻔했다니까? 완전 또라이야.”

외장하드를 왜 나경이한테서 찾아?

도대체 뭐가 어떻게 꼬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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