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노래의 주인 (3)
프라이데이 클럽하우스.
강효운의 패거리들은 언제나처럼 이곳에 모여 술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주최자인 강효운, 프라이데이 멤버인 양다윗, 래퍼 MC 머슬, 그루밍의 최준일 본부장.
클럽에서 픽업해 온 죽순이들까지 합치면, 대략 열댓 명의 남녀들이 어지럽게 얽혀 술판을 벌였다.
MC 머슬은, 약에 취해 동공이 풀린 아가씨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로 입을 열었다.
“아망뜨는 다음 주에 쇼케이스라며? 걔들 대박 나면, 스톡옵션으로 받은 주식도 대박 나는 거 아냐?”
위스키 잔에 따라놓은 술을 단번에 들이켠 양다윗이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봐야 푼돈이야. 진짜 돈 버는 새끼들은 따로 있지. 포스트 조폭 사장이랑, 그루밍 이한성. 주식은 그 두 놈이 제일 많이 가지고 있어.”
“너희도 재계약하면서 3% 받았다면서? 시총이 천억이니까, 두당 10억 정도 떨어지나?”
“10억이면 뭐 하고, 100억이면 뭐 해? 그래봤자 ‘그림의 떡’인데. 스톡옵션으로 받은 주식이라, 1년 동안은 팔지도 못해. 법이 그렇다나?”
“아망뜨 애들이 그 뭐냐…… 시트러스? 걔네들만큼만 떠봐라. 10억이 20억 되는 건, 일도 아니야. 클라우드까지 컴백하면 그 주식, 제발 팔아달라고 무릎 꿇고 부탁해도 팔기 싫을걸?”
조용히 술을 마시던 강효운이 ‘쿵’ 소리가 나도록 술잔을 내려놓았다.
잔이 깨지지는 않았지만, 잔 속의 얼음이 밖으로 튀어나와 테이블 위로 미끄러졌다.
강효운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쓸데없이 입 놀리지 마. 듣는 귀 많아.”
MC 머슬이 옆에 앉은 여자의 어깨에서 손을 떼고 옆으로 슬쩍 밀었다.
여자는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흐느적거리더니, 반대편으로 힘없이 쓰러졌다.
“이 기지배들이요? 이미 맛탱이 가서 제정신도 아니에요. 봐요, 몸도 제대로 못 가누잖아.”
“잊었어? 그 꼬맹이 년이 약에 취하고도 난동 부렸던 거. 난 어깨뼈에 금이 가고, 다윗 저 새끼는 갈비뼈가 두 대나 나갔지. 머슬이 너는 한동안 목발 집고 다녔잖아. 본부장님도 병원에 한 달이나 누워있었어.”
최준일 본부장이 멋쩍은 듯 작게 헛기침을 했다.
“흠흠……. 그때는 산타한테 받아 온 얼음이 개살구였어. 흥분 효과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냐? 공급책 바꿨으니까 안심해.”
말투가 몹시 어눌했다.
저 인간도 약쟁이라, 그사이를 못 참고 술에다 약을 타 마신 것 같았다.
본부장의 말을 무시한 강효운이 MC 머슬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암튼. 그 지랄을 겪었으면 배우는 게 있어야 할 것 아냐? 시트러스밤이라는 단어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던? 거기에 그 쌍년이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아니, 효운이 형. 뭐 그렇게까지 성을 내고 그래요? 잠깐 깜빡했을 수도 있지.”
“그 쥐방울만 한 년이 뭘 가져갔었는지 기억은 하고?”
하랑은 태을선을 포함한 여자 연습생들의 치부를 촬영한 핸드폰을 훔쳐 갔다.
하우스 곳곳에 숨겨놨던 몰래카메라도 전부 털렸다.
하랑은 그 핸드폰을 고스란히 태을선에게 전달했다.
당시 클럽하우스에 있던 패거리의 나체 사진과 함께 말이다.
당연히 포스트 뮤직을 떠나리라 생각했던 태을선은, 강효운의 생각과는 반대로 포스트 뮤직에 남았다.
그리고 역으로 강효운을 협박했다.
아망뜨 멤버들에게 접근하면 강효운과 양다윗의 나체 사진을 인터넷에 뿌려버리겠다고.
인연이 깊지도 않은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 방패막이를 자처한 것이다.
지가 무슨 잔 다르크도 아니고.
강효운 패거리가 먼저 시작한 일이라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고, 이문학이 모르게 저지른 일이라 윗선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이문학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하랑이란 계집을 잡아놓으려고 했던 거지, 이미 포스트에 소속되어 있는 연습생을 건드리는 걸 허락한 건 아니었다.
언제든 프라이데이를 날려버릴 수 있는 폭탄이 태을선의 손에 쥐어져 있었지만, 이 자리에서 그 심각성을 이해하는 사람은 강효운뿐이었다.
본부장은 약에 취해서 해롱대고 있고, MC 머슬은 남의 일인 것처럼 함부로 떠들어댔다.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양다윗마저도 반쯤 풀린 눈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짜증이 난 강효운이 다윗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넌 형이 말하는데, 아까부터 어디에 정신이 팔려 있어? 내 말이 우습냐?”
“그게 아니라……. 어스튜브 보고 있는데?”
정신 나간 새끼…….
근 손실이 온다며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던 녀석이, 이제는 약에 취해서 정상적인 판단도 하지 못한다.
강효운이 난장판으로 어질러져 있는 거실을 둘러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클럽 음악이 귓전을 때리고, 미러볼 조명이 눈을 어지럽힌다.
게스트로 초대한 헐벗은 여자들은 좀비처럼 비척거리면서 춤을 추거나, 자기 집 안방처럼 아무렇게나 드러눕는다.
여기는 더 이상 클럽 하우스 같은 게 아니다.
그냥 비루한 약쟁이 소굴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도 시작할 때부터 이러진 않았는데…….
버팀목이라 믿었던 류하민이 사고를 당한 이후부터였을까?
그 망할 자식이 코마 상태에서 깨어났다는 뉴스를 봤을 때는 솔직히 기뻤다.
프라이데이는 강효운이 감당하기 버거운 팀이었고,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류하민이 돌아와 구심점의 역할을 해준다면, 프라이데이는 다시 재기할 수 있다.
예전의 영광을 되찾는 건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사고 후 1년 만에 깨어난 류하민은, 그루밍이 아닌 레몬을 선택했다.
동생들이 전부 그루밍과 재계약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텐데…….
그 책임감 없는 자식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우리를 헌신짝처럼 버린 것이다.
몸 성히 깨어났다는 연락 한 번도 없이.
“형, 잠깐 이것 좀 봐봐.”
문득 양다윗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강효운은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를 간신히 삼켰다.
“지금이 어스튜브나 볼 때야?”
“그 꼬맹이 년이야. 알고리즘 타고 메인에 걸렸어.”
“이하랑?”
다윗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효운은 마지못해 핸드폰을 받았다.
화면에 떠 있는 것은 JBC의 어스튜브 오피셜 계정.
가면가수왕의 최근 공연을 담은 영상이었다.
동영상의 제목을 확인한 강효운이 멈칫했다.
“경연곡이……. 아이비트야?”
“맞아. 저작권 문제가 있었을 텐데, 그루밍에서 용케 수락을 했나 봐. 레몬 쪽 가수가 우리 노래 부르는 건 거의 처음 아냐?”
강효운이 미간을 찌푸리며 화면 속의 가수를 노려봤다.
가면가수왕의 역대급 출연자, 오페라의 악마.
이하랑이라는 소문이 돌긴 했지만, 확실히 알려진 바는 없었다.
패널로 참석한 지창현에게 넌지시 물어본 적도 있었지만, 보안이 철저한 프로그램이라 알지 못한다는 답변도 들었다.
“이게 이하랑이라고?”
“영상 마지막에 마스크 벗는 장면 나와. 그 꼬맹이 맞아. 내가 확인했어.”
강효운이 핸드폰의 볼륨를 키웠지만, 거실을 울리는 클럽 음악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음악 좀 끄라고 소리치려던 강효운은, 약에 취한 좀비들을 보고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인간들에게 뭘 시키느니, 본인이 직접 움직이는 게 나았다.
강효운은 다윗의 휴대폰을 들고 소파 뒤의 베란다로 나왔다.
베란다에도 인사불성이 된 여자가 주저앉아 있었다.
강효운은 여자의 허벅지를 발끝으로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야, 안으로 꺼져.”
“으어어……. 강효운이다. 헤헤.”
“꺼지라고.”
인상을 찌푸린 강효운이 실내를 향해 턱짓을 하자, 여자가 비척거리며 일어나 안으로 사라졌다.
강효운은 베란다 문을 마저 닫아버리고,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영상을 재생하자 아이비트의 MR과 또렷한 목소리의 랩이 흘러나왔다.
이건 이전에 들어본 적이 있다.
이문학 대표의 사무실에서.
완전히 기억하진 못해도, 느낌만큼은 기억하고 있다.
이문학이 아이비트의 원곡이라고 주장했던 바로 그 음색이다.
당시에는 당연히 믿지 않았다.
이문학은 사업가일 뿐, 예술인이 아니었다.
음악의 ‘음’ 자도 모르는 인간이, 어디서 이상한 소리를 듣고 와서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일재의 노래를 가지고 장난질을 친 게 분명했다.
“이걸 왜 이하랑이 부르고 있지?”
설마, 그때 이문학이 들려줬던 아이비트의 원곡 가수가 이하랑이었을까?
말도 안 되는 비약이다.
일재의 창법과 흡사하긴 한데…….
흡사하긴 한데…….
“시발.”
흡사한 정도가 아니다.
이문학이 들려줬던 그 노래다.
아니, 그냥 이일재의 노래에 피치만 조절한 거다.
이 어마어마하게 겁대가리를 상실한 계집이, 이일재의 음반에 장난질을 쳐놓고 립싱크를 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망자를 모독하는 것만큼 무례한 일은 없다.
정신 나간 계집이 먼저 선을 넘었다.
프라이데이의 약점을 잡고 있으니 거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끔찍하게 멍청한 생각이다.
자신의 커리어를 걸고 도박을 하는 셈이니까.
포커 테이블에 프라이데이가 앉을 줄 알았겠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강효운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LEXY의 타이틀 곡이 통화연결음으로 들려오자, 강효운은 미간을 찌푸렸다.
프라이데이의 떨어진 위상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듯한 벨 소리였다.
잠시 후, 벨 소리가 끊기고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를 가다듬은 강효운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이한성 대표님. 프라이데이 강효운입니다.”
* * *
백훈이 목을 벅벅 긁으면서 작업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떡진 레게 머리에 김칫국물이 튄 티셔츠, 촌스럽기 그지없는 칠부 바지와 삼선 슬리퍼까지.
클라우드의 팬이 마주쳐도 애써 모른 척하고 지나갈 것처럼 추레한 몰골이었다.
회사에서 밤샘 작업을 하고 수면실에서 자다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놀랍게도 이제 막 출근을 한 백훈이었다.
“아우, 속 쓰려. 아침은 해장국으로 하자고 해야겠다.”
복도를 걷고 있으려니, 비상계단의 출입구가 열리면서 민소매 티를 입은 덩치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백훈은 덩치에게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Yo, Bro. 운동 갔다 오나?”
비상계단에서 나온 이는 다름 아닌, 클라우드의 메인보컬 장이욱이었다.
장이욱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넓은 보폭으로 걸음을 옮겼다.
목덜미에 땀방울이 맺힌 걸로 봐선, 1층에서 8층까지 걸어 올라온 모양이었다.
백훈이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면서, 다시 말을 걸었다.
“선지해장국 배달시킬 건데. 생각 있어?”
장이욱은 등에 멘 배낭을 엄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닭가슴살 샐러드랑 프로틴. 컴백하기 전에 몸부터 만들어야지.”
“삶에 낙이 없는 친구일세.”
“태어난 김에 사는 레게머리보다는 낫지.”
정겨운 디스를 주고받는 동안, 어느덧 작업실 앞에 도착했다.
백훈이 문에 노크를 하려고 하자, 장이욱이 팔을 뻗어 제지했다.
“리첼 형, 밤샘 작업했다고 문자 왔어. 조용히 들어가자.”
“오키도키.”
밤샘 작업을 한 리첼은, 작업실 의자에 앉아서 쪽잠을 자는 경우가 많았다.
백훈이 문고리를 잡아 돌리고, 살며시 열린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리첼은 의자가 아닌 소파에 누워있었다.
얼굴 위로 핸드폰을 들고 있는 걸로 보아, 자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백훈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게 작업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리첼은 작업실 안에 음흉한 레게머리가 들어왔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여전히 핸드폰의 화면을 바라보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장난기가 돋은 백훈은, 문 앞에 서 있는 장이욱에서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뭘 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리첼은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바보처럼 헤실거리고 있었다.
심지어 핸드폰 액정에 입을 맞추고 실없이 웃기까지 했다.
“흐흐흐…….”
리첼의 머리맡에 다가간 백훈이 조심스럽게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그때까지도 불쌍한 리첼은 거대한 악의가 머리 꼭대기에 다가왔음을 깨닫지 못했다.
리첼이 다시 한번 핸드폰에 입을 맞추었을 때, 백훈이 리첼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우리 형이 뭘 보길래, 입가에 미소가 걸리셨을까?”
“어우! 씨!”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놀란 리첼이, 버둥거리다가 핸드폰을 놓쳤다.
백훈은 잽싸게 손을 뻗어 리첼의 핸드폰을 가로챘다.
“너, 너 그거 안 내놔?”
“좋은 건 같이 봅시다. Bro.”
“프라이버시 침해야!”
“프로틴, 뭐 해! 리첼 붙잡아!”
리첼이 허둥대며 소파에서 일어났지만, 뒤따라 들어온 장이욱이 뒤에서 끌어안는 바람에 백훈을 쫓지는 못했다.
리첼도 운동을 꽤 하는 편이었지만, 헬스 중독자인 장이욱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장이욱의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너희 죽는다, 진짜!”
백훈이 사악하게 낄낄거리며, 리첼의 핸드폰을 확인했다.
역시나!
화면에는 언제 찍었는지 모를 하랑의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꽃다발을 가슴에 폭 끌어안고, 보조개가 쏙 들어가도록 환하게 웃는 소녀의 사진은 백훈이 보기에도 충분히 사랑스러웠다.
“아니, 이 사람이? 누이 정리했다며? 다신 안 볼 거라며?”
“내가 언제!”
“기억 안 나? 포스트로 이적하고 첫 회식 때! 형 그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울면서…….”
“하지 마라! 진짜!”
정말로 기억에 없는 일이었다.
사실,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 같지만 공식적으로는 필름이 끊겼다고 합의를 봤다.
망할 레게머리, 치사하게 묵은 흑역사를 끄집어내다니…….
백훈은 사진을 스크롤로 넘기면서, 약 올리듯 감탄사를 쏟아냈다.
아마도 가면가수왕 녹화가 끝나고 대기실에서 찍은 사진 같았다.
오페라 가면을 쓰고 있을 때는 몰랐지만, 무대의상인 검은색 로코코 드레스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하랑이었다.
“그건 그렇고, 누이 진짜 귀엽네. 완전 인형이야, 인형. 엔티크(Antique)해.”
“좋은 말로 할 때 내놔라.”
“나 좀 공유해 주면 안 될까? 이건 정말, 소장가치가 있는 사진이야.”
“장이욱, 이거 놔! 내 오늘 저노마 머리, 바리깡으로 밀어버릴 거야!”
협박이 먹힐 백훈이 아니었다.
백훈은 한껏 여유를 부리며 갤러리 앱의 카라멜톡 공유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리첼을 붙잡고 있던 장이욱이 팔에서 힘을 뺐다.
성난 리첼이 백훈의 허리에 태클을 걸었고, 두 사람은 뒤엉켜서 반대쪽 소파로 쓰러졌다.
“야이, 자식아! 핸드폰 내놔!”
“알았어! 줄게! 줄게! Calm down, Man!”
기어코 백훈의 손아귀에서 핸드폰을 강탈한 리첼이었다.
“내가 클라우드 리더야, 이 자식들아. 하극상 좀 고만해.”
리첼이 투덜거리며, 핸드폰의 액정을 정성스럽게 닦았다.
백훈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을 때, 전원 버튼을 누른 모양인지 화면은 꺼져있었다.
리첼은 습관적으로 핸드폰의 화면을 다시 켰다.
“어?”
“왜? 고장 났어?”
백훈이 묻자마자, 작업실에는 카라멜톡의 알림음이 정신없이 울려 퍼졌다.
- 까똑! 까똑! 까똑! 까똑!
백훈의 핸드폰과 장이욱의 핸드폰에서 동시에 나는 소리였다.
핸드폰을 바라보는 리첼의 눈동자가 정신없이 떨리고 있었다.
[총 21장의 사진을 전송했습니다.]
“너……. 너 지금 이거……. 어디다 보낸 거야?”
“어? 그거야, 내 폰에다…….”
백훈이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확인하더니, 슬금슬금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리첼의 핸드폰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백훈 님이 대화방에서 퇴장했습니다.]
“너 거기 딱 서! 도망치다 잡히면 죽는다.”
리첼이 엄포를 놓는 동안에도 메시지는 계속해서 올라왔다.
[김중식 대표: 이 사진은 뭔가?]
[유꼰대: 리첼, 간만이야. 사진 엄청 귀엽다.]
[허인수 매니저: 형. 이게 다 뭐예요?]
[홍보팀장 김일승: 리첼 씨 오랜만입니다. 이거 홍보용으로 써도 되는 건가요?]
[시트러스밤 신소진: >_<]
[시트러스밤 류이나: >_<]
리첼은 핸드폰을 부여잡고 소파 위로 엎어졌다.
“어흐흑……. 미치겠다…….”
저 썩을 레게머리가 레몬 엔터의 매니지먼트 팀 단톡방에 하랑의 사진을 전송했다.
핸드폰에 담겨있던 21장 전부.
퇴사했을 때 단톡방부터 정리했어야 했는데…….
[하랑이 : 리체,ㄹ 미쳣어ㅛ?]
눈이 동그래진 리첼이 다급하게 외쳤다.
“이욱아! 백훈이 보낸 거라고 해. 내가 말하면 변명처럼 보일 테니까, 빨리 네 휴대폰으로!”
장이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빨리 핸드폰을 조작했다.
[장이욱 님이 대화방에서 퇴장했습니다.]
황당해하는 리첼을 버려둔 장이욱이, 문 밖으로 재빨리 뛰쳐나갔다.
백훈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장이욱의 뒤를 따랐다.
“형, 미안! 같이 가, 프로틴!”
“이 악마 같은 자식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