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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불괴 대채주-86화 (86/218)

86화 실력 차이

전투에 참여한 열혈가지의 위세는 대단했다. 그러나 열혈회의 전반적인 전력은 분명 흑풍채에 못 미쳤다.

쌍방이 교전을 치르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열혈회 고수들의 피해는 점점 커졌다.

그러나 흑풍채의 대장급 플레이어들은 단 한 명도 죽지 않았고 그저 혈기만 깎였을 뿐이었다.

열혈가지의 분투에도 전황에 큰 변화가 없자, 주변의 구경꾼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열혈회의 몰락을 확신했다.

전력의 차이가 너무 커서, 아무리 주변의 성황전에서 플레이어들이 부활하여 돌아온다고 해도 흑풍채의 기세를 꺾기는 어려워보였다.

뿐만 아니라 플레이어들은 죽을 때마다 경지가 떨어지는 약점이 있었다.

일반 플레이어들이야 죽음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열혈가지와 같은 고수들은 사정이 달랐다. 뛰어난 고수라도 세 번 이상 죽는다면 일반 플레이어와 다를 바 없어질 수 있었다.

다른 공회의 플레이어들도 이 점에서 아쉬움을 느꼈다.

“열혈회는 끝났네. 열혈가지 말이야, 생각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도망가야하지 않나?”

“어쩔 수 없어. 흑풍채와의 실력 차이는 분명해. NPC세력이 이렇게나 강할 줄 누가 알았겠어.”

하지만 그때,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열혈가지가 분통을 터뜨리며 소리를 지른 것이 시작이었다.

“당신 말대로 할 테니까 어서 도와줘!”

복병을 숨겨두었던가 하는 생각에 흑풍채의 플레이어들은 즉각 경계 태세를 취했다.

그러나 열혈회의 플레이어들이 쓰러져도 지원군은 나타나지 않았다.

흑풍채의 플레이어들이 분노하며 외쳤다.

“뭐야? 감히 우리를 속여?”

“죽여! 죽이고 또 죽여!”

주변의 구경꾼들도 신중이 상황을 파악했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 일도 없자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열혈가지도 참……. 아무리 급했다고 해도 저런 통하지도 않을 허세를 부리다니.”

“마치 바람난 부인을 쫓는 사람처럼 울부짖더니 아무도 나타나지 않잖아.”

열혈가지가 다시 울부짖었다.

“왜! 왜! 왜 나서지 않는 거야!”

그는 열혈회의 플레이어들이 하나둘씩 백색광이 되어 사라지는 것을 보며 고통스러워했다.

중원묘인봉이 냉소를 지으며 외쳤다.

“귀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거야 뭐야! 그냥 죽어!”

슈슉!

날카로운 검이 열혈가지를 향해 휘둘러졌다.

그 순간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중원묘인봉은 굳은 표정으로 검을 되돌렸다. 갑자기 커다란 돌멩이 같은 암기가 날아와 중원묘인봉의 빈틈을 노렸다.

펑!

중원묘인봉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치명상은 아니었으나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흑풍채의 플레이어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순식간에 무수히 많은 흑점이 나타나더니 흑풍채의 산적들을 향해 날아갔다.

화개견홍은 날카로운 암기들에 휩쓸렸다. 어떤 플레이어는 허둥지둥 도망치기에 급급했고, 또 어떤 플레이어는 어떻게든 철포삼으로 막아보려 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흑풍채의 산적 중에서는 세 사람만이 간신히 서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바닥에 쓰러졌다.

죽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암기에 경혈을 얻어맞아 잠시 정신을 잃었을 뿐이다.

몹시 정교하고 날카로운 암기였다.

이 모습을 본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간신히 자리에 서 있던 플레이어 이검봉이 고함을 질렀다.

“대체 누구냐!”

당찬 목소리와는 달리 그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묻어났다.

‘뭐지? 막강한 실력의 고수를 숨겨두었던 건가?’

열혈회의 플레이어들도 당혹스러워했다.

오직 열혈가지와 몇몇 고위층만이 환하게 웃으며 뒤를 돌아봤다.

한 남자의 그림자가 마치 유령처럼 나타났다.

언제 나타났는지, 그자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자는 검은 옷에 푸른 망토를 걸쳤고, 얼굴에는 검은 가면을 쓰고 있었다.

남자는 높은 곳에서 플레이어들을 내려다보았다.

남자는 커다란 체구, 가면 사이로도 감출 수 없는 날카로운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이검봉을 비롯한 흑풍채의 플레이어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의 등장에 긴장했다.

갑자기 나타난 남자의 머리 위에 검은색 이름표가 나타났다.

이름은 식별할 수 없게 가려져 있었지만, 검은색 이름표는 저자가 NPC가 아닌 플레이어라는 것을 뜻했다.

이검봉을 비롯한 흑풍채의 플레이어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열혈회에 이렇게 강력한 플레이어가 있었다고?’

열혈회의 부회장 신색이 불만을 토로했다.

“왜 이제야 나타난 거야?”

남자는 신색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갑자기 세찬 바람이 일어나 신색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네까짓 게 감히 내게 불만을 토로하나?”

신색은 몸을 피하려 했지만, 바람은 빠르고 날카롭게 날아가 감히 대처할 수 없었다. 바람에 적중당한 신색은 뒤로 밀려나 커다란 나무에 부딪혔다.

신색은 간신히 일격에 죽지 않았다.

“패절당주!”

열혈가지가 큰소리로 남자를 부르며 불만을 드러냈다.

“난 이미 선택을 했어. 이제 당신이 약속을 지킬 때야.”

흑풍채와 열혈회의 플레이어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패절당 당주라고?”

흑풍채 플레이어들은 검은 옷을 입은 남자를 바라봤다.

“약속? 무슨 약속 말이지?”

패절당 당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풍영이 뭔가 멋대로 한 약속한 모양이군. 난 모르는 일이다. 그저 상황을 확인하러 왔을 뿐. 이곳에 와보니까 너희들은 너무 약해. 그리고 멍청하기까지 하군.”

열혈가지의 얼굴이 굳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패절당 당주는 간신히 서 있는 이검봉과 흑풍채의 플레이어들을 보며 말했다.

“사실 난 이곳에 올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수하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는구나. 하지만 결국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은 다 너희들 때문, 아니 정확히 말하면 너희들 채주 때문이다.”

이검봉은 패절당 당주의 말에 분노했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구나. 패절당이 우리 흑풍채에게 어떻게 당했는지 모르나보지?”

패절당 당주는 이 말을 듣고 옅게 웃었다.

“하하하.”

패절당 당주가 말했다.

“흠, 아직도 제법 기가 살았군. 너희들, 감당할 수 있겠나? 너희 채주가 사람을 잡아 가두는 걸 좋아한다지? 나도 똑같이 해보려 한다.”

바닥에 누워있던 중원묘인봉은 흑풍채 감옥에 갇혀있는 상심소도를 떠올렸다.

중원묘인봉이 큰소리로 외쳤다.

“검봉! 어서 자결해! 다들 자결해!”

순간적으로 흑풍채의 플레이어들은 칼을 빼 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상당수의 플레이어들이 백색광이 되어 사라졌다.

“판단이 제법 빠르군.”

패절당주는 망토를 펄럭이며 두 손을 내밀었다.

파바밧.

공기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퍼졌다.

조금 전 중원묘인봉의 경고에 빠르게 반응하지 못한 플레이어들은 이제 패절당주의 견제에 목숨을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었다.

누군가는 패절당 당주를 향해 공격을 가했다. 그러나 패절당 당주의 강력한 기세에 짓눌려 혈기가 빠르게 바닥났다.

흑풍채의 플레이어들은 경혈을 얻어맞아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겨우 절반 정도의 플레이어만이 산에서 도망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흑풍채의 산적들 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플레이어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열혈가지를 비롯한 열혈회의 플레이어들이 가장 크게 놀랐다. 패절당 당주의 실력이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패절당 당주의 실력인가? 세가 재단이 비밀리에 만들어낸 최강의 실력자라더니, 일반 플레이어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구나. 이렇게 막강한 고수를 당해낼 사람이 과연 있을까?’

패절당주가 손을 내밀자 또 한 무리의 플레이어들이 경혈을 얻어맞고 정신을 잃었다.

“나는 이런 일을 좋아하지 않아. 그럴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조금이라도 더 이 세계의 무학을 연구하고 싶지.”

패절당 당주는 바닥에 쓰러진 흑풍채 플레이어들의 가운데 서서 무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이 세계가 흥미로워서 참을 수 없는 사람이다. 이 세계의 모든 고수를 만나고 싶어. 그래, 너희들 채주. 그자는 참 재밌는 사람이지. 한번 만나보고 싶구나. 그러니 여기서 흑풍채 채주가 오기를 기다리려 한다.”

아직 의식이 남아있는 흑풍채 플레이어들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뭐야 그럼? 흑풍채 채주를 만나기 위해 열혈회를 돕는다는 말이야?”

“젠장, 우리를 인질로 삼아 채주님을 불러낼 생각이야. 우리가 상심소도를 잡은 것처럼 말이야.”

“그렇지만 채주님은 NPC잖아. 우리가 인질로 잡힌 걸 어떻게 알아? 오긴 할까? 안 올 수도 있잖아.”

멀리서 구경하던 플레이어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패절당 당주의 행동이 참 이상했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NPC 보스를 상대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흑풍채가 패절당의 부하를 인질로 잡았으니 패절당 당주도 흑풍채의 부하를 인질로 잡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흑풍채 채주는 게임 플레이어가 아니라 한 세력의 NPC 보스가 아닌가.

이런 NPC를 상대하는 건 공격대를 구성해서 본거지를 찾아가서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패절당 당주가 흑풍채의 플레이어들을 잡아다가 NPC를 협박한다고?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잖아.’

‘흑풍채 채주가 정말 올까?’

흑풍채의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이 상황을 지켜보는 모든 사람이 궁금해 했다.

***

강호 교류방이 들끓었다.

플레이어들은 흥분된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흑풍채가 열혈회와의 세력전에서 패배했다는 소식이 발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단어는 바로 ’패절당 당주‘였다.

패절당이 보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동안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신비 고수인 당주가 처음으로 나타났다.

패절당 당주가 직접 나서서 흑풍채의 플레이어를 상대했다. 그의 실력은 모두의 상상을 초월했다. 그리고는 대놓고 흑풍채 채주를 만나겠다고 말했다.

운영측인 세가 재단이 심혈을 기울여 키워낸 플레이어 세력.그러한 소문이 파다한 패절당이 또 한 번 흑풍채를 향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수많은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현장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영상을 올렸고, 그 영상에 담긴 패절당 당주의 실력에 플레이어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여론이 있었다. 특히 세가 재단에 대한 이러저러한 불만들이 제기되었다.

흑풍채 채주는 실력도 뛰어났지만, 무엇보다 매력이 넘치는 NPC였다. 그의 행보는 플레이어들의 환심을 끌어냈다.

그러나 패절당은 CBT가 시작되기 전부터 종무세계에 자리잡고 발전을 해왔다.

CBT에 참여한 게임 플레이어들은 불공평한 대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불만이 제기되었다.

패절당 당주의 실력에 감탄하는 이들도 적지는 않았지만, 대체적으론 감탄보다 욕설이 더 많았다.

일부 플레이어들은 패절당이 흑풍채의 손에 멸망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이건 자신들의 욕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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