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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인데 악마와 계약했습니다-277화 (277/376)

277화. 철혈의 자매들 (7)

공이 울리자마자, 왼손 잽만 두 대를 얻어맞았다.

자존심이 상했다기보다는, 짜증이 치밀어 오른 리카였다.

그녀의 사고는 여전히 중학생 시절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찐따 치토세는, 때리면 맞고 욕하면 참아야 하는, 하찮은 존재였다.

“감히 선빵을 날려?”

리카가 스트레이트를 뻗어, 치토세의 얼굴을 노렸다.

잔뜩 쫄아서 일그러지는 얼굴을 봐야 속이 풀릴 것만 같았다.

“슥.”

치토세가 입으로 소리를 내면서, 무릎을 굽혀 머리를 낮췄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주먹이 빗나가자, 리카의 얼굴에 처음으로 놀라움이 떠올랐다.

리카의 트레이너가 보여줬던 더킹(Ducking)이라는 회피기가 눈앞에서 완벽하게 재현되고 있었다.

높은 숙련도를 요구해서, 스파링에서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회피 기술이었다.

트레이너 또한, 아체대에서는 볼 일이 없을 기술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장담했었다.

“빡.”

몸 안쪽으로 파고든 치토세의 오른쪽 스트레이트가, 리카의 헤드기어를 강하게 후려쳤다.

리카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고, 걸음도 뒤로 밀려났다.

이제는 불쾌감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일방적으로 깔아뭉갰던 찐따의 싸움 실력이, 자신보다 위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리카가 발악하듯 왼손을 휘둘렀고, 이번에도 주먹은 영락없이 허공을 갈랐다.

치토세는 허리를 뒤로 젖히고, 얼굴 앞을 스쳐 지나가는 권투글러브를 눈동자에 새기는 중이었다.

치토세의 일그러진 표정과 마주하는 순간, 리카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지옥에서 올라온 야차를 마주한 듯한 기분이었다.

치토세가 이를 악물고, 손가락의 통증을 버티고 있다는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다.

“저 똥고집이! 오른손 쓰지 말라니깐.”

하랑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치토세는 예상보다 훨씬 잘하고 있었지만, 솜뭉치 글러브로 아무리 때려봤자 타격이 없다는 걸 까먹은 모양이었다.

4강에서는 단단해진 글러브로 인해 KO승을 거뒀지만, 지금은 손가락 부상 때문에 글러브를 새것으로 바꿔온 상태다.

뿅망치로 아무리 때려봤자, 상대는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다.

다친 손가락만 계속 자극할 뿐이다.

- 펑!

호쾌한 타격음과 함께 치토세의 왼손 훅이 리카의 머리를 돌려버렸다.

이번에도 카운터였다.

경기용 글러브였다면, 방금의 한 방으로 그로기에 빠졌어도 이상할 게 없다.

“토세, 빠져!”

치토세는 하랑의 외침을 무시하고, 기계적으로 오른손을 뻗었다.

위빙 후, 훅 앤 스트레이트.

2주 동안 수백 번을 연습한 콤비네이션이다.

몸에 익어버렸으니, 본능처럼 오른쪽 주먹이 나간 것이다.

- 퍼억!

“끄윽!”

타격으로 인해 리카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지만, 신음이 터져 나온 건 치토세 쪽이었다.

염좌된 손가락으로 두 번이나 스트레이트를 갈겨버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저 고집불통은 정신력으로 고통을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가?

열이 오를 대로 오른 리카가 반격하기 시작했다.

입에는 거친 일본어 욕설이 따라 붙었다.

“ちくしょう… (망할 년이…….)”

치토세는 통증에 괴로워하면서도, 가드를 단단하게 세우고 몸을 웅크렸다.

리카의 주먹은 영양가 없이, 치토세의 가드 위를 때릴 뿐이었다.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타로 들어가는 펀치는 단 하나도 없었다.

헛손질을 하거나, 가드에 막혀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치토세가 입술을 비죽거렸다.

어렸을 때는 그토록 두려웠는데, 막상 링 위에서 1:1로 마주해 보니 별것도 아니었다.

주먹은 느렸고, 아프지도 않았다.

맨주먹으로 붙었다면, 진작에 때려눕혔을 거다.

조금은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중학교 졸업 이후, 어두웠던 성격을 180도로 바꾸려던 다짐에는, 리카의 괴롭힘도 지분이 있었으니까.

부침을 겪지 않아서 여전히 내향적인 성격을 유지했다면,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는 연습생들을 제치고 시트러스밤으로 데뷔하지도 못했을 거다.

거북이처럼 단단한 가드 뒤에 숨은 치토세가 상체를 흔들면서 접근해 오자, 리카는 지레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다.

겁에 질려 휘두르는 주먹은 치토세에게 닿지도 않았다.

오히려 빈틈만 내주는 꼴이었다.

- 퍽! 퍽!

치토세의 양손 잽이 번갈아 가며 리카의 눈두덩이를 때렸다.

펀치는 정타로 들어갔지만, 데미지는 치토세에게 쌓였다.

찌릿한 통증이 오른손에서부터 팔을 지나, 척추를 따라 올라왔지만, 그보다 더한 희열이 통증마저 무뎌지게 만들었다.

뇌에서 분비되는 엔돌핀, 도파민, 아드레날린 등의 호르몬이 칵테일처럼 뒤섞여 치토세의 신경계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동공은 서클렌즈를 낀 것처럼 확장되고, 입꼬리는 저절로 위로 올라갔다.

빗나간 주먹을 회수한 리카가, 간신히 가드를 끌어 올렸다.

아직까지는 치토세의 턴이었다.

치토세의 왼손 훅이, 가드를 올린 리카의 얼굴이 아닌, 옆구리에 강렬하게 꽂혔다.

호쾌한 타격음이 경기장 전체에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 퍼엉!

“우욱!”

리카의 입에서도 처음으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타격으로 인한 충격 때문이라기보다는, 예상치 못한 곳을 맞았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내지른 탄성이었다.

치토세의 주먹이 어디로 날아올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리카가 가드를 살짝 벌려서 앞을 확인하는 순간, 스트레이트를 날리기 직전의 치토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리카는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가드는 머리까지 올라갔고, 다리는 뒷걸음질 치다가 스텝이 엉켜버렸다.

치토세가 펀치를 뻗을 필요도 없이, 혼자서 허둥거리던 리카가 추하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 레프리, 슬립 다운을 선언합니다. 노카운트예요. 리카 선수, 발이 미끄러진 것 같습니다. 다행입니다!

수치심 때문에 얼굴이 벌게진 리카가,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났다.

치토세에게 위협을 느끼고 물러서다가, 혼자서 나자빠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뇌리에는, 주먹을 날리기 직전의 치토세의 살벌한 눈빛이 잔상처럼 남아있었다.

레프리는 두 아이돌을 링 가운데로 인도하고서, 다시 ‘파이트’를 선언했다.

치토세가 비릿하게 웃으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쫄?”

‘쫄았냐?’의 앞글자만 따서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사투리는 못 알아들은 리카였지만, 저 짧은 문장만큼은 대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중학생이었던 치토세에게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고 때리는 시늉을 하면, 치토세는 몸을 웅크리고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곤 했다.

그럴 때마다 모든 게 장난이었다는 듯이, 습관처럼 입에 담았던 말이었다.

사실, 겁에 질린 치토세의 모습이 보고, 사디스트적인 쾌감을 느끼고 싶었던 거였지만.

막상 본인이 그 문장을 듣고 나자, 욱하고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먹이 사슬의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는 찌질이한테 이런 식의 조롱을 당할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다.

“ふざけるな! (까불지 마!)”

리카가 악을 쓰며 치토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이번에는 치토세도 피하지 않았다.

날아오는 권투글러브를, 그대로 이마로 받아버렸다.

리카의 주먹은 완전히 뻗어지지 못했고, 치토세는 그녀의 글러브에 이마를 가져다 댄 채로 마우스피스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혼란에 빠진 리카를 구해준 건 1라운드 종료를 알리는 공이었다.

- 땡! 땡! 땡!

치토세가 입을 오물거려, 마우스피스를 바닥에 뱉었다.

그리고는 표정이 굳어있는 리카에게 독설을 내뱉었다.

“넌 여전히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구나.”

“だまれ。(닥쳐.)”

“이제 일진 놀이는 끝났어. 어른의 세계에 온 걸 환영해, 니시무라 상.”

* * *

“하아……. 너 진짜, 사람 말을 귓등으로 듣는구나.”

치토세의 글러브를 벗긴 하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치토세의 중지는 아까보다 더 심하게 부어있었다.

“너라고 부르지 마. 내가 언니야.”

“지금 그게 중요해? 이 손가락 어쩔 거야? 어?”

하랑이 부어오른 손가락을 어루만지자, 치토세가 자지러지게 비명을 질렀다.

“끄아앙! 아파!”

“병원 가면 아플 일도 없겠어. 치료하는 거보다, 잘라버리는 게 빠를 테니까.”

치토세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진짜? 나 손가락 잘라야 돼?”

“진짜겠냐?”

하랑이 복싱용 붕대를 다시 감아주었다.

이번엔 손등뿐만 아니라, 손가락까지 전부.

붕대를 모두 감은 후, 하랑이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 번만 더 오른손 쓰면, 수건 던질 거야. 무슨 뜻인지 알지?”

“던지기만 해봐. 호적에서 파버릴 테니까.”

“뭔 소리야? 가족도 아닌데, 호적을 왜 파?”

“관용적 표현이잖아. 하랑인 한국인이면서 그것도 몰라? 연을 끊겠다는 의미라고.”

의미는 대충 맞는데, 용법이 완전히 틀렸다.

제 잘난 맛에 사는 일본 꼬맹이를 가르칠 생각도 없다.

“점수는 이미 많이 땄어. 대충 견제만 해도 토세가 판정으로 이기니까, 더는 무리하지 마.”

“하랑은 잔소리꾼이야. 언니가 한다면 동생은 그저 따르면 되는 거야.”

세상에.

외국인 꼰대라니…….

이건 무슨 돌연변이란 말인가?

부산 아가씨랑 줄곧 붙어 지내더니, 몹쓸 것만 배웠다.

그냥 손가락을 부러뜨려 버릴까?

그편이 훨씬 깔끔할 것 같은데.

손에 글러브를 착용한 치토세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다가,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판정까지 안 가. 공이 울리기 전에 끝낼 거야.”

“내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구나?”

치토세가 하랑과 지그시 눈을 맞췄다.

단호한 치토세의 눈빛에는, 그녀와 결코 어울리지 않는 각오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이번만큼은 내 마음대로 하게 해 줘. 나도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야 해.”

“어린 시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그런 게 있어. 이 경기는 일종의 성인식 같은 거야. 하랑은 아직 꼬맹이니까 몰라도 돼.”

울컥한 하랑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내 나이가 스물아홉…… 은 아닐지 몰라도, 인생의 경험은 너보다 많거든?

물론 기억에만 남아있는 남의 경험이긴 하다만.

레프리가 양쪽 코너를 향해 손짓했다.

이제 곧 2라운드가 시작된다.

하랑이 밉살스러운 치토세의 입에 마우스피스를 물려주었다.

“정말로 끝낼 거면, 시간 끌지 말고 끝내.”

인정하긴 싫지만, 치토세는 정말로 복싱에 재능이 있다.

단 2주의 특훈만으로, 평생을 일진 패거리들과 어울려 온 양아치 계집을 완전히 제압했다.

손만 멀쩡했다면, 2라운드까지 오지도 않았을 거다.

코너에서 내려온 하랑이 파이팅을 외쳤다.

“김토세! 잘해!”

하랑의 응원을 들었는지, 링 중앙으로 걸어가던 치토세가 씩씩하게 주먹을 들어 올렸다.

단 한 번도 치토세가 어른스럽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의 치토세는 어쩐지 어른스러워 보였다.

* * *

- 땡!

글러브를 맞부딪히고, 2라운드 경기가 시작되었다.

코너에서 쉬는 동안, 리카는 정신 무장을 제대로 하고 링에 다시 오른 것 같았다.

섣불리 주먹을 내지 않고, 가드를 올린 채로 치토세를 경계했다.

치토세 역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먼저 공격을 시작한 것은 리카였다.

가드 위를 때려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잽을 뻗어 치토세의 글러브를 두들겼다.

- 퍽!

솜이 두툼한 부위에 펀치가 닿았지만, 손가락에 찌릿한 통증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치토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 퍽!

이번에도 리카의 잽이 치토세의 오른손 글러브를 두들겼다.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리카! 계속 그렇게 해! 붙어!”

상대 코너에서 리카 측 코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서야 치토세는, 리카가 손가락 부상을 알아챘음을 깨달았다.

정확히는 리카의 코치가 알아챈 것이겠지만.

오른손에 충격이 있을 때마다 치토세는 인상을 구겼고, 리카의 복싱 코치가 그것을 놓쳤을 리가 없었다.

1라운드를 마치고 코너로 돌아갔을 때, 리카 측도 새로 작전을 구상한 게 분명했다.

레몬 엔터에서 아시안게임 은메달리스트를 트레이너로 붙여줬던 것처럼, 그루밍 엔터에서도 그에 필적하는 트레이너를 붙여줬을 것이다.

치토세 쪽은 하랑이 코치 대행으로 나왔지만, 리카 쪽은 트레이너가 직접 코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리카가 다시 주먹을 뻗자, 치토세는 더킹으로 몸을 숙여 피하고 리카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왼손 훅이 리카의 헤드기어를 때렸고, 오른손 훅이 하복부를 때렸다.

- 퍽! 퍽!

“끄…….”

요란한 타격음이 터져 나왔지만, 동시에 치토세의 신음도 새어 나왔다.

때리는 사람이 더 큰 데미지를 입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리카는 자신이 맞는 것을 아예 도외시하고 있었다.

1라운드에서 너무 많은 점수를 잃어서, 판정으로 가는 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어차피 아무리 두들겨 맞아도, 충격이 전해져 오지 않는 25온스 권투글러브였다.

2라운드쯤은 충분히 버틸 수 있다.

리카가 다시금 거리를 좁히며 다가왔다.

치토세가 잽으로 견제하며 밀쳐내려 했지만, 펀치력이 제로에 가까운 글러브에는 억제력이 없었다.

리카는 잽에 얻어맞으면서도, 집요하게 가드를 두들기며 접근해 왔다.

KO가 나올 수 없는 이상, 이미 승부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는데, 끈덕지게 다가오는 것이 몹시 수상했다.

- 퍽! 퍽! 퍽!

몸이 거의 밀착되어 있는 상태에서 난타전이 벌어졌다.

치토세의 펀치는 거의 모두 점수로 인정되는 유효타였고, 리카의 펀치는 실속이 없는 헛손질에 가까웠다.

도대체 저렇게 경기를 해서 리카가 얻는 이득이 뭐지?

리카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하랑의 뇌리에, 불현듯 불길한 전략 하나가 떠올랐다.

평소라면 절대로 통하지 않지만, 지금의 치토세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전략.

“토세! 뒤로 빠져! 거리 주지 마!”

하랑이 고함을 지르는 순간, 리카가 지친 것처럼 비틀거리며 치토세를 덥석 끌어안았다.

클린치.

복싱에서 허용되는 유일한 그래플링 기술.

펀치를 주고받지 못하도록, 상대를 끌어 안아버리는 편법이다.

아니나 다를까, 리카가 치토세의 오른손을 겨드랑이 사이로 끼워넣었다.

리카가 노렸던 것이 바로 저거였다.

“끄으으윽…….”

치토세가 잇사이로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해내며, 리카를 떼어내려고 발버둥 쳤다.

남아있는 왼손으로 리카의 옆구리를 계속 두들겼지만, 솜뭉치 타격으로 상대를 떨쳐내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의 통증 때문에, 치토세의 눈과 코에서 체액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참다 못한 하랑이 레프리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레프리! 브레이크!”

그제야 레프리가 브레이크를 선언하고, 끌어안고 있는 두 아이돌을 떼어냈다.

딱 5초의 클린치였다.

아픈 손을 짓누르는 5초의 비열함 때문에 치토세는 한순간에 넝마가 되었다.

치토세는 다시 가드를 올렸지만, 오른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통증이 중추신경을 타고 올라와서 눈꺼풀도 바르르 떨렸다.

얼굴은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었고, 호흡 또한 거칠었다.

이대로 경기를 속행할 수 있는지조차 의문이었다.

하랑이 분노한 표정으로 리카를 노려보았다.

리카가 링 가운데로 걸음을 옮기는 순간, 하랑과 눈이 마주쳤다.

마치 비웃는 것처럼 리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일부러 클린치하고, 치토세의 오른손을 뭉개버린 것이 확실했다.

“빌어먹을 년이…….”

이 경기를 계속 진행하면, 또 다시 클린치 상황이 나올 거다.

솜뭉치 펀치를 무시하고 다가가서, 끌어안기만 하면 되니까.

하랑이 치토세에게 시선을 향했다.

작은 체구의 일본 꼬맹이는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다.

제 의지로는 절대로 기권 같은 건, 하지 않을 녀석이다.

하랑이 목에 건 수건을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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