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개와 올빼미 (3)
하랑은 본능적으로 체이의 폴더를 열었다.
체이는 본인의 약점이 들어있을 거라 했지만, 폴더 안에 들어있는 건 두 개의 동영상 파일뿐이었다.
각각 ‘요세아’, ‘안드라스’라고 이름 붙인 영상 파일이었다.
[안드라스는 증오하는 자의 약점을 알려줘. 그 대가로 불화를 만들고, 파국에 닿기를 원해. 안드라스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정신을 붕괴시키는 저주가 계약자에게 리바운드로 돌아와. 너희들 말로는 역살(易殺)을 맞는다고들 하지. 평범한 인간은 점점 미쳐가다가 결국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돼.]
체이의 성격이 뒤틀린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안드라스인지 안봉구인지, 사디스트 악마와 계약을 했으니 멀쩡한 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었겠지.
이놈에 비하면, 오대식은 천사나 다름없다.
“여기 요세아라고 쓰여있는 영상은 뭔데?”
[요세아? 하우레스가 아니고?]
“하우……. 뭐? 찐따처럼 너만 아는 이야기 하지 말고.”
[하우레스는 강인한 의지를 갖게 해주는 악마야. 안드라스와 계약하는 인간은 정신이 망가져서 죽음에 이르기 때문에, 그걸 보완해 주는 다른 악마와의 계약이 필수적이지. 보통 안드라스를 소환할 때 하우레스도 함께 소환해야 해.]
모니터에 비친 오대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세아는……. 액막이 악마라고도 불리지. 이놈은 계약자를 향하는 액운과 저주를 다른 사람에게 돌려.]
“딱 필요한 능력 아니야? 안드…… 어쩌고 하는 악마 놈이 저주를 걸어서 계약자를 미치게 만든다며? 요세아라는 악마와 이중으로 계약하면 깔끔하네. 저주가 완전히 비켜나갈 거 아냐?”
[저주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향한다고. 나한테 쏜 총알을 엉뚱한 놈이 맞는다니까? 류하민 씨, 양심 없음? 죽어서 지옥 가면, 악마로 취업해 보는 건 어때?]
하랑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놈의 악마는 자신이 빈틈을 보일 때만, 도덕적인 잣대를 얄밉게 들이민다.
“그래, 내가 생각이 짧았다. 하지만, ‘나만 아니면 된다’라는 생각은 많은 사람이 한다고. 체이라고 다를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거다.
연민의 감정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사이코패스인데, 다른 사람에게 저주가 간다고 해서 눈 하나 깜짝할까.
잠시 뜸을 들인 오대식이 입을 열었다.
[무작위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야.]
“응?”
[요세아는 ‘인간’을 희생양으로 바쳐야 소환할 수 있어. 액막이 악마는 계약자를 대신해서 희생양에게 저주의 화살을 돌리는 악마라고.]
오대식이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다시 말해서, 새로 사귄 네 분홍 머리 애인이……. 악마한테 사람을 바쳤다는 뜻이지.]
하랑의 표정이 굳었다.
체이가 인성 파탄자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같은 인간을 제물로 바쳐서 계약했을 줄을 꿈에도 몰랐다.
“체, 체이가 요세아라는 악마와 계약했다는 증거가 없잖아. 너무 섣부른 판단이야.”
[올빼미하고 계약을 맺었는데, 아직도 정신이 멀쩡한 걸 보면 모르겠어? 저주를 회피할 방법을 찾은 거지. 그런데 여기에 마침, 요세아라는 이름의 동영상 파일이 있네?]
“아직 열어보지 않았잖아! 걔가 성격이 좀 모나긴 했어도…….”
[모난 정도가 아닐 텐데? 사이코패스잖아. 희대의 살인마들도 대부분 사이코패스다? 그 분홍 괴물은 사람을 장난감 인형 정도로 생각할걸?]
하랑이 마른 침을 삼키며 마우스를 잡았다.
‘요세아’ 동영상 파일 위로 커서를 올리면서 말했다.
“그 말 책임질 수 있어?”
[이유도 없이 액막이 악마의 이름으로 파일을 만들지는 않았을 거야. 분홍 괴물이 요세아와 계약했다는 데에, 내 손모가지를 건다.]
하랑이 동영상 파일을 클릭하자, 모니터 위로 어두운 색감의 동영상이 떠올랐다.
배경은 호러 영화에서나 나옴 직한 어느 지하실이었다.
바닥에는 악마를 소환할 것처럼 보이는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내 말이 맞네. 저건 요세아를 부르는 소환진이야.]
화면 바깥에서 익숙한 분홍 머리가 등장했다.
카메라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드라스를 소환하기에 앞서……. 소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절차를 시행합니다. 요세아는 내 친구 체이의 몸에 머물 것이며, 필연적인 죽음으로부터 소환자를 보호할 것입니다.”
* * *
지하실 천장에 매달린 백열등은 수명이 다 되었는지,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깜박거리고 있었다.
지하실 바닥엔 붉은색 페인트로 그린 2미터 가량의 동심원 두 개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동심원 안에는 형이상학적인 무늬의 인장이 그려져 있었다.
분홍 머리칼의 소녀는 인장이 프린트된 종이와 바닥에 그려진 인장을 다시 한번 비교했다.
소환자의 소망이 강렬할수록 융통성 있게 처리된다고는 하지만, 그 강렬함의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이었다.
될 수 있으면 원본과 오차가 없는 편이 좋았다.
“체이야, 어때? 네가 보기엔 잘 그려진 것 같아?”
- 컹!
체이라고 불린 골든리트리버가 우렁차게 짖었다.
말을 이해하고 대답을 했을 리는 없지만, 소녀 또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부터가 중요해.”
소녀는 품 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도시 괴담 사이트, ‘게티아 닷컴’으로부터 내려받은 음성을 재생 목록에 띄웠다.
악마를 소환하는 라틴어 주문이었고, 라틴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소녀가 발성할 수 없는 언어였기에 어쩔 수 없이 취한 방식이었다.
당연히 공짜는 아니었다.
소녀로선 부담스러운 금액을 연회비로 지불해야 했고, 그 대가로 적합한 악마의 소환 방식을 알아냈다.
디지털 기기를 통해서 오컬트 의식을 행한다는 게 낯설기는 했지만, 사이트 운영자는 세상이 발전한 만큼 악마를 부르는 방식도 진화하는 게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사이비 컬트 집단에게 사기를 당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이미 돈은 통장에서 빠져나간 뒤였다.
효과가 없으면 환불해 준다고 했으니, 어찌 되었건 시도를 해봤다는 증거는 남겨야 했다.
소녀는 지하실 상단 구석에 설치해 놓은 캠코더를 올려다봤다.
노끈으로 묶어서 못에 걸어놓은 게 고작이지만, 붉은 LED가 주기적으로 깜박이는 건 녹화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안드라스를 소환하기에 앞서……. 소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절차를 시행합니다. 요세아는 내 친구 체이의 몸에 머물 것이며, 필연적인 죽음으로부터 소환자를 보호할 것입니다.”
불화의 악마, 안드라스 본 그란.
증오하는 자의 약점을 알려주는 대신, 불화를 조장하고 즐긴다고 전해진다.
소녀가 원하는 악마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선택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게티아 닷컴은 악마를 소환하는 방법을 알려주지만, 회원이 원하는 악마를 콕 집어서 대령하진 않는다.
온라인 상담을 통해 회원이 현재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한 악마의 소환방법을 알려주는 식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알아본 일이, 결국 여기까지 왔다.
21세기에 오컬트에 심취해서 소환진으로 악마를 소환하려 하다니…….
순둥이라는 별명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녔지만, 그게 멍청이라는 뜻은 아니었는데…….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게티아 닷컴이 알려준 절차를 그대로 따르는 소녀였다.
모든 게 사기일지도 모르지만, 그녀에게는 절실하게 기적이 필요했다.
비쥬 레이디스는 회생의 가능성이 없었고, 멤버들은 유력자들의 접대 자리까지 나갈 처지에 놓였다.
어차피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야 한다면, 가짜보다는 진짜에게 팔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게 났겠지.
“체이, 기다려.”
동심원 중앙에 개를 멈춰 세운 소녀는, 홀로 동심원의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심원의 안쪽은 소환된 악마가 접근할 수 없는 영역, 바깥쪽은 악마가 직접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영역이다.
말하자면, 소녀는 스스로를 악마에게 제물로 바칠 생각이었다.
소녀는 핸드폰의 플레이어를 재생시켰다.
라틴어로 이루어진 이해할 수 없는 주문이, 지하실에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이 행위가 사기가 아니고 별다른 실수만 없다면, 요세아라는 악마가 나타날 것이다.
리트리버는 기다리는 게 지루했는지, 소녀의 눈치를 보다가 동심원 바깥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다려.”
소녀가 검지를 들어 다시 개를 제지했다.
- 끼잉.
주인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못내 섭섭했는지, 리트리버는 앓는 소리를 내며 꼬리를 축 늘어뜨렸다.
“거기서 기다려. 그래야 안전해”
마침내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던 영창이 멈추었다.
무언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소녀는 음성 재생이 멈춘 핸드폰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나, 악마를 소환한다는 도시 괴담은 거짓에 불과했다.
애들 장난 같은 소리를 믿고 돈을 보낸 자신이 바보였지.
“하아…….”
- 컹! 컹컹!
그 와중에 개가 허공을 보며 짖었다.
리트리버는 인내력이 강한 견종이지만, 이 정도면 꽤 많이 참았다.
소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개를 꾸짖었다.
“체이, 조용!”
- 그르르르…….
개는 짖는 걸 멈추었지만, 낮은 그로울링과 함께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꼬리는 경계를 하듯 위로 올라가고, 털로 뒤덮인 콧등은 금방이라도 소녀를 물어뜯을 기세로 사납게 일그러졌다.
그 순간, ‘팟’ 소리를 내며 백열등의 빛이 사라졌다.
그렇지 않아도 어두웠던 지하실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으로 뒤덮였다.
개와 소녀, 둘밖에 없는 공간에 제3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듯 울려 퍼졌다.
[감히 날 부른 미천한 존재…….]
- 컹!
[으악! 물지 마! 왜 여기 개가 있어! 놔, 인마!]
어둠 속에서 희뿌연 형체가 몸부림쳤고, 경박스러운 비명이 들려왔다.
소녀는 재빨리 휴대폰을 켜서 소리가 나는 곳을 비추었다.
고양이과(科)의 날랜 짐승이 동심원 주변을 뛰어다니며, 뒤따라오는 개를 피해 달아나고 있었다.
모르는 사이에 지하실에 고양이가 숨어들었나도 생각해 봤지만, 애초에 지하실은 폐쇄되어 있었다.
고양이가 인간의 말을 할 리도 없었다.
의식이 시작된 이후에 갑자기 나타난 존재라는 뜻이다.
“요세아? 진짜로 되는 거였어?”
[네가 나 불렀냐? 이 개부터 좀 어떻게 해봐!]
“체이, 멈춰!”
개가 멈춰 서자, 고양이과의 짐승이 동심원을 반 바퀴 더 돌아 개의 반대편에서 멈추었다.
소녀는 핸드폰의 불빛을 재빨리 짐승에게 비추었다.
갈색의 털과 몸을 뒤덮은 검은 줄무늬.
짐승의 정체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호랑이와 매우 흡사했지만, 크기는 리트리버의 절반 정도로 몹시 작았다.
호랑이는 리트리버를 향해 잔뜩 경계하더니, 천천히 소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넌 왜 소환진 밖으로 나와 있어? 성격 더러운 악마 만났으면, 바로 찢겨 죽는 거 몰라?]
“고양이님, 제가……. 제물인데요?”
[고양이라니! 이렇게 선명한 줄무늬를 가진 고양이 봤어? 기분이 팍 상하네? 헛소리하지 말고 원 안으로 들어가. 물려 죽기 싫으면.]
“체이.”
소녀가 동심원의 중앙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리트리버가 눈치를 보더니 슬금슬금 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호랑이는 날래게 달려서 소녀의 뒤로 숨었다.
[왜 자꾸 개를 원 안으로 들여보내? 계약자가 안으로 들어가는 거라니까? 매뉴얼 숙지 안 했어?]
“계약자가 원 안에. 희생양은 원 밖에. 이게 맞아요.”
호랑이가 소녀 주위를 한 바퀴 돌더니, 발톱을 세워 소녀의 바지에 매달렸다.
나무를 타는 것처럼 소녀의 몸을 타고 올라, 분홍색 머리칼 속에 앙증맞은 이빨을 박아넣었다.
[문다? 진짜로 문다? 악마 상대로 장난치는 거 아냐. 그러다 죽어.]
“이게 맞다니까요, 작은 호랑이님. 계약자는 리트리버, 체이. 희생양은 저, 여봉순.”
[진심이냐?]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호랑이가 소녀의 머리를 놓고 바닥까지 단번에 착지했다.
그리고는 어슬렁어슬렁 소녀의 주위를 맴돌았다.
[가뜩이나 조건이 까다로워서 불러주는 인간도 없는데……. 간만에 불러줘서 나왔더니, 하필 미친년이네. 희생양이 된다는 게 뭔지는 알고 있는 거야?]
“계약자 대신 저주를 받는 거요?”
[애견도 지나치면 병이다. 넌 저 똥강아지 대신 저주를 받을 일이 있다고 생각하냐?]
“이 계약이 끝이 아니거든요. 곧바로 안드라스를 부를 거예요.”
그제서야 호랑이가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것을 멈췄다.
[올빼미?]
“네, 주선자가 소개해 준 악마예요.”
[그럼 날 불렀으면 안 되지! 표범……. 아니, 하우레스를 불렀어야지. 그게 싫으면 다른 인간 제물을 준비하던가.]
“악마와 계약하는 건 꺼림칙하고, 능력은 갖고 싶으니까요. 상담할 때, 그렇게 이야기했더니 이 조합을 소개해 주던데요?”
호랑이는 동그래진 눈으로 소녀를 바라봤다.
[오, 맙소사. 주선자가 부작용 이야기는 하지 않디?]
“알고 있어요. 인격이 점점 사라진다면서요?”
[올빼미의 저주는 피하겠지만, 넌 결국 사람이 아니게 될 거다. 감정을 잃고 인간성도 상실하겠지. 액막이는 그런 거야.]
소녀가 액막이를 자처한다면 안드라스의 저주는 피할 수 없다.
다만, 버틸 수는 있다.
감정이 사라지면 상처를 받지도 않고, 흥분하지도 않는다.
올빼미의 저주로 인해 항상 분노한 상태겠지만, 겉으로 표출하지도 않을 것이다.
간혹 올빼미의 비위를 맞춰준다면, 순간적인 쾌락 정도는 느낄 수도 있겠지.
호랑이는 손등을 혀로 핥으며, 소녀를 노려봤다.
저 미련한 계집은 감정을 잃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모른다.
소녀의 인격을 날름 삼킬 수 있는 기회였다.
잠시 고민하던 소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각오하고 있어요.”
이대로라면 자신을 포함해서, 비쥬의 모든 멤버들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감정을 잃는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순둥이라고 무시당하진 않을 것이다.
안드라스의 능력을 얻으면 멤버들에게 손을 뻗쳤던, 짐승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수 있다.
[계약이 이루어지는 순간, 서로의 이름도 바뀔 거야. 네 이름으로 불리는 게 낯설어질 거고, 저 개의 이름으로 불리는 게 편해질 거다. 네가 마음먹는다고 거스를 순 없어. 개 이름이 체이라고 했던가?]
“뽀삐라고 안 지어서 다행이네요.”
소녀가 머쓱하게 웃었다.
호랑이는 소녀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액막이의 악마, 요세아의 이름으로 묻는다. 희생양 여봉순은 계약자 체이를 대신해 인과율을 거스르는 모든 저주와 액운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가?]
소녀가 짧게 대답했다.
“네.”
호랑이가 이번에는 동심원 안의 리트리버를 바라보았다.
[저 개는 대답할 수 있는 거야?]
“봉순이도 짖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체이가 짧게 박수를 치자, 리트리버가 우렁차게 짖었다.
- 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