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강불괴 대채주-34화 (34/218)

34화 풍사해

마침 타수 산채에는 대장장이가 있었다.

강대력은 그 대장장이를 만나려 했다. 부러진 칼을 들고 걸음을 옮기니 눈치 빠른 산적 하나가 공손하게 말했다.

“채주님, 제가 가서 대장장이를 불러오겠습니다.”

강대력이 말했다.

“괜찮아. 내가 직접 찾아가겠어. 너희는 이거나 들고 나를 따라와.”

강대력은 부러진 금배대환도와 귀두도를 맡기고는 부하의 안내에 따라 타수 산채의 대장간에 도착했다.

타수 산채의 중급 대장장이는 외팔이 중년이었다. 몸집이 건장했으며 눈빛이 날카로웠는데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인물처럼 보였다.

대장장이도 타수 산채의 주인이 바뀐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강대력을 보자마자 그 정체를 짐작한 듯 공손한 모습을 보였다. 얼굴에는 약간 놀란 기색이 묻어 있었다.

강대력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과하게 예의 차릴 필요 없어. 난 인재를 중시하네. 자네의 제련술이 몹시 뛰어나다고 하던데, 지금 바로 시험해보지. 시험을 통과하면 후한 보상을 내리겠네.”

두 산적 부하가 두 개의 병기를 들고 앞으로 나왔다. 두 동강 나버린 금배대환도를 받쳐든 산적 부하의 표정은 자연스러웠으나 귀두도를 든 산적 부하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느라 얼굴이 새빨개졌다.

대장장이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채주님, 맡겨만 주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시험을 통과하면 후한 보상이 있다고 했지만, 만약 통과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징벌이 있을 거라 예상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듣자 하니 이 채주의 특기가 사람의 목을 베는 것이라던데……. 설마 내 목을……?’

찰나의 순간, 대장장이는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대장장이는 자신의 어깨보다 두꺼워 보이는 강대력의 팔뚝을 보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강대력이 입을 열었다.

“여기에 두 칼이 있어. 하나는 자네도 잘 아는 계명의 귀두도이야. 이 귀두도가 내 금배구환도를 끊어버렸어.”

강대력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 귀두도를 제련한 후, 그 속에 있는 현철을 써서 내 금배구환도를 고칠 수 있겠는가?”

대장장이가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게, 그…… 채주님. 채주님도 아시다시피 이런 수준의 명도의 제련은 일반적인 수준의 대장장이에겐 어렵습니다. 또한 현철을 제련하려면 엄청난 화력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제 능력으로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강대력이 미간을 찌푸렸다.

“뭐? 그럼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다는 말인가?”

순간 방안에 무거운 기운이 감돌면서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산적 부하들과 대장장이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듯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이 보였다. 이런 차가운 분위기에는 화덕이 뜨겁게 달궈놓은 열기도 소용없는 듯했다.

강대력을 따라온 산적 부하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무례하구나!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단언하는 게야? 채주님께서 좋게 좋게 말씀하시니까 눈에 뵈는 게 없느냐?”

산적 부하가 강대력을 향해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채, 채주님. 일단 화내지 마시고 대장장이에게 한 번 시켜보는 건 어떨까요? 대장장이의 실력이라면 해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강대력이 산적 부하를 노려봤다.

‘대체 왜들 이래? 뭐 잘못 먹었나?’

강대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다들 지레 겁부터 먹다니. 강대력으로서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강대력의 눈빛을 받은 산적 부하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면서 웃음을 잃지 않았다.

“헤헤…… 헤헤헤…….”

이 부하 산적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이마에 땀방울이 잔뜩 맺혀 있었다.

겁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난 싸움에서 강대력이 선보인 무용을 모르는 이는 이 산채에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채주는 그냥 용맹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비도 없었다. 전임 채주의 시체는 이미 개들의 뱃속으로 들어갔으니 말이다.

산채의 길을 안내한 부하도, 대장장이도 새롭게 강대력의 휘하에 들어온 자들이었다. 용맹하지만 잔혹한 새로운 채주 앞에서 긴장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대장장이가 잔뜩 긴장한 채, 억지로 얼굴 근육을 끌어당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채주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저도 일찍이 좋은 스승님을 모시면서 얄팍하게나마 기술을 배웠었습니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현철을 완전히 새로 제련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귀두도의 외관을 금배구환도의 형태로 만드는 정도라면 어찌어찌 가능할 것 같습니다.”

강대력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강대력이 미소를 짓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강대력이 말했다.

“그렇군. 자네가 안 된다고 해서 난 또 정말 안 되는 줄 알았군. 난 안 되는 일을 억지로 시키고 그러는 사람 아니네.”

대장장이가 크게 안심하며 말했다.

“채주님께서는 정말 배려와 품격이 넘치십니다. 채주님 같은 주인을 모시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하하. 계명의 귀도가 이제야 주인을 제대로 만난 것 같습니다.”

강대력이 머리를 끄덕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사람이 능청스럽긴 해도 재주가 있고 눈치가 빠르군.’

강대력이 아부하고 알랑거리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장장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잖은가.

강대력이 대장장이의 말에 만족스러워하는 눈치이자 얼어붙은 분위기도 풀렸다. 주변에 있던 산적 부하들도 싱글벙글 웃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대장장이가 말했다.

“채주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흘, 아니 이틀 안에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강대력이 말했다.

“그래, 좋아.”

강대력이 손을 휘저으며 밖으로 나갔다. 산적 부하들이 그 뒤를 따랐다.

강대력은 이번 기회에 이 대장장이의 실력을 파악하려 했다.

중급 대장장이가 보기 드문 건 맞지만, 나중에 더 좋은 인재들을 구하게 되면 보잘것없는 인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만약 대장장이가 정말 이 귀두도를 잘 제련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면, 지원만 잘 해주면 고급 대장장이로 성장할 여지가 있었다.

대장간에서 나온 후, 강대력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 기억 속에 유명한 대장장이 플레이어와 NPC가 어디서 주로 활동했었는지 떠올려봐야겠어. 그리고 약사도 모집해야겠군.”

종무세계에서 무력만이 유일한 가치는 아니었다. 재주가 뛰어난 장인들도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에 충분했다. 특히 대장장이나 약사 같은 특수한 장인들은 더없이 중요했다.

뛰어난 약사는 영험하고 효력 있는 신기한 영약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러한 영약들은 내기는 물론 혈기까지 회복할 수 있어 강호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큰 세력일수록 이런 인재들이 많이 필요했다.

***

이전 전투에서 죽었던 흑풍채의 플레이어들이 모두 부활하여 마침내 타수 산채에 모여들었다.

그와 동시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타수산 아래에 도착했다. 자세히 보니 질풍 산채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부하의 보고를 받은 강대력이 덤덤하게 말했다.

“질풍 산채가 왔다고? 풍사해가 직접 여기로 찾아온 건가?”

강대력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데리고 올라와.”

***

산 아래.

강대력이 풍사해에게 직접 올라오라고 하자 질풍산 산적 부하들의 안색이 급격히 굳어졌다.

질풍 산채의 둘째 위소위가 다급하게 말했다.

“형님, 올라가는 건 좀 아닌 것 같소. 너무 위험한 일이오. 산 밑에 있으면 여차하면 도망칠 수라도 있겠지만, 괜히 올라갔다가 강대력이 나쁜 마음이라도 품은 날에는 꼼짝없이 죽잖소.”

풍사해는 순간 울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풍사해가 차분하게 위소위에게 설명했다.

“강 채주가 나와 만나겠다고 한 건 잘된 일이다. 내 체면을 세워주려는 것이란 말이다. 올라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형님!”

풍사해가 손사래를 쳤다.

“그만. 이제 되었다.”

풍사해가 말했다.

“강 채주가 우리에게 기회를 주는 거야. 알겠느냐? 기회를 줄 때 잡아야지. 한번 생각해 보거라. 지금 내가 올라가지 않으면 강 채주가 우리 질풍 산채를 공격하겠지. 그를 막아낼 자신이 있느냐? 정말 도망칠 수는 있고?”

질풍 산채의 부하들의 표정이 굳었다.

흑풍채 채주는 귀도 계명과 평풍산 고준 등 내기경 강자를 혼자서 격파했다는 실력자였다.

그러한 강대력이 공격해온다면 질풍 산채에서는 감히 당해낼 사람이 없을 터였다.

풍사해의 발치에 천랑효월이 꽁꽁 묶인 채 정신을 잃고 있었다. 풍사해가 천랑효월을 가리키며 말했다.

“강 채주의 얼굴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니, 선물을 줘야겠지. 운량아, 너희 4형제는 나와 함께 산에 오를 준비하거라.”

질풍 산채의 둘째 위소위가 말했다.

“형님, 나도 가겠소.”

풍사해가 웃으며 말했다.

“허허,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올라갈 필요 없다. 모두 올라간다고 해서 변하는 건 없어. 밑에서 기다리거라.”

위소위가 풀이 죽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강대력은 특출난 강자였다. 적어도 회성 인근의 녹림 세력에 그를 감당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올라가나 몇 사람이 올라가나 다를 바 없었다.

***

풍사해와 강대력은 초면이었다.

그에 대해서는 줄곧 흑풍채 채주라는 호칭만 들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흑풍채 채주는 웅파였잖은가. 소문에 들리는 새로운 채주에 대해선 어렴풋한 인상도 잡기 어려웠다.

풍사해는 산에 오르며 강대력의 모습을 상상했다.

풍사해가 타수 산채의 의사당에 도착했다. 정면에 앉은 풍채 좋은 인물이 보였다. 풍사해가 화들짝 놀랐다.

강대력.

명불허전이었다. 풍사해가 강대력을 보자마자 눈앞의 저자가 사람인지 산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산앙지(高山仰止)라는 말이 있었다. 덕망이 높은 이는 우러러보게 된다는 뜻이다. 풍사해는 절로 강대력을 우러러보는 자신을 발견했다.

강대력이 검은색 경장을 입었다. 옷에 가려지지 않은 피부는 괴상한 색깔을 띠고 있었다. 구릿빛 같기도 하고 검은색 같기도 하고 또 황금색 같기도 했다. 어쨌든 힘이 넘쳐 보였다.

강대력의 눈빛은 담담했으나 날카로웠다. 굳게 다물어진 입에서 넘치는 패기가 엿보였다.

풍사해는 강대력을 보자마자 등골이 오싹했다. 심지어 호흡도 가빠졌다.

풍사해는 어떻게든 웃고 있었지만, 스스로는 자신이 웃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기 힘들었다. 자신의 몸이 이렇게 어색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줄줄 흐르는 식은땀을 주체할 수 없었다.

***

강대력은 당당히 앉아 의사당 안으로 들어오는 한 무리의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길이 풍사해를 향했다.

“당신이 바로 질풍채 채주 풍사해인가?”

풍사해가 양손을 모으며 공손하게 말했다.

“네, 강대력 채주님. 제가 바로 질풍채 채주 풍사해입니다. 앞으로 회주 녹림를 이끌어갈 영웅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 겸양이 한껏 담긴 말은 강대력의 호감을 불러일으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