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생사자모충
강대력이 이렇게 세력 임무를 배포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물론 호산 전투였다.
무운홍을 비롯한 부하들이 서사산에 고립됐다는 정보를 받은 지도 시간이 제법 지났다. 정보가 전달되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무운홍 등의 상황은 이미 심상치 않을 수 있었다.
강대력은 강호 교류방에서 고립된 플레이어가 올린 게시글을 확인했다.
서사산 산채에서 강력한 실력의 고수 한 명이 불쑥 튀어나오는 영상이었다.
상대의 검법은 번개처럼 빠르고 거침없었다.
외기경 강자 무운홍도 삼십 수를 버티기 힘들었고, 일반 플레이어들은 그저 칼받이에 불과했다. 안북십삼기 등 몇몇 플레이어들이 겨우 삼 수 반 정도를 간신히 버틸 수 있었다.
이 검의 고수는 삿갓을 쓴 수수한 차림이었다. 영상은 희미했지만,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강대력은 아직 상대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고립당한 무운홍과 플레이어들은 반드시 구해야 했다.
그저 언제 어떻게 구할까 그것이 문제였다.
이 검객이 나타난 시기가 참 절묘했다.
강대력도 신중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부하에게 질 좋은 쇠사슬을 가져올 것을 분부했다.
그리고 강대력은 망토를 입고 손목 보호대를 착용한 후, 커다란 금배대환도까지 등에 메고서 장인이 방안에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지하도로 향했다.
‘서사산에서 조금만 더 가면 일월신교 흑목애(黑木崖)다. 지난 번에 내가 일월신교의 타주를 하나 격살한 사실은 알려지지 않은 듯하니 그건 걱정할 필요 없겠지. 기왕 근처로 가는 거 일월신교에 가서 삼시뇌신단을 구할 수 있을지 알아봐야겠어. 정 안 되면 연화보감(蓮花宝鑒)을 찾아봐야겠지.’
강대력은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생각을 이어갔다.
‘그리고 다시 무량옥벽으로 가는 거야. 외기경 실력의 무애자를 이길 수 있을지 시도해봐야겠어. 만약에 이번에도 패배하면 어쩔 수 없지. 폭기경에 들어서는 수밖에.”
강대력은 쇠사슬을 들고 좁은 지하도를 지나갔다. 그는 시간이 촉박하게 느껴졌다.
혼자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강대력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들은 도움이 안 되었고, 무열 등 NPC는 신뢰할 수 없었다.
강대력이 기연이 있는 곳을 뻔히 알면서도 당장 다 가져오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전방에 불빛이 밝아졌다.
지하도 양쪽 석벽에 등유가 타오르면서 좋은 냄새를 풍겼다.
불빛 사이로 패절당 당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어? 관관까지 물리칠 줄은 몰랐는데, 실력이 또 늘었나 봐?”
오상춘이 애원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채주님, 대체 언제 풀어주실 겁니까?”
옅은 불빛 아래, 강대력의 커다란 그림자가 석벽에 비치자 마치 요괴처럼 보였다.
겅대력은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세 사람은 안대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강대력을 볼 수 없었다. 심지어 냄새를 맡지 못하도록 콧구멍마저 막혀 있었다.
피부는 유지로 덮인 채 꽁꽁 묶여 있었다. 게다가 청수는 견갑골까지 뚫려 있었다.
세 사람은 귀로 듣고 입으로 숨만 쉴 수 있을 뿐, 냄새를 맡을 수도 없을뿐더러 주변을 볼 수도 없었다.
강대력은 오상춘과 무열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쇠사슬로 청수만을 자신의 등에 묶은 뒤 지하도를 빠져갔다.
강대력의 등에 업힌 청수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나를 은폐된 곳으로 데려왔었나 보네. 흑풍채에 이런 곳이 있다니. 동굴 아니면 지하실이겠지.”
강대력이 말했다.
“그걸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 마녀 관관조차 너를 구하지 못했어. 아직도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강대력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마녀 관관보다 더 강한 고수를 데려오기 전에는 방법이 없을 거야. 패절당이 천마문과도 연결되어 있을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강대력은 속으로 아쉬워했다.
그는 지난번에 청수의 모습으로 변장한 후 멸정도의 두 여자와 맞붙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천마문이 패절당을 찾아가 보복할 줄 알았더니, 이미 이들 사이에는 연결 고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강대력의 위장은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청수가 말했다.
“그래, 자네 말이 맞아. 관관보다 더 막강한 사람을 데려오는 건 아무래도 힘들 거야. 설령 데려온다고 해도 육소봉과 서문취설의 상대는 안 되겠지.”
“그래서 포기하는 건가?”
강대력의 물음에 청수가 대답했다.
“아니, 내가 직접 거래하려고.”
“뭐라고?”
“혹시 생사자모충(生死子母蟲)에 대해 알고 있어?”
강대력의 안색이 굳었다.
“생사자모충?”
강대력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서남 묘강(苗疆) 금화문(金花門) 같은 종문이 만들어낸 그 생사자모충? 금화문은 선사고술(善使蠱術)로 이름이 알려져 있지. 선사고술은 보통 젊고 아름다운 미모의 여자들이 수련하여, 상대방을 방심시키고 모르는 사이에 고충(蠱蟲)을 적의 몸에 넣는다고 하지.’
청수는 눈이 가려져 있어 강대력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느낌으로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깨달은 듯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정도로 견문이 뛰어날 줄은 몰랐네. 생사자모충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줄이야. 말이 좀 통하겠는걸.”
강대력이 말했다.
“그래서 생사자모충을 얻어오겠다고? 내가 모충을 먹고 당신이 자충을 먹겠다? 그러면 당신은 내 통제를 받게 될 것이며 나를 대신해서 손에 피를 묻히겠다는 말인가?”
“그래. 모충을 먹으면 그리 큰 문제가 없지만, 자충을 먹은 사람은 49일마다 모충의 신선한 혈액 열 방울을 먹여야 자충이 심부를 파고들어 목숨을 잃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이런 고충들은 체내의 내기를 두려워하지 않아. 오히려 자양분으로 삼아 생명력이 더 강해지지.”
패절당 당주 청수는 피식 웃었다.
“모충이 부르지 않는 이상 몸 밖으로 배출해내기 어려워. 자충을 먹은 사람은 모충을 먹은 사람의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지. 우리처럼 죽지 않는 괴인이라 할지라도 자충에게서 벗어나기는 어려워. 자네가 모충을 먹고 내가 자충을 먹으면 우리 둘 사이를 이렇게 단단한 쇠사슬로 묶을 필요도 없어. 나는 자네를 위해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으로 지난 과오를 만회하고 싶어.”
강대력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내가 어떻게 나올 줄 알고 자충을 먹겠다는 거지? 내 통제를 받는 것이 두렵지도 않아?”
청수가 담담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든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지. 나부터 솔직하게 말할게. 우리 같은 괴인들은 말이야. 엄청난 대가를 치르면 이런 고충이라도 강제로 배출할 수 있어. 다만 그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지.”
청수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자네를 위해 세 가지 일을 하겠어. 그 대신 나는 자유의 몸이 되고 우리 둘의 관계도 개선되겠지. 만약 자네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렇게 묶고 다니는 건 불편하지 않아? 이건 우리 둘한테 서로 좋은 선택이야.”
강대력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청수는 영리하고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모든 선택은 이익에 기반했고, 생각에 빈틈이 없었다.
사실 강대력은 요구했던 무공을 손에 넣으면 청수를 죽여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만약 생사자모충을 먹으면 언제 찾아올지 모를 패절당 위협에 대비할 필요도 없어질 터였다.
패절당이 뒤에서 마녀 관관까지 불러올 줄은 몰랐다. 이 일에 대해서는 강대력의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었다.
그러나 그가 패절당 당주를 어떻게 취급했는지 생각하면 화가 나기로는 이 자가 더할 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악의 상황을 위해 화를 참으며 한발 양보했다.
현명하다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사자모충 같은 고충은 매우 특이한 것이었다.
전생에 한 플레이어가 금화문의 한 강자로부터 고충 공격을 당했었다. 그 플레이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음에도 자충이 몸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다섯 번 이상 죽은 다음에야 자충을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었다.
청수가 자충을 먹고 강대력이 모충을 먹는다면, 청수는 다섯 번 자결하는 것 외에는 통제를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이는 아무리 금화문이라고 해도 해소할 수 없었다.
다섯 이상 자결하는 대가를 치르는 건 누구라도 원하지 않을 터였다.
강대력은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할 건 없겠군.”
강대력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먼저 탈명십삼검과 호신삼묘수의 비급부터 가져와. 이건 세 가지 조건 외의 일이다. 내가 제시할 첫 번째 조건은 이것이다. 패절당은 작은 세력이 아니니 성조에 침투한 사람이 반드시 있을 거야. 일단 성조 문제부터 해결하지. 금의위와 육선문 등의 기구들이 적어도 3개월은 우리 흑풍채를 찾아오지 않도록 해.”
청수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흑풍채 채주 강대력은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물론 패절당은 일찍이 성조에 사람을 침투시켰다.
그러나 강호에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흑풍채 채주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니? 그냥 넘겨짚는 눈치가 아니었다. 어딘가 남모를 소식통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수는 곧장 수락하지 않았다.
“생각 좀 해볼게.”
성조에 침투한 사람의 힘을 빌리겠다니,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반드시 논의해봐야 한다.
강대력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몸에서 광포한 내기가 올라왔다.
“하하하. 그래, 그러면 잠시 눈 좀 붙이도록.”
청수는 번개를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곧바로 기절해버렸다.
***
강대력은 마응 등 위의 빙백옥석에 앉아, 상처를 치료하는 동시에 항룡입팔장을 수련했다.
강대력은 대장장이에게 빙백옥석을 의자로 만들어 마응의 등위에 고정할 것을 주문했다. 그래야 이동 중에도 편하게 앉아 수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자를 만들고 남은 자투리 재료로는 장신구를 만들었다. 훗날 실력이 출중한 플레이어들에게 포상으로 내릴 생각이었다. 빙백옥석을 세공한 것이지만 그 효과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장신구의 효과는 본체에 비해서는 많이 떨어졌다.
강대력은 서사산으로 가는 길 내내 수련에 집중했다. 항룡입팔장에 대한 깨달음이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
그렇게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강대력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앞에 새로운 안내창이 나타났다.
[항룡입팔장 입문]
- 상세 : 천계절학 불완전 항룡입팔장 입문.
- 보상 : 강호 명성 500, 혈기 100
강대력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강대력이 벌떡 일어서자 몸에서 용맹한 내기가 터져 나왔다. 강대력은 기세를 끌어올렸다. 광포한 소리와 함께 막강한 기가 용솟음쳤다.
“항룡입팔장 - 견룡재전!”
용의 울음소리와 함께 거센 파도같은 기운이 하늘에 퍼져나갔다. 강렬한 장력이 구름을 휘저었다.
강대력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역시 천계 절학이야! 대단하군.”
전력을 다하지 않았음에도 내기가 순식간에 500점이나 소모되었다.