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강대력의 도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봉은 강대력의 범계 무학인 암기술 만천비우를 배웠다.
그가 배운 무공에 이 암기술을 더하면 전투력이 크게 상승할 터였다.
강대력도 기쁜 마음으로 한봉의 수위점과 잠재점을 획득했다. 그리고 무학의 경지를 강화하고 싶으면 흑풍채를 찾아오라고 당부했다.
한봉은 감격에 겨워하며 자리를 떠났다.
시작이 조금 어려웠을 뿐이었다. 이후로는 다른 플레이어들이 셀렘 가득한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벌떼처럼 달려왔다.
그들은 저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수위점과 잠재점을 내놓으며 무학을 배우겠다고 했다.
플레이어들이 내놓은 수위점과 잠재점 중 강대력이 받을 수 있는 양은 6분의 1 정도였다. 그러나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했던가. 모두 모으면 절대 적은 양이 아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흑풍채의 플레이어들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흑풍채를 도와줬던 플레이어들이 강대력을 둘러싸고 무학을 배우고 있는 모습이 아니꼽게 보였기 때문이다. 일부는 질투로 눈이 뒤집힐 정도였다.
이들의 눈에 흑풍채의 무학은 특수 무학이었다. 나만 익히고 싶은 그런 무학 말이다.
물론 적지 않은 강호인들이 사용할 줄 아는 무학이었지만,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흑풍채의 플레이어도 아니면서 흑풍채의 무학을 배우다니…….
마치 자기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듯하여 불만이었다.
그러나 이건 채주 강대력의 결정이었다. 흑풍채의 플레이어들은 절대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화운 공회의 플레이어들이 몽둥이를 든 남자에게 물었다.
“천 형. 우린 뭘 선택하오?”
조금 전, 플레이어들은 몽둥이를 든 남자가 더 많은 열혈회 회원을 격살할 수 있도록 양보하고 밀어주었다. 그 덕에 그 남자가 모은 우정 점수는 상당했다.
고독소천(孤獨笑天)이 말했다.
“일단 눈치를 살펴야겠어. 내가 모은 우정 점수는 910점이다. 흑풍채 채주의 도움만 받을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만…….”
고독소천은 다른 한쪽을 바라봤다.
경수 공회의 플레이어들이 논의를 마친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강대력도 두 공회의 플레이어들을 예의주시했다. 그는 누구나 차별 없이 대해줬다.
사실 공회의 플레이어들에게 수위점과 잠재점이 많든 적든 그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점수에 상응하는 보상만 내리면 그만이었다.
두 공회의 플레이어들은 서둘러 보상을 받지 않고 서로 눈치를 살폈다. 더 좋은 보상을 받기 위한 무언의 눈치 싸움이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하나둘씩 보상을 받은 후 뿔뿔이 흩어졌다.
이윽고 두 공회의 플레이어들이 강대력을 향해 걸어왔다.
고독소천이 강대력을 향해 주먹을 맞대고 공손하게 말했다.
“흑풍채 채주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 정도의 점수로 채주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까?”
강대력이 일부러 침울하게 말했다.
“이 정도의 점수로는 부족해. 우리 흑풍채가 보유한 불완전 인계 무학을 전수해줄 정도는 되겠어.”
고독소천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말을 들은 경수 공회의 플레이어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는요? 우리는 열혈회의 회원 113명을 격살하여 우정 점수 1,130점을 획득했습니다.”
강대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정도라면 내가 한 번 정도는 도와줄 수 있겠군. 그러나 우리 흑풍채는 공명정대하여 강호의 질서에 위배되는 일은 하지 않아. 너희들이 내 도움을 요청할 수는 있지만, 내 원칙과 기준이 부합해야 도와줄 수 있어. 또한 적들에게 막강한 배후가 있다거나 실력이 나보다 강하면 도와주기 힘들어. 그런 경우에도 내가 너희들에게 도움을 주려면 이 정도의 점수로는 턱도 없어.”
강대력은 다소 정색하며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플레이어들은 순간적으로 당황하여 할 말을 잃었다.
‘하……. 흑풍채 산적 주제에 까다롭게 굴기는……. 어이가 없네.’
경수 공회의 회장은 다소 언짢았지만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백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채주님께 부탁드릴 일은 어느 인물의 확보입니다. 상대는 막강한 배후 세력도 없고 실력도 평범한 놈입니다. 다만 경공술이 뛰어나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해서 저희로서는 잡을 방법이 없습니다. 또한 저희가 잡으려는 놈은 성조로부터 수배 중입니다.”
경수 공회 회장은 강대력에게 어느 인물의 포획을 요청했다.
“상대는 마문 화간파(花間派)의 분파 다정산장(多情山庄)의 제자입니다. 강호에서 수많은 여자들의 마음을 홀리고 다니는 놈이니, 이 놈을 잡는 것이 강호의 도리에 위배되거나 인의에 어긋나는 것은 아닙니다.”
강대력은 그의 설명을 듣고 통쾌하게 승낙했다.
경수 공회 회장은 처음에는 도움에 조건을 다는 강대력의 태도에 다소 불쾌했으나, 곁눈으로 부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화운 공회의 플레이어들을 보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좋아. 그놈이 있는 장소를 알려줘. 금방 해결해주지.”
강대력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말했다.
‘강호 교류방에 이와 관련된 글이 올라오겠지?’
강대력은 그저 이들이 열혈회를 잡는 것을 도와줬기 때문에 이들을 돕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 강대력이 플레이어들을 도와준 사실은 순식간에 퍼져나갈 것이다.
「유명 강호인 흑풍채의 채주, 경수 공회의 플레이어들을 도와주다.」
「흑풍채 채주가 전해준 우정의 선물.」
「흑풍채 채주의 도움으로 골칫거리를 해결하다.」
이런 식으로 관련된 게시글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올 것이다.
강대력은 매우 영리한 인물이었다.
이렇게 플레이어들의 세력이 떠안은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강대력이 궁리해 낸 계책이었다.
강대력은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흑풍채를 도와주는 대가가 얼마나 큰지 직접 보여줄 생각이었다.
현재 강호 최고의 유명 인사이자 강력한 고수로 부상한 강대력이, 흑풍채를 도와주는 외부의 플레이어들을 직접 도와주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이러면 앞으로도 강대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흑풍채를 도우려 하는 플레이어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또한 그럴수록 강대력이 얻는 수위점과 잠재점도 더 많아진다.
강대력이 경수 공회로부터 절화공자(折花公子)라는 수배자의 정보를 받은 후, 상실감에 빠진 화운 공회의 플레이어들을 위로해줬다.
화운공회의 플레이어들은 끝까지 우정 점수로 인계 무공을 배우려 하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본 강대력은 이들을 더욱더 격려했다.
강대력은 화운 공회의 플레이어들에게 다음에도 흑풍채를 도와주면 더 많은 보상을 주겠다고 격려하자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자 강대력은 모든 플레이어들을 해산시켰다.
이후, 흑풍채의 플레이어들에게 호산 산채에서 얻은 자원을 확인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리곤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흑풍채로 가져가도록 지시했다.
***
호산 산채는 열혈회에게도 점령당했고, 이후엔 강대력이 거느린 흑풍채에게도 점령당했다.
호산 산채에는 자원도 별로 없었고 무엇보다 회주의 본거지에서도 너무 멀었다.
강대력도 처음에는 이곳을 흑풍채의 거점으로 사용하려 했으나, 이내 포기하고 플레이어들이 챙겨놓은 물자만 가져갔다.
강대력이 호산을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남몰래 숨어서 못된 일이나 꾸밀 듯한 건장한 사나이가 등에 날이 넓고 평평한 큰 도끼를 메고 나타났다.
단도 등 병기를 든 꾀죄죄한 산적들이 그를 뒤따랐다. 이들은 아수라장이 된 호산을 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몇몇 산적들이 쭈뼛쭈뼛하며 아첨했다.
“채, 채주님. 역시 현명하십니다. 형님께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시고 우리를 데리고 잠시 떠난 덕분에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괴인들의 실력은 정말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굉장한 고수까지 숨겨두었을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거기에 흑풍채 채주……. 그자가 그 괴인들을 모조리 격멸하는 모습은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습니다…….”
채주라고 불린 사나이도 내심은 겁에 질렸으나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신중한 사람은 세상의 어떠한 일이든 잘 처리할 수 있지만, 두려워할 줄 모르고 만용을 부리는 사람은 작은 일에도 실패하지. 때와 장소를 보면서 덤비는 게 좋아. 그러면 이기진 못하더라도 지지는 않아.”
그를 따르는 플레이어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 건장한 사나이가 바로 호산 산채의 채주, 내기경의 실력자 장유아(張唯我)였다.
일찍이 산적 패거리에 들었고 타고난 아첨 실력으로 산채에 적응하였으며, 나중에는 무공을 익혀 호산 산채의 채주가 된 남자였다.
강호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장유아는 모든 일에 점점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일단 상황을 파악한 후 움직이는 것이 장유아의 특징이었다.
열혈회의 플레이어들이 호산 산채를 쳐들어왔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장유아가 보기에 열혈회는 세력이 크고 사람이 많은 것도 장점이었지만, 무엇보다 취력경 강자가 수십 명이나 있다는 점을 위협으로 여겼다. 또한 장유아는 그들 중에 자신의 실력과 맞먹는 고수가 숨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장유아는 값비싼 물건들만 챙긴 후, 열혈회의 포위망을 뚫고 황급히 도망쳤다. 사실 열혈회에서 따로 숨겨둔 고수가 없다면 모두가 잠든 깊은 밤에 기습 공격을 펼쳐 산채를 탈환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양상을 지켜보다가 열혈회의 플레이어들 속에 가면을 쓴 신비로운 고수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장유아는 고수의 정체가 드러날 때까지 부하들을 데리고 몸을 숨겼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내고 나니 이번에는 커다란 세력 간 전쟁이 발생한 것이다.
사실 장유아도 어리둥절했다.
호산 산채에 뭐가 있길래 이렇게 많은 괴인들이 나타나는 것일까? 산채에서 보관하는 물건 중에 귀한 것이라곤 기껏해야 남을 속여 얻은 낡은 비급 몇 권과 사령파로부터 강제로 빼앗은 명운정 몇 개가 다였다.
‘겨우 이 정도의 자원 때문에 전쟁을 한다고? 그것도 고작 호산 산채에서?’
문득 호산 산채의 산적 부하가 물었다.
“채주님. 이제 저희는 어떡합니까?”
장유아는 아수라장이 된 호산을 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처량하고 쓸쓸한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구나. 산도 무너지고 사람도 없어지고, 공든 탑이 무너졌어. 강호 세계는 위험하기 그지없다더니 오늘에야 그 사실을 실감하게 됐구나. 너희들만 아니었으면, 적당히 달아나 엉망진창으로 살았을 테지만……. 지금 보니 차라리 흑풍채에 가입하는 게 낫겠다. 흑풍채 채주는 대단한 인물이더구나. 그의 밑에서 먹고 살며 안정된 나날을 보낼 수도 있잖느냐.”
산적 부하들은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라서 한동안 망설였다.
장유아가 말했다.
“다들 강호인이고 녹림 출신이잖느냐. 흑풍채 채주가 우리를 받아 줄지는 모르겠지만 호되게 내쫓지는 않을 거다. 가자.”
장유아는 다른 건 몰라도 자신의 입이 살아있다고 자부했다. 자진해서 항복하기를 선택한 것도 모두 그의 살아있는 입을 믿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