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강불괴 대채주-79화 (79/218)

79화 무량산

***

강대력이 무량산으로 향할 무렵, 곤륜.

이미 짧은 기간에 급성장한 열혈회는 강호 교류방에 올라온 흑풍채 채주 관련 게시글을 보며 술렁이고 있었다.

열혈가지와 신색 등 정회장과 부회장이 중급 이상의 고위직을 소집해 긴급 회의를 열었다. 그들은 초조한 심정을 감추기 어려웠다.

“흑풍채 채주가 이렇게 빠르게 움직일 줄은 누가 알았어. 주무연환장의 무열이 생포 당하다니……. 우리만으로는 흑풍채를 포위 공격하긴 어려워.”

“우리의 힘으로는 대리단씨의 고수와 접촉할 방법도 없고 말이야.”

“사람들이 우리 열혈회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어. 우리가 흑풍채를 공격할 거라고 큰소리 떵떵 쳤는데, 지금 상황은 심상치 않아. 이러다가 자칫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겠어.”

“사실 이건 우리 탓이 아니야. 흑풍채의 채주가 보통 음험한 게 아니라서 그래. 산적 주제에 이렇게 빠르게 대처하는 게 말이 돼? 확실히 보통의 NPC와는 달라.”

“이제 어떡하지? 흑풍채를 잡지 못하면 힘들게 데려온 강자들도 떠나갈 거야. 이 상황을 지켜보는 플레이어들은 앞으로 우리 회에 가입하지 않을 거야.”

열혈가지와 신색이 서로를 마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흑풍채 채주가 선제공격에 나설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이미 주무연환장의 무열까지 생포했다니…….

“주무연환장의 무열과 대리단씨의 도움 없이는 흑풍채 채주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어. 우리 공회의 힘은 아직 패절당과는 비교도 안 되니까. 강력한 NPC의 도움은 필수야.”

일찌감치 곤륜파에 가입한 플레이어 월흔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어. 지금의 전력으로 흑풍채를 쓰러뜨릴 수는 없겠지만, 다른 산적을 상대하는 데는 전혀 문제없을 거야.”

신색이 월흔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월흔이 웃으며 말했다.

“백리 밖에도 그럭저럭 이름난 호산(壶山) 산채가 있잖은가. 그 녀석들을 죽여도 아쉬울 것 하나 없어. 기회를 엿보다가 그쪽 산적 놈들을 제압하는 거야.”

월흔은 자신의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가 그 산채를 잡으면 어떻게 되겠어? 그 근처는 우리의 근거지가 되겠지. 산채에 있는 재화도 우리 회의 것이 될 테고……. 그 재화들은 우리 회의 구성원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면서 민심을 잡는 거야.”

월흔은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씨익 웃었다.

“비록 흑풍채를 잡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현 시점에선 산채를 제압한 유일한 공회가 될 테니, 우리 회의 명성은 더 유명해지겠지. 그러면 더 많은 플레이어들이 가입하지 않겠어? 그러다보면 우리 회의 세력도 흑풍채를 잡을 만큼 성장하겠지.”

열혈가지가 생각에 잠겼다.

“그렇군. 딱히 우리가 흑풍채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아니야. 다만 일에도 완급 조절이 있는 거지. 흑풍채를 공격하기 전에 다른 산채를 제압한다라……. 좋은 생각 같군.”

열혈가지의 얼굴에도 웃음이 걸렸다.

“좋아. 어렵게 얻은 민심을 잃는 걸 넋 놓고 바라볼 수는 없지. 우리 회에 가입한지 얼마 안 된 고수들에게는 특히 신경 써서 보상을 약속해야겠군. 지금 그들이 떠나면 호산 산채를 제압하는 일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으니 말이야.”

“호산 산채를 우리의 근거지로 만들면 흑풍채 같은 강력한 세력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겠지. 머저리 같은 흑풍채의 플레이어들은 앞으로도 NPC에게 굽실거리라고 해. 우리 열혈회는 다른 길을 개척해 나갈 테니까!”

***

울창한 숲속에 맑은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산봉우리 뒤로 떠오른 밝은 달이 나뭇가지를 비추었다. 푸른 달빛 사이로 낙엽이 흩날렸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러나 산 중턱에서 들려오는 검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성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깨버렸다.

무량검파의 동과 서 두 종문은 5년에 한 번씩 검을 겨루는 비무 대회를 치렀다.

무량산의 동서 두 종문은 사실 강호 전체에서 놓고 보면 그리 대단한 세력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무량산에 자리하면서 일정한 수준 이상의 실력을 갖춘 종문이었다.

동서 두 종문의 장문 좌자목(左子穆)과 신쌍청(辛双清)은 모두 폭기경 실력을 갖춘 고수로 운주 일대에서는 손꼽히는 고수였다.

그러나 서하일품당(西夏一品堂)의 4대 악인들에 크게 못 미쳤다.

4대 악인 중 실력이 가장 약한 운중학(云中鹤)도 이 두 사람보다는 훨씬 막강했다.

***

마응의 등에 올라탄 강대력이 무량산의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그는 무량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뭐야. 두 종문이 비무 대회 중이잖아. 하하하, 공교로운 시기에 찾아왔군. 내 기억으로는 이들은 5년에 한 번씩 비무 대회를 열었지. 검호궁(剑湖宫)의 관할권을 쟁탈하여 무량옥벽에 걸린 옥벽의 선영(仙影)을 지키기 위해서였던가.”

강대력은 전생의 기억을 더듬었다.

전생에서는 일부 CBT 플레이어들이 이 두 종문에 가입했었다. 후에 무량검파와 신농방(神农帮)이 전쟁이 발발했었고,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들은 많은 이익을 챙겼었다.

무량검파가 집안에서 비무를 치렀기 때문에 경계가 평소보다는 약할 터였다. 강대력의 목적인 무량검파의 금지(禁地) 안으로 들어가 무량옥벽을 살피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시간에 맞춰 오는 게 일찍 오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생각났다.

강대력 역시 무량검파와 낭현복지에 대해 아는 바가 많았다.

전생에 치심인이라는 이름의 플레이어가 무량검파의 검호궁(剑湖宫) 밑에서 낭현복지와 관련된 사본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운영 측이 제공한 정보로는 낭현복지는 소요파 2대 장문인 무애자와 그의 후배인 이추수의 은둔지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동굴 안에 온갖 다양한 무공을 숨겼다.

이들은 때로는 달빛 아래서 검을 겨뤘고 때로는 꽃 앞에서 시를 지으며 시간을 보냈다.

두 사람이 검을 겨룰 때의 모습이 무량옥벽에 비쳐졌다. 무량검파의 태사조는 이를 보고 천인(天人)이 검을 휘두르는 줄 알고 화들짝 놀랐다.

무량검파는 오랫동안 무량산의 검호궁에 자리한 채 옥벽을 지키며 선인검법(仙人劍法)을 깨달았다.

그러나 무애자와 이추수는 낭현복지에서 20년 동안 머물다 결국 떠나고 말았다.

무량검파의 선조가 한동안 선인검법을 보지 못했던 이유는 두 사람이 떠났기 때문이었다.

이후 선인의 그림자가 다시 나타나도 사람들은 이를 무애자가 새긴 이수추의 동생으로 여겼다.

나중에 대리단씨의 단예가 착각한 덕분에 많은 이들이 낭현복지에 들어가 많은 혜택을 누렸다.

그리고 왕어언의 어머니도 낭현복지에서 기연을 만났다.

이후 낭현복지는 종무세계의 기이한 힘의 영향을 받아 알 수 없는 현상이 나타나는 특이한 곳으로 떠올랐다.

복지 밖 옥벽에 새겨진 기이한 선영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현혹시켰다.

복지 안에 있는 조형물은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발견 당시 복지 안에 들어갔던 플레이어들은 복지 안에 들어서자마자 죽임을 당해 그 곳에 있는 신선의 조형물을 볼 수도 없었다.

훗날 일신이 강림하여 패절당의 풍영과 힘을 합쳤다. 두 사람은 구양신공과 순양무극공, 두 절학을 펼치며 낭현복지로 들어갔다.

일신과 풍영이 낭현복지 안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아는 플레이어는 별로 없었다.

당시 강대력도 게임 플레이어 중에서는 꽤 유명한 편이었다. 그러나 일신 같은 최상급 플레이어와는 비교도 안 되었다.

그래서 강대력은 이에 대한 중요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고, 다른 평범한 플레이어들과 마찬가지로 풍문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풍영과 함께 낭현복지로 향했던 고수 일신(一神). 그 일신이 패절당의 당주라는 소문이 돌았다.

패절당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당주의 무공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소문이었다.

일신은 패절당 당주만큼이나 신비로웠고 어떤 세력과도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패절당과 힘을 합쳤으니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강대력은 일신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은 일신에게 구양신공이 있을 리 없어. 순양무극공은 있을 수도 있겠네. 내가 구양신공과 일양지라는 절학을 습득하긴 했지만, 과거 일신의 전성기 시절과는 감히 비교조차 안 돼.’

강대력은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목표를 한정했다.

‘혹시라도 그와 마주칠 가능성이 있다면, 지금 낭현복지에 가는 건 너무 일러. 그렇다면 우선 옥벽선영부터 봐야겠군. 뜻밖에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으니 말이야. 일단 옥벽선영부터 보고 망고주합을 찾으러 가면 되겠지.’

강대력은 마응의 방향을 돌려, 물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곳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무량산에 진입하기 직전, 강대력은 무열을 인근의 동굴에 묶어두고 혼자 길에 나섰다.

무열의 경지는 폭기경에 불과했지만, 강호에서는 그래도 꽤 강력한 인물이었다. 게다가 배우기 어려운 일양지까지 습득했으니 자신의 연습 상대로 제격이라 생각했다. 강대력은 무열을 죽이지 않고 산채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강대력은 새로운 기능 공간이 건설되면 무열을 감옥에 넣어두고 연습 상대로 삼으려 했다.

강대력 뿐만 아니라 웅파, 무운홍, 풍사해 그리고 모든 플레이어들이 이 감옥에 들어가 무열을 상대로 무공을 연습할 수 있게 할 생각이었다.

내기경의 플레이어들이 폭기경의 무열을 상대로 무공을 연습한다는 건 매우 힘들고 고단한 일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만큼 무공의 숙련도는 높아질 터였다.

이런 실력이 뛰어난 NPC는 흔치 않은 자원이며 플레이어들을 양성하는 데 최적의 상대였다.

전생에 실력이 뛰어난 플레이어 공회도 이 같은 방법을 썼었다. 회의 실력이 막강한 고수들이 배후가 없는 NPC를 생포하여 감옥에 가뒀으며, 이들을 플레이어들의 훈련 상대로 사용했다. 그 덕분에 많은 플레이어들이 실력을 빠르게 키울 수 있었다.

이런 혜택은 공회가 가입자를 끌어 모으기 위해 제공하는 요소 중 하나이기도 했다.

마응이 급강하하자 물줄기가 광풍에 밀려났다.

달빛 아래로 보이는 무량산의 서북 방향.

높은 절벽에서부터 폭포가 흘러내렸다. 세찬 물줄기는 보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졌다.

강대력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마응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 주변을 살폈다.

“여기인 것 같군.”

전생에서는 낭현복지의 위치가 노출되었지만, 플레이어들에게 접근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대다수의 공회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최정상급 공회에게만 입장 권한이 주어졌다.

강대력도 전생에 무량산을 찾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멀리서 이곳을 지켜보기만 하고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했다.

그때 강대력은 강기경의 실력이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의 종무세계에 전생했다.

그래서 강대력은 이곳이 낭현복지라는 것은 알았지만, 입구를 찾는데 적지 않은 시간을 소모해야했다.

주변은 안개와 구름으로 뒤덮여 앞 뒤 분간도 쉽지 않았다.

탐색을 계속하던 중 맞은편 절벽 사이로 커다란 틈이 보였다.

강대력의 눈이 번쩍였다.

강대력은 마응을 타고 틈 가까이 다가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