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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불괴 대채주-96화 (96/218)

96화 절화공자

***

채찍으로 말을 때리는 소리,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흑풍채의 플레이어들은 산적 NPC들의 험담을 늘어놓으며 흥을 올렸다.

서역에서 회주까지의 거리는 제법 멀었다.

강대력은 일반 산적 플레이어들과 함께 천천히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에 중원묘인봉 등 몇몇 뛰어난 실력의 플레이어들과 함께 빠르게 돌아갔다.

강대력이 서둘러 이동하자 다른 플레이어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나 명령에는 복종할 따름이었다. 그들은 힘겨운 행군을 이어갔다.

***

강대력은 등에 있던 패절당 당주의 뺨을 후려쳤다. 패절당 당주는 완전히 실신했다,

강대력은 곤륜 산맥의 끝자락에서 중원묘인봉 등 세 사람에게 임무를 나눠줬다.

중원묘인봉이 받은 임무는 금면불(金面佛) 묘인봉(苗人鳳)을 찾는 일이었다.

중원묘인봉은 운영 측이 제공한 고서를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금면불 묘인봉이라는 인물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종무세계에 들어온 이후 자신의 이름을 중원묘인봉이라고 지었다.

전생에서 그는 정말 묘인봉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는 묘인봉으로부터 묘가검법을 익혀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후에 중원묘인봉의 묘가검법은 청출어람하여 결국 일류 고수의 수준에 이르렀다.

강대력은 이번 세력전을 치르며 산채의 플레이어들의 실력이 쑥쑥 성장한 것을 누구보다 크게 실감했다. 그러나 진정한 강자가 될 정도의 역량을 가진 사람은 아직 한 명도 없었다.

강대력은 지금부터라도 잠재력을 가진 플레이어를 집중적으로 양성하려 했다.

그중의 한 사람이 바로 중원묘인봉이었다.

중원묘인봉은 고서에 나오는 금면불 묘인봉에 대해서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강대력은 자신이 알고 있는 묘인봉의 행방을 중원묘인봉에게 알려주고, 그를 찾아가 묘가검법을 배우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이런 임무를 받으니 중원묘인봉으로서는 놀라우면서도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흑풍채 채주의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에 더없이 감격스러워했다.

또 다른 두 명은 화개견홍과 고색이인이었다.

강대력은 두 사람에게도 임무를 내렸다.

머리가 영리한 화개견홍에게는 천하회에 잠입한 후 신풍당에 가입할 것을 요구했다.

만약 중간에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든지 전서구를 날려 도움을 청하라고 했다.

팔방미인 고색이인에게는 낙양의 번화가에 가서 상인 한 명을 찾아올 것을 요구했다.

그 상인은 바로 과거 내로라하는 절정산장의 장주 패도(覇刀)였다.

강대력은 세 사람에게 여비를 넉넉히 나눠주었다. 그리고 마응의 등에 올라탄 후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순식간에 세 사람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흑풍채가 빠르게 발전하려면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되었다. 끊임없이 진보를 추구해야 했다.

강대력에게는 앞날을 위한 수많은 계획들이 있었고, 이를 하나하나씩 완성해나갔다.

곤륜을 떠나기 전, 강대력은 과거 빙백옥석을 묻어 두었던 곳으로 향했다.

그는 빙백옥석을 파낸 후, 꽁꽁 묶여 있는 패절당 당주를 또 한 번 기절시켰다.

그리고나서야 강대력은 곤륜의 하늘을 빠져나갔다.

***

“흑풍채 채주가 악행을 많이 저지르는 건 맞지만, 그는 그저 괴인들과 맞서 싸울 뿐이야. 우리 설산파의 땅을 밟지 않는 이상 신경 쓸 필요 없어.”

서역 설산파의 고수가 말했다.

“세상에 이유 없는 원한은 없어. 괴인들이 미쳐 날뛰다가 오히려 당하는 거잖아. 차라리 잘 됐어. 어차피 죽지도 않는 녀석들이잖아. 어디 한 번 호되게 당하고 교훈으로 삼으라지.”

곤륜 산맥의 천산파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강호 교류방에서도 서역 곤륜, 흑풍채 등 단어들이 눈에 띄었다.

서역 곤륜의 크고 작은 세력들도 흑풍채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그러나 괴인, 즉 플레이어들을 위해 나서는 세력은 단 하나도 없었다.

많은 플레이어들을 끌어들인 곤륜파도 가만히 있었다. 일부 장로들이 흑풍채 채주를 비난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악을 멸하겠다는 말도 그저 말뿐인 모양새였다.

현실은 생각처럼 만만하지 않았다.

열혈회.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하던 세력이 흑풍채 채주의 맹공을 받았고, 열혈가지 등 고위층들은 어디에 숨었는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열혈회는 흑풍채에게 공격을 당한지 하루도 안 돼 완전히 무너졌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곤륜 산맥의 한 부활 지점에서 되살아난 열혈가지와 회의 고위층들은 모두 곤륜파를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탈퇴 직전, 열혈가지는 훗날 이번에 겪었던 치욕과 원한을 반드시 갚아 주겠다고 다짐했다.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이번 일을 두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미 곤륜을 떠난 강대력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강호는 언제나 무수한 살인과 파괴의 악행이 발생하는 세계가 아니던가.

강대력의 눈에 열혈회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고 강한 자를 두려워하는 멍청이들로 구성된 모임에 불과했다.

뜨거운 열정과 피? 그런 건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었다.

***

청양성(青暘城) 밖 은행나무 숲.

가을을 맞아 은행나무에서 노란 나뭇잎이 떨어졌다. 가을의 적막함은 배가 되었다.

숲속에서 때때로 현이 울려 퍼지고 남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숲속 깊은 곳에서는 노랫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쐐애애액.

하지만 그때, 마응의 울음소리가 숲속의 분위기를 깨뜨렸다.

하늘에서 나타난 검은 점 하나가 빠른 속도로 수직 하강했다.

바람이 거칠게 일면서 노란색 낙엽이 치솟았다. 그와 동시에 강렬한 살기가 주변에 감돌았다. 숲속의 악기와 노랫소리가 뚝 그쳤다.

음악이 멈추자 가을의 쓸쓸한 정취가 더욱 짙어졌다.

바닥은 노란 잎 천지였다.

일남일녀. 두 사람이 숲속에서 빠져나왔다.

남자는 키가 크고 준수했으며, 얼굴은 관옥 같았고 손에 부채를 들고 있었다.

여자는 청순하고 단아했으며, 마음이 따뜻해 보였다. 가슴에 거문고를 품고 있었으나 근심이 가득해 보였다.

여자는 하늘에서 내려온 커다란 마응과 그 등에 올라탄 사람을 보더니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공. 상공의 원수가 찾아온 것 같습니다. 보아하니 무공 실력이 대단한 것 같은데 이제 어떡합니까?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 남자가 굳은 표정으로 마응을 쳐다보며 탄식했다.

“강호는 과연 쉬운 곳이 아니구려. 강호에 있는 사람들 모두 팔자가 사납소. 우리가 이리저리 숨어 다녔음에도 결국에는 귀신같이 찾아내는구려. 부인, 강호가 이렇게 큰데 설마 우리 두 사람이 숨을 곳이 없을 줄은 몰랐소.”

여자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점점 단호한 의지가 눈에 깃들었다.

“상공, 피할 수 없으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수밖에 없지요. 제게 무공 실력은 없습니다만, 상공 곁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다 죽겠습니다.”

그 남자의 얼굴에 감동의 표정이 역력했다.

“명영(明英)…….”

하늘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웃음소리에 실린 내력에 노란 나뭇잎들이 흩날리고 모래와 자갈들이 치솟았다.

“하하하, 두 사람 사이에 애정이 넘치는군. 부럽다 부러워! 하하하!”

곤륜산을 떠난 후 대량의 수위점과 잠재점을 소모하여 구양신공을 3경으로 끌어올린 강대력이었다.

남자는 마응의 등에 올라탄 강대력을 보며 말했다.

“정말 대단한 내공이야. 지금까지 만났던 상대 중에 제일 강할 것 같군. 서역 금강문과 지옥문의 두 고수 정도나 비슷했을까.”

퍼드덕.

커다란 마응이 아래로 내려와 앉았다.

노란 나뭇잎들이 흩날리는 모습이 마치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용과도 같았다.

뒤를 이어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아래로 뛰어내렸다. 순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바닥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났다.

두 사람은 안색을 굳히고 건장한 체구의 사나이를 주시했다. 상대방의 거대한 몸집과 빈틈없이 짜여진 근육만 봐도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얼핏 보기에도 용감하고 용맹해 보였다.

그리고 마응의 등에 청옥색의 돌덩이와 정신을 잃고 쓰러진 한 사람이 묶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또한 놀랄 만한 광경이었다.

남자는 강대력을 향해 포권을 하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시오. 대뜸 물어보긴 뭣하나, 당신의 정체를 알 수 있겠소? 여긴 무슨 일로 오셨소? 혹시 나를 찾아 오셨소?”

강대력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꽃이 피었을 때 꺾을 만하면 주저 말고 꺾어라. 꽃이 지고 난 뒤 아무것도 없는 가지를 꺾지는 마라. 절화공자(折花公子) 화절기(花折枝). 이것이 당신의 강호 별호가 아닌가? 오늘 보니 과연 별호가 아깝지 않군. 이 여자도 바로 당신이 꺾은 꽃인가?”

여자가 화를 내며 말했다.

“헛소리 집어치우시오! 물론 내 상공께서는 한때 강호에서 악명 높았소. 그러나 나를 위해 강호를 떠난다고 하셨지. 이제 강호는 우리와 상관없는 곳이며, 나는 상공님이 꺾은 꽃이 아니라 상공님을 평생 지켜줄 꽃이란 말이오! 당신…….”

남자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여자의 말을 끊었다.

“명영…….”

그리고 강대력을 보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절화공자는 다 옛날 일이오. 나는 그저 서산에서 차 밭을 가꾸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고, 강호를 떠난 지 좀 됐소. 다시는 강호의 일에 관여할 생각은 없소. 그저 여기 있는 내 부인과 조용히 지내고 싶을 뿐이니, 부디 우리를 놓아줬으면 좋겠소.”

강대력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차 밭을 가꾼다고? 아, 정말 웃기는 사람이군. 그래, 당신이 심은 건 봄 차인가 가을 차인가?”

강대력의 얼굴에 비웃음이 걸렸다.

“화간파의 바람둥이가 여자 때문에 강호를 떠나다니. 참, 세상에 별의별 일들이 다 있군. 하지만 강호를 떠났다고 해서 그동안의 은원이 사라는 건 아니지. 안 그래?”

화절기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보시오. 관용을 베풀 수 있을 땐 관용을 베풀 줄도 알아야 하오. 나도 내 스승으로부터 다정산장을 물려받았을 뿐인데, 왜 이리 사람을 몰아세우시오? 원하는 게 있다면 어디 말해보시오.”

강대력은 남자의 말에 대답했다.

“하하하, 다정산장의 장주 후희백(侯希白) 말이군. 그자도 여색을 좋아하기로 소문나긴 했어도 당신처럼 여자와 몰래 정을 통하진 않지. 후희백은 당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당신을 때려죽이고 싶어하지 않을까?”

강대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어떤 나뭇잎들은 말이야. 참 신기하단 말이지. 무슨 기묘한 힘에 의지하는지, 거의 말라 죽을 때까지도 벌거벗은 나무에 매달려 있다니까? 흐음, 당신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도록 하지. 들어볼 텐가?”

화절기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설마 나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요? 좋소. 일단 들어나 보지. 나를 위해 준비한 두 가지 선택지라, 어서 말해 보시오.”

강대력이 팔짱을 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하나는 조용히 나를 따라가는 거야. 우리 산채의 부하들이 당신을 작은 현성에 있는 감옥에 가뒀다가, 그날 밤에 바로 구출할 거야. 그러면 당신도 강호를 떠날 필요가 없게 도와주지. 그리고 이름과 호까지 바꾸면 당신을 찾아오거나 난처하게 만들 사람은 없을 거야. 다만 앞으로 나를 위해 일해줘야겠어. 물론 내 명성에 먹칠하는 순간 내 손으로 당신을 죽여버릴 거야.”

화절기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

“뭐, 감옥에 가뒀다가 다시 구출한다고? 그리고는 당신을 위해 충성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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